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65화 (166/202)
  • 165. 대통령 방문

    “내가 비행기 값까지 대신 내 줄 수는 없지만 음식 정도는 공짜로 맛볼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아니… 저.”

    “그것도 엄청 비싼 거예요.”

    테오는 그냥 부탁을 하면 내가 거절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파나르 대사관 요리사로 일을 한 뒤 다음 스텝까지 구체적으로 계획되어 있는 내가 갑자기 노선을 바꿀 리 없었다.

    “장 셰프 정도면 이미 엄청 많은 레스토랑을 경험해 봤겠지만 여긴 확실히 달라요. 꼭 일을 하지 않고,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거야 그렇지만….”

    자꾸만 입을 막는 테오 때문에 당장 거절을 하지도 수락을 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오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해외의 많은 레스토랑을 다니며 공부를 한 줄 알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은 거의 다 섭렵했지만 해외의 레스토랑에 가 본 경험은 거의 전무했다.

    테오의 말대로 꼭 그곳에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 요리에 도움이 된다면 한 번쯤 가 보고 싶긴 했다.

    * * *

    파나르 대통령실 앞.

    2년 만에 파나르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 그런지 김용수 대사 역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다들 넥타이와 옷매무새를 한 번씩 가다듬은 후 비서의 말에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서들 오세요. 김용수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대한민국 대사 김용수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김용수 대사.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군요.”

    파나르 대통령과 김용수 대사와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눴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옆에서 뻘쭘한 상태로 몇 분을 서 있던 우리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누스 장관님 오셨군요.”

    “아니, 대통령님. 손님들을 이렇게 세워 두시면 어떡합니다.”

    바누스 장관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호쾌한 목소리로 대통령에게 핀잔을 줬다.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었네요. 대사님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만.”

    “그럼 일단 자리부터 옮겨서 앉으시죠.”

    “그래요. 그럽시다.”

    대통령직에 오래 있었단 뜻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대접을 받아 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파나르 대통령은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진 못했다.

    반면 자신이 추천해 초대한 손님이라 그런지, 바누스 장관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덕분에 우리는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 식사부터 하시면서 얘기를 좀 더 나눠 볼까요?”

    “좋습니다.”

    바누스 장관이 끼어들어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우리를 위해 세팅된 테이블 위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금색의 촛대와 화려한 꽃들, 그리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포크와 나이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 대사관에서도 만찬 때 비슷하게 테이블 세팅을 하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한층 높은 레벨의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랄까.

    한국에서든 파나르에서든 대통령에게 직접 초대되어 대접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으니깐.

    “한국 대사관 요리사의 실력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요리사일 뿐입니다.”

    “저도 장관님이 추천해 주셔서 티비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젊은 나이에 굉장한 실력을 갖췄더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들이 들어왔다.

    “오늘 스타 요리사가 온다 해서 그런지 우리 요리사들이 제법 긴장을 한 것 같더군요. 오히려 대사님보다 장덕수 요리사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더라구요.”

    “하하하. 저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들인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긴장을 풀고, 만찬의 분위기에 점점 스며들었다.

    어차피 대통령과 바누스 장관의 관심은 내내 김용수 대사를 향해 있었고, 나와 직원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절로 엔도르핀이 돌았다.

    “근데 뭔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윤아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겠어?”

    윤아는 아까부터 세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뭐 대통령 어쩌고저쩌고하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어.”

    보통 만찬이었다면 윤아가 김용수 대사의 통역을 담당했겠지만 오늘은 바누스 장관이 직접 통역을 맡았다. 영어에서 파나르어로.

    게다가 테이블의 크기도 거대해서 대통령과의 거리가 제법 멀었다.

    그러니 그들의 말을 엿들을 기회도 적었다.

    “근데 음식들 엄청 맛있다. 역시 대통령 요리사들은 어느 나라든 다른가 보다.”

    “그러게. 나도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요리사가 되어야 할 텐데.”

    기대했던 대통령만 먹을 수 있는 메뉴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음식 하나하나 수준은 아주 훌륭했다. 가니쉬부터 사소한 소스 터치까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요리를 먹는 사람들도 아무런 설명 없이도 최선을 다한 요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까.

    파나르 대통령실의 요리사들은 한 차원 다른 레벨의 사람들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제가 한국을 한번 갔다 와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죠.”

    세 사람의 진지했던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는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만찬 코스 역시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고, 김용수 대사는 그제야 맘 편히 음식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윤아를 가까이 불렀다.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 왔다. 김용수 대사는 대통령에게 눈빛을 보내 신호를 줬다.

    이제 말을 해도 된다는 의미로.

    “오늘 여기에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을 모두 부른 이유는 감사함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대통령의 시선은 만찬이 시작되었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처음으로 우릴 향했다. 만찬 내내 쭉 김용수 대사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던 대통령이었다.

    “이전에는 대한민국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김용수 대사와 바누스 장관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의 통역을 들은 우리 역시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데.

    특히 김용수 대사는 거의 맨땅에서부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파나르 스스로도 변화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최근 2년간 대한민국 대사관이 보여 준 성과는 정말 놀라울 수준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칭찬에 직원들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파나르 대통령은 와인병을 들고 직접 직원 한 명 한 명의 잔을 채웠다.

