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95화 (196/202)
  • 195. 성장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나라를 불문하고 고기가 없는 상차림은 허전하다 생각하는 건 똑같다. 아무리 허울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하지만 관저 만찬에서 고기가 빠지는 건 허용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예 채소류만 가득한 메뉴로 구성해 볼까 했는데 명색이 관저 만찬이라 완전히 제외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요. 내가 미스터 장의 홈그라운드에서 음식을 먹어 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요.”

    알렉스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 관리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미스터 장은 실력을 발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메인 요리에 푸짐한 고기를 사용하기 위해 앞의 메뉴들을 가볍게 구성했었다.

    이번에 섭취할 기름기를 조금이라도 중화시킬 수 있도록.

    마블링이 환상적으로 자리를 잡은 등심 스테이크를 준비했다.

    “메인 요리는 서로인 스테이크입니다.”

    “흐음….”

    메인 음식을 공개하자 알렉스와 김용수 대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갈색으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보자 지금까지의 아쉬움이 한 번에 씻어 내려가는 듯했다.

    “접시에 담긴 고기를 보니깐 속이 시원하네요. 건강 때문에 자제를 하곤 있지만 역시 고기가 최고입니다.”

    “맞습니다. 동감입니다.”

    태음인인 두 사람에게 고기는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고기 위에 올려진 초록색의 소스 또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근데 미스터 장. 이 스테이크 소스는 뭐로 만든 건가요? 색깔도 질감도 보통 소스와는 다른 것 같은데.”

    “한번 맞혀 보시겠어요?”

    사상 체질을 공부하며 개발하게 된 비장의 소스였다.

    일반적인 소스에 대한 이론을 완전히 버리고 고민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다.

    양식 전문이 아니지만 스테이크와 어울리는 소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 보니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나 보군요. 보통 입맛으로 맞힐 순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말해 줘요.”

    “에이. 재미없게 포기하시네요.”

    알렉스와 김용수 대사는 포크를 들어 소스를 먼저 찍어 맛을 보았다.

    몇 번 쩝쩝대더니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혈압과 당뇨에는 시금치가 효과적인 음식입니다. 시금치를 기름에 살짝 볶아 스테이크의 가니시로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저는 소스로 활용해 봤습니다.”

    “시금치의 색깔도 이렇게 초록색을 유지하고, 맛도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만든 건가요?”

    알렉스의 말에 제스도 궁금해졌는지 소스만 찍어 먹어 보았다. 하지만 제스 역시 그 비법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충 이러한 것들이 들어갔겠구나라고 추측해 보는 게 전부였다.

    “마늘 향이 좀 나는 것 같은데….”

    “고기 식기 전에 말해 줘요. 비밀을 알고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알려 드리겠습니다.”

    시금치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혈액을 맑게 해 주는 데 도움을 주는 식재료이다.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물에 살짝만 데쳐 준 다음, 마늘과 대파 그리고 잣을 볶아 함께 갈아 준다.

    “거기에 간장, 설탕, 후추, 깨, 참기름 약간을 넣어서 마무리해 주면 한식의 향이 강한 소스가 완성됩니다.”

    “시금치랑 잣이면 페스토 만드는 방법 아닙니까?”

    “역시 제스는 아시는군요. 페스토를 만드는 방식에서 올리브 오일 대신 참기름을 활용했고, 마늘과 대파, 간장을 활용해서 한국의 맛을 좀 더 강조했습니다.”

    이탈리아 음식인 바질 페스토를 만드는 방식을 활용했다. 와인을 졸이거나, 밀가루를 볶아서 만드는 소스들보다 식감이 거칠고, 맛과 색깔 또한 흔하지 않은 소스였다.

    우연히 만들고도 스스로 만족스러웠던 소스였다.

    “역시 비밀을 알고 나서 먹으니 더욱 맛있네요.”

    “게다가 앞에서 채소만 먹다가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알렉스와 김용수 대사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럼 미스터 장. 우리 음식도 고기겠지요?”

