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85화 (186/202)
  • 185. 미각 훈련 (2)

    음식이야 우리가 하겠지만 알렉스가 나서서 판을 깔아 줘야 했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되어 있던 것처럼.

    갑자기 준비한 이벤트란 게 티가 나면 손님들은 알렉스에게 관심을 돌릴 게 분명했다.

    “내일 알렉스가 직접 나서서 공지를 해 주세요.”

    “손님들에게 말입니까?”

    “네, 미리 계획된 이벤트인 것처럼 판을 깔아 주세요.”

    이곳에 파나르 대통령이 참석한다 해도 주최자인 알렉스의 영향력을 뛰어넘을 순 없을 거다.

    그리고 손님들뿐 아니라 다른 요리사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 했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지 잘 알기 때문.

    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으면서도 나와 테오가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판을 깔아 줘야 했다.

    “알겠어요. 그거면 될까요?”

    “아니요. 그리고 특별한 선물을 하나 준비해 주세요.”

    “선물이요?”

    “네. 이 행사에서 1등을 한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선물이요.”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적절한 보상이 필요했다.

    단순히 비싸고, 고급스럽기만 한 그런 선물이 아닌 흔하지 않은 선물.

    그건 나와 테오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음… 특별한 선물이라.”

    알렉스 역시 내 말이 뭘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뭘 준비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일단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돌아올 때까지는 반드시 구해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요리를 제외한 다른 건 전부 알렉스가 도와줘야 해요.”

    “알겠어요. 그런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요리사들에겐 내가 미리 말해서 음식 선보일 시간을 조금 앞당겨 달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문 진행자도 한 명 붙여 줄 테니 두 사람은 지금부터 음식에만 집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뒷일은 알렉스에게 전부 맡겨 두고, 나와 테오는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두려워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뭔가 흥분했을 때의 감정이었다.

    “어때요, 테오?”

    뭐가 어떻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테오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네요. 신나요. 미스터 장은?”

    “저도 똑같아요.”

    분명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다.

    생각한 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시시할 수도 있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민한 미각으로 금방 끝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테오는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느껴 보는 것 같네요. 예전엔 같이 일하는 동료들끼리도 이런 경쟁을 하곤 했었는데.”

    “테오도 그랬어요? 우리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그래요?”

    내가 일했던 호텔에선 재미 삼아 하는 경쟁이 아니라 신메뉴를 출시할 때가 되면 모든 직원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곤 했다.

    최고참부터 막내 직원까지 자신의 메뉴를 선보일 수 있도록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졌다.

    대신 막내급 직원의 음식이 뽑혀 신메뉴로 출시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우린 신메뉴 출시 때도 하지만 그냥 평소에도 이런 걸 하면서 놀았어요. 나와 로베르토를 가르쳐 줬던 스승님은 그런 놀이를 할 때마다 실력이 늘 거라 믿는 분이셨거든요.”

    “정말 좋은 스승이었네요. 한국에서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분위기예요. 한국에선 아무리 창의적인 요리가 나와도 막내의 음식이 인정받기란 쉽지 않아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내가 은퇴를 할 때까지도 딱딱한 주방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뭘 만들 거예요, 테오는?”

    “음… 일단은 준비해 온 음식을 만들어 볼 거예요. 근데 이제 마리네이드 할 때나 소스를 만들 때 재료를 좀 더 다양하게 써서 레시피를 바꿔 볼게요. 미스터 장은요?”

    “저도 그러려구요. 겉으로 보기엔 조금 평범한 메뉴일 수도 있지만 그 속 재료까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걸요. 한국 음식은 프랑스 요리만큼 유명하진 않으니까요.”

    “하하 재밌네요. 손님들도 우리처럼 이런 것에 재미를 느끼겠죠?”

    “적어도 알렉스 생일 파티에 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 테오는 신이 난 상태로 밤새 음식을 준비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테오의 태도는 본받기에 충분했다. 밤이 늦었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꼼꼼히 챙기는 테오였다.

    나 역시 그런 테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식재료 창고와 워크인을 수백 번 오갔다.

    * * *

    다음 날 오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인지 눈꺼풀이 조금 무거웠지만 여전히 두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고명 하나, 모양 하나까지도 포기할 수 없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음식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아… 완전 불태웠네요.”

    “그러게요. 밤새워 일해 본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온 힘을 쏟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러네요. 올해는 좀 더 편하게 넘어가 보려고 했는데 안 되네요.”

    “하하 미스터 장. 미스터 장 같은 사람은 편하게 살 수 없는 운명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라뇨?”

    “슈퍼스타요.”

    “엥?”

    “원래 슈퍼스타의 삶은 귀찮고 피곤함의 연속이에요. 그게 숙명이니깐 받아들여야 해요.”

    테오도 많이 피곤하긴 한가 보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것 보니.

