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33화 (134/202)
  • 133. 함께

    첫 번째 음식이 접시가 아니라 컵에 담겨 나오자 몰다 역시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몰다는 초대받은 자리에서 음식 투정을 할 성품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음식은 숭늉이라고 하는 밥물입니다.”

    “밥물이라니 참 신기한 음식이네요. 보통 한국인들도 식사 전에 이것을 마십니까?”

    자신이 생각했던 음식과는 달랐지만 몰다는 숭늉이 반가운 표정이었다. 하루 종일 물을 마시지 못했을 테니까 이 미지근한 물이 속을 달래 주기에 딱이었다.

    “보통은 식사 후에 마무리의 의미로 이 숭늉을 마십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목도 축이고, 위장이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먼저 준비해 봤습니다.”

    “하하. 안 그래도 목이 말랐던 참인데 잘되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마시지 않도록 미지근하게 온도를 유지한 숭늉을 천천히 들이켠 몰다는 기분 좋게 숭늉을 한 잔 더 요청했다.

    원래 숭늉은 그릇에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외국인들이 어색해할까 봐 컵에 대접을 했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엔 몰다가 충분히 수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큰 대접에 숭늉 한 사발을 갖다주었다.

    꿀꺽꿀꺽.

    몰다의 물 넘기는 소리가 주방까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없던 갈증마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캬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있으니 라마단 기간이 쉽지 않네요.”

    “하하 나이가 어려도 쉬운 건 아닐 겁니다. 그렇죠 윤아 씨?”

    김용수 대사는 고개를 들어 서빙을 하는 윤아에 물었다.

    “당신도 단식을 하고 있습니까? 무슬림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 한번 도전해 보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도 이거 한 잔 드시죠 처음이면 쉽지 않을 텐데.”

    몰다는 동지가 생겼다는 반가움에 숭늉 한 잔을 더 요청해서 윤아에게 건넸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지는 건 느껴지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이걸 매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저야 뭐 이젠 익숙하죠. 그나저나 이 숭늉이란 거 단식 기간 때 먹기 아주 좋네요. 갈증도 해소해 주고 적당히 포만감도 있어서 배 아픈 것도 방지할 수 있구요.”

    김용수 대사의 눈치를 보면서 윤아도 몰다의 재촉에 서빙을 잠시 멈추고 숭늉을 들이켰다.

    그제야 좀 살겠다는 표정.

    처음보단 생기가 도는 얼굴로 주방으로 돌아와 다음 음식을 가지고 나섰다.

    “두 번째 음식은 해물냉채입니다.”

    “오 제가 또 해산물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희 무슬림들은 바닷속 생물은 순수하다 여겨 자주 먹고 있거든요.”

    “오호 그렇습니까? 이 해물냉채는 본래 겨자소스와 같이 먹는 게 원칙이지만 그 소스가 너무 자극적이라 잣 소스로 만들어 봤습니다.”

    “좋네요. 저도 사람인지라 단식이 끝나고 자극적인 음식을 참지 못하고 먹으면 며칠 고생을 하곤 했거든요. 대사님도 음식에 대한 상식이 해박하십니다.”

    “하하 저희 요리사가 이렇게 설명해 달라 하더군요.”

    모든 재료를 맘껏 사용하되 처음 제공하는 한두 가지 음식엔 최대한 덜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려 노력했다.

    “역시 훌륭하신 요리사는 배려심도 남다르군요. 그런 의미로 저도 요리사님 얼굴 좀 뵐 수 없겠습니까?”

    “안 그래도 곧 나와서 인사드리라고 했습니다.”

    숭늉과 에피타이저까지 맛을 봤으니 메말랐던 목은 충분히 적셔졌을 것이고, 조금이지만 기력을 회복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몰다와 빨리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다음 음식은 떡갈비와 부추무침입니다.”

    “떡갈비? 이름이 익숙한데요?”

    육즙이 가득 차 통통해진 떡갈비 옆에 고소한 참기름으로 버무려 윤기가 도는 부추무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번과 다르게 소고기와 돼지고기 지방을 적당히 섞어 퍽퍽하지 않고 삼키기 좋은 떡갈비를 만들었다.

