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79화 (180/202)

179. 한국의 문화 (2)

팀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뿌리치고 캡틴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 게 있어요? 뭔진 몰라도 팀에 도움이 된다면 저희도 해 보죠. 비용이 들면 내가 낼게요.”

캡틴이 나서서 사비까지 쓴다 하니 팀원들도 꽤나 흥미를 가지는 눈치였다.

무슨 전지훈련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한국의 축구 동호회 사람들은 이렇게 경기가 끝난 후에 다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요.”

“응?”

“……?”

“그게 팀워크랑 무슨 상관이지?”

팀원들은 예상치 못한 내 대답을 듣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따로 조깅을 한다거나 아니면 축구 경기를 보러 다닌다거나 같은 축구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밥이나 술이라고 하니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축구 경기를 하면 소통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렇지요.”

“그럼 당연히 친해야겠죠?”

“뭐… 그것도 맞죠.”

“다 큰 남자들이 친해지려면 뭘 해야 할까요? 술 마시고, 노는 거 아니겠어요?”

“어…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묘하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말이었다.

팀원들은 이런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듣다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술도 한잔하면서 오늘 경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사적인 대화도 좀 나누다 보면 금세 친해지거든요.”

“그럼 그게 경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말인 거죠?”

“네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음… 완전 틀린 말은 아니네. 캡틴 우리도 오늘 끝나고 한번 팀워크 훈련 해 볼까요?”

“정말요?”

“아까 캡틴이 도움이 된다면 사비라도 써서 한다면서요.”

“하하 그러네! 그럼 오늘은 캡틴이 내는 걸로 하고 다 같이 저녁 어때요?”

팀원들의 반응은 내심 나쁘지 않았다.

파나르 사람들 또한 평소 보드카나 쿠므스 등 술을 즐겨 마시며 친해지는 문화였다. 그리고 파나르보단 한국의 축구 실력이 좀 더 나으니, 한번 따라 해 보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근데 캡틴이 전부 내는 건 안 돼요.”

“응 왜요?”

흔쾌히 지갑을 열 생각이었던 켑틴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히려 팀원들보다 캡틴이 더 당황한 듯했다.

사비를 써서라도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었던 캡틴이었다.

“그 돈을 내는 사람을 정하기 위해 또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설마…?”

* * *

상대방 팀들과의 경기가 끝이 나고, 우리끼리 모여서 두 개의 팀으로 나눴다.

그리고 뒤풀이 내기 승부차기를 시작했다.

“이거 넣으면 우리가 이기고 끝나는 거지?”

“제발 한 번만 막자!”

“장! 이것만 넣으면 진짜 끝이지?”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들은 경기 후 팀을 나눠서 시작한 승부차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오히려 본 경기보다 더 힘을 준 느낌이랄까.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채 서로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퍼엉-

고요한 운동장에 그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절반은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또 절반은 운동장이 들썩일 정도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예. 장! 그러면 진 팀이 저녁밥이랑 술이랑 전부 사는 게 한국 스타일인 거죠?”

“네 맞아요. 한국에선 이런 식으로 내기를 해서 진 팀한테만 밥을 사게 할 때도 있고, 그냥 나눠서 돈을 내기도 해요.”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요? 우리도 경기 끝나고 한 번씩 해요. 승부차기 연습도 되고 분위기도 좋아지는 것 같네요.”

진 팀들은 잠시 억울해했지만 겨우 이 정도로 사이가 틀어질 관계는 아니었다. 게다가 다음 주엔 반드시 복수하겠단 마음으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미 본경기로 체력을 소진한 사람들이었지만 간단한 내기로 분위기를 한껏 업시킬 수 있었다.

“그럼 오늘은 식당도 한식당으로 가시죠.”

“오 나 한국 음식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오늘 김타코를 먹을 수 있는 겁니까?”

“하하 그건 불가능합니다. 특별 메뉴라서.”

“에이 아쉽구만.”

나는 팀원들을 이끌고 상섭의 가게로 향했다. 한국식 뒤풀이 문화를 알려 주기 위해.

건장한 남자들을 잔뜩 몰고 들어오니 상섭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했다.

올 때마다 매출을 높여 주니 내가 얼마나 반가울까.

나는 메뉴판을 펼쳐 쿠므스 몇 명과 어울릴 만한 안주 몇 가지를 고르고 있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우리 요리사님이 알아서 시켜 줘요.”