    알렉스와 김용수 대사의 음식을 보고 군침을 흘리던 제스가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고기긴 고기지만 마블링이 가득한 소고기는 아니었다.

    “고기긴 고기인데 다른 고기예요.”

    “무슨 고기예요?”

    제스는 최근 들어 근무 시간이 너무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원기 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그렇지만 태양인에겐 담백하고 지방기가 적은 음식이 적합했다.

    “우리 음식은 닭고기예요.”

    “닭고기요?”

    닭고기란 말에 제스는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근사한 소고기 스테이크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닭은 닭인데 아주 공을 들여서 만든 음식이니깐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요?”

    공을 들였단 말로 제스를 달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스테이크보다 훨씬 공을 들였단 말은 사실이었다.

    “음식 이름이 뭔가요?”

    “이건 수비드한 삼계탕이에요.”

    “……?”

    음식 이름만으론 도무지 그 맛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어놔도 그 궁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알고 있는 삼계탕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아닌가?”

    “그러게요. 내가 알고 있던 모양과도 다른 것 같네요.”

    “이건 한국 사람이 봐도 익숙하지 않군요.”

    제스뿐만 아니라 알렉스와 김용수 대사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삼계탕은 뚝배기에 걸쭉한 국물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모습이 보편적인데, 내가 내어놓은 음식은 흡사 닭고기 스테이크 같았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전부 사용했지만 조리법을 조금 다르게 사용해 봤습니다.”

    “어떻게요?”

    인삼과 황기, 대추, 은행, 마늘 등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 닭고기와 함께 저온으로 푹 익혀 준다.

    원기 회복에 좋은 영양소들이 충분히 우러나올 수 있도록 반나절 동안 익혀 주었다.

    “그렇게 수비드 기법으로 익힌 닭고기들은 한국 약재들의 영양소를 전부 흡수하고도 야들야들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야.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돋네요. 근데 이 닭고기 위에 올려진 젤리 같은 건 뭔가요?”

    “제… 젤리?”

    삼계탕에 젤리가 올라갈 리 없겠지만 그 모습이 영락없이 젤리 또는 푸딩이었다.

    갈색빛을 띄고 있는 이 탱글거리는 것의 정체는 바로 소스였다.

    “원래 삼계탕은 별도의 소스 없이 국물을 함께 먹는 수프의 일종이에요. 근데 이번에 이탈리아에 가서 재밌는 걸 배워 왔거든요.”

    “재밌는 거요?”

    로베르토의 식당은 여러 가지로 얻은 게 많았던 레스토랑이었다. 요리사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세계 곳곳에서 모인 개성 있는 요리사들.

    그들에게서 분자 요리라 불리는 요리법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삼계탕을 만들 때 닭발을 함께 넣어서 육수를 만들었습니다. 맛도 더욱 깊어질 뿐 아니라, 닭발에서 녹아 나오는 콜라겐 성분이 이런 재밌는 소스를 만들게 도와줍니다.”

    닭발에서 녹아 나온 콜라겐이 식으면 마치 묵이나 젤리처럼 탱글탱글하게 굳어진다. 그 육수에 간장으로 색을 내고 소금 간을 한 뒤 굳혀 주고, 한입 크기로 잘라서 고기 위에 얹어 주면 색다른 식감의 소스가 탄생된다.

    “우와 말로만 들어도 정말 창의적인 조리법이네요.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이건 저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감탄을 아끼지 않는 알렉스와 제스였다.

    “저도 이런 건 쉽게 상상해 낼 수 없습니다. 그 레스토랑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 소스도 마찬가지구요.”

    “그 레스토랑이 베네치아에 있다구요? 나도 꼭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처음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던 제스도 수비드한 삼계탕과 젤리 소스를 맛보자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스테이크보다 건강도 챙기고, 특이한 조리법도 알게 된 자기 음식이 더 맘에 든 표정이었다.