    “이번 자선 행사 때 나눠 줬던 음식이 이 떡갈비입니다.”

    “오 어쩐지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윤기가 흐르는 걸 보니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고기를 덩어리 그대로 사용하는 스테이크나 샤슬릭과는 달리 떡갈비는 다진 고기를 사용해 씹기도 편하고 소화에도 용이했다.

    거기다 양념도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돼지고기 지방을 적절히 섞어 퍽퍽하지 않고 촉촉한 식감의 떡갈비를 만들어 냈다.

    “이거 참 맛있네요. 이런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줘 버리면 나중에 그냥 고기는 안 받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마음이 중요한 거지요.”

    “그렇긴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은 포기하기 어렵겠어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이 떡갈비는 우리 파나르의 미트볼하고 비슷한 거 같네요. 미트볼은 이렇게 촉촉하지 않은데 이건 무슨 고기로 만들었길래 이렇게 촉촉하고 육즙이 가득한가요?”

    김용수 대사는 몰다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들었습니다.”

    꿀꺽.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긴장한 김용수 대사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과 달리 불쾌해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돼지고기를 섞는 게 비법이었군요. 그것 하나 때문에 음식이 이렇게 바뀌다니. 파나르 사람들에게 좀 알려 줘야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앙 모스크의 몰다는 서빙한 떡갈비와 부추무침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얼마 전 만난 몰다의 조언이 전부 다 맞아떨어졌다.

    “후우.”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돼지고기를 먹었으니 이젠 재료로 걱정할 건 없었다.

    다음 음식은 메인인 밥상.

    이번엔 깨끗한 앞치마로 갈아입고 내가 직접 음식을 가지고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몰다님. 장덕수 요리사라고 합니다.”

    “오 우리의 영웅이 드디어 등장하셨군요.”

    “영웅이라니요.”

    “사람을 살리는 게 영웅이 아니면 무엇이 영웅이란 말입니까. 이 떡갈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몰다는 비워진 접시를 보여 주면서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보시다시피 남김없이 먹고 있습니다. 다음 음식은 무엇인가요? 제가 원래 이런 걸 물어보는 스타일이 아닌데 음식들이 워낙 맛있어서 궁금하네요.”

    하람이라 불리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리임에도 맛있게 먹어 준 몰다에게 더 좋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음식으로 잃었던 기력을 되찾아 주는 게 요리사의 몫.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세 번째 음식은 장어구이와 갈비탕입니다.”

    “장어구이요?”

    “네 장어구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양식입니다. 그리고 갈비탕 역시 보양식의 일종이라 두 가지 음식을 같이 먹으면 라마단 기간에 잃으셨던 기운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알렉스에게 한 번 더 부탁해 장어를 구해 요리를 했다.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지 않는다지만 장어만큼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재료도 드물었다.

    게다가 돼지 잡뼈와 소갈비를 듬뿍 넣고 하루종일 끓여 낸 갈비탕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요리사님.”

    “네 몰다님.”

    “오늘 준비한 음식들 말입니다.”

    몰다는 메인 음식을 앞에 두고 잠시 말을 끊었다. 한두 개쯤 하람을 사용한 건 괜찮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나? 보란 듯이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재료들을 사용했으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기력 회복에 중점을 두고 만든 음식들이었다. 떡갈비는 아무래도 궁금해할 것 같았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한 시간같이 느껴졌다.

    “오늘 준비한 음식들 말입니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너무 맛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우리 종교에 대해 깊게 알고 만든 음식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코란을 따로 읽어 보신 적 있습니까?”

    코란이라.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읽고 설명을 들었었지. 몰다는 오늘 준비한 음식들이 그냥 준비한 게 아니란 것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냥 제 느낌일 뿐이지만 이슬람교에 대해서 깊게 공부한 사람이 준비한 음식인 것처럼 느껴져서요.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읽어 봤습니다.”

    “네?”

    “코란을 읽어 봤습니다.”

    코란을 읽어 봤다는 말에 몰다는 놀라면서도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방인이 라마단 기간에 자신의 나라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했다. 거기다 단식에 동참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코란까지 읽어 봤단다.

