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69화 (170/202)
  • 169. 매력적인 레스토랑

    이렇게 훌륭한 쌀 요리를 먹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의 사람으로서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나도 갈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샘 역시 따라 일어났다. 이제 레스토랑의 내부는 충분히 둘러봤는지 주방으로 가는 날 따라나섰다.

    “로베르토 세프님. 제 여자 친구도 주방을 보고 싶다는데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로베르토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주방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지만 문턱까지 높여 놓진 않은 로베르토였다.

    “스텝밀은 뭘 만들어 주실 건가요?”

    로베르토뿐 아니라 주방의 직원들 눈빛은 하나같이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터.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자신 있게 칼자루를 쥐었다.

    “셰프님. 오늘 깔라마리 상태가 좋다고 했죠?”

    “네 맞아요. 값도 저렴해서 넉넉하게 구매해 뒀으니깐 맘껏 쓰세요.”

    “네 감사합니다.”

    같은 반도인 나라로서 두 나라는 해산물이나 생선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나 역시 이 깔라마리라는 작은 오징어를 스텝밀의 주재료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두꺼운 냄비 있습니까?”

    가장 먼저 밥을 짓기 위해 두꺼운 냄비를 찾았다. 이곳에는 좋은 전기밥솥도 구비되어 있었지만 좀 더 신경을 써서 밥을 짓고 싶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밥 문화권 나라인 홍콩과 일본 요리사 덕에 다양한 도구들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두꺼운 솥에 깨끗이 씻은 쌀을 넣고, 다시마 두 조각과 식용유 조금을 넣어 준 뒤 가스에 불을 켰다.

    쌀의 잡내를 다시마로 잡고, 윤기를 더해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오늘 쌀 요리를 만들어 주실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론 한식의 진정한 맛은 잘 지어진 밥과 정갈한 반찬에서 느낄 수 있다 믿고 있었다.

    일단 밥이 맛있으면 어떠한 반찬과 함께 먹어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었다.

    “기대되네요.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낼지.”

    보통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면 이 메뉴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간단하고 별거 아닌 음식이라며 실망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는 주방 직원들은 일반인들과는 달랐다. 전부 수준급의 요리사들이었다.

    로베르토가 나에게 리조또를 제공했고, 내가 양파 한 조각 안 들어간 리조또가 얼마나 수준 높은 음식인지 알아챈 것처럼 이들도 알아챌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혹시 젓갈이라는 음식을 들어 보셨습니까?”

    “젓갈? 젓가락 말인가요?”

    “아니요 젓갈이요.”

    로베르토 역시 낯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선한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양념한 뒤 두고두고 먹는 음식입니다.”

    “피쉬소스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건가요?”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피쉬소스는 우리나라의 액젓과 같았다. 그 국물을 먹는 피쉬소스와 달리 젓갈은 살점을 먹는다.

    “한식은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고, 굽고 찌는 것은 물론, 말리고 절이는 등등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시아 음식들을 사랑하죠.”

    로베르토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한식의 진정한 맛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갓 지은 하얀 쌀밥에 짭조름한 젓갈 한 점.

    이게 진짜 한식의 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깔라마리가 신선하다니깐 이걸로 젓갈을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꼴뚜기나 낙지, 오징어젓갈은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젓갈이었다. 이 상태 좋은 깔라마리 역시 맛있는 젓갈로 탄생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미스터 장. 잘은 모르지만 피쉬소스와 만드는 법이 비슷하다면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젓갈도 며칠간 소금에 절이고, 묵혀 뒀다 먹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태 좋은 재료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로베르토와 다른 셰프들은 신기하다는 듯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먼저 깔라마리의 껍질을 벗기고, 손질을 해 줍니다. 한국에서는 큰 오징어를 이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쓰지만 이건 통째로 써도 좋을 것 같아요.”

    깔라마리의 껍질이 남아 있으면 맛이 쉽게 변질될 수 있어 신경 써서 손질했다. 조그만 깔라마리를 손질하고 있으니 셰프들이 달려들어 손을 보탰다.

    “감사합니다.”

    “빨리 손질을 도와 드려야 우리도 빨리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하 손질만 끝나면 금방 완성되는 요리입니다.”

    역시 능숙한 셰프들의 손길이 닿자 많은 양의 깔라마리는 금세 손질이 되었다.

