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81화 (182/202)
  • 181. 두 번째 알렉스의 생일

    매주 나올 것 같았던 김용수 대사의 기세는 단 하루 만에 꺾이다 못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심한 근육통으로 연차를 사용할 정도로 김용수 대사는 며칠을 드러누웠다.

    “몸은 좀 어떠세요?”

    “휴우, 오늘은 좀 낫네요. 며칠 동안은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겠더니.”

    “역시 무리하셨네요. 축구가 쉬운 게 아닌데….”

    “그러게요. 할 때는 몰랐지요. 이렇게 후유증이 길 줄은.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걸 잠시 까먹었네요.”

    김용수 대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침밥을 입에 넣었다. 이제 얌전히 골프나 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하는 김용수 대사였다.

    “그나저나 대회 준비는 잘되어 가요?”

    “대회요? 아 축구 대회요?”

    “팀 분위기가 안 좋다더니 좀 어때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요샌 아주 좋아요.”

    “그래요?”

    “네 아침에 뭘 먹은 후에 경기를 하는 게 괜찮은가 봐요. 참석자도 많고, 요즘은 손발도 잘 맞네요.”

    내가 제안한 한국의 문화들 덕분인지, 캡틴이 오랫동안 애쓰던 일들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팀의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었다.

    나도 팀의 중심으로 점점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진짜로 우승하면 관저에 한번 초대해요.”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그 팀도 한인회 회장님이 소개해 준 거라면서요.”

    “그렇죠.”

    “한식당에도 자주 데리고 간다니깐 우리랑 전혀 관련이 없는 건 아니겠네요.”

    김용수 대사는 100%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 정도 명분은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듯 대답했다.

    “정 안되면 내 사비로 대접할게요. 그때 저를 득점왕으로 만들어 준 대가로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초대하겠습니다.”

    김용수 대사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장 셰프.”

    “네 대사님.”

    “그것도 준비 잘되어 가고 있어요?”

    “또 무슨 준비요?”

    뜬금없이 또 준비가 잘되어 가냐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아나?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지며 김용수 대사의 입꼬리가 들썩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꽤 큰 이슈가 하나 있잖아요.”

    “이슈요? 뭐지….”

    “장 셰프는 혹시 초대 못 받았어요?”

    “초대요? 어디에요?”

    김용수 대사는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계속해서 들썩였다.

    “짜잔.”

    하얀 봉투를 꺼내며 슈퍼스타의 사인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그게 뭔데요?”

    “한번 열어 보세요.”

    손에 들고 있던 하얀 봉투를 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초대장]

    ‘김용수 대사님을 저의 생일 파티에 초대합니다.’

    -테크노마트 대표 알렉스-

    “오! 대사님도 드디어 받으셨군요.”

    “맞아요. 올해는 나도 초대받았습니다.”

    초대장을 도로 집어 들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김용수 대사였다.

    한국 대통령 방문이 잡혔을 때도 이 정도로 기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작년에 알렉스 생일 파티에 대한 얘기를 내가 너무 거창하게 했나 보다.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 셰프도 당연히 초대받았겠죠?”

    “저요? 저야 당연히 초대받았죠…. 요리사로.”

    “요리사로요? 이번엔 손님이 아니구요?”

    나도 김용수 대사처럼 알렉스의 생일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는 게 목표였다. 사실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럴 수 있었지만 큰 약점이 잡혀 버렸다.

    “약점 잡힌 게 있어서요.”

    “약점이라뇨?”

    “저번에 파나르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두 번이나.”

    “그래요?”

    민물장어와 말린 통문어.

    이걸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파나르에 알렉스 말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걸 구해 주는 대신 자기 생일에 요리사로 참석해 달라고 했거든요.”

    “그렇군요. 아쉽긴 하지만 꽤 큰 돈도 벌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하면 어때요?”

    “이번엔 돈도 없어요…. 제가 보수는 필요 없으니 상태 좋은 재료를 구해 달라 했거든요.”

    “저런….”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알렉스에게 도움만 받았으니 이대로 넘어가고 싶진 않았다. 맘 편히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도 좋았지만 온갖 식재료를 내 맘대로 요리해 보는 것도 싫지 않았다.

    “그럼 우린 별장에서 만나게 되겠군요.”

    “그렇겠네요. 대사님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만들어 드릴게요.”

    “하하 거기에 가면 산해진미가 넘쳐날 텐데 맨날 먹는 장 셰프 음식을 또 먹으라구요? 괜찮아요.”

    “와아.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섭섭하네요. 대사님.”

    “하하 작년처럼 너무 힘주지 말고, 올해는 편하게 해요.”

    “네 알겠습니다.”

    작년엔 단순히 요리사의 역할만 한 게 아니었다.

    일종의 특사.

    아무런 인맥이 없었던 나와 김용수 대사, 아니 파나르 한국 대사관을 위해 알렉스의 생일에 참석한 것이었다.

    덕분에 좋은 인연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파나르에서 가장 든든한 알렉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내년엔 꼭 손님으로 초대받아 봅시다.”

    “내년쯤엔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이라 또 요리사로 초대할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하하.”

    테이블 위에 올려진 김용수 대사의 초대장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 *

    퇴근 후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다른 나라 대사관 요리사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냈어요?

    -반가워요. 테오는 잘 지내요?

    -저는 이제 파나르에 완전히 적응했죠. 미스터 장은 어때요?

    -저야 뭐 완벽하게 적응했습니다. 파나르어도 많이 늘었구요.