    “이 소스 조금 독특하긴 해도 맛도 있고, 먹기도 편하네요. 난 맘에 들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 소고기 스테이크보단 아니죠. 일단 고기 자체의 급이 다른데.”

    “맨날 먹는 스테이크가 뭐 좋다고 그래요. 알렉스, 이건 나만을 위해 만든 음식이에요.”

    “이것도 내 체질을 고려해서 만든 거예요!”

    알렉스가 제스가 서로의 음식이 낫다며 귀여운 말싸움을 주고받았다. 두 음식 다 맘에 들었다니 나는 뿌듯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자자 둘 다 싸우지마시고 마지막 디저트를 드시죠.”

    디저트라는 말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정리되었다.

    “디저트도 다른가요?”

    “아니요. 아쉽지만 디저트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먹을 겁니다.”

    디저트까지 체질별로 나눌까 했지만 식사 후 다 같이 둘러앉아 과일을 먹는 한국 사람들처럼 디저트만큼은 같은 메뉴로 통일했다.

    “자 시원한 차 한 잔씩 받으시고.”

    킁킁.

    “이건 뭐로 만든 음료인가요?”

    “색깔이 독특한데.”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알렉스와 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제스였다. 그 옆에서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용수 대사였다.

    “음료는 일단 한번 맛보세요.”

    이번에도 그 정체를 알려 주지 않았다.

    “이거는 고구마를 말려서 만든 고구마말랭이와 연근, 김, 감자로 만든 부각이에요.”

    “부각?”

    “말려서 튀긴 음식이에요. 한국의 전통 쿠기 같은 거라 생각하시면 좋아요.”

    며칠 동안 직접 햇빛과 그늘을 오가며 말린 고구마말랭이와 부각들이었다. 그 맛이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었다.

    “이 부각이라는 음식이 디저트로선 그리 달콤하진 않지만 이 주스와 먹기엔 딱 좋은 것 같네요.”

    “맞아요. 이 주스 적당히 달면서 질리지 않은데 무슨 과일로 만든 건가요? 배?”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나는 이 주스를 맛보면 누구나 과일로 만들었을 거라 추측을 한다.

    대부분이 설마 이걸로 만들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두 사람 역시 비슷한 느낌의 과일 몇 가지를 던져 봤지만 전부 빗나갔다.

    이번엔 나 대신 김용수 대사가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이 주스는 양파로 만든 겁니다.”

    “네?”

    “네 양파요?”

    양파로 만든 주스란 말에 두 사람이 동공이 커졌다.

    “에이 양파에서 어떻게 이런 단맛이 납니까?”

    “다른 과일도 섞인 거 아닙니까?”

    김용수 대사는 믿기 힘들어하는 두 사람을 향해 한마디를 더 거들었다.

    “제가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신 거라 확실합니다.”

    김용수 대사의 말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3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 양파주스를 마신 장본인이었으니까.

    “두 사람도 가능하다면 이 양파주스를 매일 챙겨 먹는 걸 추천할게요.”

    “효과가 좋나요?”

    썩어 가는 양파를 처리하기 위해 시작한 양파주스였다. 그 전엔 매운 생양파를 억지로 챙겨 먹던 김용수 대사였는데 이제는 이 달콤한 양파주스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있었다.

    “제가 파나르에 처음 왔을 때 당뇨가 조금 있었어요. 심한 건 아니었지만 혈당 수치가 높아 조심해야 했어요.”

    “아이고 그러셨구나. 힘든 걸음을 하셨네요.”

    김용수 대사의 당뇨 수치가 높다는 건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즐겨 먹는 반찬이나 여러 가지 식습관들을 보면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친해졌다 해도 약한 소리를 나에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겠지.

    김용수 대사의 입으로 직접 이 단어를 들어 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 제가 한국에 갔을 때 건강 검진을 받고 왔거든요.”

    “그러셨어요? 몰랐네요.”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그냥 업무차 갔다 온 줄 알았는데.

    김용수 대사는 알렉스와 제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 뒤 말을 이어 갔다.

    “근데 결과를 보고 아주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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