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2화 (153/202)
  • 152. 선택한 이유

    “근데 이 많은 푸드 트럭 중에 왜 한국팀의 푸드 트럭을 선택했나요?”

    “음….”

    그 손님은 처음부터 줄곧 우리의 트럭에만 머물러 있었다. 벌써 김타코를 3개째 먹고 있었고, 맥주 역시 3병을 비우고 있었다.

    엠씨들의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한국팀이 제일 믿음직스러웠어요.”

    “믿음직스러워요?”

    “네 저는 요리에 대해서 잘 몰라서 뭘 먼저 먹을지는 생각을 안 해 봤거든요. 근데 7대의 푸드 트럭을 전부 돌아보고 나니 한국팀 요리사가 제일 믿음직스러워 보였어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는 말에 엠씨는 의아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한국팀 요리사가 제일 젊은 건 알고 계시죠?”

    “당연하죠. 나이를 몰라도 그냥 딱 보면 알겠구만.”

    “그럼 오히려 나이가 많은 요리사들이 겉보기에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경력도 더 많을 것 같고, 요리사 생활도 당연히 더 오래 했을 테니까요.”

    엠씨는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상식적인 질문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다른 나라 요리사들이 더 믿음직스러워 보일 텐데 왜 나를 믿음직스러워 보인다고 했을까.

    “저 사람들은 자꾸 웃잖아요. 자기 음식에 자신이 없으니깐 웃음으로 손님들을 유혹하는 거 아닐까요?”

    “하하 저분들은 저희 제작진이 직접 현지로 날아가 모셔 온 톱 셰프들입니다. 자기 음식에 자부심이 있으면 있지 자신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왜 자꾸 웃어요?”

    “이건 아주 전형적인 파나르인들의 생각이네요.”

    엠씨의 말에 많은 손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의미겠지.

    나 역시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웃지 않는다는 건 백전백승이었다. 무표정의 얼굴만 유지해도 신뢰도가 상승한다면 믿겠는가?

    파나르는 그런 나라였다. 나와 윤아는 그걸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한국 음식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부족하고, 김타코라는 새로운 음식을 선보였기 때문에 초반에 호객 행위를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열심히 발로 뛰며 나서기보다 파나르식으로 손님들을 공략했다.

    여지없이 그 전략은 먹혀들었고, 우리의 김부각은 덕분에 금세 동이 났다.

    “아! 한국팀이 뭔가 요청할 게 있는지 손을 들었습니다. 한번 가 보겠습니다.”

    다른 팀들이 한창 판매를 하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손을 들었다. 김타코의 이른 품절을 알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신가요? 뭔가 긴급 상황이라도 발생한 건가요?”

    “품절입니다.”

    “품절이요? 다 팔았다는 의미인가요?”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다 팔았다구요?”

    “네 준비해 온 양을 전부 팔았습니다.”

    “재료는 또 준비해 드릴 수 있는데 더 만들어서 파시겠어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새로 음식을 준비해서 팔라는 엠씨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타코는 바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적어도 하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근데 그럴 수 없으니 저희는 여기서 장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러면 다른 팀들에 비해서 수익이 적을 수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엠씨의 우려와 달리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냈다. 맥주 판매량이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김타코는 준비한 양이 전부 팔렸으니 딱 예상했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팀이 준비한 김타코가 벌써 품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 준비해 달라는 제작진의 요청도 거절하고 장사를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엠씨가 우리 트럭의 소식을 전하자 다른 팀들의 요리사들은 물론이고, 아직 음식을 먹지 못한 손님들 역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타코를 먹어 본 사람들은 우리가 장사를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오히려 표정이 밝아졌다.

    더 사 먹을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저렇게 준비한 양만 팔고 과감히 장사를 접는 모습이 더 맘에 든 모양이었다.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음에도 우리 푸드 트럭의 주변에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덕수 네 사진 찍는다.”

    “괜찮아 이제 좀 익숙해졌어. 찍어도 돼.”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듯이 사람들은 나와 우리 트럭의 사진을 찍어 댔다.

    그리고 다른 요리사들은 여전히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가 워낙 빨리 팔아서 그렇지 다른 팀들의 음식들 역시 꾸준히 팔리고 있었다.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고.

    하지만 정해진 시간은 무제한이 아니었다.

    “이제 곧 영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혹시나 아직 아무 음식을 먹지 못하신 분들이나 더 구매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빨리 구매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타코를 더 팔아 주세요.”

    “김타코가 더 먹고 싶습니다.”

    엠씨의 말에 사람들은 김타코를 연호했다. 더 이상 팔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아쉽게도 김타코는 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음식이랍니다. 준비하는 데 하루가 넘게 걸린다고 하네요.”

    “역시. 그러니깐 맛있었지.”

    “먼저 사 먹길 잘했네.”

    “그렇게 만들기 힘든 음식을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는 거야?”

    장사가 마무리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응원하는 푸드 트럭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영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요리사님들은 푸드 트럭에서 하차해 주세요.”

    와아아아아아.

    영업 시간이 마무리되고 각 팀의 요리사들은 트럭에서 내려왔다. 다들 좁은 곳에서 음식을 하느라 어깨와 목이 뻐근한 듯 하나같이 같은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내려왔다.

    반면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공간에서 요리를 해서 그런지 몸은 개운했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다른 팀들의 푸드트럭과 달리 우리 트럭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까지 완료되어 있었다.

    “각국에서 자기 나라 음식들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 모인 요리사님들께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음식을 만들어 주고, 톡톡 튀는 개성이 넘치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셔서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두 엠씨는 요리사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렇지만 승부는 승부입니다. 다들 고생했고 요리사님들이 엄청난 실력자인 건 증명되었으니 결과는 숫자로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쯤에서야 다른 요리사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음식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톱 셰프들이라더니 풍기는 아우라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최종 결과는 푸드 트럭에서 발생한 모든 매출과 식재료 및 소모품을 구매할 때 사용한 금액을 합산해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팀이 최종 승자입니다. 음료나 주류를 판매한 금액도 합산에 포함이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단순히 요리만으로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장사라는 점이었다.