    테오의 말처럼 슈퍼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파나르에서의 삶은 분명 평탄하진 않았다. 물론 내 능력을 인정받아 바빠진 것이라 나쁘다 할 순 없었지만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좋죠. 부자들 한번 홀리러 가 봅시다.”

    우린 가볍게 주먹을 맞댄 후에 준비된 곳으로 향했다.

    알렉스가 별장의 한 귀퉁이에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두겠다고 했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이라 테이블이나 몇 개 갖다 뒀겠지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에서 훨씬 벗어났다.

    “와아… 이게 뭐야?”

    “아예 무대를 만들어 놨네?”

    요리를 할 메인 주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마치 작은 콘서트장을 연상케 하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앞으론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호텔 연회에서나 쓸 만한 테이블 세팅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알렉스의 추진력과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오늘 알렉스와 만나는 사람이라면 비즈니스고 뭐고, 이 파티에서 하루 정도 즐긴 후에 내일 일 얘기를 나누는 게 훨씬 이득일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이런 파티를 놓치다니.”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 내는 알렉스의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전문 진행자라고 불러온 사람 역시 꽤나 이름 있는 연예인이었다.

    사람들은 금세 게릴라 이벤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테오, 미스터 장.”

    “알렉스!”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자 알렉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껏 차려입은 알렉스.

    손님들의 앞에 직접 나서서 공지를 한 뒤 곧바로 별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준비는 잘 끝났죠?”

    “최선을 다했긴 했는데 일단 해 봐야죠.”

    “두 사람만 믿을게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으니깐 이제 두 사람의 역량에 달렸어요.”

    저런 연예인까지 섭외해 놨으니, 어떻게든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알렉스와 테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이벤트가 되어 버려 셋 다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테오. 나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어쩌겠어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봐야죠.”

    “그… 그렇죠.”

    알렉스는 긴장한 우리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린 후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알렉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손님들 사이에선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도 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오오오오오.

    “맘 편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도 좋지만 올해는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알렉스는 계획대로 미리 준비한 이벤트인 척 멘트를 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희 생일 파티에는 그 해 섭외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사들을 섭외해 여러분들의 미각을 만족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손님들은 아주 만족한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요리사들의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러분들도 심혈을 기울여 초대를 합니다.”

    자신들을 떠받들어 주는 멘트에 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올해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을 얼마나 제대로 맛보고 있는지 재밌는 테스트를 해 보려고 합니다.”

    테스트라는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알렉스는 약간의 자존심을 자극할 수 있는 멘트를 더해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최고의 음식을 먹는 데는 최소한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지만 이 중에서도 최고의 미각을 겨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잠깐이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승부욕이 조금씩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렉스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화룡점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음식을 준비해 줄 테오와 장덕수 셰프는 한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들 중 한 명입니다. 그들이 만드는 음식은 당연히 최고입니다. 그 최고의 음식에 담긴 비밀을 가장 많이 맞히는 분에겐 제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테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가 맞지만, 나는 엄밀히 말해 아직은 아닌데.

    한국을 ‘대표할’ 요리사라 위로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면 다들 착석해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두 요리사들의 음식을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알렉스는 간단히 룰을 설명한 뒤 별장을 몰래 빠져나갔다. 우리에겐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다행히도 우리의 예상처럼 사람들은 이 이벤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알렉스가 무대에서 사라졌어도 그의 행방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웨이터! 나는 레몬 한 조각을 넣은 물 한 컵만 준비해 줘요.”

    “레몬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건 이미 증명된 건데, 아직도 그 방법을 쓰다니. 저는 소금 몇 톨을 넣은 물을 준비해 주세요.”

    “쳇.”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사람들의 작은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괜히 감정이 과열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전부 높은 사람들이었다. 주위의 눈을 많이 신경 쓰고, 보여 주기에 능한 사람들이란 의미였다.

    소위 말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테오. 이 감자는 이만큼씩 올리면 될까요?”

    “네, 맞아요. 럭비공 모양으로 플레이팅 해 주면 됩니다.”

    테오가 음식을 준비할 때 내가 보조를 맡았고, 내가 음식을 준비할 때 테오가 보조를 맡기로 했다.

    첫 번째 음식은 테오가 준비한 생선 요리였다.

    농어를 이용한 생선 요리.

    가니시로는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매시트포테이토를 준비했다.

    “이 매시트포테이토에 조금 특별한 게 들어 있는 거죠?”

    “음… 그렇긴 한데 아마 저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들어 있는 재료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거 같아요.”

    테오가 준비한 농어 스테이크엔 매시트포테이토와 시금치, 그리고 생바질이 가니시로 올라갔다.

    매시트포테이토에도 특별한 재료가 섞여 있었지만 테오는 무기는 농어의 조리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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