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94화 (195/202)
  • 194. 사상 체질

    “아니 저게 뭐야.”

    나와 김용수 대사는 그냥 놀랄 뿐이었지만 알렉스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제스 회사의 시그니처 색깔인 파란색으로 랩핑되고, 곳곳에 별이 그려져 있으며, 지붕엔 커다란 피자 모형이 붙어 있는 화려한 차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서 급하게 내리는 제스의 옷은 누가 봐도 J&J의 유니폼이었다.

    “어휴.”

    알렉스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오고, 차 문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가게에 갑자기 손님이 몰려서요. 조금 도와주다 보니 늦어 버렸네요.”

    연신 고개를 숙이는 제스를 향해 김용수 대사가 인사를 건넸다.

    “저희 피자는 안 시켰는데요?”

    “아? 하하하 죄송합니다.”

    “으이그.”

    “어서 와요, 제스.”

    김용수 대사의 농담 한마디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금세 정리가 되었다.

    “뭐 무거운 자리도 아니니 들어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김용수 대사의 표정에선 전혀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파나르에 왔었던 초반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었다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땐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해도 자격지심이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김용수 대사는 그 어디에서나 당당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땀 좀 닦으시죠, 제스 씨.”

    “아. 감사합니다.”

    관저에 들어오고 나서도 거친 숨을 내뱉고 땀을 흘리는 제스였다. 핼쑥해 보이는 얼굴도 덤이었다.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네 미스터 장 덕분에 요즘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 기분 좋은 말이네요. 장 세프가 도움이 되었다니.”

    “좀 힘들긴 해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파나르에 놀러 오시면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되어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와 장 셰프에게도 너무 좋죠.”

    김용수 대사는 이제 별다른 주제도 없이 대화를 이어 가는 스킬이 많이 늘었다. 업체 미팅을 자주 갖는 두 사람 역시 능숙했고.

    의미 없이 계속 잡담을 나누는 것보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나섰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자리 옮기시죠.”

    “좋습니다. 두 분 다 가시죠.”

    “미스터 장도 같이 식사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두 사람 다 파나르 외교관으로서 알아 두면 좋은 인맥이지만 오늘은 캐주얼한 분위기로 만찬을 이어 갔다.

    알록달록한 제스의 유니폼도 분위기를 잡는 데 한몫했고.

    “대사님과 알렉스가 이쪽에 앉으시고, 저랑 제스가 이쪽으로 앉겠습니다.”

    원래도 외교 만찬 땐 식탁에 앉는 장소까지 정해 주는 의전이 있다. 초대를 한 주인을 중심으로 중요도나 언어 등의 문제를 고려해 자리를 배치한다.

    하지만 오늘은 인원도 4명뿐이었고, 전부 영어나 파나르어로 능숙하게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기준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첫 번째 음식입니다.”

    준비한 첫 번째 음식을 가지고 나갔다.

    알렉스와 제스의 앞에 두 개의 접시를 올렸다.

    “감귤로 만든 초고추장 소스와 표고버섯 숙회입니다.”

    파나르에도 저렴하고 당도가 높은 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귤의 일부는 믹서기에 갈아 향긋한 즙만 이용하고, 또 몇 개는 과육이 씹힐 수 있도록 칼로 썰어서 준비해 준다.

    “거기에 텁텁한 맛을 줄이기 위해 고추장은 약간만 넣고, 고춧가루, 식초, 매실액, 꿀로 소스를 만들어 끼얹어 주면 됩니다.”

    “이야, 귤로도 이런 소스를 만들 수 있군요.”

    “버섯을 저런 식으로 먹는 게 더 독특한데?”

    표고버섯은 밑동을 제거하고 1cm 정도의 두께로 썰어 뜨거운 물에 살짝만 데쳐 준다. 버섯의 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짜지 않고 체에 올려 두어 물기를 제거해 준다.

    “표고버섯은 고혈압과 당뇨에 좋은 음식입니다.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여 주고, 식이 섬유가 많아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됩니다.”

