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44화 (145/202)

144. 감자탕

-어릴 적에 환장하던이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요?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식도 아니고 좋아했던 음식이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민희가 어릴 땐 일주일 내내 그 음식만 줘도 아무런 불평이 없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기념일이나 무슨 시험이라도 잘 치는 날에 가족들이랑 꼭 그 음식을 먹으러 갔구요.

-근데 그 음식이란 게 뭔데요?

-감자탕이요.

-감자탕이요?

-네 그 등뼈랑 우거지 푹 끓여서 먹는 그 감자탕이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음식이었다. 메뉴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근데 한 고등학생 때부터였나?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먹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딱 끊더라구요. 특히 밖에서 사 먹는 건 더더욱이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 딱 끊어 버렸어요. 그리고 나선 특별히 좋아한다고 할 만큼 잘 먹는 음식은 없었어요.

알레르기가 생긴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하루아침에 끊었다면 뭔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다.

예민희 서기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몇 달 동안은 아예 안 먹진 않았어요. 일단 밖에서 사 먹는 건 죽어도 안 한다길래 집에서 직접 만들어 주거나 배달을 시켜 주면 곧잘 먹긴 먹더라구요. 근데 아시잖아요. 집에서 감자탕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 감자탕 맛 자체가 싫어진 건 아니네요?

-네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억지로 참는 거 같았어요.

예민희 서기관의 어머니는 나로선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유를 이어서 말해 줬다.

-우리 민희 입으로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눈치를 보는 거 같아요.

-눈치라뇨? 감자탕 먹는데 무슨 눈치요?

-그러니깐 우리 딸이 지랄맞다는 거죠.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민희가 어릴 적부터 공부 하나는 무지하게 잘했어요. 어딜 가든 무슨 시험을 치든 1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외무 고시도 수석으로 합격하셨다면서요.

-그럼요. 그렇게 매번 1등을 하다 보니 주위에서 엄청나게 관심을 주잖아요. 막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민희 볼 때마다 전교 1등 왔네, 이번에도 또 1등 했냐라며 막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겠죠.

-그러던 어느 날은 민희가 갑자기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자기를요?

-네. 잘하나 못하나, 또 1등 했나 안 했나 지켜보는 거 같대요.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이유와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그때부터 걸음걸이며 옷차림이며 행동이며 모든 걸 조심하게 되더래요. 그냥 자연스럽게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기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 있어서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괜히 과도하게 부담을 가졌군요.

-그래서 제가 세상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다고 수천 번은 말해 줬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질 않으니 성격이 바뀌질 않죠.

-그럴 수 있죠. 근데 그거랑 감자탕은 무슨 상관이죠?

서론이 조금 길어졌지만 예민희 서기관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감자탕이 먹기가 좀 지랄맞은 음식이잖아요 우리 딸처럼. 막 뼈에 찔끔 붙은 살점 한번 먹어 보려고 쪽쪽거리고 입에도 양념도 묻혀 가며 먹어야 하는데 그걸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실망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민희는.

-아… 그렇게까지요?

-저도 그건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딸이 그래요. 감자탕을 안 먹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아요. 그 좋아하던 걸 갑자기 끊을 이유가 없어요.

예민희 서기관만큼 항상 1등으로 살아온 건 아니었지만 주방장이 처음 되고선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감자탕까지는 아니어도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거나 실수를 할까 봐 아예 맥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고, 일을 하다 보면 새하얀 조리복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하루에 3벌씩은 갈아입었다.

다들 바빠서 나한테 관심도 없었을 텐데 괜히 부담을 가졌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주위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썼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여튼 감자탕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맞는 거죠?

-거기 있는 게 내 딸이 맞다면 그건 확실해요. 눈앞에 맛있는 감자탕을 갖다 놓으면 아마 참기 힘들어할걸요?

-그런 거면 오히려 좋네요.

-여튼 우리 딸이랑 같이 일하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파나르 대사관이 요즘 잘나가는데 우리 딸 때문에 괜히 분위기 나빠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분명히 예민희 서기관님 덕분에 더욱 잘나가게 될 겁니다.

-그럼 다행이구요. 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마한테까지 전화해서 식성을 물어봐 주는 회사가 어딨겠어요.

-저는 요리사니깐요 하하.

예민희 서기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스스로 낮추면서도 그 말투에서는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맘이 더 크게 와닿았다.

