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3화 (154/202)
  • 153. 선택한 이유 (2)

    질문을 받은 엠씨의 표정에선 흐뭇함이 느껴졌다.

    “사실 파나르는 국제적으로 그리 유명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그만큼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도 없다는 말이죠. 지리적인 위치는 물론이고, 문화 같은 것도요.”

    파나르에서 한국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중앙아시아의 파나르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땅은 거대할지언정 인지도는 최하위에 가까웠다.

    “그런데 한국팀의 장덕수 요리사는 마치 파나르학 전공이라도 한 듯 파나르 문화를 빠삭하게 알고 있더라구요.”

    “그건 통역하시는 분의 능력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도 맞지만 장덕수 요리사는 억지로 행동하고 있단 느낌이 아니었어요. 이미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느낌?”

    엠씨의 말에 제스는 물론이고, 사람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내가 파나르에 가장 오래 살았으니까. 그건 내가 내세웠던 가장 큰 무기였다.

    “보편적으로 훌륭한 식당에서 친절한 서비스는 당연한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파나르에선 안 그렇잖아요.”

    “그렇죠. 파나르에선 밝은 표정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간 오히려 손님을 잃을 수가 있죠.”

    “오늘 한국팀이 1등을 한 이유 중 하나가 파나르인들의 문화에 온전히 스며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여운을 남기듯 물음표로 말을 끝낸 엠씨들의 모습이 흐려지며 촬영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요리사님들 전부 고생 많으셨습니다.”

    브로냐 피디는 요리사 한 명 한 명 악수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방송은 확실한 성공이었다. 이미 반응이 좋았던 1~2화에 이어 이번 3화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할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출연진 여러분 여기로 모여 주세요. 기념사진 한번 찍겠습니다.”

    제작진의 요청에 요리사들과 통역을 맡은 출연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간만 된다면 이들과 술 한잔하며 음식에 대한 토론이나 실컷 하고 싶었는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출연진들끼리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시켰다.

    경쟁이라는 긴장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데 촬영 기간 동안 이런 요리사들과 대화 한번 못 해 본 건 아쉬웠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파나르에서 또 하나의 추억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기억은 머릿속에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거 같았다.

    “저… 장덕수 셰프?”

    사진 촬영을 마치고 잠시 윤아와 잡담을 나눌 때였다.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이탈리아 요리사와 그의 통역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마리오 셰프님.”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1등 한 거 축하해요. 파나르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신다구요?”

    “감사합니다! 전 지금 대사관에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리오 셰프님은 어디서 일하시나요?”

    1~2화에선 대략적으로 소개가 되었지만 요리사들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이름이나 나이 등이 전부였다.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으론 마리오 셰프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역시 그래서 파나르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군요. 난 그것도 모르고 계속 웃기만 했는데….”

    “하하 제가 선배님들을 어떻게 실력으로 이기겠어요? 이렇게라도 해야죠.”

    마리오 셰프는 겸손을 떠는 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지은 뒤 말을 이어 갔다.

    “저는 베네치아 인근에 베로나라는 작은 도시의 알마라는 레스토랑에서 수셰프로 있습니다. 하는 일은 뭐 셰프나 다름없지만.”

    알마라.

    익숙한 이름이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동서양의 조화를 분자 요리로 풀어내 많은 호평을 받는 레스토랑으로 알고 있다. 한국 요리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우리 호텔에서도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들어 봤습니다! 미슐랭 2스타까지 받은 곳 아닙니까?”

    “네? 아쉽게도 저희는 아직 미슐랭 스타를 받지 못했습니다. 매년 도전은 하고 있지만… 다른 레스토랑이랑 착각을 하셨나 보군요.”

    아… 아직 받지 못한 건가.

    분자 요리란 건 분명 창의적이고 기술적이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는 게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알마는 비교적 늦게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되지만 그게 아니어도 수많은 요리사들의 인정을 받는 레스토랑 중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그 김타코라는 음식에 대해서 잠시 대화를 나눴으면 해서요.”

    “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바라던 바였다.

    “저희 레스토랑의 메뉴는 매번 색다르고, 창의적인 음식을 선보일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식재료를 사용해 보는 편인데 저 김이라는 재료가 아주 매력적이더라구요.”

    “맞습니다.”

    이탈리아 역시 반도인 나라이기 때문에 해산물 요리가 풍부했다. 다만 한국과 조금 다르다면 신선한 상태의 해산물의 최대한 살리도록 요리를 한다는 점.

    장점이라면 해산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지만 굳이 단점을 뽑자면 다양한 요리법의 활용이 부족하다는 정도.

    “근데 이 김이라는 게 참 다루기가 어렵더라구요. 너무 얇아서 쉽게 눅눅해지고, 씹히는 식감도 아쉽구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데 저 김타코에 사용한 김은 아주 식감이 매력적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지식을 좀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마리오 셰프는 불혹이 넘은 나이임에도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업계에서 톱이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 상대가 한참 어린 사람일지라도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 줄 안다.

