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5화 (156/202)
  • 155. 캠핑의 꽃

    “누구지? 방금 목소리 들렸죠?”

    “그렇긴 한데 파나르어였잖아요. 우리한테 말 걸 리가 있나?”

    김용수 대사 역시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근처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저기요.”

    하지만 잠시 후 똑같은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분명 우릴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세요?”

    분명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말을 걸었으면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완벽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파나르 사람들 아니시죠?”

    “아닙니다.”

    나무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니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이 어두컴컴해진 상태임에도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데다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어디 나라 사람이세요?”

    “저희요? 한국 사람입니다.”

    능숙하진 않아도 이 정도 대화쯤은 파나르어로 충분히 가능했다. 김용수 대사 역시 이 정도는 가뿐했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여자에게 상체를 돌렸다.

    “다행이네요. 그럼 저 모르시겠다.”

    “네?”

    “아닙니다. 혹시 저 삭사울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삭사울이요?”

    삭사울은 캠핑장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우리 걸 빌리려고 하는 거지?

    “삭사울 저기 많은데….”

    빌려주기 싫은 게 아니라 진짜로 쌓여 있는 게 삭사울이라 빌려주고 말고 할 게 아니었다.

    우리가 사 온 것도 아니었기에.

    “제거는 불이 잘 안 붙어서요… 이건 좀 작아서.”

    여자의 목소리도 작았고, 말끝을 흐리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대사님. 방금 이분이 뭐 작다라고 한 거 맞죠?”

    “그런 거 같네요. 뭐 우리가 패 놓은 삭사울 좀 나눠 달라고 하는 거 같은데.”

    김용수 대사의 추리에 작게 잘라 놓은 삭사울을 들어 올렸다.

    “이거요?”

    “네 맞아요!”

    그러자 그 여자는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장작이야 뭐 또 패면 되니깐 잘린 삭사울 몇 개를 건넸다.

    그제야 신이 난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여자였다.

    “특이한 사람도 다 있네요.”

    “그나저나 장 셰프 오늘 메뉴는 뭔가요?”

    김용수 대사도 배가 출출해진 모양이었다. 방금 그 여자는 금세 잊고 본분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바비큐죠.”

    “그니깐 무슨 바비큐를 할 건데요?”

    오늘의 메인 메뉴는 딱 두 가지였다.

    삼겹살은 이런 곳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백전불패의 메뉴지만 조금 식상하기도 했다.

    조금은 특별한 메뉴를 준비해 보고 싶었다.

    “일단 가볍게 비어캔 치킨부터 해 보겠습니다.”

    “비어캔 치킨이요? 이거 저번에 김준우 서기관 가족들 왔을 때 만든 거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때 진우 한번 속여 보려다가 실패했던 메뉴였죠.”

    김준우 서기관의 아들 진우가 유치원에서 꽂혔다는 게 이 비어캔 치킨이었다.

    생닭에 양념을 한 뒤 엉덩이에 맥주캔 하나를 통째로 꽂아 바비큐를 하는 요리이다. 속살은 맥주의 증기로 인해 잡내는 사라지고, 촉촉하게 익는다. 그리고 겉은 향긋한 숯 향이 스며든 바삭한 치킨이 된다.

    겉바속촉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메뉴.

    “이 비어캔 치킨은 한 시간 정도면 완성되니깐 이걸로 배 좀 채우면서 다른 메뉴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다른 메뉴는 뭔데요?”

    비어캔 치킨도 충분히 매력적인 메뉴였지만 오늘 준비한 메인 메뉴와 비교해선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

    “립이에요. 소갈비로 만든 립.”

    파나르는 고깃값이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과장을 좀 보태서 원한다면 개인이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다.

    질 좋은 소갈비를 이렇게 통째로 살 수 있는데 바비큐에 사용하지 않는 건 요리사로서 직무태만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번 휴가의 여비는 넉넉했으니 자주 먹는 폭립이 아니라 소갈비를 통째로 사용하고 싶었다.

    “이거 두 덩어리면 우리 직원들 충분히 먹겠죠?”

    “한참 먹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나는 김용수 대사를 향해 큰 소갈빗대를 들어 올려 자랑했다.

    마치 대어를 낚은 낚시꾼처럼.

    그런 소갈빗대가 두 덩어리나 있었으니 음식 모자란단 소리는 안 하겠지.