예민희 서기관이 수석 합격한 엘리트라 한들 어머니의 눈에 서른도 되지 않은 어린 딸이었다. 내 눈에도 애써 강한 척하고 꿋꿋이 이겨 내려는 모습이 보였고.

부담을 덜어 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탕이라면 오히려 좋았다. 김용수 대사와 계획했던 일을 좀 더 잘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예민희 서기관이 냄새만 맡아도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는 감자탕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 그건 내 전문 분야였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 * *

환영회 당일 날 파나르 한국 대사관 관저.

날씨도 좋고 다 같이 즐기자는 취지에서 관저의 마당에서 환영회를 진행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반가웠는지 성견이 된 지나도 신이 나서 마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사님.”

“어서들 와요. 우리끼리니깐 편하게 마당에서 먹어도 되죠?”

“어디든 좋습니다.”

김용수 대사는 평소와 다르게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직원들을 맞이했다. 예민희 서기관은 근무 때처럼 단정하게 차려입고 왔지만 김용수 대사의 낯선 모습을 보고 잠시 동공이 흔들렸다.

“지나는 이제 다 큰 거죠?”

“맞아요. 더 많이 커서 관저 좀 든든하게 지켜 줄 줄 알았는데 몸집은 크다 마네요. 그래도 이 정도가 이쁘긴 해요. 이리로 와, 지나.”

지나는 김용수 대사가 아무리 다정하게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내 옆에 딱 붙어 있을 뿐.

관저에서 키우는 주인은 김용수 대사였지만 실제로 하루 종일 같이 있고 밥을 주는 건 나였으니까.

“내가 관저에선 개보다 서열이 낮아요 참 내.”

“밥이라도 한번 제대로 챙겨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간식은 몇 번 줬는데.”

자신을 개보다 서열이 낮다고 말하는 김용수 대사도, 그런 김용수 대사에게 면박을 주는 내 모습도 예민희 서기관의 눈에는 낯설었다.

“그럼 식사부터 하면서 얘기 좀 할까요? 오늘 우리 요리사가 특별히 음식을 준비했다던데.”

“예민희 서기관님, 우리 장덕수 요리사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소문은 들으셨죠?”

“네? 아 네. 본부에서 교육 들을 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예 서기관님만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직원들이 옆에서 뭐라 한들 예민희 서기관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근데 예민희 서기관은 옷 안 불편해요? 겉옷이라도 좀 벗어 둬요.”

“네? 저요. 아 알겠습니다.”

예민희 서기관은 겉옷을 벗으라는 말에 잠시 주춤했다. 그러더니 김용수 대사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조심스레 겉옷을 벗었다.

“자 준비한 음식은 바로 한 그릇씩 드릴 테니깐 좀 전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당 한편에 피워 둔 삭사울 위에 커다란 카잔을 올려놓고 대여섯 시간 동안 감자탕을 끓여 냈다.

돼지 등뼈는 파나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부위기 때문에 싼값에 구해 왔지만 살점이 두툼하게 붙어 있었다.

“우거지는 아니지만 제가 배춧잎을 직접 말려서 듬뿍 넣었고, 돼지 등뼈랑 무, 양파, 마늘, 대파를 아낌없이 넣어서 끓여 낸 감자탕입니다. 파나르 감자 맛있는 거 다들 아시죠?”

감자탕이라는 말에 예민희 서기관을 포함한 모든 직원의 시선이 카잔을 향했다.

사실 아까 전부터 마당을 가득 채우는 냄새에 군침이 흘렀지만 모른 척하고 음식이 완성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고기도 많고 양도 넉넉하니깐 실컷 드세요. 대신 음식은 이거 하나입니다.”

“그럼 다 먹고 볶음밥 추가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라면 사리 추가도 됩니다.”

“워후!”

직원들 앞에 감자탕을 가득 담은 커다란 그릇 하나씩을 올려 주고 위생 장갑 한 장씩을 나눠 주었다.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등뼈를 뼛속 사이까지 제대로 발라 먹으라며 건네준 장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음식을 먹는 건 가족이 아닌 이상 조심스러웠다.

감자탕 한 그릇과 위생 장갑을 받아 든 예민희 서기관은 예상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예 서기관님 혹시 감자탕 안 좋아하세요?”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요.”

