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국시 (2)
“국시요?”
국시를 주문하는 예민희 서기관을 보며, 나와 윤아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네가 좀 말려 보라는 의미로.
그래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주문하는 거겠거니 생각하며 일단은 넘어갔다.
“저… 서기관님.”
“네?”
“혹시 국시 드셔 보셨어요?”
“이거요? 아니요. 말로만 들어 봤지 직접 먹어 본 적은 없어요. 근데 저 잔치국수도 되게 좋아해요.”
아….
잔치국수 뭐 그런 맛을 생각하고 주문을 하면 안 되는데.
역시나 한국에서 고려인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음식까지는 먹어 본 적이 없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국시. 뭔가 이름이 정겹잖아요.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밭에서 바로 딴 호박이랑 호박잎을 넣고 가마솥에 끓여 낸 그런 맛일 것 같아요.”
절대 그런 맛 아닙니다.
한껏 기대하고 있는 예민희 서기관의 얼굴에 대고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개인의 취향일 뿐 혹시나 예민희 서기관에겐 맛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굳이 내 주관적인 의견을 미리 주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국시랑 불고기, 비빔밥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예민희 서기관은 얼마 전 날아온 공문에 대해 말을 꺼냈다.
“요리사님. 이번에 공문 온 거 저도 봤어요.”
“아 청와대 요리사에 대한 거요?”
“네. 당연히 지원하실 거죠?”
“물론이죠.”
그것 때문에 여기 파나르에 지원을 한 건데, 기회가 올 때마다 잡으려는 시도는 해야지.
“근데 첫 공개 채용이라서 청와대에서도 엄청 신경 쓰겠어요.”
“그러니까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들어진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마 그 불안한 느낌이 맞을 거예요.”
“정말요?”
“네. 본부에서 근무하는 동기들한테 얘기를 들어 보니깐 꽤 꼼꼼하게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진 나에겐 분명 이른 기회였지만 그 장벽은 훨씬 높아져 버렸다. 이번 공개 채용이라는 거.
“서류는 그렇다 쳐도 실기시험 같은 것도 있겠죠?”
“네 아무래도 실력 테스트는 무조건 거치지 않을까 싶네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사실.”
예민희 서기관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뭐든 2차 시험이 제일 힘든 거거든요.”
“왜요?”
“무슨 시험이든 보통 1차는 필기라서 절대 평가거든요. 100명이 지원해서 100명 다 기준 점수를 넘기면 전부 통과, 그런데 2차는 대개 상대 평가예요. 상대방보다 좋은 점수를 얻어야지만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요.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이죠.”
이번 공개 채용 역시 비슷한 시스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서류 심사를 통해 1차로 걸러 낸 뒤 2차는 까다로운 실력 테스트, 그리고 3차는 면접을 통해서 단 한 명의 청와대 요리사를 뽑게 될 것이다.
“역시 공부를 잘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잘 아시네요.”
“한국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의미가 뭔지 아세요?”
“뭔데요?”
“특별한 거 없어요. 그냥 시험을 잘 쳤다는 의미예요.”
예민희 서기관은 명실상부 한국에서 알아주는 엘리트였다. 공부면 공부, 자격증이면 자격증, 시험이면 시험까지 전부 섭렵한 천재였다.
“한국의 모든 공부는 다 시험으로 통하는 거거든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자격증 시험, 외무 고시, 사법 고시까지.”
“음….”
“시험 치는 법만 잘 알면 한국에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요. 물론 그게 어려운 거지만.”
그렇지.
말이야 쉽지. 그렇게 치면 시험이 아닌 게 어딨겠냐.
인생의 모든 것이 시험의 연속이고, 당락이 반복되는 것임을.
어려운 얘기를 아주 쉬운 것처럼 얘기하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그게 쉬운 거였으면 저도 변호사나 의사 같은 걸 도전했겠죠?”
“에이 그것도 성격이 맞아야 하는 거죠. 그나저나 제 대화가 산으로 갔죠? 제가 왜 이런 얘기를 꺼냈냐 하면요.”
예민희 서기관이 경로를 잃은 대화 주제를 바로잡으려던 찰나, 준비했던 음식이 나왔다.
저번과는 달리 따뜻하게 끓여 낸 국시와 비빔밥, 그리고 불고기까지.
국시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불고기와 비빔밥의 겉모습은 그럴싸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할까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이 비빔밥 꽤 맛있어 보이는데요?”
“불고기도 냄새 좋아.”
비빔밥은 어디서 구했는지 뚝배기처럼 생긴 돌그릇에 데워져 나왔고, 고기의 두께가 조금 두꺼웠지만 달큼한 간장의 향이 제대로 나는 불고기였다.
반면 예민희 서기관의 국시는 이미 맛을 봐서 그런지 여러 가지 고명도 어지러워 보였고, 양념장도 없는 게 밍밍해 보였다.
“드디어 고려인들의 음식을 먹어 보는구나.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도 맛있게 드세요.”
“네 서기관님도 맛. 있. 게 드세요.”
부디….
후루룩-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면발을 끌어당기는 예민희 서기관의 입이었다. 나와 윤아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아직 숟가락을 입게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음….”
“어… 떠세요? 국시?”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예민희 서기관은 대답 없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후루룩-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면을 입으로 밀어 넣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다행이구나. 입맛에 맞나 보다.
