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1화 (152/202)

151. 장사 시작

손님들이 몰아치기 전 요리사들은 좁은 트럭에서 쭈그려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모두 자기들만의 무기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 요리사는 계속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참치를 직접 해체하는 것까지 보여 줘야 했는데… 그래야지 이목을 끌 수도 있고, 방송에도 쓸 만한 그림이 나올 텐데.”

일본에서 직접 커다란 참치를 공수해 와 해체쇼까지 보여 주려 했지만 이 작은 트럭에선 불가능했다. 그나마 저 한국팀이 얻어 간 트럭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참치 한 마리 값만 해도 한국팀의 식재룟값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래도 참치 상태가 좋으니깐 저희는 그걸로 승부를 봐야죠.”

“당연히 그래야지. 이 맛을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지.”

통역사 역시 아쉬움을 달래며 요리사를 응원해 줬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파나르에서도 참치를 구하려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요가 많지 않다. 소고기와 비슷한 맛의 참치를 먹을 바엔 값싼 고기를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물론 특수 부위는 다른 얘기지만 오늘 300명의 손님은 일반인들이라 그런 고급 부위를 즐길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참치덮밥을 파나르에서 안 파는 거 보면 이 맛을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이 지라시스시를 보면 눈이 뒤집힐지도 모르지.”

일본팀은 형형색색의 채소와 참치회가 올라간 지라시스시를 준비했다. 지라시스시는 덮밥처럼 먹는 스시라고 할 수 있었다.

간편하게 먹기엔 좋겠지만 그 가격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프랑스팀의 고기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데 한번 가 볼까요?”

“스테이크의 원조는 역시 프랑스라고 할 수 있죠?”

두 엠씨들의 말에 프랑스 요리사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 좋은 고기를 듬성듬성 썰어 찹스테이크로 만드는 게 좀 아쉬웠지만 푸드 트럭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트럭 앞에서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기란 쉬운 게 아니니까.

대신 고기에 걸맞은 레드 와인도 몇 병 준비해 놨다.

스테이크와 함께 하우스 와인을 팔아 객단가를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대부분의 팀이 술이나 음료를 함께 팔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프랑스팀은 아주 좋은 고기로 스테이크를 준비하셨는데 자신들 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이것만은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요?”

“소스입니다.”

“소스요?”

“네 본래 찹스테이크는 미르푸아를 볶아서 향을 낸 브라운소스를 이용하는데 이번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레드 와인을 졸여서 만든 소스를 곁들였습니다.”

“미… 뭐요?”

미르푸아는 양파, 셀러리, 당근처럼 향신 채소를 말한다. 보통 소스나 육수를 끓일 때 사용하는데 고기에서 나온 기름에 이 미르푸아를 볶고, 밀가루와 버터를 넣어 갈색이 날 때까지 볶은 뒤 육수를 넣어 브라운소스를 만든다.

“프랑스 요리는 아주 기술적으로 뛰어난 음식입니다. 특히 소스를 만드는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월등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프랑스 요리사는 특히 소스에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말투에서 소스를 계속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유럽 요리의 양대 산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에는 큰 차이점 있죠. 프랑스는 뛰어난 요리 기술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고, 이탈리아는 훌륭한 식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 살리는 요리법이란 거죠.”

“맞습니다. 오늘 프랑스 요리사는 본인이 가진 스킬을 최대한 활용해 최고의 소스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이네요.”

“정말 궁금합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보르도에서 직접 고른 레드 와인으로 만든 소스의 맛은 어떨지요.”

제스와 심사 위원들은 프랑스 요리사의 말에 동조했다. 그들은 이 작은 푸드 트럭에서 제 실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이탈리아팀은 참 독특한 것을 준비했네요? 컵파스타요?”

“네 이렇게 푸드 트럭에서도 최고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컵에는 저와 이탈리아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요리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자신의 요리를 이런 종이컵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수치스러웠고, 화가 났었다.

하지만 여긴 자신의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게다가 단순한 요리 경연 대회도 아니었다.

최대한 많이 파는 사람이 이기는 대회였다.

눈물을 머금고 이 컵에 최고의 음식을 담겠다는 다짐으로 한 발자국 양보를 선택했다.

이탈리아인들이 음식에 대해 양보한다는 건 굉장한 결심을 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안에 담겨질 자존심이란 걸 조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까 엠씨분들께서 말씀을 잘해 주셨는데, 이탈리아는 프랑스 요리와 달리 최고의 식재료를 이용해 그 맛을 최대한 살려 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올리브유와 소금, 치즈만 있으면 모든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요리의 조리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 맛을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게 이탈리아 요리였다.

“조리 시간도 짧고, 그 과정도 간단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역시 요리사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동의합니다. 이탈리아 요리 중 특히 피자는 굽는 시간도 짧고, 토핑 재료도 간단한데 그 맛은 아주 기가 막히죠. 그래서 제가 자주 즐겨 먹습니다.”

“맞습니다.”

엠씨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탈리아 요리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저는 파나르에서 가장 상태 좋고,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뭔지 고민해 봤습니다.”

“음… 아무래도 고기가 아닐까요?”

“물론 고기도 좋지만 저는 파나르의 캐비어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 맞습니다. 파나르 캐비어의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죠.”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져온 파르마산 치즈, 그리고 파나르 최고의 캐비어를 이용해 최고의 파스타를 이 컵에 담았습니다.”

