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49화 (150/202)
  • 149. 촬영 시작

    촬영 날짜가 정해지고, 장소까지 정해지자 브로냐 피디는 출연진 전부를 소집했다.

    덕분에 요리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와 음식을 하게 될 푸드 트럭과 장소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가 촬영 장소이고, 저기 있는 푸드 트럭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시작할 겁니다.”

    촬영 장소는 파나르에서 가장 큰 공원 안에 있는 광장이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어 각종 콘서트나 공연 등이 자주 열리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딱 하루 동안 여러분들이 준비한 음식들을 팔고, 가장 많이 판 나라가 1등입니다.”

    “근데 피디님.”

    그곳에는 한국 요리사인 나를 제외하고, 일본,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에서 온 요리사들이 와 있었다.

    그중 일본에서 온 요리사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저기 있는 푸드 트럭의 크기가 다 똑같지 않네요? 저 커다란 트럭도 우리가 쓸 수 있는 트럭인가요?”

    “네 맞습니다. 7팀 중 딱 한 팀만이 저 커다란 푸드 트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광장에는 전부 7대의 푸드 트럭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 6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크기의 트럭을 형형색색 꾸며 놓은 트럭이었다. 하지만 단 한 대는 아주 커다란 컨테이너가 실려 있는 대형 푸드 트럭이었다.

    푸드 트럭이지만 웬만한 식당의 주방만큼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와아 저 트럭에서 요리하면 적어도 페널티는 없겠다.”

    “그리고 트럭이 크니깐 손님들 눈에도 훨씬 띌 것 같아.”

    “그렇겠네. 여러모로 저 큰 트럭이 유리하겠다.”

    질문을 던진 일본 요리사뿐만 아니라 모든 요리사들이 큰 트럭에 시선이 꽂혔다. 기왕이면 큰 걸 이용하는 게 누구라도 좋을 테니까.

    “제일 커다란 트럭은 재료비를 가장 적게 쓴 팀에게 주어질 예정입니다.”

    “재료비요?”

    “네 며칠 후에 장사에 필요한 재료명과 수량을 저희에게 알려 주시면 저희가 직접 구매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사용한 팀에게 제일 큰 트럭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로냐 피디는 식재료를 구매하는 단계에서부터 경쟁을 부추겼다.

    베테랑 요리사들에게 끊임없이 한계를 줘서 그걸 극복해 내는 모습을 관찰하고 싶은 모양.

    방송은 재밌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비롯한 출연진들의 머리는 복잡해져만 갔다.

    “푸드 트럭이라고 해서 싼 재료를 사용할 생각은 없어요. 피디님 제작비 아끼려고 이러는 건가요?”

    “하하하 걱정 마세요. 제작비는 충분합니다. 큰 주방을 포기하시고,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시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식재룟값을 적게 쓴 팀에게 조금 더 편안한 주방을 주는 게 공평하지 않을까요?”

    브로냐 피디의 말대로 대부분 요리사들은 나이가 찰 만큼 찬 베테랑 요리사들이었다. 그들은 요리에서 신선한 식재료가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식재룟값에 더욱 투자를 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덕수야. 우리는 재룟값이 많이 드는 음식이야?”

    “아니 우리는 특별히 비싼 건 없어. 김도 뭐 한국에서 받아 와도 별로 안 비싸고, 고기나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저 사람들은 뭐 캐비아, 푸아그라 그런 거라도 쓸 기세인데?”

    “쓸 수 있다면 당연히 쓰겠지.”

    그런 고급 식재료들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분명 관심을 가질 테니깐 무조건 쓰는 편이 유리했다.

    “많이 팔면 되는 거니깐 저런 고급 식재료를 쓰고도 싸게 팔면 되잖아. 그럼 손님들이 좋아하겠지.”

    “그럼 우리도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음식이랑은 어울리지도 않아.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저 큰 트럭에서 요리하고 싶어. 좁은 건 딱 질색이라서.”

