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8화 (129/202)
  • 128. 떡갈비

    자선 행사를 치르자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 방식을 조금은 특별하게 해 봤으면 한다는 김용수 대사.

    “기왕이면 한국 문화의 특성도 살리면서 어려운 사람들도 도우면 좋잖아요. 파나르 사람들이랑 똑같이 하면 그냥 묻힐 수도 있고.”

    “그렇긴 하죠. 그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요?”

    나와 김용수 대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고기를 많이 구입해서 나눠 주는 건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호텔에서 했던 것처럼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건?

    “라마단 기간 동안엔 단식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료 급식소는 오히려 그 문화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밤에 운영을 할 수도 없구요.”

    “그건 의미가 없죠.”

    라마단 기간에는 평소에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한 사람들마저 낮에 단식을 동참을 할 정도였다.

    식당마저 늦게 오픈하는 마당에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산유국이라도 굶는 국민들이 있는 게 참 신기하네요.”

    “모든 사람들을 다 챙길 순 없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부자 나라라고 해도 힘든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움이 더욱 절실할 거구요.”

    김용수 대사의 말대로 소외받는 파나르 국민들에게 좀 더 혜택이 가는 행사를 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진짜 도움이 되는 행사.

    “그럼 도시락 같은 걸 만들어서 주면 어떨까요?”

    “도시락이요?”

    “저번에 축제 같은 거 할 때처럼 도시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나눠 주는 거죠.”

    “음… 도시락이라. 나쁘진 않지만 그냥 한 끼 먹으면 끝이겠네요.”

    “그럼 세 개 정도씩?”

    “그건 너무 무리죠.”

    한국 음식이 담긴 도시락을 나눠 주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일회성에 불가했다.

    김장 김치를 담가서 몇 포기 나눠 주면 겨우내 반찬으로 먹는 한국의 행사와 달리 지속성이 떨어졌다.

    “그럼 대사님. 고기를 나눠 주는 게 파나르 문화라고 했으니깐 저희도 고기를 나눠 주면 어떨까요?”

    “그냥 고기를요?”

    “아니요. 한국식으로 만들어서요.”

    “어떻게요?”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많은 양의 고기를 나눠 주는 파나르 사람들이었다. 그것처럼 우리도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고기 요리를 나눠 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떡갈비를 만들어서 나눠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려 뒀다가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구요.”

    “오 떡갈비요?”

    “네 파나르 사람들도 미트볼을 자주 먹는 것 같던데 그거랑 비슷하니깐 좋아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달짝지근한 간장 소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잘 없었어요.”

    김용수 대사도 수많은 오, 만찬을 겪고 난 후 자연스럽게 수집된 데이터였다.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달콤한 간장 소스로 만든 음식을 싫어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불고기, 갈비찜, 찜닭, 잡채 등등. 국적 불문, 나이 불문하고 전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 음식들을 할 땐 잔반이 거의 없었어요.”

    “떡갈비도 양념이 비슷하죠?”

    “네 맞습니다. 대동소이합니다.”

    양의 차이였지 거의 같은 소스를 쓴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떡갈비 역시 파나르인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는 의미.

    대신 조금 더 깊은 의미가 필요했다.

    “완전히 한국식으로 하지 말고 양념 같은 건 파나르 재료를 좀 써서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그러면 좀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 같은데요.”

    “음… 양파나 대파 같은 건 파나르산을 쓰긴 할 것 같은데.”

    “그런 것 말고, 뭐 소금이나 후추 같은 걸 파나르산으로 쓰면 안 되나요?”

    “써도 되지만 워낙 소량이라….”

    떡갈비에 들어가는 고기가 전부 파나르에서 파는 고기인데 뭐가 더 필요할까.

    간장처럼 한국 고유의 소스를 뺄 순 없으니 다른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장 셰프.”

    “네 대사님.”

    “혹시 떡갈비에 설탕도 들어가나요?”

    “네 많이는 아니지만 좀 들어갑니다. 왜 그러십니까?”

    구울 때 잘 타기 때문에 설탕을 넣지 않고 떡갈비를 만드는 식당들도 있다. 하지만 달짝지근한 특유의 한국식 떡갈비를 만들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넣는 게 맛있다.

    “그 설탕 대신 꿀을 이용하면 안 됩니까?”

    “꿀이요? 가능은 하지만 꿀은 왜요?”

    “장 셰프도 혹시 파나르에 꿀이 유명한 걸 알고 있습니까?”

    “들어는 봤습니다. 저번에 워크샵에서 봤던 아나 씨가 얘기해 준 적 있습니다. 파나르 꿀이 싸고 좋으니깐 쓸 일이 있으면 꼭 써 보라고.”

    “맞아요. 특히 아카시아꿀이 좋다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그걸 한번 써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좀 더 파나르 색도 입힐 수 있잖아요.”

    파나르에 꿀이 유명하다는 말은 여기저기 지나가며 들어 봤지만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유명하다는 것치곤 꿀로 만든 음식이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다. 시장 곳곳에서도 원물 그대로의 꿀을 팔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여태 먹었던 파나르 음식에도 꿀은 들어가지 않았고.

    나 역시 요리에 꿀 특유의 향이 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굳이 사용하진 않고 있었다.