    음식 설명을 마치자 두 사람의 눈빛이 더욱 반짝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제스랑 미스터 장의 음식은 왜 안 갖고 오시나요?”

    “그러게요. 왜 저와 알렉스 거만 갖고 온 건가요?”

    “아 저와 제스의 음식은 따로 있습니다.”

    “따로요?”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와 다른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표고버섯 숙회가 담겨 있던 그릇과 달리 오목한 국그릇이었다.

    “어라? 그릇이 다르네요?”

    “그러네요. 똑같은 접시가 모자랐나요? 미리 주문하지 그랬어요.”

    자기들 앞에 놓은 접시와 다른 그릇을 갖고 나오니 조금 당황한 듯했다. 그릇만 다른 게 아니라 음식도 달랐다.

    “그릇만 다른 게 아니라 음식도 다릅니다.”

    “예? 왜요?”

    놀라는 건 김용수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한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음식을 다르게 준비했던 적은 없었다.

    알레르기나 특이 체질이 아닌 이상 다른 음식을 준비하는 건 외교적으로도 결례가 될 수 있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나눈 이유는 두 분의 체질과 저와 제스의 체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체질이요?”

    김용수 대사는 감으로 알아들었겠지만 알렉스와 제스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인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사상 체질이라는 방법으로 사람을 나누는데,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이렇게 4가지로 나눕니다. 앞에 앉으신 두 분은 태음인의 체질을 갖고 계십니다.”

    “태… 무슨 인이요?”

    “태음인입니다. 지금은 노력을 통해서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알렉스의 타고난 체질은 아마도 태음인일 겁니다.”

    알렉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알렉스,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살을 많이 뺐었다면서요?”

    “어떻게 알았어요?”

    “기사에서 읽었습니다.”

    “아이 참.”

    치부라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알렉스였다.

    “창피하네요. 젊고 사업도 승승장구하니 건강을 챙길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맛있는 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어 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줄 알았죠.”

    “알렉스 씨 어디 아팠었어요?”

    김용수 대사도 알렉스의 과거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만신창이였죠. 고혈압에 각종 성인병이 모여서 뇌출혈까지 왔었죠.”

    “뇌출혈이요? 큰일날 뻔했네요.”

    “기적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별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말을 하지만 이 정도로 후유증이 없다는 건 정말 기적이었다.

    “저도 당뇨가 좀 있어서 먹는 걸 조심하는 편인데, 장 셰프 덕에 증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두 분을 위해 이 표고버섯 숙회를 준비한 겁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병도 있고, 태음인들은 기본적으로 비만, 고혈압, 당뇨, 화병 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알렉스는 별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것 참 재밌네요. 사상 체질?”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해 드릴게요. 태음인은 얼굴이 큰 편이고, 대체적으로 코가 큽니다. 이렇게요.”

    알렉스의 커다란 코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리고 성격적으론 꾸준하고 인내심이 강한 편이에요.”

    “오 맞아요!”

    “대신에 게으를 땐 한없이 게으를 수 있어요.”

    “오!”

    마치 사주를 보는 사람처럼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저는 확실한 태음인이네요.”

    “저도 맞는 거 같습니다. 하하.”

    알렉스는 몰라도 3년 가까이 지켜본 김용수 대사의 체질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 때도 그걸 많이 고려하고 만들었으니 확신이 있었다.

    “그럼 두 사람 체질은 뭔가요? 그리고 어떤 음식이에요?”

    알렉스가 재밌는지 나와 제스의 음식에도 관심을 가졌다.

    “저와 제스의 음식은 물회입니다.”

    “물회?”

    오목한 접시에 신선하게 포를 떠 채 썰어 준 광어회와 새콤달콤하게 만들어서 살짝 얼려 둔 육수를 부어 주었다.

    오이와 양파, 당근, 양배추 등의 채소를 올리고, 쪽파와 새싹 채소들을 올려 주어 마무리했다.

    “저와 제스는 태양인입니다.”

