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0화 (151/202)
  • 150. 전략

    요리를 시작하라는 신호와 함께 튀김기 두 개를 동시에 가열했다. 작은 푸드 트럭에는 하나의 튀김기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만 있었지만 이 트럭에선 넉넉했다.

    “덕수야 나도 뭐 좀 도와줄까?”

    “아니야 괜찮아. 나중에 손님 몰려오면 할 일이 많을 거니깐 잠시 쉬어. 지금은 특별히 바쁠 거 없어.”

    윤아는 나와 여러 번 손을 맞춰 봤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주방 보조보단 판매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수를 판매해야 했으니까.

    “근데 우리 음식들 다른 팀들에 비해서 너무 저렴하지 않아?”

    “맞아. 그래서 네 역할이 더 중요한 거야.”

    “내가?”

    “응 우리는 저 사람들보다 적어도 3~4배 이상은 팔아야 해. 그래야 비벼 볼 수 있거든. 그러니깐 나중에 손님들 몰려오면 한 번에 3~4개씩 살 수 있게 유도해 줘. 그리고 맥주도 꼭 같이 팔아 주고.”

    식재룟값을 적게 사용했지만 그만큼 우리 음식의 판매가도 저렴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팀들은 전부 식재룟값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불편한 트럭을 이용하더라도 최고의 맛을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야 덕수야. 프랑스 팀 소고기 색깔 봐 봐. 장난 아니네.”

    “저 정도면 안심만 몇백만 원 가뿐히 넘겠다.”

    프랑스 요리사는 멀리서 봐도 선홍빛의 안심을 꺼내 손질하고 있었다. 아마도 스테이크를 팔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으엑. 일본은 참치야.”

    “참치? 저걸 어디서 구해 왔냐?”

    “직접 수입했겠지. 필요한 재료는 다 구해 준다는데.”

    돈 걱정 없이 식재료를 구할 수 있으니 평소에 파나르에선 볼 수 없었던 식재료들이 전부 등장했다. 저런 재료를 받아서 쓰니 재룟값 못지않게 배송료도 많이 들었을 터.

    내가 이 큰 트럭을 차지한 게 당연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자 이제 김부각을 튀겨 볼까나?”

    “근데 이거 이미 튀긴 거 아니야? 딱딱하던데.”

    며칠 전부터 하루 종일 준비하던 게 있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김에 찹쌀풀을 발라 햇빛에 바싹 말리는 일.

    번거롭지만 그게 김부각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찹쌀풀이 딱딱하게 굳어서 윤아의 눈에는 이미 튀겨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이건 말린 거고, 이걸 기름에 빨리 튀겨 낼 거야.”

    “고생했겠다. 이걸 다 직접 말리려면.”

    “힘들었지. 게다가 반달 모양으로 만들려고 모서리를 자르고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1등 하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은 오히려 더 수월한 날일 수도 있어.”

    오늘은 튀겨 낸 김부각에 속만 채워 넣으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김을 말릴 때보다 수월할 수도 있었다.

    요리를 시작하고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엠씨들이 우리 트럭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장덕수 요리사님. 다른 분들과 달리 넓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요리를 하고 계신데 어떠신가요?”

    “맞습니다. 이 큰 트럭 덕분에 여유롭습니다. 제가 이 트럭을 선택한 이유가 그겁니다.”

    “이유라뇨?”

    단순히 내가 편하기만 해서 이 트럭을 고른 게 아니었다. 300명의 손님이 한 번에 몰려들면 아무리 경험 많은 요리사라도 주문이 꼬이고, 음식에 신경을 덜 쓰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익숙한 주방도 아니고, 좁기까지 하니 자잘한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는 이 큰 트럭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일반 식당에서 드실 수 있는 음식과 똑같은 최고의 맛과 품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요리사가 일하는 곳이 편해야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오호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요리사가 불편한 곳에서 만든 음식의 퀄리티가 좋을 수가 없겠죠. 이게 바로 젊은 요리사의 전략인가요?”

    여러 가지 전략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근데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은 완전히 색다른데요. 이름이 뭔가요?”

    “그러게요. 다른 요리사들의 음식들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다 한 번씩은 본 것들이었거든요.”

    다른 팀들의 음식들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레드 와인 소스를 곁들인 찹스테이크, 이탈리아의 캐비어 컵파스타, 일본의 참치회 덮밥 그리고 독일의 말고기 소시지로 만든 샤슬릭, 중국의 베이징덕 볶음면 등등.

    충분히 개성이 드러나는 요리였지만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는 요리들이었다.

    “제가 만드는 요리는 김을 이용한 음식입니다.”

    “김이라면 그 해조류 말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한국 음식 중에 김을 말려서 튀긴 음식인 ‘김부각’이라는 게 있는데 그 김부각에 한국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채워 넣을 생각입니다.”

    “설명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음식인데요.”

    “그래서 이 음식의 이름이 뭔가요?”

    두 명의 엠씨들 역시 설명만으론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한국인들도 알 수 없는 음식이니까.

    윤아와 열심히 머리를 맞대어서 개발해 낸 음식이었다.

    “저희는 이 음식을 ‘김타코’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타고요? 그 도네르 타코 할 때 그 타코 말인가요?”

    “네 딱 맞습니다. 파나르인들이 즐겨 먹는 그 도네르 타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봤습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던 두 엠씨들이 타코라는 단어만으로도 금세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색깔이 다르고 빵이 아니라서 그렇지 딱 반달 모양인 게 도네르 타코네요.”

    “도네르 타코는 시원한 맥주랑 먹기에 좋은 음식인데 말이죠.”