    그런 마리오 셰프를 보자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물론입니다. 대신 마리오 셰프님의 오일 파스타 노하우도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저희 대사님이 한식을 빼곤 오일 파스타를 즐겨 드셔서요.”

    “물론입니다. 당연히 알려 드려야죠.”

    한식을 공부하는 요리사에게 김부각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특별한 지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셰프에게 햇빛에 말리고 굽는 과정은 생소할 터.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나 역시 작은 보상 하나를 요구했다.

    “찹쌀풀을 만들어 김에 발라 겹겹이 쌓아 준 뒤 햇빛에 바싹 말려 줍니다.”

    “얼마나 말리나요?”

    “아무리 못해도 하루 이상은 말려야 합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바싹 말려야 합니다.”

    “오…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 품절이 되고도 더 팔지 못한 겁니다.”

    마리오 셰프는 메모장을 꺼내 열심히 받아 적었다.

    “한 번 말린 김을 고온에 단기간 튀겨 내면 느끼하지도 않고 바삭한 식감으로 튀겨집니다. 이 말리는 과정이 없으면 김이 기름을 많이 먹고, 금세 눅눅해집니다.”

    “신기하군요. 머금고 있는 수분을 완전히 없애 주고, 짧게 튀겨 내는 기법은 아주 기술적이네요.”

    내가 김부각을 개발한 건 아니지만 뿌듯했다. 숨어 있던 골동품이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밥이랑도 잘 어울리겠지만 카나페나 가니쉬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네요.”

    “맞습니다. 그 반죽에 매운 맛이나 다른 소스를 가미해서 여러가지 맛을 낼 수도 있습니다.”

    “오호 그렇겠군요.”

    새로운 지식을 터득할 때마다 마리오 셰프의 눈빛에선 광채가 보일 정도였다. 요리에 대한 걸 얘기할 때 내 얼굴도 저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쉽지 않았을 텐데 노하우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한국 요리사라면 대부분 할 줄 아는 그냥 상식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비빔밥과 타코를 조합해 만든 아이디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마지막 말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김타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네?”

    “혹시 저희 레스토랑에서 일하실 생각 없으시죠? 하고 싶은 요리 맘껏 하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아….”

    난데없이 다가온 스카우트 제의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곳에 가면 신기하고, 생전 해 보지 못한 요리들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보잘것없는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훗날 꼭 인정을 받을 거라 확신합니다. 장덕수 셰프님이 오신다면 그날이 더 빨라지겠지요.”

    훗날 미슐랭 2스타를 받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요리를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파스타보다 국수였다.

    한식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파나르에서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분명 거절할 것 같았는데 꼭 한번 제의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제가 파나르인이었어도 자기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장덕수 요리사의 음식을 사 먹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대뜸 고개를 숙이는 마리오 셰프를 일으켜 세우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다음에 꼭 한번 만나자는 말과 함께.

    일본 요리사 역시 일식에 접목해 보고 싶다며 김부각에 대해 물어 왔고, 나는 흔쾌히 레시피를 알려 주었다.

    * * *

    며칠 후.

    우리가 촬영했던 방송의 마지막 화가 방영이 되었고, 결과가 발표되자 대사관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결과는 알고 있었고, 본방도 아니었지만 그 짜릿함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요리사님 대단하시네요.”

    “이야 저렇게 빨리 품절이 됐는데도 더 안 만드는 베짱 봐요.”

    “아 그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불가능해서 그런 거였어요.”

    직원들은 마치 자기가 1등이라도 한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파나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민희 서기관마저 함께 기뻐해 주었다.

    “역시 외무 고시 수석인 제가 있는 곳이라 요리사님까지 수석을 보내 주셨나 보네요.”

    “얼레? 얼마 전엔 일이 많고 어렵다고 울먹이지 않으셨어요?”

    “쉿! 그냥 넘어가 주세요 김준우 서기관님. 이제 1인분 역할 하잖아요.”

    예민희 서기관의 성격은 본래 이렇게 밝았었는데, 여태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겠구나.

    다 같이 소리내어 웃고 있는 직원들을 보니 나 역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 우리 요리사님 진짜 수석이긴 수석이에요.”

    “정말요? 거봐요 수석은 수석을 알아본다니까요?”

    “왜냐면 지원자가 한 명이었거든요. 한 명 중 수석이었어요.”

    “아이참 김준우 서기관님… 그걸 굳이 왜.”

    새로운 식구마저 하나가 된 파나르 한국 대사관에서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새어 나가고 있었다.

    * * *

    외교부 본부.

    이영호 장관은 흐뭇한 표정으로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허허허 이 친구 얼마나 더 잘하려고 이러는지.”

    “그러게요. 얼마 전엔 파라과이까지 갔다 오더니 어느새 이런 방송까지 출연했나 모르겠네요.”

    “우리보다 더 바쁜 거 같죠?”

    “하하하 그런 것 같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장관님.”

    “나도 좀 더 분발해야겠네요.”

    이영호 장관은 장덕수 요리사의 1등을 끝까지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네?”

    “우리 이 친구 좀 쉬게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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