“식당에 오니깐 용병 아니고, 요리사입니까?”

“당연하죠. 원래 그게 전문 아닙니까?”

식당으로 들어온 팀원들은 술 한잔 들이켜지도 않았지만 이미 들떠 있었다. 승부차기 때의 흥분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낯선 음식에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았다.

“육전이랑 감자전, 그리고 두부김치랑 불고기 좀 주시고, 공깃밥도 하나씩 주세요.”

익숙한 쿠므스와 함께 낯선 음식들이 나오자 다들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다들 쿠므스 좋아하시죠?”

“말해서 뭐 해. 당연히 좋아하지요.”

“파나르 남자한테 쿠므스 좋아하냐고 묻는 건 ‘배고플 땐 식사를 하시죠?’라고 묻는거나 다름없어요.”

“하하하 그 정도예요? 근데 쿠므스랑 비슷한 술이 한국에도 있거든요. 막걸리라고. 근데 이 음식들이 막걸리랑 먹으면 잘 어울려요.”

“그래요? 그럼 쿠므스랑도 당연히 잘 어울리겠네?”

“맞아요. 그래서 주문해 봤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한국 음식들이었지만 쿠므스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내는 팀원들이었다.

“오! 이거 굉장히 우리 입맛에 맞는데?”

“정말요? 그것도요? 이 감자로 만든 것도 좋아요.”

“한국 음식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데 괜찮네요.”

“저 팀에서 사 주니깐 더 맛있는 거 아니구요?”

“야이씨! 다음 주엔 우리가 꼭 이길 테니깐 각오해.”

“쉽지 않을걸? 하하하.”

술과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자 분위기를 금세 달아올랐다. 내가 기대했던 장면이 그대로 구현되고 있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하지만 재밌는 대화를 나눠야 빨리 파나르어가 늘지.

팀원들과 나는 어느새 축구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적인 얘기와 고민 상담 등 별의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우.

모두가 신이 나 있는 와중에 캡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쿠므스를 들이켜고 있었다.

“어때요? 효과가 있는 것 같나요?”

“네. 꽤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여태 뒤풀이 한번 안 했던 걸까요? 어떻게 보면 밥 한번 먹는 간단한 건데.”

“파나르엔 이런 문화가 없었으니깐 어쩔 수 없죠.”

누군가를 따라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시도하는 건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쉽지 않다.

캡틴이 스스로 이런 방법을 떠올려 팀원들에게 권유했어도 오늘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한국인인 내가 나서서 한국 문화라고 알려 주며, 한국에선 다들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모두가 쉽게 나서 준 거지.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은 약속대로 내가 내야겠어요.”

“캡틴 마음이 그래야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세요.”

내기로 진 팀이 식사 값을 내기로 했지만 캡틴은 첫 뒤풀이니만큼 본인이 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지.

맛있게 먹으며, 웃고 있는 팀원들의 표정을 보니 흐뭇해졌다.

“근데 장, 한국 음식이 이렇게 우리 입맛에 잘 맞는지 몰랐네요.”

“잘 맞는다니 다행입니다.”

“종종 여기 와야겠어. 아니면 매주 뒤풀이 장소로 여기를 올까?”

“그것도 좋죠.”

상섭의 식당이 썩 맘에 든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 뒤풀이 문화가 마음에 든 건지.

“근데 장.”

“네.”

“일반 한국 식당의 음식도 이렇게 맛있는데, 대사관에서 요리를 하고, 대회에서 1등을 한 우리 장의 음식 솜씨는 얼마나 대단한 거지요?”

“저요?”

“그래 맞아. 장의 실력이 궁금하다.”

“맞아요. 저도 궁금합니다.”

갑자기 불똥이 나에게로 튀었다.

티브이에서 내 모습을 봤던 팀원들은 내 요리 실력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상섭의 음식 솜씨도 절대 나에게 밀릴 정도가 아닌데.

단순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단 의미보단 내가 나서 주길 바라는 거겠지.

“한국에선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요. 우리 팀의 팀워크를 위해 장이 한번 나서 줘요.”

“그래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우리 초대해 줘요.”

“하하 그럴게요.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그냥 가볍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제법 끈질기게 달려드는 팀원들이었다.

약간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 캡틴에게 SOS를 요청했다.

“대사관 요리사가 그리 쉽게 음식을 만들어 주면 안 되죠.”

