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4화 (155/202)

154. 포상 휴가

본부에서도 이번 방송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외교에서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음식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 대사관의 직원이 파나르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들의 식성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던 모습은 대사관 업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었다.

“본부에서는 그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해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 일동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게 끝인가요?”

“예. 뭐가 더 필요한가요?”

김용수 대사는 본부에서 장관이 보내온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읽어 주고 있었다. 공식적인 감사패는 아니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글귀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메일 하나로 끝나는 게 아쉬운 모양.

“요리사님이랑 윤아 씨가 며칠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었는데, 그냥 이메일 하나로 끝나니깐 아쉽네요. 우리라도 맛있는 거 사 줘야겠어요.”

“맞아요. 덕분에 우리도 다 같이 칭찬받았는데 그냥 있을 순 없죠.”

김준우 서기관은 동생들이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라도 받고 온 듯 열을 올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메일 하나가 끝은 아니었다.

“하하하 걱정 마세요. 장관님이 그렇게 속 좁은 분은 아니십니다.”

“아니… 속 좁다는 의미가 아니라요.”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 다 같이 포상 휴가를 한 번 갔다 오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여비도 넉넉히 챙겨 주시기로 했구요.”

“오! 포상 휴가요?”

직원들의 시선이 김용수 대사의 입을 향했다.

“이번 방송 건도 있고, 예민희 서기관이랑 카리나 씨도 새로 왔으니깐 다 같이 휴가 한 번 더 갈 때 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처음 워크샵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나름 즐겁긴 했지만 김준우 서기관은 하루 종일 카메라에 신경을 써야 했고, 숙소 역시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을 이용했었다. 심지어 불빛 하나도 없는 곳.

그래도 아나와 지마라는 소중한 인연을 얻었지만 맘 놓고 푹 쉰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휴가 장소는 저번처럼 윤아 씨가 수고 좀 해 주세요. 카리나 씨가 현지 사정을 잘 아니 좀 도와주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활기찼다. 하지만 나와 김준우 서기관, 그리고 안지용 참사관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예민희 서기관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고.

“저 윤아 씨.”

“네 참사관님.”

가장 연장자인 안지용 참사관이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이번엔 워크샵도 아니고, 포상 휴가라 그런지 경비도 넉넉하고 그렇다네요.”

“…네 알겠습니다.”

“돈 걱정 말고 좋은 곳으로 구해 봐요….”

말끝을 흐리는 안지용 참사관을 보며 윤아는 찝찝함을 숨기지 못했다.

“뭐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참사관님?”

“그… 저 저번에 묵었던 곳도 좋았는데 이번엔 경비도 넉넉하고 그러니 숙소라도 좀 좋았으면 해서요.”

“아… 그때 불편하셨어요?”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안지용 참사관은 혹시라도 윤아가 섭섭해할까 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윤아는 그때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조용히 술과 안주에 집중할 수 있다며 하루 종일 신나 있던 안지용 참사관의 표정을.

대사관 직원들은 겨우 이런 걸로 서운해하고 그럴 관계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숙소는 좋은 호텔로 구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윤아 씨.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혹시나 오해할까 봐.”

이런 상황이 우습기도 했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직원들임에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는 김용수 대사의 표정에서 흐뭇함과 뭉클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나도 정말 푹 쉬고 와야겠다. 아직 파나르에서의 시간은 넉넉히 남아 있었으니 페이스 조절도 필요했다. 마냥 달리기만 할 순 없다.

맘껏 먹고 실컷 마시는 그런 휴가가 되길 기도해 봐야지.

* * *

파나르 A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단순히 바쁜 스케줄에 짜증이 나서 며칠 잠수를 탄 줄 알았는데 벌써 5일째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엘레나는 이 회사에서 최고로 높은 수익을 올려 주는 인기 배우지만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배우였다.

이번처럼 툭하면 사라지고, 연락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근데 이번엔 좀 달라요. 연락이 끊기기 전에 짧지만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남겼고, 집도 이미 다 정리되어 있었어요. 이건 분명 맘먹고 멀리 간 거예요.”

“아씨. 왜 또 그러는 거야. 뭐 촬영할 때 문제라도 있었어?”