    “그래서 우리 파나르도 앞으로 대한민국과 좀 더 견고한 관계를 가지길 원합니다.”

    “……!”

    “앞으로 여러분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더 나아갈 파나르와 대한민국의 관계를 위하여!”

    “위하여.”

    파나르 대통령의 선창에 이어 우리 대사관 직원들의 외침으로 만찬은 끝이 났다.

    나와 직원들은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배만 채우고 나온 수준이었다.

    긴장되어 굳었던 몸이 이제야 뻐근해져 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사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인데 다들 고생했어요. 하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쑤시네요.”

    “대사님도 그러세요? 저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었는데도 그래요.”

    “근데 대사님. 대통령님이랑 무슨 얘기 하셨어요? 테이블이 어찌나 큰지, 하나도 못 들었어요.”

    그나마 가까이에 있던 안지용 참사관도 대통령과 김용수 대사의 대화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고맙다는 걸 말하려고 직원 전부를 부른 것은 아닐 텐데.

    나 역시 오늘 만찬의 핵심이 뭐였는지 궁금해졌다.

    “이게… 사실 좋은 소식이긴 한데, 우리 대사관 직원들에겐 안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에이. 뭔데요, 대사님. 저희가 못 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래요. 예민희 서기관님도 오셔서 더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에게 이제 불가능한 업무는 거의 없었다. 다들 힘만 합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설령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업무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마인드였다.

    “나도 그렇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조금 준비를 오래 해야 할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힘을 합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준비해야 합니까, 저희가?”

    김용수 대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김채훈 대통령이 파나르에 방문할 겁니다.”

    “예?”

    “우리나라 대통령님이요?”

    “파나르에요?”

    다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이벤트에 당황한 눈치였다. 나 역시 대통령까지 예상은 못 했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수십 가지 만찬 메뉴가 오고 갔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파나르 측에서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내면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구요. 대한민국도 파나르와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는 걸 바라 왔으니깐요.”

    “근데 역대 대통령 중에 파나르를 방문했던 대통령이 있었나요?”

    “아니요. 최초입니다.”

    최초라는 말에 직원들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통령이 움직이면 청와대에서도 의전을 위해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입니다. 그분들이 분명 도와주겠지만 전체적인 의전은 저희 대사관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하….”

    직원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그중에서 의전 책임자인 김준우 서기관의 탄식이 더욱 돋보였다.

    “어떡하죠. 저 대통령님 의전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그래도 김준우 서기관님이 제일 경험이 많은 편이에요.”

    당황하는 김준우 서기관을 향해 예민희 서기관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직 날짜가 확정된 건 아니니 벌써부터 부담을 가지지는 말아요. 의전에 대한 것도 청와대 측에서 사전 점검을 나와서 같이 진행을 할 거고, 음식 역시 청와대 요리사들이 직접 따라올 거니 장 셰프는 그냥 옆에서 거들기만 하면 됩니다.”

    “청와대 요리사들도 동행합니까?”

    “네, 지금 계획으론 그럴 생각입니다. 파나르 단독 일정이기도 하고, 파나르 대통령을 관저로 초대를 할 생각이라서요.”

    그나마 나는 한숨을 덜 수 있었다. 조근배 요리사의 지휘 아래 만찬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 대통령급 만찬의 의전과 음식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 출장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김준우 서기관도 일정을 계획하고, 같이 갈 준비를 해 주세요.”

    “직접 가셔서 일정 잡으시려구요?”

    “그래야죠. 가서 상의하고 계획할 게 많을 테니깐요. 김준우 서기관도 이참에 같이 가서 업무도 배우면 좋구요.”

    김용수 대사와 김준우 서기관은 직접 한국으로 출장을 가 대통령 방문에 대한 일정을 조율할 예정이었다.

    대통령 면담에서 나눌 주제부터 방문단의 규모, 일정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세세하게 계획되는 것이 대통령 의전이었다.

    “그리고 장 셰프.”

    “네, 대사님.”

    “이번 방문 땐 청와대 요리사들이 함께 동행할 예정이니깐 장 셰프가 크게 준비할 건 없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다행인가요? 저는 우리 장 셰프의 음식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운데요.”

    김용수 대사의 말투는 분명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옆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 줘요. 그리고 저는 한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갈 생각이니깐, 이참에 장 셰프도 같이 휴가를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래도 될까요?”

    “네, 제가 없는데 굳이 관저에 나올 필요 없으니 휴가를 쓰도록 해요. 아니면 같이 한국 한번 다녀오든지요.”

    한국에 다녀오라는 김용수 대사의 말에 누군가가 번뜩 떠올랐다.

    “아! 그럼 저도 한국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래요. 오랜만에 한국 한번 다녀와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길로 집에 돌아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차가 느린 한국에선 한참 여유를 즐기고 있을 시간이었다.

    게다가 오늘 파나르 대통령을 만나러 갈 거라고 실컷 자랑을 해 놓은 상태였다.

    -여보세요?

    -어! 덕수야. 잘 갔다 왔어?

    -퇴근했지, 한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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