“그런가? 그래도 이제 우리 팀인데….”

“하하 안 해 드리겠단 말이 아니고, 나중에 시간이 될 때 해 드릴게요. 요즘 조금 바빠서요.”

“그렇지! 티비에도 나오고, 얼마 전에 한국 대통령도 왔다 간 거 보면 엄청 바쁘긴 하겠다.”

“그래그래 그냥 가볍게 한 말이니깐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해 줘요.”

팀원들은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계속해서 고집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

아쉬워하는 팀원들을 위로도 할 겸 오늘 이 뒤풀이의 분위기에 열기를 더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던 캡틴에게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할 게 있었다.

“캡틴. 얼마 있다가 우리 팀이 대회에 나간다고 했죠?”

“네. 요즘 팀 분위기론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가던 대회라 참가하려구요. 근데 왜요?”

“잠시만요.”

이 팀은 성적과 상관없이 매년 참가하던 대회가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제법 역사가 깊고, 상금도 쏠쏠해서 다들 욕심을 부리는 대회였다.

“여러분들.”

아쉬움을 접고, 다시 술과 음식으로 돌아가 떠들어 대던 팀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에 참가하는 대회 있잖아요.”

“아 그거? 그냥 재미로 나가는 거지.”

“우리 팀은 이제 가망 없어. 예전에 3등까지도 해 봤는데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지.”

“올해는 굳이 안 나가도 될 것 같은데…. 이런 실력으론.”

역시나 다들 대회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팀을 살려 보려는 캡틴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주고 싶었다.

“그 대회에서 3등 안에 들면 제가 식사 대접 한번 하겠습니다.”

“정말?”

“진짜요?”

캡틴도 나의 공약에 눈이 터질 듯 커졌다.

“네. 기왕 시작했는데 트로피 한번은 들어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그렇긴 한데.”

“우리가 가능할까?”

“크지는 않아도 만만한 대회는 아닌데.”

팀원들의 입에선 부정적인 말이 나왔지만 표정만은 그렇지 않았다. 숨겨져 있던 승부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걸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캡틴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독려했다.

“왜 안 됩니까? 저희는 이미 3등까지 해 본 경험이 있는데, 열심히만 하면 1등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그거야 옛날 일이지.”

“그렇지. 예전이랑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잖아.”

팀원들의 반발은 여전히 강했지만 캡틴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개개인 실력은 예전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실력 좋은 용병도 데리고 왔으니 창피하지 않게 한번 해 봅시다.”

“그래! 맞아 한국 사람한테 쪽팔리면 안 되지.”

“좋습니다. 안 되면 어때요. 그냥 해 보는 거지.”

“그래 파나르 남자들이 언제 이것저것 재 가면서 했나?”

캡틴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쿠므스 잔을 들어 올려 큰 소리로 외쳤다.

팀원들 역시 최근 가장 열정적인 반응이었다.

* * *

“장. 오늘 장 덕분에 분위기가 많이 올라온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도움이 되었다니.”

“근데 아직은 멀었어요.”

“왜요? 오늘 식당에서 분위기 좋던데 그걸로 부족해요?”

캡틴은 나에게 따로 고맙다는 말까지 전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는 표정이었다.

“오늘 뒤풀이엔 많은 사람들이 빠졌어요.”

“그러고 보니 축구할 때랑 비교해서 인원이 많진 않네요.”

“네 축구 경기를 끝나고 나면 다들 다른 일들이 있어서 빨리 돌아가거든요.”

“아… 그래서 빨리 집에 가는거였구나.”

축구 경기가 끝나고 몇몇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건 팀원들과의 관계 문제가 아니었다.

축구가 끝난 후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일 뿐.

“팀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고, 대회 때 좋은 성적까지 내려면 여러 번의 뒤풀이가 필요할 것 같아요. 팀원들이 시간이 전부 맞지 않으니까요.”

“그렇겠군요.”

“팀원 전체가 뒤풀이에 참석해야 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캡틴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이 정도로 분위기가 좋아진 것만도 다행입니다. 모든게 장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캡틴이 노력한 덕분이요. 근데 캡틴.”

“네.”

“그럼 팀원들이 전부 모이는 시간이 언제예요?”

“전부요? 아무래도 경기를 할 땐 전부 다 모이죠. 왜요?”

뒤풀이로 부족하다면 다른 방법이 또 하나 있지.

그거라면 더욱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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