나와 윤아의 입맛이 조금 까다로웠던 거지 역시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맛있게 먹는 예민희 서기관을 보며 우린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탁-
“……?”
“다… 드신 거예요?”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맛없어요.”
“네?”
“너무 맛이 없어서 더는 못 먹겠어요.”
반전이었다.
뜨거운 국시의 면을 듬뿍 들어 두 번이나 삼킨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그런데 맛이 없다니.
“처음 먹어 보고 이 맛이 맞나 싶어서 한 번 더 먹어 봤는데, 역시나 맛이 없어요.”
“하. 하. 하.”
“이 맛이 정말 맞는 건가요?”
그건 나도 의문이다.
이 사람들이 이 음식으로 식당을 열 정도면 자기가 기억하는 맛이 이 맛이기 때문이겠지?
세대를 지나면서 원래의 맛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잃어버려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았지만.
“이래선 안 되겠어요.”
“네? 그게 무슨?”
뭔가를 결심했는지 예민희 서기관은 손을 번쩍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저기요. 이 음식 만드신 분하고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서기관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마치 화라도 난 사람처럼 주방장을 찾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상한 음식을 내준 것도 아니고, 입맛에 안 맞으면 이제 더 안 오면 되는 건데, 굳이 주방장을 보려는 이유가 뭔가.
종업원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황해서 그런지 파나르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걸 만드신 분이십니까?”
종업원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누군가가 나왔다. 파나르어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생김새는 영락없이 한국인이었다.
“네 제가 만들었는데,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예상대로 음식을 만든 고려인은 뭐가 잘못된 건지 알 턱이 없었다.
나와 윤아가 옆에서 예민희 서기관을 말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려인이세요?”
“네 맞습니다.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네 저희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인사가 늦었어요. 저는 발레라 최입니다.”
최씨?
고려인들은 세대가 지나도 한국인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발레라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급격하게 표정이 밝아졌다.
“저는 예민희 서기관입니다. 대사관에서 재외 동포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도움을 청할 일이 많겠네요.”
마치 오랜만에 친척이라도 온 것처럼 발레라는 우리 옆자리에 착석했다.
“음식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이렇게 작은 식당까지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몰라도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좀 더 푸짐하게 대접해 드렸을 텐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잘 먹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항의를 할 것 같았던 예민희 서기관의 태도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차분한 상태였다. 고려인 발레라 씨를 대하는 태도는 예의가 바르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잘 먹었다는 말과 달리 반 넘게 남아 있는 국시의 그릇까진 숨기지 못했다.
“근데 발레라 씨. 제가 한국에서 고려인들에 대해 꽤 오래 공부를 해 온 사람인데요.”
“정말입니까? 그럼 더 반갑네요. 파나르에서 그냥 한국인을 본 것도 반가운데요.”
갑자기 두 손을 덥석 잡는 발레라 씨와 전혀 당황하지 않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혹시 발레라 씨는 고려인 몇 세이십니까?”
“저요? 저는 3세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한국에는 가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근데 꼭 한 번 한국에 가 보는 게 소원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항상 고향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고려인에 대해 많은 활동을 했다는 게 전부 사실인 것 같았다.
“고려인 식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기자처럼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발레라는 그런 관심이 반갑고, 흥미롭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 갔다.
“할아버지께서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제가 어릴 적에 국시나 비빔밥, 만두, 부침개 같은 음식들을 많이 만들어 주셨어요. 돈이 조금 생긴 날에는 불고기도 만들어 주셨구요.”
“그랬군요. 그럼 여기 파는 음식들도 전부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음식이겠네요?”
“네 맞아요. 할아버지는 한국 음식을 저한테 알려 주는 걸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는 요리에 관심이 없으셔서 주방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셨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
옛 추억에 잠긴 듯 발레라는 대화를 술술 이어 갔다.
“할아버지께서 발레라 씨를 굉장히 좋아하셨겠네요.”
“맞아요. 할아버지는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리면 모든 걸 잃어버리는 거라고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고 강조하셨어요.”
말끝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는 발레라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어 가고 싶어 노력했지만 평소 쓰지 않는 한국어를 계속 기억할 순 없었다.
대신 요리로는 돈벌이도 할 수 있고, 재미도 있었기에 식당을 열어 그 정신을 이어 가려고 한 발레라였다.
“한국어는 인사나 음식 이름 몇 개 정도만 기억할 뿐 거의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되고, 그나마 한국 음식을 만드는 방법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한국에 놀러 가고, 거기서 살 수 있었다면 한국어를 배웠을 텐데…. 보시다시피 사는 게 쉽지 않아서요.”
고려인 식당으론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것 정도만 할 수 있다는 발레라였다.
그마저도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해서 여행을 갈 시간도, 다른 한국인들을 만날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다른 한국인들을 만나도 제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깐 가까워지기도 힘들고, 그나마 파나르에 있는 고려인들하곤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친척들처럼.”
대부분의 고려인들의 상황이 발레라와 비슷했다.
강제 이주를 당한 외지인들이 타국에서 3~4세까지 거쳐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씁쓸한 미소를 짓는 발레라에게 예민희 서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발레라 씨.”
“네.”
“할아버지가 이 음식들 가르쳐 주실 때 이게 진짜 한국 음식이라고 알려 주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