    내가 이번 방송에서 선보일 음식엔 그리 비싼 재료가 필요 없었다. 대신 최대한 많이 그리고 빠르게 만들어 팔려면 좁고 복잡한 주방보다 큰 트럭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요리사님들.”

    “네.”

    푸드 트럭의 상태를 확인하던 요리사들은 브로냐 피디의 외침에 전부 뒤를 돌아봤다.

    “한 가지 더 제한을 둘 게 있습니다.”

    “뭔가요?”

    “비싼 식재료는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되지만 너무 싸게 파는 건 안 됩니다.”

    “네?”

    브로냐 피디의 말은 무조건 많이 팔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음식과 장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프로그램인 만큼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식재료랑 소모품 등 모든 걸 포함해서 음식값이 50%를 넘으면 안 됩니다.”

    “50%요?”

    “네 그 정도면 충분히 여유 있게 드린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식재료 코스트가 30%에서 왔다 갔다 한다죠?”

    브로냐 피디의 말에 요리사들의 고개가 전부 위아래로 움직였다.

    보통 음식 장사를 할 때 식재료 코스트는 30% 내외로 정해 두고 판매가를 정한다.

    1만 원짜리 음식을 팔면 3천 원이 식재룟값이고, 나머지 7천 원이 순이익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충분히 변할 수 있지만 식재료 코스트가 50%가 넘는다는 건 남기지 않고 장사를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다. 인건비며 세금이며 식재료 말고도 지출할 게 많을 테니까.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터무니없이 싸게 파는 걸 방지하는 장치였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귀중한 요리를 방송이라고 헐값에 팔아넘기지 말아 주세요.”

    브로냐 피디의 사람 다루는 기술은 훌륭했다.

    어려운 미션을 던져 주면서도 틈틈이 요리사들의 자존심도 살려 주었다.

    다들 멀리서 온 만큼 부담이나 긴장도 하고 있었지만 브로냐 피디 덕에 즐거운 맘으로 방송에 임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 * *

    일종의 리허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들렀다가 갈 곳이 있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다녀왔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해 보고 싶었다.

    “어서오세요. 뭘로 드릴까요?”

    “네 비프 도네르 타코로 하나 주세요.”

    “비프 도네르 타코요. 알겠습니다.”

    며칠째 매일 출석 체크를 하고 있는 이곳의 주인은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메뉴도 속재료만 다르게 선택할 뿐 항상 똑같은 것을 골랐다.

    도네르 타코.

    푹신한 빵을 반달 모양으로 반을 접어 채소와 고기 그리고 요거트로 속을 채운 타코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케밥이라고도 하지만 유독 파나르에선 이 음식을 타코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주문을 한 이 매장은 크지 않아 앉을 곳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가게 주변에 서서 음료나 맥주를 마시며 타코를 즐기고 있었다.

    “주문하신 비프 도네르 타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얇은 유산지에 감싸진 타코를 받아 들자 따끈따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손톱 끝으로 딱딱한 뭔가를 긁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바삭함이었다.

    속은 푹신한 빵이지만 겉은 그릴에 구워 바삭해져 있었다.

    반달 모양의 이 타코를 한 손에 들고 또 한 손엔 맥주병 하나를 들고 파나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바사삭.

    빵의 겉면에 선명한 그릴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의 바삭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케트보다 더한 바삭함이었다.

    또 고기와 채소들이 어찌나 가득 차 있는지 새콤한 요거트와 어우러져 빵 사이를 삐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반달 모양의 이 타코는 풍성한 속재료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한 입씩 베어 물면 이국적인 향신료로 구워진 소고기와 양파의 매콤함, 그리고 양상추의 상쾌함이 요거트로 한데 모여져 환상의 맛을 이룬다.

    바로 이거였다.

    맛도 맛이지만 이 빵의 바삭한 식감과 먹기 좋은 크기와 모양.

    간편하게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었다.

