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9화 (130/202)

129. 뜻밖의 인연

윤아가 알려 준 메도빅이라는 디저트 덕분에 파나르 사람들이 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꿀로 만든 요리보다 원물 자체를 더 많이 파는 이유는 원래 가진 꿀의 향과 맛을 즐기기 때문이었다.

떡갈비를 만들 때 꿀을 어떻게 사용하면 될지 감이 잡혔다.

“대사님. 만들어야 할 떡갈비의 양이 많으니깐 사무실 직원들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몇 명이나 필요하신가요?”

“두 명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네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용수 대사의 협조 덕에 김준우 서기관과 윤아가 관저로 왔다.

“안녕하세요 요리사님. 오늘 저희가 할 일이 뭔가요?”

자선 행사라는 말에 앞장서서 달려와 준 김준우 서기관.

하지만 오늘 준비해야 할 고기의 양을 보고 도망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떡갈비를 만들 건데 150kg 정도 만들 예정입니다.”

“150kg요? 그거면 충분한가요? 더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말만 들어서는 150kg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가 보다. 직접 눈으로 보여 줘야 저 당당한 자태가 수그러지려나.

“150kg이면 충분합니다. 저희 3명이 그 이상 만들 수도 없구요.”

“그렇군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정육점에 부탁해서 다져 놓은 소고기 100kg과 닭고기 50kg을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요리사님 이… 이걸 다 해야 하나요?”

“왜요? 모자랄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하하 서기관님 너무 걱정 마세요. 금방 할 거예요.”

절대 금방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이렇게 희망을 줘야 덜 지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고기 양을 보고 놀라는 건 윤아도 마찬가지.

좋은 일을 하겠다는 취지는 좋다만 벌써부터 허리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근데 요리사님은 이 정도 양을 금방 한다고 말하시는 거 보면 평소에 업무 강도가 얼마나 센 겁니까?”

“그니까요. 덕수 넌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의문에 파나르에서의 삶을 곱씹어 보았다.

바쁘게 살긴 살았구나.

이전 인생보단 무조건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다. 덕분에 좋은 평을 받고 있기도 했지만.

“요즘 요리사님 이름이 자주 들리는 게 괜히 있는 일은 아닌가 봐요. 이러다가 파나르에 레스토랑 차려도 대박 나겠어요.”

“오 그럼 난 매일 가야지.”

“저도요.”

“하하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할 일이 많습니다. 이제 좀 서두르시죠.”

일을 시작하기 두려웠던 두 사람은 주저리주저리 잡담을 늘어놓았다. 서둘러 두 사람의 말을 끊고 떡갈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소고기랑 돼지고기를 섞어서 고기 반죽을 만드는데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준비했어요.”

“무슬림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네 맞아요. 돼지 지방이 좀 섞여야 부드럽고 육즙이 꽉 찬 떡갈비를 만들 수 있는데 닭고기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을 거예요.”

“비싼 소고기로만 만들면 더 맛있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군요.”

“맛으로 치면 소고기보다 돼지고기죠.”

한국에서는 소고기가 워낙 비싸서 더 맛 좋고 건강한 육류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돼지고기의 맛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돼지기름 역시 소고기의 지방에 비해 잡내도 적고 체내에 쌓이는 것도 덜해 오히려 건강에 유리한 지방이고.

이번 떡갈비는 아쉽게도 그런 돼지고기를 넣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먹는 파나르 사람들이 더 맛있으면 된 거죠. 돼지고기가 들어갔다고 하면 오히려 욕을 퍼부을 수도 있으니깐요.”

“네 애초에 논란이 될 일들은 만들 필요가 없죠.”

두 사람에게 커다란 대야에 두 종류의 고기를 잘 섞어 달라고 부탁을 한 뒤 나는 양념을 만들었다.

간장에 대파와 마늘, 생강 약간과 소주 대신 보스카 조금, 그리고 향긋한 냄새가 가득한 아카시아꿀을 넣어 양념을 만들었다.

“꿀로 양념을 만드시는 거예요? 이거 완전 정통 한정식집 고급 레시피 아닌가요?”

“하하 아니에요. 파나르에선 꿀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고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김준우 서기관은 고급 한식집에선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해서 요리를 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연신 감탄을 해 댔다.

“근데 이거 아카시아꿀을 요리에 넣어도 돼요? 맛에 방해되지 않을까요?”

“오 서기관님 요즘 요리 공부 꾸준히 하시나 봐요?”

예전에 가지지 않았던, 아니 가지지 못했던 요리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들 진우에게 했던 약속을 여전히 지키며 음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늘려 가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제 입맛에는 이 아카시아꿀을 넣는 게 맞진 않아요.”

“근데 왜 굳이 이걸 넣으세요? 요리사님 입맛이 전 세계인의 입맛 아닙니까?”

“서기관님 좀….”

김준우 서기관의 능청스러운 농담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던 중 윤아가 나서서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파나르 사람들은 꿀 향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음식에 넣어서 먹는 것보다 차로 마시거나 그냥 그대로 떠먹는 걸 좋아해요.”

“그래요?”

“꿀이 들어간 음식 종류가 적은 것도 그 이유거든요.”

