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77화 (178/202)
  • 177. 후회

    명분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 역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음… 청와대 요리사를 공개 채용으로 전환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공개 채용이라면?”

    “청와대 요리사는 보통 추천이나 스카우트나 뭐 그런 방식으로 뽑곤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렇죠.”

    재외 공관 요리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뽑기도 하지만 일단 외교부 홈페이지에 채용 공고가 올라온다. 자격만 된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요리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는 그냥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존재하기는 하나 전국의 특급 호텔이나 이름이 있는 레스토랑의 내부에서만 돌다 끝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차례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참에 서류부터 면접, 요리 테스트, 신분 조회 과정까지 전부 공개 채용으로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크음….”

    조근배 요리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헛기침만 할 뿐이었고, 김채훈 대통령은 흥미 있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채용 공고가 외부로 풀리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지 않나요? 어차피 자격 조건은 똑같을 테니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비슷할 테구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공개 채용에서 뽑힌 요리사의 나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자격과 실력이 확실히 증명되었으니 문제 될 게 있을까.

    오히려 진작에 공개 채용을 통해서 뽑는 게 더 옳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한식팀장이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싶다고 한 상태라 후임자는 공개 채용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좋네요.”

    김채훈 대통령은 ‘이제 됐어?’라는 표정으로 김용수 대사를 바라봤고, 김용수 대사는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청와대 요리사는 한식팀장 2명에 양식팀장, 일식팀장, 중식팀장 등으로 파트를 나누어 업무를 진행했다. 역시나 한식이 메인인 청와대라 한식팀장의 자리는 2명이었고, 이번 순방 때는 한 명밖에 동행하지 못했다.

    청와대 요리사 또한 정해진 계약 기간이 없다. 20년 이상 장기 근무를 하는 사람도 있고, 몇 년 동안 짧게 근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김채훈 대통령이 공개 채용으로 뽑은 청와대 요리사가 다음 정권 때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경쟁을 뚫고 내가 뽑힐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고민은 뽑히고 난 후에 해도 충분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 * *

    파나르 국제공항.

    김채훈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한국으로 향해 날아올랐다. 주위에선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 소리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훗날 저 전용기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김용수 대사가 총대를 메고 판을 깔아 줬지만 그 수많은 실력자들을 뚫어 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대사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다들 목소리를 크게 낼 힘도 없었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혼신의 힘을 전부 쏟아 낸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쉬세요.”

    “네 푹 쉬세요 다들.”

    김용수 대사는 최대한 말을 줄이고 싶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 결국 직원들의 뒷모습에 대고 해야 했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 덕분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남은 기간도 잘 마무리해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김용수 대사는 차에 올라탔다.

    직원들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직원들 역시 이 파나르 대사관의 일원인 게 자랑스러울 거란 걸.

    나는 관저에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김용수 대사와 동행했다.

    “대사님. 근데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뭘요?”

    “청와대 요리사요. 꼭 이번이 아니어도 되는데.”

    “정말요? 진심으로 이번이 아니어도 돼요?”

    “네?”

    갑자기 정곡을 향하는 김용수 대사의 말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청와대 요리사가 되지 못하면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인데, 최연소 청와대 요리사라는 타이틀이라도 달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장 셰프를 보면 모든 일을 잘해 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뭔가 만사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요.”

    “제가요? 그래 보였나요?”

    “마치 이번 인생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요.”

    “하하….”

    정곡을 향한 김용수 대사의 말은 그대로 가슴팍에 박혀 버렸다. 그의 말이 100%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요리사로서 모든 걸 쏟아 내 본 사람인데, 남들처럼 실수나 실패를 해 가며 나아갈 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즐기며 살 수 있는 두 번째 인생에서 더 많은 압박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장 셰프의 나이라면 좀 더 즐기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요리에만 몰두하는 것도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아… 그렇죠.”

    그러고 보니 지난 인생도 그렇고, 이번 회귀 후에도 그렇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칼을 잡았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 볼까라는 생각보다는 이전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가진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편하고 익숙한 길로 향했던 거겠지.

    30년간 호텔에서 똑같은 일만 했던 내가 익숙함의 덫에 빠져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험이나 도전보단 익숙한 길에서 더 빠르게 가는 걸 택한 것이다.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요리 말고도 여러 가지 많이 해 봐요. 난 이제 공관장까지 해 봤으니 외교관으로서의 삶은 대단히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내 인생 자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죽을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나 봐요 하하.”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건 농담이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외무 고시에만 매달렸어요. 서른이 넘어 합격하고 나서는 지금까지 쭉 외교관으로 일했고, 정년퇴직하고 잠깐 나만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김용수 대사도 피곤한지 마치 취한 사람처럼 속내를 털어 내고 있었다.

    “왜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요.”

    “네?”

