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45화 (146/202)
  • 145. 감자탕 (2)

    분위기가 급격하게 풀리자 김준우 서기관이 맘에 담아 뒀던 말을 슬며시 꺼냈다.

    “며칠 전에 내가 일 좀 도와 달라고 했더니 자기 일 아니라고 매몰차게 거절했잖아요.”

    “아….”

    예민희 서기관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일순간 다른 직원들 역시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하하하 라면도 몇 개 끓일까요? 이 파나르 솥에 끓이면 끝내주는데.”

    나는 그 찰나의 정적을 참지 못하고 라면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김준우 서기관과 예민희 서기관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실 그건….”

    예민희 서기관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그랬던 거였어요.”

    “응?”

    “아직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또 새로운 업무를 주시려고 하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어요.”

    김준우 서기관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잠시 벙쪄 버렸다.

    “지금 맡은 업무를 익히는 것도 벅차서 예민한 상황이라 조금 까칠하게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건 정식으로 사과드릴게요.”

    “아니 모르면 물어보고 하면 되지. 지금 예민희 서기관님 여기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죠.”

    중요한 서류들은 한국어로 되어 있다고 하나 파나르와 관련된 업무는 언어도 형식도 다르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더딜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사람이 와도 똑같았다.

    “제가 다른 사람한테 모른다고 말하는 걸 잘 못 해서요….”

    “엥? 사람인데 어떻게 전부 다 알 수가 있어요? 처음 하는 일은 모르는 게 당연하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쉽게 변하지 않네요. 어떻게든 혼자서 방법을 알아내서 해결했거든요.”

    “하… 세상에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이없어하는 김준우 서기관을 보며 멋쩍게 웃는 예민희 서기관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면서 하세요. 대사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보면서 하는데. 예 서기관도 물어보세요.”

    “대사님도 모르는 게 있으세요?”

    김준우 서기관은 잠시 김용수 대사의 눈치를 보더니 볼륨을 낮추며 말했다.

    ‘영수증은 맨날 빼먹으시고, 지출 결의서는 쓸 때마다 물어보세요.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진짜요?’

    볼륨을 최대한 낮췄지만 김용수 대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흐음. 여러분도 이 나이 되어 봐요. 깜빡깜빡하는 게 일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사님은 좀 심하세요.”

    “내가 공관장은 처음이라….”

    김준우 서기관의 투정에 듣고 있던 직원들은 전부 웃음이 터졌다.

    김용수 대사 역시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준우 서기관이 워낙 꼼꼼하게 일을 잘하니깐 그런 거죠. 어차피 내가 다 해서 줘도 또 고칠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건 바람직한 변명이 아닌 거 같습니다.”

    “하하하 미안해요. 내 임기가 끝나기 전까진 꼭 마스터해 볼게요.”

    “허억 그렇게나 오래요?”

    김준우 서기관은 안지용 참사관의 독주를 한 잔 얻어 한 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예민희 서기관도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예 서기관도 한 잔 받으시겠어요?”

    “네 한 잔 주세요 대사님.”

    배부르게 먹은 직원들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김용수 대사가 맥주잔을 건넸다. 파나르에 와서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예민희 서기관은 이제 흔쾌히 술잔을 받아 들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예민희 서기관을 보고 이어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본 김용수 대사는 멋쩍게 말을 이어 갔다.

    “내 복장이 조금 그렇죠?”

    “아 아닙니다. 와서 보니 오히려 제가 불편하게 입고 왔네요.”

    “하하 1년 내내 정장에 구두만 신다 보니 집에서는 최대한 편하게 있으려고 해요. 장 셰프랑 단둘이 있을 때 러닝 차림으로만 있곤 해요.”

    “정말요?”

    날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예민희 서기관을 향해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있을 땐 세수도 안 하고 아침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나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김용수 대사 역시 사람이었으니까.

    업무 중일 땐 몰라도 일상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해외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죠?”

    “그렇긴 한데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하려고 할 필요 없어요. 한국에서랑은 모든 게 다른 상황이니 천천히 적응해요. 모두가 그러고 있어요.”