    “발음이 비슷하네요 태음인과.”

    “네 태양인들은 인상이 강하고, 눈빛이 좋은 편이에요.”

    “음… 그럼 제스는 아닌거 같은데?”

    알렉스는 퀭해져 있는 제스의 눈을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유를 곧바로 알려 주었다.

    “태양인들은 간이 약해서 피로를 쉽게 느끼고, 하체가 약한 편입니다.”

    “하하하 맞네요 맞아. 제스를 볼 때마다 놀라는 게 그거에요.”

    “뭔데요?”

    “항상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어떻게 요식업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다리도 웬만한 여자들만큼 얇아서 오래 서 있기도 힘들어하면서 말이죠.”

    제스는 피식하며 웃었다.

    “그래도 음식 하는 게 재밌고 좋으니까 그렇죠. 안 그래요, 미스터 장?”

    나 또한 제스의 말에 공감했다. 젊고 어렸을 때는 그것만으로 모든 걸 이겨 낼 수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이틀을 쉬고 나면 회복이 되었고, 다리가 아픈 건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요령이 생겼었다.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요리가 좋아 그만둘 순 없었다.

    “그걸 다 감안해서도 요리하는 게 더 재밌죠.”

    “역시 미스터 장.”

    제스가 식탁 위로 주먹을 뻗었다. 주먹 끝을 맞추며 식사를 이어 갔다.

    “태양인들은 아이디어가 많고, 리더십이 강한 편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종종 화를 내곤 합니다.”

    “맞아요 맞아요. 직원들이 가끔 제 마음을 못 알아줄 땐 크게 소리를 칠 때도 있었어요.”

    피곤해하던 제스도 이젠 완전히 사상 체질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태양인들은 지방이 많은 육류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담백하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게 좋아요. 그래서 첫 번째 음식으로 물회를 선택했습니다.”

    “이야 알고 먹으니깐 몸이 더 빨리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이론이네요.”

    알렉스와 제스는 만찬 주제 푹 빠져 있었다. 게다가 맛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릇을 싹싹 비워 냈다.

    “자 다음 음식은 뭔가요?”

    “빨리 태음인의 음식을 내어 주세요.”

    “어떤 음식인지보다 왜 이 음식인지가 더 궁금하네요.”

    두 사람의 예상보다 더 격한 반응에도 나 역시 신이 나 음식을 준비했다.

    “다음 음식은 튀김류입니다.”

    “튀김 좋죠.”

    이번에도 태음인 두 사람의 튀김을 먼저 서빙했다.

    “야채튀김입니다. 연근과 고구마, 쑥갓, 양파를 튀겨 냈습니다. 유자청을 섞은 이 맛간장을 찍어 드시면 됩니다.”

    “튀김은 뭘 튀겨도 맛있다는데 분명 맛있겠죠.”

    “파나르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한국에는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요? 웃긴 표현이지만 딱 맞는 말 같네요 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태양인들도 튀김인가요?”

    “네 저희도 이번에 튀김입니다.”

    같은 튀김이지만 사용한 재료가 달랐다.

    “저희는 굴과 전복, 그리고 깔라마리 튀김입니다.”

    “또 해산물이네요?”

    “네. 태양인들에겐 해산물이 가장 좋은 식재료이고, 특히 굴은 칼슘이 풍부해 원기 회복에 좋습니다. 그리고 깔라마리 같은 오징어류엔 타우린이 많아서 피곤한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궁합이 좋은 레몬을 넣은 맛간장과 함께 드셔 보세요.”

    제스가 최근에 많이 피곤하단 말을 듣고 고른 식재료들이었다. 원기 회복에 좋은 굴과 전복 그리고 오징어류까지.

    이번 만찬은 메뉴를 구성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만큼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기름기로 반짝이는 입술을 닦은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미스터 장.”

    “네.”

    “음식들이 너무 맛있고, 재밌는데, 우리 태음인들한테는 계속 채소만 주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관저 만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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