    엠씨는 최종 결과가 쓰여 있는 종이를 제작진에게 건네받았다.

    “조금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나왔네요.”

    “그렇습니다. 분명 훌륭한 음식인 건 맞지만 이 팀이 1등을 하리라곤 쉽게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엠씨들은 결과지를 받아 들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 역시 결과가 궁금하다는 듯 자신이 응원하는 나라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한국 한국 한국!”

    “프랑스 프랑스!”

    “독일 독일 독일!”

    분명한 건 오늘의 결과는 요리사들의 실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 차이였지. 손님들의 표정만 봐도 자신들이 먹은 음식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실력 좋은 요리사들이 사업에 뛰어들면 오히려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죠?”

    “그렇습니다. 정점을 찍어 본 요리사일수록 자신의 요리에 양보를 하지 못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아이템을 선정하곤 한다죠.”

    요리사들의 최종 목표는 대부분 자신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원하는 요리를 실컷 하는 것일 거다. 하지만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사업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지만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요리사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좋은 재료, 값비싼 재료를 쓰고 싶은 대로 전부 쓴다면 그 레스토랑은 얼마 못 가 문을 닫고 말 것이다.

    “이 결과는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나 역시 장사는 미숙하지만 저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회귀자란 것.

    현재 진행형인 저들과 달리 요리사로서 이미 정점을 찍어 봤고, 톱 셰프라 불리던 다른 주방장들의 몰락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겉모습은 젊은 요리사였기 때문에 설령 진다 해도 꺾일 자존심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속은 좀 상하겠지만.

    그래서 김타코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나르 장사의 신, 제스를 알지 못했다면 나도 이 트럭에서 궁중 요리 정도를 팔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아아 그 전에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아이씨.

    우우우우우!

    한국이나 파나르나 방송은 비슷하구나.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엠씨들을 향해 야유가 쏟아졌다. 저러다가 60초 후에 공개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그래도 저렇게 쪼는 맛이 있어야 또 방송이고, 경연의 묘미지.

    “이 결과지에 적힌 요리사는 파나르를 아주 사랑하는 분이란 걸 느꼈습니다. 결과 발표를 하기 전에 한 사람의 파나르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씀엔 동감합니다. 그럼 이제 진짜 결과 발표를 하겠습니다.”

    웅장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나오고, 엠씨가 다시 마이크로 입을 갖다 댔다.

    “가장 큰 수익을 낸 팀은 바로 한국팀의 김타코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윤아는 옆에서 펄쩍펄쩍 뛰며 신이 났고, 나는 한동안 벙쪄 있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장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자신 있게 들이댔지만 이게 진짜 먹힐 줄은 몰랐다. 이론적으론 알고 있어도 진짜 성과를 내 본 건 처음이었다.

    “덕수야! 우리 아니 네가 또 해냈어!”

    “후우우우. 수고했어.”

    “뭐야 왜 이렇게 침착해? 신나지 않아?”

    침착한 게 아니라 힘이 쭉 빠져나가 버렸다.

    겉으론 티 내지 않았지만 굉장히 긴장했던 것 같다. 파나르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미션이 아니었을까 잠시 곱씹어 보았다.

    대사관 직원들의 기대감과 젊은 요리사로서 개성을 표현해 달라는 브로냐 피디의 요구.

    거기다 항상 호텔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요리를 하던 내가 처음으로 초원 밖으로 나와 본 경험이었다. 물론 방송이 온전한 야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분 너무 좋다 윤아야.”

    “그치? 그럼 좀 더 펄쩍펄쩍 뛰고, 몸으로 표현을 해 봐. 그게 기쁜 사람의 표정이고 몸짓이야.”

    맞는 말이다. 더 과감히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잠시 망설이다 속 안에 갇혀 있던 기쁨과 부담을 짧은 외침으로 쏟아 냈다.

    “우와아아아아 이겼다!”

    커다란 외침을 듣고 사람은 날 향해 커다란 박수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나는 김타코를 응원해 준 손님들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이번엔 밝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한국팀은 다른 팀들과 비교해서 판매가가 현저히 낮은 음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소비한 금액도 가장 적았습니다.”

    심사 위원을 대표해 제스가 나서서 내가 1등을 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김타코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테이블 회전률이 높고, 한 번에 여러 개를 구매하는 고객이 많아 객단가는 그리 낮지 않았습니다. 특히 맥주 판매량이 높아 높은 수익 구조를 가진 아이템으로 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계획했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제스 역시 설명을 이어 가며 뿌듯한 표정이었다.

    “주파나르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한국팀의 셰프 장덕수 씨는 훌륭한 요리 실력과 더불어 훌륭한 사업 자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팀을 비롯해 고생해 주신 요리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스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요리사들 역시 가벼운 묵례로 회답해 주었다.

    “이번에 FBC 특별 기획 장사의 신 프로그램 초대 우승자는 한국의 장덕수 셰프입니다.”

    “한국 요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파나르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얻어 낸 건 기적과도 다름없는 성과입니다.”

    한국 음식은 커녕 한국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김타코가 비록 전통 한식은 아닐지언정 김부각과 비빔밥은 명실상부 한국의 것이다. 그것을 합쳤으니 한국 요리사로서 할 일은 했다.

    촬영이 마무리될 때쯤 엠씨 한 명이 다시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댔다.

    “아까 결과 발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덕수 요리사는 파나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감사드린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아! 아까 그런 말씀 하셨죠?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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