    예민희 서기관은 김용수 대사의 말이 전부 맞는다는 듯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예 서기관은 수석 합격자라서 교육생 때부터 주위에서 많이 관심을 받았죠?”

    “네….”

    “근데 그 시험 쳐 보니 어떻던가요?”

    “어떻다니요?”

    좋아하는 음식도 오랜만에 잔뜩 먹고 술이 한잔 들어가니 예민희 서기관은 김용수 대사의 주도하에 자연스레 속마음을 털어놨다.

    “시험 공부 힘들지 않았냐구요.”

    “하아… 너무 힘들었죠. 사실 저 살면서 이렇게 힘들게 공부했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대사님은 어떠셨어요?”

    “수십 년 전에도 지금도 똑같아요. 그걸 버텨 내고 합격에 이르는 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죠.”

    “맞아요.”

    자신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민희 서기관의 가슴 한편에 박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아 보였다.

    “예 서기관은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 우리보다 조금은 특별할지 모르겠지만 나와 김준우 서기관 역시 그 시험을 통과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 낸 사람들이에요.”

    “…….”

    “안지용 참사관 역시 그에 못지않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고, 임윤아 행정원과 카리나 씨의 외국어 실력을 보면 얼마나 노력한 사람들인지 짐작이 가죠?”

    “네….”

    “여기 있는 장 셰프는 두말할 것도 없구요. 음식만 봐도 알겠죠?”

    “네 맞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용수 대사는 이제 되었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니깐 항상 믿고 의지해서 일을 해 나가면 됩니다.”

    “직원들을 믿지 않은 게 아니라 저 스스로를….”

    “알고 있습니다.”

    김용수 대사는 말을 끊은 게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혼란스러웠던 파나르 대사관이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함께 일했기 때문이에요.”

    김용수 대사가 항상 가지고 있던 그의 철학이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의 능력을 조합하는 건 나의 몫이니, 함께 배워 가며 적응하면 됩니다.”

    “그럼 조금 더뎌도 괜찮을까요? 사실 여느 때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왔는데 너무 어려워요. 파나르에 사는 것 자체도 쉽지 않고, 파나르어로 된 서류도 너무 어려워요.”

    “얼마든지 더뎌도 됩니다. 잠시 쉬어 가도 되구요. 아주 조금씩 내딛어도 됩니다. 다만 멈추지만 마세요. 그럼 우리 직원들이 예민희 서기관을 잘 이끌어 줄 거예요.”

    예민희 서기관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파나르에선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아온 날들 동안 얼마나 많은 부담을 가지고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복장도 편하게 입고, 직원들하고 같이 점심도 먹고 그래요. 맘이 편해야지 제 실력 발휘도 하지요. 오늘 같은 날 그렇게 답답하게 입고 올 거예요? 젊은 사람이.”

    “외교관은 품위 유지라는 걸 해야 하니까요….”

    “그건 외부 손님들 만날 때나 그런 거지.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해요. 여기선 직원들이 다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긴 해도….”

    아직은 완전히 본모습을 보여 주기 꺼려지는 듯 쭈뼛거렸다. 그런 예민희 서기관을 바라보며 나는 손가락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이미 종류별로 술을 몇 병이나 비운 안지용 참사관이었다.

    “어머 안지용 참사관님 왜 저러세요?”

    “예민희 서기관님은 저번에 맥줏집에선 일찍 가셔서 이런거 보는 게 처음이겠네요. 가끔 보면 재밌는데.”

    “이런 거라뇨?”

    안지용 참사관은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땐 그 어떤 사람보다 젠틀하고 점잖았다. 매사에 서둘지 않고 여유롭게 자신의 일을 처리해 내던 엘리트였다.

    그런지 지금 술에 취한 모습은 예민희 서기관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안지용 참사관님은 우리끼리 있을 때만 맘 편히 술을 마시세요. 손님이나 외부 사람들이 있을 때 딱 절주를 하시는데 우리끼리 있을 땐 항상 고삐가 풀리죠.”

    “아….”

    예민희 서기관은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쳐다봤다.

    “그만큼 우리가 편하다는 말이겠죠?”

