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32화 (133/202)
  • 132. 진짜 의미

    “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몰다님?”

    “말 그대로입니다.”

    윤아는 다시 한번 코란을 읽어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러니깐 초대를 받아서 간 자리에서 돼지고기 요리가 나와도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무슬림인데요? 게다가 라마단 기간인데도요?”

    “네 맞습니다.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를 사용해도 됩니다.”

    나와 윤아는 예상치 못한 규칙에 놀라고 있었다.

    그럼 여태까지 무슬림 손님들을 대접할 때 메뉴를 고민하고, 2% 아쉬운 음식을 내줬던 건 뭐였나 싶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슬람교에 대해 조금 더 알려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의 리액션이 재밌었는지 몰다는 아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윤아가 말했던 것처럼 관심을 보여 주면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걸릴지 몰라.’

    ‘그래도 한번 들어 보자. 좋은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단식으로 힘이 없던 윤아는 투덜거렸지만 나는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파나르에서 계속 일을 하려면 무슬림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있는 편이 좋았다.

    “이 부분을 한번 읽어 보세요.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윤아는 몰다가 짚어 준 코란의 한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말했다. 무슬림이 평생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는 돼지, 알코올, 피, 파충류, 곤충류 등이 있는데 이를 하람이라고 부른다. 하람에는 재료의 종류뿐 아니라 ‘신이 허락한 방법’으로 도축하지 않은 것도 먹을 수 없다.”

    “아! 이게 할랄푸드를 말하는 건가 보다.”

    “응 그런 것 같아. 여기 나온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아닌 사람에 의한 도축, 피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도축이 이에 해당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슬림이 먹어도 되는 것을 할랄이라고 부른다.”

    “오! 맞네.”

    “할랄은 음식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 허락된 모든 것이라는 의미기 때문에 행동 양식이라든가 인생의 모든 것이 포함된대.”

    “아하 할랄이라는 게 음식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범위가 되게 넓구나.”

    “무슬림들이 할 수 있는 건 할랄, 할 수 없는 건 하람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아는 단어가 나오자 여태 낯설었던 코란이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근데 초대되었을 때 모든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 뒤에 있는 내용이 조금 애매하네.”

    코란을 읽어 내려가던 윤아가 어느 한 부분에서 의문을 가졌다.

    “뭔데?”

    “설령 하람을 행했더라도 고의가 아닌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한 분이시니라고 적혀 있어. 근데 초대되었을 때는 딱히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는 아니지 않나.”

    “그러네. 두 개의 말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네.”

    뭔가 애매모호했다.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라면 극단적인 상황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관저로 초대된 일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거부하거나 미리 말을 해 두면 그만이니까.

    의아해하던 우리들 사이로 몰다가 다시 끼어들었다.

    “사실 이 부분이 우리 종교계에서 많이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렇겠네요. 저희만 해도 헷갈려하니까.”

    “하람과 할랄은 헷갈리지 않도록 꽤 구체적으로 구분을 해 놨지만 이슬람교를 따르는 각 나라마다 다르고, 코란을 해석한 언어에 따라서도 의견이 달라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 수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 그만큼 독실한 신도들도 많고, 경전을 해석하는 데도 수많은 의견이 존재했다.

    “그래서 저희는 각 나라의 문화에 맞게 해석을 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파나르는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굶어 죽을 수는 있는 상황에선 돼지고기는 물론 모든 하람을 행하여도 인정이 됩니다.”

    “그렇군요.”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 없는 종교였지만 이상하게 몰다의 말투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윤아와 달리 나는 흥미를 가지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지금 파나르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물론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당장 굶어 죽을 만큼은 아닙니다. 한국 대사관에서 했던 것처럼 그런 분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많구요.”

    “저희도 그저 그분들을 따라 했을 뿐입니다.”

    “따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코란에 나온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파나르 이슬람교에서는 이 부분에서 좀 더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파나르 사람들은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엔 한국도 그랬었습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구요.”

    “정말입니까? 파나르에도 똑같은 속담이 있습니다.”

    “하하 신기하네요.”

    “그래서 파나르 사람들은 이웃들은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이웃들과 함께 그것을 나눕니다.”

    내가 어릴 때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듯이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는 날엔 옆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고, 음식을 많이 만들면 나눠 먹는 게 당연했다.

    이웃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당연하다시피 했었고.

    하지만 이젠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파나르엔 아직도 그런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초대되어 이웃집에 갔는데 하람이라고 불리는 음식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나와 윤아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웃이 애써 준비한 음식을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는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할 수도 없다.

