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9화 (160/202)
  • 159. 셀럽

    엘레나의 잠적 사건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촉이 좋은 연예부 기자들은 엘레나에 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쏟아 냈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톱스타의 숙명이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었지만 엘레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천생 연예인이었다.

    “오늘의 게스트는 최근에 특이한 일로 주목받고 있는 스타죠? 원래도 워낙 스타였지만 그녀도 결국 사람이란 걸 보여 준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맞습니다. 파나르 최고의 배우 엘레나 씨를 모시겠습니다.”

    되려 이번 사건으로 엘레나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너무 톱스타였기 때문일까? 다소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던 엘레나였지만 이번 일로 그녀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려 주게 되었다.

    “엘레나 씨. 그래서 온천 호텔로 도피를 떠나신 건가요?”

    “네 맞아요. 멀리는 가고 싶고, 근데 또 호텔이 없으면 당장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거길 선택했어요.”

    “하하하 이 부분에선 엘레나 씨가 톱스타란 걸 또 일깨워 주네요. 그 호텔 하루 숙박비가 꽤 비싼 걸로 알거든요.”

    “그렇긴 한데 저 텐트에서도 하루를 보냈어요.”

    “정말요?”

    엘레나의 잠적 에피소드는 토크쇼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에 좀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서요?”

    “네 저에겐 아주 특별했습니다. 앞으로의 제 인생에 영향을 줄 만큼 특별했어요.”

    “그 정도인가요? 무슨 일일지 궁금하네요.”

    “저 엘레나는 이제부터 조금 다르게 살아 보려고 합니다.”

    그날을 상상이라도 하는지 엘레나의 표정은 한껏 밝아졌다.

    “저는 인생의 반 이상을 연예인으로 살아왔어요. 그것도 여배우로요. 그러면 뭐가 제일 힘든지 아세요?”

    “음…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아니면 몸매 관리?”

    “둘 다 맞아요.”

    엘레나는 어릴 적부터 시작한 배우 생활로 인해 자기 관리가 몸에 배어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에 대한 관심 자체도 사라지고, 항상 원하는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먹는다라는 행위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둬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살기 위해 먹는 거지.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엘레나 씨는 맛집 같은 걸 찾아다니고 그래 본 적 없으세요?”

    “한 번도 없어요.”

    엘레나 또래의 여자라면 이쁘고 맛있는 음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게 정상이지만 엘레나는 그 흔한 디저트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면 어릴 적 부모님이 해 주시던 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생각이 난 적도 없으세요?”

    “아시다시피 저희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게 아니더라도 두 분의 요리 솜씨는 형편없었거든요.”

    엘레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흔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요리 실력까진 미처 알지 못했다.

    “근데 이제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요? 어떤 계기로 그걸 알게 되신 건가요?”

    엘레나는 얼마 전 먹은 장덕수 셰프의 소갈비 바비큐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 소갈비 바비큐는 제가 먹어 본 음식들 중 최고였어요. 씹지 않아도 고기가 결대로 찢어질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소스가 계속 생각이 나요.”

    “와아… 말만 들어도 먹고 싶네요. 역시 배우라 그런지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네요.”

    엘레나의 그 호텔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부 공개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까지도.

    “그래서 저도 요리를 좀 배울 생각입니다.”

    “엘레나 씨가 직접이요?”

    “네 제가 직접 배워서 먹는 재미도 알고, 남이 제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의 쾌감도 좀 더 느껴 보고 싶어요.”

    별것도 아닌 삶은 계란과 샐러드를 전부 먹어 주던 장덕수 요리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리사들처럼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정성이 담긴 요리를 종종 대접해 보고 싶어졌다.

    특히 함께 고생하는 사장님과 매니저 오빠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항상 받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보답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저 스스로도 다양한 걸 먹어 보려구요.”

    “그럼 몸매 관리는 포기하는 겁니까?”

    “완전히 포기할 순 없겠죠. 하지만 저도 이제 20대 중반이에요. 언제까지 이쁘고 발랄한 역할만 연기할 순 없잖아요.”

    엘레나의 연기 실력은 출중했지만 이미지 탓에 비슷한 역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그게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래서 몸매 관리에 대한 부담감은 좀 내려놓고, 다양한 연기를 해 보고 싶어요. 디카프리오처럼요.”

    어릴 적 그 어떤 배우들보다 화려한 미모로 연기를 하던 디카프리오는 나이가 들수록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갔다. 역할을 위해 살을 찌우기도 하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엘레나 역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변신하고, 잘 먹으며 체력을 유지해야 했다.

    “그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이 엘레나 씨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맞아요. 처음 본 저에게 그렇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 준 요리사님과 그 직원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대체 누구인가요?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만든 사람이라면 일반인은 아닐 텐데요. 요리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인가요?”

    엘레나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그분은 이미 파나르에서 유명하신 분이더라구요.”

    “네? 이미 유명하다구요?”

    “네 그것도 최근에 아주 인기가 많아졌어요. 두 분도 이미 알고 계세요.”

    “저희가요? 도대체 그분이 누구신데요?”

    “파나르 한국 대사관의 요리사 장덕수 씨예요.”

    엘레나의 입에서 덕수라는 이름이 나오고, 얼마 전에 있었던 푸드 트럭 요리 대회의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엠씨들 역시 장덕수 셰프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그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어! 이 사람!”