    “그렇죠.”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엠씨들의 멘트에 뒤이어 나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서 시원한 맥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호호호호.”

    이게 나의 두 번째 전략이었다.

    성인이라면 김타코를 구매할 때 맥주도 반드시 살 수밖에 없도록 해서 객단가를 높이는 것.

    다른 팀들도 술을 준비했을 수 있지만 김타코만큼 맥주와 잘 어울리진 않을 거다.

    음식 궁합으로만 봐도 김은 맥주와 찰떡궁합이다. 거기다가 튀긴 김이라면 그 감칠맛과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장덕수 요리사가 식재룟값을 적게 쓰고도 당당했던 이유가 있었군요. 음식 말고도 여러 가지 전략이 끊임없이 준비되어 있네요.”

    “정말 참신합니다. 파나르 사람들치고 도네르 타코 한번 안 먹어 본 사람이 있겠어요? 한국식 김타코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나 역시 궁금했다.

    일단 윤아를 비롯해 우리 대사관 직원들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의 평가를 받은 김타코였다.

    “윤아야 밥은 다 됐어?”

    “밥? 다 된 것 같아.”

    커다란 압력 밥솥 여러 개에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었다.

    거기에 볶은 호박, 양파, 당근, 시금치나물과 양념한 소고기를 한데 섞고, 고추장 양념을 듬뿍 넣어 김타코 속을 채울 비빔밥을 만들었다.

    “윤아야 그것도 좀 줄래?”

    “마요네즈?”

    고추장만으로는 파나르 사람들이 너무 맵다고 느낄 수 있으니 마요네즈를 조금 섞어 주었다.

    상섭의 가게에서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비빔밥의 비법이었다.

    “비빔밥은 다 됐고, 이제 고수를 좀 손질해 놓자.”

    “응 이건 고명으로 올릴 거지?”

    “맞아. 모양도 이쁘고, 파나르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신선한 고수를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며칠 동안 고생해서 말려 둔 김부각은 반달 모양으로 잘 튀겨져 있었다.

    김부각의 겉면에 목화솜처럼 돋아난 찹쌀은 보기만 해도 바삭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손님들을 맞이하기 전에 심사 위원들이 먼저 시식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결과에 심사 위원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겠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음식 수준이라면 심사 위원이 탈락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0%라고 봐야죠.”

    “맞습니다. 다들 열악한 환경에서 엄청난 음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요리사님들을 멀리서 모셔 온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스를 비롯해 3명의 심사 위원이 출연진들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몰리기 전이라 다들 최고의 상태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 음식들의 맛 자체가 최고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장덕수 셰프.”

    “반가워요 제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제스와 심사 위원들에게 처음으로 김타코를 건넸다.

    바사삭.

    한 손에 평가지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 김타코를 들었지만 먹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여느 도네르 타코처럼 반달 모양의 김타코 역시 손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와아 이거 진짜 무슨 중독성인가요? 김의 맛이 혀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라 더 느끼고 싶어서 하나를 또 먹게 되네요.”

    “속 재료는 비빔밥인가요?”

    “네 비빔밥입니다.”

    “근에 색깔이 좀 옅은 거 같은데. 고추장은 원래 더 빨갛지 않나요?”

    심사 위원답게 마요네즈를 섞은 비빔밥인 걸 금방 알아차렸다.

    “파나르인들에겐 마요네즈를 조금 섞은 비빔밥이 더 인기가 있어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파나르에서 오래 지낸 분이라 우리의 식성을 잘 알고 있군요. 저 역시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3명의 심사 위원은 김타코의 중독성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특히 제스의 표정은 반가움 반, 서운한 반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미스터 장. 이런 아이디어를 숨겨 뒀다니 좀 섭섭하네요. 이건 당장 가져다가 J&J 분식에 팔고 싶을 정도인데요?”

    “하하 제스. 제가 이거 만드는 거 보셨어요?”

    “그냥 저 김에다가 비빔밥을 채워 넣기만 한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이 김부각을 만드는 거요.”

    “그건 못 봤죠.”

    “그걸 봤으면 절대 팔자고 못 할 거예요. 그러니깐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이번 딱 하루뿐이니깐 김부각으로 장사를 하는 게 가능한 일이지 매일 이 짓을 하라고 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맛이 좋고, 인기가 있다 해도 이 김타코는 사업 아이템으론 무리가 있었다.

    ‘미스터 장. 이 김타코는 가격에 비해 확실히 1등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에요. 대신 판매에 좀 더 신경 써 봐요. 다른 음식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떨어지니까.’

    제스는 볼륨을 낮춘 목소리로 마지막 팁을 던지고 돌아섰다.

    제스는 김타코의 맛과 아이디어가 굉장히 맘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음식인 만큼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나 역시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 거고, 이름도 타코라는 익숙한 단어를 붙인 것이다.

    “자 심사 위원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푸드 트럭에선 나올 수 없는 수준의 음식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의 맛은 증명이 되었고, 가장 많이 그리고, 잘 파는 팀이 우승입니다. 그러니 이제 요리사님들은 판매에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윤아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제 윤아가 활약할 차례였다.

    나와 윤아가 파나르에 산 기간이 합쳐서 7년이 넘는다. 물론 윤아가 5년 이상을 차지한 거지만.

    저들과 다른 게 있다면 파나르 문화에 좀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음식은 조금 밀릴지 몰라도(전통 한식이었다면 밀리지 않겠지만.) 판매에 있어서만큼은 분명 우리가 가진 노하우가 확실했다.

    이미 국경일 행사 때 그것을 증명했고.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한 마지막 전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