“예민희 서기관님 환영식인데 묻지도 않고 메뉴를 정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나와 김용수 대사는 예민희 대사가 주춤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커다란 등뼈를 발라 먹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싫어서겠지.

김용수 대사는 더 보란 듯이 위생 장갑을 끼고 등뼈를 먹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른 직원들도 감자탕을 입에 가져갔다.

“우와 이거 미쳤다… 아니 우리 요리사님 실력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감자탕은 뭔가 특별한데요?”

“왜요? 어떤데요?”

“이거 진짜 내 인생 감자탕, 아니 감자탕뿐만 아니라 여태 먹어 본 음식들 중 최고인데요?”

“에이 그건 너무 오버 아닙니까?”

“아니 빈말 아니고 진짜예요. 등뼈에도 살점이 두둑하게 붙어 있어서 먹을 맛 나는데요.”

김준우 서기관의 말대로 모든 직원이 감자탕에 맛에 푹 빠져 버렸다. 한국과 달리 붙어 있는 살점도 많았고, 숯을 이용해 반나절을 끓여 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있나.

밥과 김치만 깨작거리던 예민희 서기관도 직원들의 반응에 드디어 국물에 손을 갖다 댔다.

후릅.

처음에는 국물만 한 숟갈.

후르릅.

두 번째는 푹 익은 배춧잎과 한 숟갈.

그다음부터는 거침없었다. 아예 안 먹었으면 모를까 진하고 걸쭉한 감자탕 국물을 한번 맛본 이상 손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숟가락으로 툭 건들 때마다 분리되는 두툼한 살점을 거부하기란 그 누구도 힘들 것이다.

후르르르르릅.

예민희 서기관은 이제 양손에 위생 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등뼈를 뜯기 시작했다.

나와 김용수 대사는 한번 눈빛을 주고받은 뒤 식사에 집중했다. 다른 직원들은 이미 자신의 그릇에만 집중할 뿐 예민희 서기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아아 요리사님. 한 그릇만 더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두 그릇 드셔도 됩니다.”

“그러면 두 그릇으로 부탁드려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은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다 같이 등뼈에 집중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보드라운 살점이 모두 발라진 채 형태만 남아 있는 뼈들이 쌓이고 있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볶음밥 차례지요?”

“이건 제가 볶을게요. 밥 열 공기만 주세요.”

“열 공기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먹어 줘야죠.”

“예민희 서기관님 많이 드시는 분 아니시잖아요. 저번에 맥줏집에선 한 입 먹고 마시더니.”

“그땐 그때고 오늘은 또 오늘이죠.”

맥줏집에서 잔뜩 시켜 놓은 안주를 찔러 보기만 하던 예민희 서기관은 없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볶아 내는 예민희 서기관의 자태는 위풍당당했다.

“이야 손놀림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요?”

“좀 하죠? 손놀림뿐만 아니라 맛도 꽤 그럴싸할 거예요.”

“오 기대하겠습니다.”

예민희 서기관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주걱을 휘젓더니 적당히 눌은밥이 생기도록 볶음밥을 만들었다.

“참기름은 항상 마지막에 넣어 줍니다! 그래야 향이 살아 있거든요.”

“오호.”

“다 됐습니다! 드세요.”

예민희 서기관의 신호가 떨어지자 다들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런 우리를 가소롭기라도 하다는 듯 예민희 서기관은 주걱째로 달려들었다.

“와아 이건 반칙 아닙니까.”

“먹고사는 데 반칙이 어딨어요.”

“와아 예 서기관님 이런 분이셨어요? 같이 밥 먹을 때 조심해야겠네.”

“하하. 항상 조심하세요 이제.”

어느새 예민희 서기관은 직원들 속에 어우러져 밝게 웃고 있었다. 직원들 역시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함께 즐기고 있었고.

닫혀 있었던 맘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근데 예민희 서기관님.”

“네 선배님.”

“오 이제 선배님이라고 불러 줘요?”

“진작 그랬어야 하는데 죄송했습니다.”

김준우 서기관은 선배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기분 좋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럼 후배님. 말 나온 김에 뭐 하나만 말해도 돼요?”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나 사실 얼마 전에 섭섭했던 거 있는데.”

애써 올려놓은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봐 걱정돼 김준우 서기관을 말릴까 했는데 김용수 대사가 저지했다.

“섭섭한 거요? 뭐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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