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86화 (187/202)
  • 186. 반가운 얼굴

    “첫 번째 음식은 프랑스의 생선 요리입니다. 맛을 보시고 생선의 종류 및 소스나 가니시에 들어간 재료들을 써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생선을 어떻게 조리했는지 맞히시는 분께는 특별 보너스 점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테오가 준비한 문제는 생선 조리법이었다.

    그 조리법의 정확한 이름이 아니라도 차이점을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 미식가라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범위였다.

    으음.

    테이블 위에선 생선을 맛본 사람들의 신음 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채소 조각 하나 씹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매시트포테이토엔 분명 치즈가 들어갔군요. 끝맛에 묘한 향이 남습니다.”

    “생선은 농어네요. 이 정도쯤은 어렵지 않죠.”

    예상대로 사람들은 생선의 종류쯤은 간단히 맞혔고, 매시트포테이토에 치즈가 들어간 것도 금세 알아차렸다.

    “근데 어떤 치즈를 사용했을까요? 치즈도 와인만큼 종류가 많은데.”

    “음… 블루치즈인가?”

    “블루치즈는 향이 너무 강해 감자 맛을 전부 죽였을 거예요. 모차렐라인가?”

    “아는 치즈라곤 그것뿐이죠?”

    “파르마산 치즈라 하기에도 향이 약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지만 정확하게 치즈의 종류를 알아낸 사람은 없었다.

    매시트포테이토 안에는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고다치즈가 숨겨져 있었지만 거기까지 맞히는 건 쉽지 않았다.

    “이 농어는 씹는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네요. 아마 수비드 기법을 이용해 조리한 걸 거예요.”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해요. 이건 수비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식감이에요. 소고기도 입 안에서 으스러질 정도인데 생선쯤이야.”

    “내 생각은 조금 달라요. 이 생선은 분명 수비드 기법으로 요리한 것처럼 부드럽지만 뭔가 더 깊은 풍미가 느껴져요. 버터나 오일의 느낌이 좀 더 느껴진다랄까?”

    수비드라는 대다수 의견 중에서 다른 말을 꺼낸 사람이 있었다.

    테오의 그 사람을 보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법이라는 듯.

    테오가 농어를 요리한 방법은 저온에서 오랫동안 조리하는 수비드와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는 콩피라는 조리 기법이다. 손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저온의 기름에 재료를 넣어 길게는 3일 이상을 조리하는 방식이다.

    보통은 오리고기 콩피가 흔한 음식이지만 생선에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저 사람 제법인데요?”

    “그러게요. 뭐 하는 사람이지? 요리사는 아닌 것 같은데.”

    테오의 콩피 요리를 눈치챈 여자는 멀리 있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뭔가 낯이 익었다.

    다른 데서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어제오늘 별장을 돌아다니며 여러 번 마주쳤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낯익어 보였다.

    “다음은 미스터 장 차례예요. 프랑스 요리야 워낙 유명하니 따로 공부를 한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근데 한식은 다르죠. 한번 보여 주세요.”

    테오의 말대로 한식은 음식의 이름도 사용하는 재료도 파나르 사람들에게 낯선 것들뿐이다.

    “두 번째 요리는 한국의 생선 요리입니다.”

    테오와 달리 내가 준비한 생선 요리는 어만두였다.

    흰살생선을 얇게 포 뜬 다음, 그 안에 채 썬 고기와 호박, 표고버섯을 넣고 한 손으로 꾹 쥐어 주면 만두 모양이 잡힌다. 만두에 전분을 묻혀 쪄 내면 쫄깃하면서 탱탱한 식감의 어만두가 완성된다.

    “만두에 사용된 생선은 물론이고, 이 육수에 들어간 재료도 맞혀 주시면 됩니다.”

    난 육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끓여 봤다. 보통은 마른 멸치나 디포리 등으로 끓인 육수를 사용하겠지만 재료가 넘쳐 나는 이곳에서 굳이 흔한 재료를 사용할 필욘 없었다.

    츄릅.

    육수 맛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익숙하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맛이 처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테니까.

    “분명 닭 육수 같은데, 확실히 닭은 아닌 것 같아.”

    “그게 뭔 소리예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밖에 표현 못 하겠어.”

    닭이지만 닭이 아니다.

    정답을 알고 들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지만 확실한 차이가 느껴질 테니까.

    “담백하고, 약간 거칠다고 해야 하나? 미량의 산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호오.”

    꿩을 이용해 끓인 육수의 맛을 제대로 캐치해 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틀린 답을 말해도 자신만만하던 사람들이 한식 앞에서 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테오, 다음 요리 준비됐어요?”

    “네 바로 나갈게요.”

    다음 요리는 고기였다.

    테오는 메추리구이에 오렌지, 당근 퓌레를 곁들이고, 트러플까지 올려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를 선보였다.

    “다른 건 대충 알겠는데 이 까만 모래 같은 건 뭐지?”

    “저도 그것만 잘 모르겠어요.”

    “아몬드인가?”

    테오는 가니시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사람들의 수준은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수준급이었다. 이런 가니시 하나로도 1, 2등이 나눠질 수 있었다.

    “근데 테오 저 까만 모래 같은 건 뭐예요? 나도 처음 보는데.”

    “저거요? 블랙 올리브예요.”

    “올리브요?”

    “네 블랙 올리브를 말려서 가루를 낸 거예요.”

    “아… 신기하네요.”

    나도 그 올리브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손님들 중 여자 한 명이 우리 음식의 비법을 속속 밝혀내고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요리사로 일해 본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다음 요리는 소갈비구이와 보쌈김치입니다.”

    내가 준비한 고기 요리는 갈비구이였다.

    직접 만든 간장까지는 없어서 아쉬웠지만 양념장에 혼신의 힘을 갈아 넣었다.