    “맞아요. 제가 두 분도 잘 아시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엠씨들은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덕수 셰프가 나이에 비해 대단한 요리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이야.

    “이분의 음식을 엘레나 씨가 드셨다구요?”

    “네.”

    “하… 우리도 못 먹어 본 걸 엘레나 씨가 드셨다니. 뭔가 억울하네요. 저희는 며칠이나 함께 일을 했는데.”

    “제가 진정한 승자네요 호호.”

    “이럴 줄 알았으면 사인이라도 받아 놓을 걸 그랬어요. 이 정도면 장덕수 셰프가 엘레나 씨보다 더 유명해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겠어요.”

    “그분이 저보다 유명해지는 건 찬성입니다. 파나르를 저만큼 사랑하는 분 같았거든요.”

    장덕수 요리사는 푸드 트럭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으로 파나르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런 그가 파나르에서 사랑받는 여배우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다니.

    연예인이 된 건 아니었지만 파나르에서 그의 유명세는 더욱 커질 거란 게 뻔했다.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앞으로 장덕수 셰프는 지금보다 더욱 바빠질지도 모른다.

    원래 슈퍼스타는 피곤한 법이니까.

    * * *

    파나르 한국 대사관 관저.

    온천 호텔에 다녀오고도 우린 며칠을 더 쉴 수 있었다. 김용수 대사와 본부의 배려 덕에 방전되었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장 셰프.”

    “네 대사님.”

    “역시 같은 계란국이지만 차원이 다르네요.”

    “하하하 제 계란국이 대사님 계란국과 비슷하면 전 밥줄 끊기는 거죠.”

    여느 때처럼 김용수 대사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김용수 대사는 아침에 부담이 덜 된다며 부드럽고 담백한 계란국을 좋아했다.

    물론 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우리 여기서 지내는 동안 참 다양한 일을 한 것 같아요. 그렇죠?”

    “맞습니다. 사실 처음 왔을 땐 그냥 관저에 주최하는 오, 만찬 행사만 잘 치르면 될 줄 알았는데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네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나와 김용수 대사 둘 다 파나르가 처음 부임지라 모든 일이 서툴렀다.

    정년 퇴임을 한 뒤 다시 복직을 하게 된 김용수 대사나 지원자가 한 명뿐인 공고에 채용된 나나 그 시작은 남들과 달랐다. 잘 해낼 거란 각오를 하고 왔지만 처음엔 모든 것이 장애물이었다.

    대망의 첫 만찬 때도 제대로 된 코스 요리를 구성도 못 한 채 거물급 인사를 초대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만찬이 무사히 끝난 것도 천만다행이에요. 그런 음식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하하 그땐 워낙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고, 음식보단 대화 내용이 좀 더 중요했으니까요. 평소 같은 상황이었다면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요. 그때 일개 직원들 이름까지 일일이 알아야 하냐며 짜증 내던 장관님 얼굴이 생각나네요 으으으.”

    나는 양팔에 돋아난 닭살을 문질렀다.

    파나르에서 첫 만찬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만만치 않았었다.

    “바누스 장관이 처음에 기선 제압을 제대로 했죠?”

    “그렇긴 한데 저희 대사님도 만만치 않으셨어서요.”

    “아이참. 미안하게 왜 또 그 얘기를 꺼내고 그래요. 나도 그때보다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졌어요.”

    “당연히 농담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팀워크가 잘 맞는 콤비 아닙니까!”

    “하하 그렇죠? 우리가 비록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환상의 콤비예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성장했다는 말을 하는 김용수 대사. 실제로 처음 봤던 김용수 대사와 지금은 김용수 대사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때 바누스 장관이 파나르에 최대한 오래 남아 달라고 했는데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때 장 셰프 음식 자주 먹으러 오겠다고 오래 남아 달라 했죠?”

    “네 맞아요. 근데 그 후론 얼굴 뵙기 힘드네요. 한국 음식 한번 제대로 대접해 줘야 하는데. 그때 메뉴는 너무 소박해서 맘에 걸리네요.”

    장 보러 갈 시간도 따로 내지 못해 감자전이나 김치볶음밥 같은 메뉴로 파나르의 외교부 장관을 대접했었다.

    관저가 아닌 외부에선 김용수 대사와 자주 만났지만 관저로의 초대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바누스 장관 요즘 바빠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확실한 건 아닌데 파나르의 대통령이 물러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정말요?”

    파나르는 장관들의 정년이 없었다. 대통령 역시 정년이 없었다. 일종의 독재 문화.

    파나르 대통령은 오랜 시간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지만 많은 나이에 대한 우려와 너무 오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전을 겪었다는 것도 그런 반대 의견에 기름을 퍼부었고.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미 박수칠 땐 많이 지났지만.”

    “그럼 그 후임자는 누가 된답니까?”

    김용수 대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절대적인 이인자는 없습니다. 누구나 가능성이 있어요. 당연히 바누스 장관도 후보 중 하나구요.”

    “아… 바누스 장관님도 나이가 꽤 많으신데, 바뀌는 게 의미가 있나요?”

    “그건 우리 생각이죠. 본인들은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바누스 장관은 권력욕이 아주 대단하거든요.”

    “그렇군요.”

    바누스 장관과 자주 만나며 그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던 김용수 대사였다.

    “우리는 바누스 장관님이 차기 대통령으로 뽑힌다면 어떻게 되나요? 상황이 더욱 좋아지나요?”

    나의 물음에 김용수 대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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