    “그리고 여기에 제가 만든 특제 소스를 발라서 구워 낼 겁니다.”

    “특제 소스요?”

    본래 바비큐는 럽이라고 하는 양념을 발라서 몇 시간 동안 훈제를 한다.

    럽은 드라이럽과 웻럽이라는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는데, 각종 허브와 달짝지근한 바비큐 소스를 발라서 구워 내는 게 보편적이다.

    “한국식으로 럽을 만들어 봤어요. 하나는 간장에 마늘, 생강, 대파 그리고 계피 같은 한약제 향이 나는 걸 넣어서 소스를 만들었구요.”

    김용수 대사의 목젖으로 침이 꿀꺽 삼켜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하나는 고추장에다가 파나르 꿀을 섞어서 만든 고추장 바비큐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야… 말로만 들어도 군침이 넘어가네요.”

    이런 소갈비에는 그냥 소금, 후추만 뿌려 먹어도 맛있는데, 한국식으로 양념을 발라서 서너 시간 구워 내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돼 내 입에도 침이 고였다.

    “거기다가 김치도 종류별로 넉넉하게 챙겨 왔으니깐 맘껏 드시죠.”

    “그것도 참 반가운 소리네요.”

    김용수 대사는 바비큐 통과 그릴에 쪼개 놓은 삭사울을 넣어 불을 지폈고, 나는 소갈비와 닭에다가 준비해 온 럽을 발랐다.

    “이 큰 통에다가는 소갈비를 넣어서 훈제해 줄 거예요. 여기다가 삭사울 몇 개만 넣어 주세요.”

    “이것만 넣으면 돼요?”

    “네 이건 가스를 사용하는 거라 삭사울은 향이 날 정도만 넣어 주면 됩니다.”

    향긋한 숯 향을 가미시킬 삭사울 조각을 넣어 준 뒤 커다란 바비큐 통을 닫았다. 이제 약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를 은은하게 구워 주기만 하면 된다.

    “근데 이 비어캔 치킨은 꼭 바비큐가 아니어도 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집에서도 오븐이 있으면 가능할 거 같은데요.”

    “오 대사님도 이제 요리에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꼭 그런 건 아닌데 맥주 한잔하기에 좋은 메뉴같네요.”

    김용수 대사의 말처럼 비어캔 치킨은 그리 어려운 요리가 아니었다.

    특이한 모양새 때문에 손님들에게 대접하기에도 좋은 음식이었고, 맛도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는다.

    “그럼 무조건 성공하는 비어캔 치킨 레시피 하나 알려 드릴까요?”

    “무조건이요? 내가 해 보니깐 요리에 그런 공식 따윈 없던데요.”

    그건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차이에서 맛은 크게 달라지긴 하지만 적어도 이 비어캔 치킨에 바르는 럽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생닭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라면 스프를 발라서 구워 보세요.”

    “라면 스프요?”

    “네 라면 스프 두 개 정도면 닭 한 마리 요리하는 데 충분할 겁니다. 그걸 발라서 구우면 적당히 매콤하고 맛있는 비어캔 치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호.”

    김용수 대사는 알려 준 레시피가 맘에 든 표정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번 건 정말 간단했으니까.

    “내가 장 셰프 없을 때 꼭 한번 도전해 볼게요.”

    “꼭 성공하길 바라겠습니다.”

    비어캔 치킨의 껍질이 노릇노릇해지고, 고소한 기름이 새어 나올 때쯤 대사관 직원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야 벌써부터 냄새가 좋은데요?”

    “타는 냄새밖에 안 나는데요?”

    “아이참. 그냥 형식상 하는 말이죠. 우리 요리사님 음식은 보나 마나, 맡아 보나 마나 맛있을 게 뻔하니까요.”

    너스레를 떠는 안지용 참사관의 두 손엔 역시나 독주가 두 병 들려져 있었다.

    예민희 서기관은 사무실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안지용 참사관의 모습이 아직은 낯선 모양이었다.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적응될 게 분명했다.

    “대사님은 온천 안 하셨어요?”

    “네 저는 뜨거운 걸 싫어해서요.”

    “여기 물이 엄청 좋아요. 식사하시고 잠깐이라도 해 보세요.”

    안지용 참사관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온천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벌써 술 한잔씩 하고 나온 사람들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 표정만은 행복한 얼굴이었다.