    “그… 그런 거겠죠?”

    예민희 서기관은 다들 같은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 후 그제야 맘편히 웃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모두 끝낸 뒤 타고 남은 숯에 고구마를 집어넣고 주변에 둘러앉았다.

    “배부르게 드셨어요 예민희 서기관님?”

    “네 너무 잘 먹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탕이거든요. 그래서 감자탕만큼은 미식가처럼 구분할 수 있는데 요리사님 감자탕은 최고 수준이에요.”

    “정말요? 영광이네요.”

    “어떻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딱 알고 준비하셨어요?”

    순진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예민희 서기관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다.

    “사실 예민희 서기관님 어머님께 연락해서 여쭤봤어요.”

    “네? 우리 엄마한테요?”

    “네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탕이라고 말해 주시더라구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예민희 서기관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근데 10년 넘게 엄마 아빠랑 감자탕 먹은 적이 없는데… 왜 감자탕이라고 말해 줬을까.”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릴 땐 죽도록 좋아하더니 어느 날 딱 끊으셨다구요.”

    “…….”

    “혹시 감자탕을 먹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게 보여질까 봐 그런 거 아니셨어요? 뼈를 손에 들고 뜯어 먹는 모습이 흉하게 보일까 봐?”

    “……!”

    “에이 설마요. 남 뼈 뜯어 먹는 거 챙겨 보고 있는 사람도 있나요? 그런 걸 왜 신경 써요.”

    김준우 서기관이 나서서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었다.

    “맞아요….”

    “아… 진짜구나.”

    머쓱해하는 건 김준우 서기관뿐만이 아니었다. 예민희 서기관 역시 본인의 성격이 과하다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머리론 알겠는데 너무 신경이 쓰여요. 손으로 들고, 쪽쪽거리며 살을 발라 먹어야 하는데 누군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고, 입에 뭐가 묻었나 자꾸 신경이 쓰이고… 나이가 들면서 엄마 아빠 앞에도 그렇게 느껴지니 혼자 있을 때만 먹었어요.”

    “근데 아까는 왜 우리 앞에서 그렇게 드셨어요?”

    “아까는 국물 맛을 한번 보니 정신줄을 놔 버려서요 하아.”

    말을 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예민희 서기관을 보니 뿌듯했다.

    몇 년간 신경을 쓰던 주위의 눈치가 의미 없어질 만큼 감자탕이 맛있었다는 거니까.

    “근데 아까 예민희 서기관님 등뼈 드시는 거 본 사람 있으신가요?”

    직원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보고 있었다면 더 이상한 상황이 아닐까?

    “내 거 먹기 바쁜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어딨어요.”

    “그래요 난 내 술잔과 안주에만 집중합니다.”

    직원들의 대답에 예민희 서기관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도 잘 안된다는 거죠.”

    “그래도 감자탕 먹을 때 정 신경이 쓰이면 제가 깔끔하게 살을 발라 내는 법을 알려 드릴게요.”

    “그런 방법이 있어요?”

    “돼지를 직접 해체해 보고 그 구조를 잘 아는 요리사가 알려 주는 꿀팁이죠.”

    나는 남아 있는 등뼈 하나를 들어 사이에다 젓가락을 꽂았다. 그리곤 지렛대처럼 힘을 줘 뼈 사이를 갈라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었다.

    “와아 이런 방법을 왜 여태 몰랐을까요. 이 정도 크기면 훨씬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렇게 반으로 가르거나 더 큰 것들은 세 개, 네 개로도 가를 수 있어요. 그러면 살점을 발라 내기도 편해요.”

    “꿀팁 감사합니다. 요리사님 감자탕 또 먹으려면 어디서 예약하면 되나요?”

    “하하 예약이요? 김용수 대사님을 통해서 부탁드립니다.”

    어느덧 주위는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숯불에 구운 고구마를 마지막으로 예민희 서기관의 환영회는 끝이났다.

    오늘 이 한 번의 환영회로 얼마나 변할지 모르겠지만 예민희 서기관은 입 주위에 시꺼먼 검정을 묻힌 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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