“아니요. 특별한 건 없었는데… 항상 부리던 투정 정도.”

엘레나의 담당 매니저와 소속사 사장은 짜증으로 시작해 걱정이 되는 단계로 변해 가고 있었다.

엘레나는 어릴 적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소속사의 관리를 받아 왔었다. 혼자서는 어디 멀리도 못 갈 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니 걱정스러운 맘이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얘 성격상 뭐 극단적인 생각을 하거나 그러진 못할 거야. 그냥 평소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가 터져서 방황하는 걸 테니 반드시 찾아서 잘 달래 와.”

“네 알겠습니다.”

“엘레나는 우리가 반드시 책임져야 해. 우리 회사가 여기까지 온 게 다 엘레나 덕분인데, 우린 걔를 평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찾겠습니다. 분명 멀리는 못 갔을 거예요.”

엘레나의 매니저 역시 집으로 돌아가 짐을 쌌다. 엘레나의 행방을 알기 전까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각오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이 좀만 기다려라.’

일단 파나르에서 엘레나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텐데 며칠 동안 SNS에 목격담 하나 없는 걸 보면 어딘가 멀리 떠난 게 분명했다.

근처 다른 도시 중 가 볼 만한 곳부터 뒤져 보기로 결정하고 리스트를 추렸다. 엘레나가 좋아하는 쓸 만한 호텔이 있는 곳으로.

* * *

휴가 장소는 파나르 도심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정했다. 저번처럼 너무 멀지도 않고, 적당히 여행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거리.

유명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온천이 터지는 바람에 꽤 괜찮은 온천 호텔 하나가 있었다.

산속이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와 관리가 잘되어 있는 호텔이었다.

“짜잔. 이 정도 호텔이면 괜찮죠? 온천도 있고, 조식도 괜찮고, 근처 공원에서 캠핑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이야 이게 바로 휴가지. 겉으로만 봐도 좋네요.”

“그러게요. 저번이랑은 완전 딴판이네요.”

대사관 직원들은 산속에 덩그러니 호텔이 있는 게 신기했지만 깔끔한 시설과 인테리어를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호텔 꽤 좋은데 많이 알려지진 않은 곳이에요. 카리나 씨가 추천해 줬거든요.”

“역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건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조용하고, 공기도 좋으니 푹 쉴 수 있겠네요.”

안지용 참사관의 감탄사에 윤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번 워크샵 장소도 조용하고, 공기 좋았는데요?”

“아니… 윤아 씨. 그냥 여기는 침대도 좋고, 따뜻한 온천물도 있고 그러니까….”

곤란해하는 안지용 참사관을 보고 윤아는 슬쩍 웃어 준 뒤 체크인을 완료했다.

“그럼 각자 방에서 푹 쉬다가 저녁 먹을 때 만나는 걸로 하실까요?”

“그러시죠. 근데 오늘 저녁은 뭐 먹어요?”

역시나 여행의 묘미는 먹고 마시는 거 아니겠는가.

자연 온천도 좋지만 저녁 메뉴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자연스레 요리사인 나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오늘은 그냥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안 될까요? 나도 남이 해 주는 음식 좀 먹어 봅시다.”

“하하 그래야 하는데 요리사님 음식의 맛을 한번 보고 난 후론 다른 음식들은 영 성에 차지 않아서요.”

작은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저녁밥은 내 담당이란 것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직원들을 위해 요리를 해 주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신 뒷정리랑 설거지는 완전 제외해 주시는 거죠?”

“에이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끼리 내기해서 정리할게요. 요리사님은 맛있는 것만 해 주세요.”

“그렇다면 콜!”

휴가 장소가 이 호텔로 결정되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곳은 온천으로도 유명했지만 캠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파나르 사람들 역시 바비큐를 즐겨 먹기 때문에 이런 캠핑에도 익숙했다.

“보니깐 여기 캠핑장에 좋은 바비큐 기계들이 많더라구요. 그거 좀 써먹어 봐야겠어요.”

“오 바비큐요?”

호텔에선 일 년에 한 번 정도, 여름 시즌에 바비큐와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

맥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연기에 몇 시간 동안 구워 낸 담백한 바비큐 음식들로 손님들을 끌어모았다.

그 기간 동안 호텔은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곤 했었다.