    금세 타코 하나를 입 안에 밀어 넣고, 맥주 한 병을 단번에 비웠다.

    크으.

    목구멍 깊숙이부터 나오는 이 감탄사가 이해가 된다는 듯 주변의 사람들은 나와 눈을 마주친 후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먹을 줄 아는 놈이군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깔끔하게 먹었지만 예의상 손과 입 주변을 한번 닦아 준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오늘로써 또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바삭함에 중독되지 않을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빵보다 더 바삭한 김부각에 열광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촬영 날 당일.

    1화에선 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나 식문화 등을 소개했고, 2화에선 식재료를 구매하고 출연한 요리사들에 대해서 소개하는 편이 이미 방송이 되었다.

    덕분에 카메라가 일하는 곳까지 쫓아왔었다.

    “1~2화 시청률이 꽤 괜찮아요. 메인인 3화가 방송되면 폭발할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특히 장덕수 셰프한테 제일 관심이 많아요.”

    “저요? 왜요?”

    “아무래도 제일 젊고 잘생겼으니까요.”

    “하하하.”

    브로냐 피디는 기대 이상의 성적 덕분에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오늘 출연진 한 명, 한 명을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고 응원의 말을 전달했다.

    나도 처음엔 여기저기 따라다니는 카메라가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제는 내 담당 카메라를 찾기도 하고, 말을 더듬던 습관도 많이 없어졌다.

    어차피 윤아가 능숙하게 통역을 해 줘서 티는 안 났겠지만.

    “그럼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트럭부터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카메라 앞에 전에 봤던 푸드 트럭이 줄줄이 서 있었다. 그냥 일자로 서 있을 뿐이었지만 역시 가장 큰 트럭이 눈에 바로 띄었다.

    그리고 엠씨들의 멘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장사를 하기 위해 구매한 식재료의 값이 가장 저렴한 요리사에게 트럭 선택권을 드립니다.”

    “그럼 선택권이 있어도 가장 큰 트럭을 안 골라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작은 푸드 트럭을 원하시면 그러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죠?”

    맞는 말이었다.

    엠씨들의 말대로 선택권이 있는데 굳이 작은 트럭을 고를 필요가 없지. 나는 저 큰 푸드트럭이 탐이 났다.

    “오늘은 현장에서 총 300명의 손님이 무작위로 모집이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관심을 많이 가져 줘서 더 많은 고객들을 모시고 싶었지만 요리사님들이 지치실 수 있고,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딱 300명의 손님들만 선착순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300명들을 위해 요리사님들께서 필요한 식재료들을 사전에 구매해 준비해 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가장 적은 총알로 이 치열한 전쟁터에 뛰어든 용기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긴장감이 넘치는 음악 소리와 효과음이 들리고 뒤이어 한 명의 이름이 들려왔다. 아니 그 요리사의 나라가 먼저 불렸다.

    “푸드 트럭 선택권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에서 온 장덕수 요리사입니다.”

    와아아아아!

    내 이름이 불리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브로냐 피디의 말대로 내가 인기가 좀 있다고 한다. 쑥스러웠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출연진들 중 가장 어리고, 경력이 적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한국의 장덕수 요리사. 장덕수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들에 비해 식재룟값을 절반도 안 쓴 수준입니다.”

    “정말요?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승부가 될까요?”

    “아무래도 음식으로 경력이 부족하니깐 다른 무기로 승부를 보려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 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가장 많이 팔고 많이 남긴 팀이 1등이니까요.”

    엠씨들의 농담에 슬쩍 한번 웃어 준 뒤 당연하게 가장 큰 푸드 트럭으로 향했다.

    “자 트럭 선택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 봐야겠죠?”

    나는 선택한 트럭의 주방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빼먹은 건 없는지, 이상한 건 없는지.

    준비는 완벽했다.

    이제 미친 듯이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

    엠씨들의 말대로 난 음식 말고도 저들이 가진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었으니까.

    “그럼 요리~~ 시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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