    “이 깔라마리를 소금으로 문질러 한번 씻어 준 다음 다시 깨끗한 소금으로 간을 해 줍니다. 한국에서 신안의 천일염을 가장 좋은 소금으로 쳐주기 때문에 보통은 그 소금을 사용합니다.”

    한국의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품질을 자랑한다. 이 소금으로 김치나 젓갈을 만들면 잡내가 없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상태가 잘 유지된다.

    “유럽에도 괜찮은 소금이 있습니다.”

    “그래요?”

    “이탈리아는 아니지만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라는 지역에 소금 광산이 있습니다. 그곳의 소금 품질이 훌륭합니다.”

    로베르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다란 소금통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약간의 핑크빛이 도는 이 소금은 결정이 균일한 천일염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할슈타트라는 도시 자체가 소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정도로 소금이 유명한 지역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만들어 보세요.”

    “오 감사합니다.”

    할슈타트산 소금으로 깔리마리에 간을 해 준 다음 곧바로 양념을 만들었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 피쉬소스, 설탕 약간을 넣어 버무려 주면 끝입니다.”

    “이게 끝입니까?”

    “네 끝입니다.”

    껍질이 벗겨져 하얗던 깔라마리의 살점이 한국식 양념으로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 맛을 아는 나와 한샘은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입맛을 다셨다.

    “딱 밥도 완성이 되었군요. 바로 식사하실까요?”

    “좋습니다.”

    뜸을 들이고 있던 밥 역시 완성이 되었고, 뚜껑을 열자 주방 안에선 맛있는 밥 냄새가 가득 찼다.

    으으음.

    그런 밥 냄새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더해져 후각을 자극했다. 이 냄새를 견딜 한국인은 드물었다.

    “원래는 갓 지은 쌀밥 한 숟갈에 젓갈 한 점을 딱 올려서 음미할 시간을 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저희에겐 시간이 없네요.”

    “에이.”

    “그래서 제가 아주 맛있게, 그리고 빠르게 드실 수 있도록 배식해 드릴 테니 식사 맛있게 하세요.”

    “와아아아!”

    다들 배가 고팠는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수프를 담는 오목한 접시에다 흰쌀밥을 1인분씩 담았다. 그리고 깔라마리 젓갈을 듬뿍 밥 위에 올리고 참기름 한 바퀴씩을 뿌려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오늘 만든 젓갈은 소금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짜지 않았고, 상태가 좋아 굳이 숙성하지 않고 먹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일종의 덮밥처럼 메뉴를 만들어 배식을 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미스터 장.”

    로베르토 역시 출출했던 배를 부여잡고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방 직원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했다.

    특히 바쁜 레스토랑은 더더욱.

    밥 한 끼 제대로 앉아서 먹질 못하고, 주방에서 대충 자릴 잡고 식사를 떼우곤 한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인 로베르토도 다를 게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 직원들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그들 사이에서 끈끈함이 느껴졌다.

    식사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숟가락과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뿐이었다.

    맛있단 말도, 별로라는 말도 없이.

    “어때요, 로베르토 셰프?”

    맛에 자신은 있었지만 생소한 음식이라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로베르토 셰프는 그런 내 걱정을 한 번에 덜어 주겠다는 듯 대답 없이 그릇을 밥 더 퍼 담았다.

    깔라마리 젓갈과 함께.

    그리고 몇몇 셰프들 역시 로베르토를 따라 밥을 더 뜨기 시작했다.

    “덕수야 네가 만든 음식 맛있나 봐. 다들 두 그릇씩은 거뜬히 드시네.”

    “휴우 다행이다. 그나마 겨우 챙겨 먹는 한 끼를 괜히 망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이 식사가 끝이 나면 주방 직원들은 마감을 할 때까지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괜히 맛없는 음식을 먹고 하루를 망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우려는 씻어 낼 수 있었다.

    “너무 잘 먹었어요. 미스터 장.”

    “나도 고마워요.”

    “훌륭한 음식이었어요.”

    로베르토 셰프뿐 아니라 직원들은 음식에 대해 좀 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디너를 준비해야지만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음식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싶은 욕구는 여느 셰프나 비슷한 것 같았다.

    “미스터 장 잠시 얘기 좀 할까요?”

    “네 로베르토.”