한식당에서도 묵은지 살사 소스나 된장 소스를 바른 통삼겹살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던 적이 있다.

“요리사님 바비큐도 할 줄 아세요? 그거 생각보다 어렵다던데. 그냥 굽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뭐 숯도 넣고, 온도 조절도 해야 하고 꽤 복잡하더라구요.”

“네 생각보단 쉽지 않은데 그래도 친구들이랑 종종 캠핑을 갔어서 할 줄 알아요.”

살면서 캠핑을 가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가벼운 거짓말로 상황을 넘어갔다.

그땐 호텔에서도 지긋지긋하게 하던 바비큐를 쉬러 가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었다.

“대신 바비큐는 만드는 데 오래 걸리니깐 다들 온천에 몸 한 번씩 담그고 오세요. 저는 지금부터 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요리사님은요….”

“저는 밥 다 먹고, 밤늦게 조용히 혼자서 온천을 즐길 겁니다. 저녁 식사 이후부턴 아무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에게 단단히 약속을 받아 내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장 셰프. 정말 아무것도 안 도와줘도 되겠어요?”

“괜찮습니다. 혼자 하는 게 편해요. 대사님도 온천 한번 다녀오세요.”

혼자서 저녁을 준비한다는 내가 맘에 걸렸는지 김용수 대사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뜨거운 물에 오래 못 있어요. 어지럽기도 하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서요.”

“그러세요? 그럼 미리 말씀하시죠 그럼 여기로 예약 안 했을 텐데요.”

“괜찮아요. 장소 자체는 맘에 드네요. 굳이 온천이 아니라도요.”

“하긴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오히려 사우나 같은 게 더 위험하잖아요.”

“괜찮으면 나라도 손을 좀 보탤까 하는데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김용수 대사와 단둘이 있는 건 매일 하는 일이니 어색할 것도 없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옆에서 말동무라도 해 줄 사람이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았다.

“그럼 나가실까요?”

“그래요.”

호텔에서 2분 정도 아래로 내려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조명도 잘 설치되어 있어 주변이 밝았고, 한국의 캠핑장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지 않았다.

“여기가 저희 자리네요 대사님.”

“이야 아주 시설이 좋네요.”

“그러게요. 이 정도면 관리도 엄청 잘 되어 있고, 바비큐 기계들도 꽤 비싼 거예요.”

“그런가요? 바비큐 기계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이라서요.”

우리가 대여한 캠핑장에는 그릴은 물론이고, 훈제를 할 수 있는 커다란 바비큐 통과 숯으로 사용할 장작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역시나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삭사울이었다.

“그럼 장작부터 좀 패 볼까요?”

“이건 내가 할게요. 나 어릴 적에 종종 했었어요.”

“대사님 어릴 때 나무 태워서 방바닥 데우고 그러신 거예요?”

“그 정돈 아니에요. 연탄은 써 봤지만. 나를 아주 조선 시대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하하 죄송합니다. 종종 해 봤다고 하시길래.”

“시골 큰집에서 소를 키웠거든요. 소여물 끓이는 솥에 불을 붙이는 건 장작을 패서 했었어요.”

“그러셨구나.”

뻘줌해진 분위기 탓에 빠르게 도끼를 들었다.

타악!

타악!

“우와. 대사님 이런 재능이 있으셨네요.”

김용수 대사의 도끼질은 수준급이었다. 어릴 적 몇 번 해 본 수준이 아니었다.

“아직 감이 죽지 않았네요.”

“진작에 실력 발휘 좀 해 주시지 그랬어요.”

지금까지 삭사울을 몇 번이나 사용했는데 한 번도 도끼를 든 적이 없었던 김용수 대사였다.

“나보다 장 셰프가 더 잘하잖아요.”

“만만치 않으신데요.”

살짝 어색해졌던 분위기가 회복되고 필요한 양의 장작은 금방 준비가 되었다.

이제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가스를 같이 사용하는 기계기 때문에 오래 걸리진 않는다. 준비해 온 바비큐용 고기에 럽이라고 하는 양념을 바르는 게 먼저였다.

“저… 기요.”

아이스박스에서 고기를 꺼내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이 어두컴컴해지고 있는 시간이라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왔는지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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