이탈리아 요리사의 표정에선 굉장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양보를 해서 만든 음식이니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다들 굉장한 음식들을 준비한 거 같네요. 저희와 심사 위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네 지금부터 300면의 손님들 입장하겠습니다.”

엠씨들의 신호와 함께 광장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손님들이 몰려 들어왔다.

300여명의 손님들은 어떤 음식들을 팔고 얼마에 파는지 확인하기 위해 푸드 트럭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왔다 왔다.’

다른 나라 요리사들은 손님들이 가까이 오자 미소를 지으며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파나르어로 인사를 건네며, 최대한 친절하려 애썼다.

심지어 그 무뚝뚝하다던 프랑스 요리사마저 살갑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흐읍.

하지만 나와 윤아는 정색한 표정을 유지한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1~2화 때 내 얼굴을 이미 봤던 손님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냥 눈만 마주칠 뿐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신뢰도 상승.

파나르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웃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 웃음을 보이면 사기를 치거나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웃지 않고, 말수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신뢰도가 상승한다.

“김타코가 뭐예요?”

“…….”

한국인이 보기엔 어이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일 수 있지만 물어보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트럭에는 이미 김타코가 어떤 음식인지에 대해서 쓰여 있었으니까.

그곳으로 손가락만 가리킬 뿐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김타코 하나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맥주도 필요하신가요? 같이 드시면 맛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맥주도 하나 주세요.”

첫 주문이었다.

돈을 건넨 사람에게는 자본주의 미소를 보이며 맥주까지 권하는 윤아였다.

신기하게도 말수를 줄이면 줄일수록 우리 트럭 주변에 모이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손님들은 아직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7개 푸드 트럭의 음식을 전부 먹어도 되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김타코를 제외하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저도 김타코 하나 주세요. 맥주도요.”

“저도 똑같이 주세요.”

“저는 김타코 4개 주세요.”

손님들은 푸드 트럭을 전부 둘러보고 상황 파악이 끝나자 곳곳에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 개당 1만 원도 하지 않는 김타코의 주문 수는 시작부터 큰 격차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뭔지 몰라도 엄청 맛있네.”

“도네르 타코랑 비슷한 거 같은데 맛은 완전히 달라.”

“그래도 맛있다. 특히 맥주랑 먹으니깐 엄청 잘 어울려.”

“한국 음식이 생각보다 맛이 좋구나.”

커다란 나의 트럭 앞에는 스탠딩 테이블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일부러 의자는 놓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네르 타코집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모여서 김타코를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메뉴를 골랐다는 동질감과 만족스러운 맛 덕에 맥주로 토스트를 해 가며 먹고 있었다.

“덕수야 우리 준비한 거 금방 팔리겠다.”

“제대로 먹혀들었다. 한 번에 3~4개씩 사는 사람이 많아.”

“그리고 맥주는 무조건 사야 하는 것처럼 공식이 생겨 버렸어.”

“그것도 신기하네.”

이제는 특별히 맥주를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문을 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의 트럭에서 이미 음식을 먹고 온 사람들도 김타코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이 정도 크기의 음식 하나쯤은 더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음식을 먹고서도 김타코를 사 먹는 사람이 많네.”

“그럼 반대로 김타코를 먹고 배가 안 불러서 다른 음식 사 먹는 사람은 없나?”

“내가 지켜보니깐 모자라면 김타코 하나를 또 사러 오더라. 다른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하하 진짜? 김이 중독성은 거의 마약이나 다름없지.”

김의 감칠맛은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게다가 튀긴 김을 한번 맛본 사람은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파나르 사람들은 뭐 때문인지도 모르고 홀린 듯 김타코 여러 개를 사 먹었다.

“근데 덕수야. 준비한 재료 벌써 다 팔아 가는데?”

“그래? 꽤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여러 개씩 사 가니깐 금방이네. 밥이라도 좀 더 만들까? 밥은 시간이 좀 걸리잖아.”

밥을 더 짓냐고 묻는 윤아를 저지했다.

속을 채울 비빔밥은 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쳐도 김부각은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준비한 재료를 다 팔게 되면 아쉽게도 우리의 장사는 끝이 난다.

“한국팀의 음식이 벌써 바닥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한번 가 볼까요?”

“벌써요? 빨리 가 보시죠.”

두 엠씨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겁지겁 우리 트럭으로 달려왔다. 벌써 바닥을 보인다는 말을 들은 다른 팀들의 시선 역시 우리 트럭으로 모여들었다.

엠씨는 우리 트럭의 주변에 모여 있는 손님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댔다.

“김타코의 맛이 어떠십니까?”

“정말 맛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딨는지도 몰랐고, 음식은 당연히 하나도 몰랐거든요. 근데 이렇게 파나르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는 줄 몰랐어요.”

“도네르 타코와 이 김타코 중에 선택을 하라면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손님들은 행복한 고민인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도네르 타코도 자주 즐겨 먹지만 맥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면 이 김타코를 선택할 것 같아요.”

“정말요? 오늘 처음 먹어 본 음식인데도요?”

“네 배부르게 먹기엔 도네르 타코가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맥주와 먹기엔 이 김타코가 좀 더 끌리네요.”

인터뷰를 한 손님 말고도 주변의 사람들 역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엠씨들은 손님들의 반응이 신기한 듯 다른 손님들을 이어서 인터뷰했다.

“근데 이 많은 푸드 트럭 중에 왜 한국팀의 푸드 트럭을 선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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