    “갈비는 숙성하고, 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양념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 들어간 재료를 맞혀 주시면 됩니다.”

    “근데 갈비는 그렇다 쳐도 이 김치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재료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 아닙니까?”

    겉으로 보기엔 심플한 갈비와 달리 함께 준비한 보쌈김치의 속 재료는 대충 봐도 복잡했다.

    “내가 아는 김치는 배추에 양념이 묻어 있는 정도인데, 이건 대충 봐도 재료가 10개는 훌쩍 넘어 보이네요.”

    그건 김치의 세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구골에다가 말도 안 되는 식재료+김치를 검색해서 결과가 안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있을 정도로 김치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맞아요. 한국의 김치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그리고 장덕수 셰프는 그런 장난을 칠 분이 아닙니다.”

    난도가 다소 높아지자 사람들의 불만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서서 사람들을 중재시키고 있었다.

    “잘 지냈어요?”

    “네? 저요?”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힌 여자는 뒤이어 나에게도 말을 걸었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아까부터 낯이 익긴 했지만 모르는 얼굴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

    여자가 날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어어어?

    베일에 가려진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듯이 내가 아는 사람의 모습이 점점 나타나고 있었다.

    “아나! 아나 맞죠?”

    “쳇.”

    반가운 마음에 아나에게 다가가 가벼운 포옹을 건넸다. 아까부터 계속 시야에 들어오던 사람은 시골의 요리 연구가 아나였다.

    “어떻게 날 못 알아볼 수가 있어요? 두 번이나 우리 집에 놀러 와 놓고.”

    “와아 정말 몰랐어요. 그땐 분명 촌스….”

    적절하지 않은 표현 같아 말끝을 흐렸다.

    아나를 만났을 땐 분명 시골의 흔한 민박집 주인아줌마였다. 옷차림도 편했고, 우리를 대하는 행동도 전혀 거리낌 없었다.

    물론 그때도 음식에 대한 지식은 뛰어났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한껏 차려입은 지금의 아나는 엘레강스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품격이 느껴지는 겉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날 못 알아봤다니 섭섭하네요.”

    “미안해요 아나. 겉모습으론 못 알아봤지만 심상치 않은 사람이란 건 느끼고 있었어요.”

    “한번 봐줄게요.”

    “하하 고마워요. 알렉스의 생일엔 초대받은 거예요?”

    “네 저도 올해 처음 초대받았어요. 역시 소문대로 굉장하네요. 요리를 하러 왔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요리사로서 여기는 천국이나 다름없죠.”

    아나의 본래 직업은 요리 연구가지만 요리 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곳에 요리사로 초대되어도 충분한 실력이었다.

    “그나저나 아나라면 우리들 요리의 비밀은 다 알겠어요?”

    다른 손님들이 아무리 미식가라고 한들 아나만은 못할 것이다. 아나가 모를 정도라면 꽤 높은 난도라는 의미.

    “아까 그 만두의 육수는 꿩이 맞죠?”

    “…^^;;”

    꿩으로 만든 육수가 맞지만 정답을 말해 줄 순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항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냥 싱긋 웃어 주는 정도로 힌트를 내어 줄 뿐이었다.

    “꿩고기는 먹어 본 적이 많지 않아서 긴가민가했어요.”

    아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꿩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고개를 돌려 봤지만 아직은 음식에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근데 아나가 있는 줄 알았으면 난도를 좀 더 높혀 볼 걸 그랬나 봐요. 다 맞힐 것 같은데.”

    “지금도 충분히 어렵거든요? 내가 뭐 절대 미각인 줄 아나. 나도 알렉스의 선물이 궁금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그럼 선물이 뭔지는 알려 줄 수 있죠?”

    “하하 미안해요. 그건 우리도 몰라요.”

    “에이.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했길래.”

    낯선 모습과 반가운 모습이 공존한 아나를 돌려보내고 우린 다음 요리를 준비했다.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서 두 개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깐 왜 내 답안지를 훔쳐보냐 말이야.”

    “훔쳐보긴 누가 훔쳐봐? 내 혀가 정답인데 훔쳐볼 게 없어서 틀린 답을 훔쳐보겠어?”

    “틀린 답? 누가 틀렸대? 내 답이?”

    “당연하지. 아주 형편없는 입맛을 가져 놓고 있어 보이는 척하기는.”

    “뭐? 말 다 했어?”

    순조롭게 진행되던 행사였지만 막바지가 되어서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을 모아 놔서 그런지 작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혹시나 알렉스의 차가 돌아오진 않았는지 고개를 쑥 빼고 돌려 보았다.

    “너 같은 놈이 알렉스의 생일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는 건 맞아?”

    “뭐어? 너 같은 놈?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하곤 전부 친분이 있는데 널 모르는 걸 보면 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거지.”

    “말 다 했어?”

    “여기도 몰래 들어온 것 같은데 확인해 볼까?”

    두 사람의 다툼은 점점 더 커졌다.

    주위의 눈을 신경 써서 적당히 하다 말 줄 알았는데 급기야 알렉스를 찾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

    “그래 가 보자. 내가 여기 몰래 들어온 사람인지 아니면 너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인지 직접 확인해 보자.”

    “허세 부리기는. 나는 이번이 벌써 5년째 오는 거야. 너랑은 클래스가 달라.”

    “너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네. 당장 알렉스에게 가 보자.”

    두 사람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도착점이 눈에 보이는 시작한 찰나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아나에게 SOS를 요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난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인데 내 말을 듣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자 잠깐만요. 아직 디저트가 남았는데 그것까지 하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요? 이놈이 초대받은 놈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우리의 말을 무시한 채 알렉스의 방으로 향했다. 전화를 걸어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던 차에 든든함이 느껴지는 뒷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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