김준우 서기관은 신기한 듯 아카시아꿀을 찍어 맛을 봤다.

“향긋한 향이 고기랑 잘 어울릴지는 만들어 봐야 알겠네요.”

“하하 미식가 다 되셨네요.”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떡갈비라는 음식 자체도 파나르 사람들이 즐겨 먹는 미트볼이랑 비슷했고, 꿀 향을 좋아한다 했으니 파나르의 짙은 꿀 향이 나는 이 음식을 충분히 좋아할 것이다.

이게 내 예상이었다. 그저 음식을 나눠 주는 사람이 좋자고 하는 기부 행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받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음식을 나눠 주는 것.

낯설 수 있는 한국 음식에 익숙한 파나르의 향을 담아 주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제 이 양념을 넣고 다 치대 주세요. 마구마구 섞고, 주먹으로 쳐도 좋고. 손바닥으로 때려도 됩니다.”

“이거 스트레스 해소 제대로네요.”

“그럼 남은 고기도 전부 부탁드립니다.”

자신만만하던 김준우 서기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백기를 던졌다. 그래도 두 사람 도움 덕분에 제법 수월하게 떡갈비를 만들 수 있었다.

* * *

만드는 건 우리끼리 만들었지만 나눠 주는 건 김상율 한인회 회장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인회 측에서도 이런 행사를 종종 했었다고 두 발 벗고 나서 줬다.

“요리사님 정말 좋은 일 하시는 겁니다. 저희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 이렇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인가요. 같이 협력해서 나눠 주면 되죠.”

“좋습니다. 일단 도움을 줄 만한 분들의 명단입니다. 평소 자주 도와주던 보육원은 고기가 충분하다고 다른 분들 도와 달라네요.”

“그렇군요. 그럼 대부분 어르신들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독거노인분들이시죠.”

이제부턴 상율과 윤아의 차례였다. 능숙하게 파나르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그 둘이 전부였으니까. 나도 간단한 소통은 가능하지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그게 뭐야?”

“아시아에 있는 나라입니다.”

귀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파나르의 어르신들은 한국이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차근히 설명을 하고, 고기를 가지고 왔다 하니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항상 건강하고, 크고 넓은 집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두 손을 들어 세수를 하듯 자신의 얼굴을 아래로 쓸어내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무슬림들이 기도를 마무리하는 특유의 동작이었다. 그런 동작 말고도 하나같이 우리의 밝고 건강한 미래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다.

“한국이란 나라는 몰라도 전부 좋은 말을 해 주시네요.”

“이 시기만큼은 나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더 기도해 줄 겁니다. 이 음식을 나눠 준 사람들을 위해서요.”

“고맙네요. 겨우 이 고기 한 덩어리일 뿐인데.”

한쪽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끼고 다음 집으로 넘어갔다.

“여기는 좀 특별한 집입니다.”

“특별한 집이요?”

“네 이 집 주인의 성함이 엘레나 킴 씨예요.”

“킴이요?”

반가운 김씨 성이 상율의 입에서 나오자 반가웠다. 그렇지만 엘레나 킴이라니. 내 머릿속에선 쉽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엘레나 킴 씨는 고려인 3세입니다. 어머니 때까진 러시아에 살다가 어릴 때 파나르로 넘어오셨대요.”

“고려인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아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국시라는 음식까지 먹고 왔는데, 눈앞에서 고려인을 보게 될 줄이야. 반가우면서도 이런 복지 좋은 나라에서 소외받고 있단 사실에 씁쓸했다.

“국적을 취득하긴 했겠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아 왔을 겁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고려인들이 많아서 힘이 센 것도 아니라. 파나르엔 고작해야 10명 남짓이라서요.”

“그렇군요.”

많은 곳은 고려인만 무려 30만 명이 사는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파나르엔 그들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한국어를 할 줄 아시나요?”

“아니요. 거의 못 하신다고 보면 됩니다. 고려인들은 2세대만 되어도 거의 한국어를 잊어버리는데 3세대들은 인사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진 감정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우려와는 달리 아담한 집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희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왔습니다.”

“정말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왔다는 말에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는 엘레나 킴 씨였다. 몸은 야위었지만 알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한눈에 봐도 고생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마단 기간이라 고기 좀 나눠 주러 왔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한국어는 아니었지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엘레나 씨였다.

“혹시 떡갈비라는 음식 아시냐고 물어봐 봐. 어머니가 만들어 줬을 수도 있잖아.”

“그럴까?”

준비해 간 떡갈비가 추억 속에서 잊혀진 음식들 중 하나라면 더욱 반가울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맘에 떡갈비를 아냐고 물어봤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엘레나 씨였다.

“죄송합니다. 원래는 한국어 인사도 몇 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 잊어버렸네요. 이 떡갈비라는 음식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먹어 봤을 수도 있어요.”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 드셔 보는 거라도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명절에 손자들이라도 온 듯 한껏 기분이 좋아진 엘라나 씨는 우리가 일어나지 못하게 계속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 볼까요?”

“네 아쉽지만 그러시죠. 다음에 또 온다 말씀드리고 떡갈비 맛있게 드시라고 말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이제 떠나겠다고 말하자 너무나도 아쉬워하는 엘레나 씨.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내 팔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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