    종교인으로서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모스크를 찾아가서 무슬림들의 식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파나르에서 좀 더 진정성 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럼 오늘 준비한 음식은 코란의 어느 구절을 읽고 준비하신 건가요?”

    몰다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입으로 그 구절을 듣고 싶어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파나르어로 코란의 한 구절을 외워 두었다.

    “누군가가 너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그것이 어떤 음식이라도 거절하지 말고 먹어라.”

    “누군가가 너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그것이 어떤 음식이라도 거절하지 말고 먹어라.”

    몰다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하듯 내가 읊고 있는 구절을 따라 읽었다.

    “오 말도 안 돼. 코란을 한 번이라도 읽어 준 사실만으로도 고마운데 그 구절을 외우기까지 하다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인연들을 만나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몰다는 테이블 옆에서 무릎을 꿇고 여러 차례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진심으로 이 상황에 감격한 듯한 표정이었다.

    “제가 열심히 기도를 드린 보람이 있었네요.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희야말로 좋은 인연 만나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서로를 칭찬하다가 정작 애써 준비한 음식이 식고 있었다.

    파나르의 장어는 수요가 적어서 그런지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가득했다. 대충 소금만 뿌려 구워 먹어도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런 최상급 장어에 달짝지근하게 만든 특제 소스를 발라 숯불에 구워 낸 장어는 그 어떤 요리와도 비교할 게 못 되었다.

    그냥 식게 놔두기엔 아까운 음식들이었다.

    “더 식기 전에 이 갈비탕과 장어구이를 한번 드셔 보시지요.”

    향긋한 숯 향이 장어의 기름을 만나 아주 맛깔스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군침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꾸울꺽.

    대화가 잠시 멈춘 찰나 통역을 담당하던 윤아의 군침 넘기는 소리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하 우리 통역님께서도 배가 많이 고프신가 보군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당신도 단식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배가 고프겠죠. 낮 시간 동안 물도 안 마시고 오늘의 우리의 대화를 통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자신을 걱정해 주는 몰다를 보며 윤아는 머쓱해졌다. 사실 윤아는 물까지 안 먹는 단식은 못 하겠다며 진작에 마실 건 마시고 있었다.

    그게 그냥 물뿐만이 아니라 액체처럼 흐르기만 하면 다 마셔 버려서 문제였지.

    아침저녁으로 스무디며 음료수며 맘껏 마셔 대서 당분 보충을 충분히 한 상태였다. 그래도 평소보다 적게 먹은 건 사실이었지만.

    몰다는 윤아가 자신처럼 완벽한 단식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식사합시다.”

    “네?”

    “여기 계신 통역분도 요리사님도 다 같이 식사하자구요. 그래도 되죠 대사님?”

    갑작스러운 몰다의 제안에 김용수 대사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중요한 정책 회의를 할 것도 아닌데.”

    “맞습니다. 좋은 인연 만들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다 같이 식사하시죠.”

    윤아는 끝까지 거절하다가 내가 테이블에 앉는 걸 보고 자리에 따라 앉았다.

    조심스레 한 젓가락씩 집어 먹다가 어느새 통역도 잊고 식사에 집중하는 윤아.

    인생에 단 한 번도 하기 힘든 단식을 어떻게 매년 하는 건지. 새삼 저들이 대단하다 느껴졌다.

    “아 안 돼…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그릇이 비워져 있네. 라마단 기간에 오히려 살이 더 찐 것 같아.”

    “하하하. 괜찮습니다.”

    울먹이는 윤아를 위로해 주는 몰다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라마단 기간에 살이 찌는 신도들이 훨씬 많습니다. 음식을 저녁에 몰아서 먹으니 오히려 살이 찌더라구요. 이상한 게 아닙니다.”

    “그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구요 흑.”

    그러면서도 젓가락은 놓지 않는 윤아를 보고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술 한 잔도 없이 만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질 수 있었다.

    “대사님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눈치 없이 너무 늦게까지 있었네요.”

    “아닙니다. 저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술도 안 마실 거고, 늦게 시작했으니 두 시간 만에 끝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몰다가 관저를 빠져나간 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내일 모스크에 돌아가면 대한민국 대사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장덕수 요리사님.”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몰다는 뒤돌아서기 전 날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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