    총괄 셰프이면서 오너인 로베르토는 그래도 믿음직스러운 셰프들 덕에 잠시 나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늘 갑작스러운 부탁을 수락해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더 큰 대접을 받았는데요.”

    예약 없이는 돈을 줘도 먹기 힘든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갑작스러웠어도 이 정돈 괜찮았다.

    “이렇게 먼 곳까지 직접 만나러 와 줘서 고마워요. 사실은 테오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한 것도 있지만 혹시 마리오 세프라고 기억해요?”

    “마리오 셰프요?”

    마리오 셰프라면 얼마 전 푸드 트럭 프로그램에서 함께 출연했던 이탈리아 셰프였다.

    “당연히 기억하죠. 마리오 세프님이 알리오 올리오 만드는 법도 전수해 줬는데요.”

    “하하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곧바로 따라 해서 놀랐다고 하더라구요.”

    “마리오 셰프님과도 아는 사이세요?”

    “그럼요. 테오는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냈지만 나와 요리 스타일은 전혀 달라요. 그래서 처음 미스터 장을 추천해 줬을 땐 솔직히 믿지 않았어요.”

    “아….”

    실력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자신의 요리 철학과 전혀 다른 직원을 채용할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마리오 셰프는 달라요. 우린 요리 철학이 비슷해요. 둘 다 동양 요리에 관심이 많고, 심지어 마리오는 분자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거든요.”

    “그렇군요.”

    “마리오에게도 동양의 젊은 셰프 한 명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로베르토는 자신이 가진 인맥을 전부 이용해 요리사를 구하고 싶어 했다.

    “인간적으로 가장 잘 통하는 테오와 요리적으로 가장 잘 통하는 마리오가 동시에 추천한 사람이 바로 미스터 장이었어요.”

    “……!”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다른 호텔의 요리사와 인맥이 이어지는 한국의 요리계를 보면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탈리에도 로베르토나 마리오 정도 되는 레벨의 요리사들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마리오 셰프가 어디서 일하는지는 알아요?”

    “네 베로나라는 곳의 알마라는 레스토랑으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그럼 베로나가 어딨는지 알아요?”

    베로나가 어디에 있는 도시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난 로마도 어디에 붙어있는지 몰랐다.

    “베네치아에서 아주 가까워요. 기차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도시예요. 그래서 나도 알마라는 레스토랑과 마리오라는 셰프를 알게 된 거거든요.”

    “그랬군요!”

    “마리오 셰프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면서요.”

    “네….”

    “한편으론 마리오 셰프의 레스토랑에도 가 보라 하고 싶은데 또 한편으론 마리오 셰프가 섭섭해할까 봐 가지 말라 하고 싶기도 하네요 하하.”

    마리오 셰프는 로베르토에게 나를 추천해 주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고 했다. 말로는 괜찮다 하겠지만 자신의 제안은 거절하고, 로베르토의 제안엔 이탈리아까지 온 걸 보면 꼭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괜히 껄끄러운 사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아직 일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 마리오 셰프님의 레스토랑도 한번 가 보도록 할게요.”

    “하하 확고하네요. 정말 탐나는 인재인데.”

    “저도 로베르토의 레스토랑이, 아니 주방이 굉장히 맘에 듭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서 꼭 한번 일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거절할 줄 알았어요. 테오와 마리오에게 미스터 장 얘기를 들을수록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왜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 같았거든요. 인생의 목표가 명확한 사람.”

    “하하….”

    “그런 사람은 주방이 맘에 든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옮기지 않죠.”

    맞는 말이었다.

    로베르토의 주방은 훌륭했지만 그보다 맘에 든 건 로베르토의 철학이고, 이 레스토랑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맘에 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철학과 비전은 나 스스로도 세울 수 있었다.

    “근데 한국의 젊은 요리사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테오에게 부탁했고, 스텝밀도 부탁했습니다. 이번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꼭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오늘 셰프님 레스토랑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저 역시 많이 배웠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로베르토의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는 이미 디너 타임에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고, 로베르토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옆에서 기다려 준 한샘의 손을 쥐었다.

    “한샘아 이제 호텔로 가서 좀 쉴까?”

    “응? 응….”

    레스토랑을 나온 한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져 있었다. 방금까진 한껏 들떠 있었는데 무슨 일이지.

    시차 때문에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진 걸 수도 있었다.

    “어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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