    미리 말해 두지 않은 게 잘못인 상황이었다.

    “진짜 그런 상황이 닥치면 고민이 되겠네요.”

    “맞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겠죠.”

    “그렇겠네요.”

    “그래서 저희 파나르의 이슬람교는 이 부분을 저희 문화에 맞게 해석해서 따르고 있습니다.”

    “이웃에 초대되어 음식을 대접받는 게 불가항력한 상황이라고요?”

    몰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나르 무슬림들은 로마에 가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종교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적용시키고 있구요.”

    “그래서 누군가가 너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그것이 어떤 음식이라도 거절하지 말고 먹어라라는 부분이 좀 더 강하게 해석되었던 거군요.”

    “네 맞습니다. 날 위해 애써 준비한 음식을 먹지 않고, 남기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중앙 모스크의 몰다와 우린 비록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은 아니지만 초대한 자와 초대받은 자의 입장이었다.

    모든 식재료를 사용해서 만찬을 진행해도 율법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끼리의 갈등을 없애고, 서로 돕고 사는 게 궁극적인 목표인데,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만큼 큰 죄악은 없습니다. 게다가 겨우 밥 한 끼 정도로 말이죠.”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몰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오해하고 있단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일부 극성의 무슬림들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지는 걸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나서서 해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슬림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무조건 종교가 우선인 고집불통의 사람들이란 이미지.

    뉴스에 나오고, 세계 곳곳에서 말썽을 피우는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진짜 제대로 된 무슬림들은 그들을 같은 이슬람교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사람이 존재해야 종교도 존재합니다. 사람을 다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지요. 중앙 모스크 몰다님께서 오시면 모든 재료를 사용하셔서 맘껏 요리를 해 보세요.”

    “진짜 그래도 될까요?”

    “요리사님의 실력을 맘껏 발휘해서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배웠던 내용을 주제로 같이 대화를 나눠 보세요. 그럼 몰다님은 아주 흡족해하며 맛있게 음식을 드실 겁니다.”

    100%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나 역시 마음이 가벼워졌고, 빨리 칼을 잡고 싶어졌다.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의 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에게 음식을 먹고 놀란 표정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으니까.

    깊은 가르침을 준 몰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파나르 한국 대사관 관저.

    지금까지의 만찬은 늦어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시작이 되었는데 오늘은 주변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김용수 대사와 잡담을 나눌 시간이 생겼다.

    “장 셰프. 몰다님이 오시면 나와서 같이 인사 나누시죠.”

    “아닙니다 대사님. 저는 조금 나중에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네? 왜요?”

    항상 함께하던 인사를 거절하니 김용수 대사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나는 얼마 전에 작은 모스크의 몰다를 만나서 나눴던 얘기를 전해 주었다.

    “괜히 인사 나눴다가 말이 길어질까 봐서요. 분명 자선 행사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실 텐데, 물이라도 한잔 마신 후에 제대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허허 좋은 걸 배워 왔군요. 나는 책 몇 권 읽어 본 게 전부인데 장 셰프는 이렇게 발로 뛰었군요.”

    나와 김용수 대사 둘 다 이번 만찬에 부담이 컸던 모양이었다. 종교인들은 뭔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으니까.

    서로 각자의 방식대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끼이이익.

    커다란 대문이 열리자 자동차 대신 사람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중앙 모스크의 몰다는 타고 온 차도 없고, 동행하는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관저 안으로 들어왔다.

    어두웠지만 한눈에 봐도 인자한 얼굴의 몰다.

    현관에서 김용수 대사와 통역을 담당한 윤아만 나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수 대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대사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역시나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한 달 정도의 라마단 기간이 끝이 나고 있었으니 체력적으로 더 힘이 들 시기였다.

    “그럼 바로 테이블로 앉으실까요?”

    “좋습니다. 제가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관저에 초대를 받고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희 요리사의 실력이 굉장하거든요.”

    “그렇습니까? 좋네요.”

    “몰다님께서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을 하고 계신다길래 음식을 특별히 신경 써 달라 말해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수 대사는 관저 안으로 들어온 몰다를 곧바로 식탁에 앉혔다. 보통은 가볍게 맥주나 샴페인도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식탁에 앉는데 오늘은 다르게 진행을 했다.

    자잘한 대화라도 몰다의 목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첫 번째 음식을 서빙했다.

    “덕수야 이제 시작.”

    파나르에 와서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온전한 한식을 만들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맛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럼 첫 번째 음식입니다.”

    윤아는 주방에서 컵 몇 개를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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