    “오늘 메뉴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말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 대신 김용수 대사가 나서서 메뉴 설명을 해 주었다.

    “저 통 안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카리나 씨만 한 소갈비가 두 덩어리나 익어 가고 있고, 여기에는 기름기가 쏙 빠진 비어캔 치킨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비어캔 치킨이요? 저에겐 씁쓸한 기억이네요.”

    김준우 서기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 진우가 아직도 요리사님 비어캔 치킨 먹고 싶다고 종종 말하거든요. 내가 만든 찜닭은 말도 안 꺼내면서….”

    모두가 웃고 있는 사이 김용수 대사가 기회를 포착했다.

    “김 서기관. 집에 오븐 있죠?”

    “네 오븐이야 있죠. 왜요?”

    “그럼 집에서 무조건 성공하는 비어캔 치킨 레시피를 알려 드릴까요?”

    “네? 대사님이요? 요리사님이 아니구요?”

    김준우 서기관은 당황했지만 김용수 대사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근데 대사님. 요리사님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요리 실력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입니다….”

    “괜찮아요. 이 레시피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레시피예요. 내가 장담할게요.”

    “정말요?”

    김용수 대사는 내 눈치를 살짝 본 뒤 입을 열었다. 비밀을 지켜 달라는 의미겠지.

    “생닭에 라면 스프 두 개 분량을 발라서 구워 봐요.”

    “라면 스프요?”

    “네 아무것도 넣지 말고, 라면 스프 두 개만 닭에 발라서 구우면 됩니다. 그럼 적당히 매콤하고, 맛있는 비어캔 치킨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

    김준우 서기관은 의외로 쓸 만한 지식에 감탄을 했다. 김용수 대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김준우 서기관을 바라봤다.

    “이거 요리사님이 알려 주신 거죠?”

    “저요? 아니요. 라면 스프로 그걸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 말. 놀. 랍. 네. 요.”

    나의 대답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쳐 다시 돌아왔다.

    “자 그럼 비어캔 치킨부터 맛볼까요?”

    “치킨이라… 그러면 맥주 타임이군요.”

    치이이익.

    안지용 참사관은 직원 수만큼의 맥주 캔을 따 우리에게 건넸다. 의사를 묻지 않았지만 아무도 거절하지 않고 맥주를 집어 들었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비어캔 치킨이 구워지는 그릴의 뚜껑을 열었다.

    “이야…. 색깔 죽인다.”

    가득 차 있던 연기가 한바탕 빠져나가자 노릇하게 익어진 닭 껍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먹어 보지 않아도 바삭함이 느껴졌다.

    “여기다가 이 녹인 버터를 조금 발라 주면 훨씬 풍미 있고, 윤기 나는 치킨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셰프의 킥인가요?”

    “맞습니다!”

    닭의 엉덩이에서 맥주캔을 꺼내 도마 위에 올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의 속살에선 은은하게 맥주 향이 느껴졌고, 바삭하게 구워진 닭 껍질에선 향긋한 삭사울의 향이 느껴졌다.

    “이건 묵은지로 만든 살사 소스인데 같이 곁들여서 드셔 보세요. 또띠아도 좀 사 왔으니까 싸 먹어도 좋아요.”

    “김타코로 한번 재미 보시더니 계속 퓨전 요리네요.”

    “하하 그러네요.”

    묵은지를 씻어 송송 썰어 준 뒤 토마토와 양파, 식초, 설탕 등으로 간을 한 김치 살사 소스는 파나르 사람인 카리나의 입맛에도 딱 맞는 모양이었다.

    “어때요 카리나 씨? 맛있어요?”

    “완전 대박이에요. 이 소스는 말 안 하면 김치로 만든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원래 물놀이를 하고 나오면 배고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3마리의 비어캔 치킨은 금세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소갈비 바비큐는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빨리 먹으면 안 돼요.”

    “괜찮아요. 좀 기다리면 되죠. 그리고 한번 맛보고 나니깐 멈출 수가 없어요.”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소갈비가 구워지는 그릴을 열어 봤지만 역시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늦어져도 맛있게 먹는 편이 나을 테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맥주 한 캔씩 더 할까요?”

    “맥주 좋지요!”

    한껏 기분이 올라간 직원들 사이로 아까 들려왔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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