    채팅방에서 말을 시작한 건 프랑스 대사관 요리사 테오였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다녀온 후 따로 연락을 했었지만 그 후론 잠잠했었다.

    -다름이 아니고, 혹시 알렉스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어요?

    -알렉스요?

    테오는 채팅방에서 알렉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대사관 요리사들은 대부분 이름만 들어 봤을 뿐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희 이탈리아 대사관에 한 번 온 적 있는 사람 같은데, 대사님이 엄청 꼼꼼하게 준비하라고 하시던데요.

    -그래요? 음식 관련된 사람인가?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파나르에서 제일 부자 중 한 명이라던데.

    -그래요?

    -우리 터키 대사관에도 온 적이 있어요.

    알렉스는 파나르에서 가장 부자이면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 이탈리아뿐 아니라 여러 대사관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다들 그 정도 인연일 뿐 더 깊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알렉스는 왜요?

    내가 시치미를 떼고 테오에게 물었다.

    테오가 뭘 물어보려는지 알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해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아니 이번에 그 사람의 생일 파티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보수가 장난 아니에요.

    -그래요? 얼마길래요?

    테오는 잠시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에 10,000유로요. 그리고 3일 동안.

    -에에? 10,000유로요? 하루에?

    -1,000유로가 아니라 10,000이요?

    채팅방에 있는 요리사들은 전부 경악했다.

    나도 처음엔 저런 반응이었지. 무슨 일당을 천만 원씩이나 주는지.

    하지만 알렉스의 별장에 가 보면 이 사람에게 천만 원쯤은 껌값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거 저도 좀 하면 안 됩니까? 제 월급보다도 많은데.

    -테오. 나도 좀 소개시켜 줘요.

    높은 일당에 다른 대사관 요리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생일 파티는 손님으로도 가기 힘들지만 요리사로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알렉스의 귀에 테오의 이름이 들어갔을 정도로 테오의 영향력이 컸다는 의미. 역시 대단한 사람인 건 분명했다.

    -저도 대사님한테 들은 거라 어떻게 지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일당이 너무 많아서 가도 되나 모르겠네요. 혹시나 나쁜 일에 일조하는 거 아닌가 해서요….

    테오가 우리에게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이유 없이 큰돈을 주겠다는 사람은 경계를 하게 된다.

    파나르 속담에도 ‘공짜 치즈는 쥐덫 안에만 있다’라고 할 정도이니 과도한 호의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게 된다.

    -알렉스라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니깐 그 정도 주는 거겠죠. 부러워요, 테오.

    -나도 꼭 한번 초대받아 봐야겠네.

    테오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요리사들은 부럽다는 말뿐이었다.

    그런 테오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따로 전화를 걸었다.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음식값을 조금 보상해 주고 싶기도 했고.

    -여보세요? 테오?

    -미스터 장. 무슨 일이에요?

    -그 알렉스라는 사람 제가 알아요.

    -정말요? 아! 미스터 장도 요리사로 초대받았군요. 그렇죠?

    -네.

    테오는 동지라도 만난 듯 이제야 안심했다.

    -휴우. 그럼 초대에 응해도 되겠네요. 미스터 장도 가는 거면 이상한 곳은 아닐 테니.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줄게요. 로베르토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갚아 주고 싶기도 하구요.

    -에이 그 정돈 괜찮아요. 로베르토는 나와 다르게 오너 셰프라 돈 많아요.

    -그래도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럼 그거 말고 알렉스의 생일 파티가 어떤지 알려 줘요.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며칠 후 테오와 약속을 잡고 파나르에서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반가워요 미스터 장.”

    “반가워요.”

    테오는 이제 나를 만나면 프랑스식 특유의 포옹으로 반겨 주었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이것도 적응이 되더라. 펑소보다 조금 긴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이탈리아 음식을 얻어먹었다고 이탈리아 음식으로 갚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테오는 큰돈을 쉽게 벌 거라며 꽤 비싼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이 와인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 알렉스라는 사람 생일 파티 일당보다 훨씬 적으니까요. 3일만 일해도 30,000유로인데 이 정도쯤이야.”

    “그렇긴 한데….”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해 주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힘들어 봤자 3일뿐이고,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보단 덜 힘들걸요. 저희 레스토랑은 12월 한 달 동안은 하루에 20시간 이상씩 일을 하거든요.”

    “와아 20시간이요? 그게 가능해요?”

    “불가능할 거 같죠? 근데 그냥 아침에 출근해서 눈떠 보면 20시간이 지나가 있어요. 정신이 없어요.”

    유럽의 유명한 레스토랑의 연말은 지옥이란 말을 들어 본 적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시간이라니. 호텔에서도 12시간을 넘게 일하는 날은 비일비재하지만 그 정돈 아니었다.

    “그렇게 일해도 한 달에 30,000유로는커녕 3,000유로도 못 받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유럽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네요.”

    “그래도 한국보단 나을걸요. 하하하.”

    테오의 농담에 할 말이 없었다. 유럽의 요리사들이 아무리 고생을 한다 한들 한국 요리사들의 처우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근데 그 알렉스라는 사람 생일 파티는 어떨까요?”

    테오는 나도 이번에 처음 초대를 받은 줄 알고 있었다.

    “상상 이상이에요.”

    “그래요? 파티에 대한 소식을 들어 봤어요?”

    “아니요. 직접 가 봤어요.”

    “에? 정말요?”

    테오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 일당은 정말로 주는 게 맞냐? 초대받는 손님들은 몇 명이냐? 주방은 어떻냐 등등.

    모든 질문에 대해서 똑같은 한마디로 대답해 줄 수 있었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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