    “그 많은 시간에 도대체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지금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라 김용수 대사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은퇴 직후의 날 떠올리니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일찌감치 호텔에서 나온 후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호텔 안에서는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널려 있었지만 밖에서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가면 항상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드는 생각이 ‘오늘은 뭘 하지?’, ‘뭘 하며 하루를 보내지?’였어요.”

    “운동을 하거나 뭔가를 배워 보시지 그랬어요?”

    “당연히 해 봤죠. 운동은 원래도 건강을 챙기느라 조금씩 하긴 했지만 그건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는 거잖아요. 그냥 하루 종일 아무 생산성이 없는 일만 하며 지내는 게 은근히 어렵더라구요.”

    취미 생활을 해도 일과 직업이 우선이었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만 뭔가를 배우고, 취미 생활을 즐겼다.

    당연히 일에 쏟는 열정만큼 쏟아부을 수는 없었고, 명예라든가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걸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던 거고.

    “모든 직장인이 비슷하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답은 아니거든요.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 절대 안 돼요. 나도 그러질 못했지만 장 셰프는 아직 어리니깐 충분히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요.”

    “말에 모순이 있는데요 대사님?”

    “네?”

    “그러면 공개 채용이란 새로운 방법까지 제안해서 저를 청와대 요리사로 지원하게 하시면 안 됐죠. 저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최선을 다할 거고, 합격하더라도 몇 년간은 일에만 더 집착할 텐데요.”

    피곤함 덕분인지 나도 지금 내가 느끼는 속내를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김용수 대사의 대답이 어떨지 궁금했다.

    “목표했던 걸 빨리 이루면 자신의 인생도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전 평생을 공관장이 되고 싶어 안달이었고, 최선을 다했어요. 인생을 전부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김용수 대사의 말투엔 일말의 후회가 담겨 있었다.

    “대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인생을 바칩니다.”

    “내 인생만 걸었으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까지 날 위해 희생해 주길 바랐어요.”

    “그게 무슨….”

    “우리 와이프요. 외무 고시를 준비하는 내내 제 뒷바라지를 다 해 주고, 시험에 합격하고도 계속 제 와이프란 이름으로만 살았어요. 자기 인생은 하나도 없이….”

    김용수 대사는 너무 깊이 들어갔나 싶어 정신을 차리고 말끝을 흐렸다.

    “여튼 장 셰프는 나와 달리 원하는 걸 빨리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얻기 전까진 한눈팔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구요.”

    “……!”

    “그럼 차라리 그 목표를 빨리 이루고, 자신의 인생을 빨리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어요. 꿈이라는 거 막상 이루고 나면 시시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하하 대사님도 그러셨어요?”

    “조금?”

    엄지와 검지를 들어 올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김용수 대사였다.

    “피곤할 때면 공관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많아요.”

    “하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나 봅니다.”

    우린 넓은 세단인 관용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소리 내어 웃었다.

    “억지로 다른 걸 해 보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주말엔 취미 생활이라도 해 봐요. 똑같은 취미라도 해외에서 하면 좀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이제 나도 만찬이나 업무를 예전처럼 빡시게 하진 않을 예정이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대통령 순방까지 이끌어 냈으면 할 일 다 한 거 아닙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김용수 대사의 말을 듣다 보니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한샘이 떠올랐다. 지난 인생이었다면 우린 그런 도전을 생각할 수도 없었을 거고, 생각해 낸다 해도 그 먼 곳까지 떠나지 않았을 거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지난 인생보단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착을 버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김용수 대사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희생하게 하진 않은 것 같아 내심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김용수 대사의 조언을 조금 새겨듣기로 했다.

    * * *

    토요일 새벽 인근 학교 운동장.

    한인회 회장인 상율의 인맥을 이용해 현지인들로 이뤄진 축구 동호회 하나를 소개받았다.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던 내가 그나마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했던 것이 바로 축구였다. 실력 좋다는 소리를 꽤 듣기도 했었다.

    사내 동호회는 축구 말곤 관심도 가져 보지 않았을 정도로 나름 정을 붙였던 취미 생활이다.

    신체 능력도 젊어졌는데 조기 축구회 하나 정도는 가뿐히 접수할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장덕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상율이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재밌고,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나르인들로만 이뤄진 축구팀의 첫인상은 친절했다. 서로 사이가 좋아 보였고, 실력보단 운동을 하기 위해 만난 모임이라고 했다. 내가 굳이 파나르인들로만 이뤄진 축구팀을 원했던 건 당연히 언어 때문.

    2년 동안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한참 부족한 파나르어. 현지인 친구들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자주 만나면 금방 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축구를 선택했다.

    축구 동호회는 사실 공을 차는 시간보다 다른 걸 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내심 그런 분위기를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이었다.

    “자! 다치지 말고 한국에서 용병도 영입했으니 이번에도 이깁시다!”

    “하하 용병….”

    엉겁결에 외국인 용병의 신분으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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