    “일단은 제가 한번 맛을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꿀 향이 너무 강하면 괜히 음식 맛을 망칠 수도 있어서요.”

    “그럴 수도 있군요. 그럼 아카시아꿀 같은 건 향이 너무 세서 음식에 쓰기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네요.”

    “네 아무래도 좀.”

    “여튼 장 셰프가 한번 생각해 봐요. 떡갈비를 만들어서 나눠 주는 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근데 좀 더 파나르의 색이 담기면 좋겠다는 게 내 의견입니다. 정 안되면 그냥 한국식으로 해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적당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떡갈비 양념에 꿀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꿀 향이 은은하게 나며 조화를 이뤄야 좋은 것이지 너무 향이 강하면 균형이 아예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일단 내가 파나르 꿀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곧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꿀이 들어간 음식을 맛보면 더 그 향의 세기를 좀 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

    음식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기면 역시 윤아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빨랐다.

    간판도 없는 식당을 알고 있을 정도면 파나르의 식문화는 전부 꿰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전화를 들어 윤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윤아야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라마단 기간이잖아. 너무 힘들어.

    -쉽지 않지? 그러니깐 적당히 하고 포기해.

    -그럴 순 없지. 이깟 단식도 못 하면서 어떻게 통역사가 될 수 있겠어.

    전화를 받은 윤아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날 정도였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힘이 없을 법도 하지.

    -근데 무슨 일이야?

    -궁금한 게 있어서. 혹시 파나르에 꿀로 만든 음식 같은 게 있어?

    -꿀?

    -응 파나르 꿀이 유명하다는 말은 들어 봤는데 아직 꿀로 만든 음식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유명한 게 맞기는 해?

    윤아에겐 궁금했던 점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

    -유명하지. 싸고 품질이 좋아서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제일 많이 사 가는 게 꿀이야.

    -그래? 근데 뭔가 티를 안 내는 거 같지?

    한국의 제주도에만 가도 귤로 만든 온갖 특산품이나 음식들이 즐비했다. 어디든 유명한 특산물이 있으면 그걸 내세우느라 바쁜데 파나르는 그런 걸 볼 수 없었다.

    -파나르 사람들은 특별히 그런 거에 신경 안 쓰는 것 같아. 사 갈 거면 사 가고 아니면 말고.

    -되게 쿨하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꽤 잘 팔리니깐 그런 거겠지. 실제로도 잘 팔린대.

    -그렇구나. 그럼 혹시 꿀로 만든 음식 같은 거 뭐가 있어? 우리가 먹었던 것 중에는 없지?

    -꿀로 만든 음식이라…. 우리가 먹었던 것 중에는 없지만 괜찮은 게 하나 있긴 있어.

    -오 정말? 뭔데!

    -요리는 아니고, 케이크 종류야.

    -오 케이크면 더 좋지. 만찬에 활용할 수도 있고.

    역시 항상 원하는 정답을 알려 주는 솔로몬 같은 윤아였다. 덕분에 파나르 사람들이 꿀을 음식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오늘 퇴근하고 가 볼래?

    -너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하는 거 아니었어?

    -어? 그렇긴 한데 디저트는 괜찮아.

    -그게 무슨 말이야.

    -여튼 괜찮아. 잔말 말고 갈 거야 말 거야?

    -난 당연히 가야지.

    단식 중 디저트는 괜찮다는 윤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 * *

    퇴근 후.

    윤아의 자신만만한 걸음을 앞세워 한 카페에 도착했다. 가게 안이고 밖이고 온갖 꽃으로 가득 차 있는 개성 있는 카페였다.

    “우와 카페 이쁘다. 파나르에도 이런 곳이 있었어?”

    “그치 이쁘지? 새로 생긴 곳인데 파나르에도 이렇게 이쁜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

    한국 카페들의 커피 맛은 이미 수준급으로 상향 평준화되었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도 필수사항이 되었다. 이제는 퀄리티 높은 디저트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파나르 역시 느리지만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파나르 식당이나 카페들은 그냥 먹고 마시는 용도 말곤 별 의미가 없었는데 요샌 달라졌어. 한국이랑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나 봐. 이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주인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다만 인기 있는 카페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과는 달리 여유로웠다.

    “손님이 많진 않네.”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안스타 같은 걸 보고 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뿐이거든. 나처럼.”

    “그렇구나.”

    윤아의 농담을 가볍게 무시하고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주문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윤아가.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하나 시켜 주고 나머진 네가 알아서 시켜 줘.”

    “알았어. 그럼 내가 알아서 시킬게.”

    윤아는 군침을 한 번 삼키더니 주문을 했다.

    “홍차 두 잔이랑 메도빅 케이크 주세요.”

    “윤아야 홍차 아니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야.”

    “이번엔 홍차랑 먼저 먹어 봐. 나 한번 믿어 봐.”

    “뭐… 알았어. 근데 방금 뭐라고 발음한 거야? 메도빅?”

    “응 메도빅. 파나르식 케이크인데 이 케이크를 꿀로 만들어.”

    “오 역시 달콤한 건 디저트지.”

    파나르엔 천연 벌꿀은 물론이고, 수십 가지 품질 좋은 꿀을 값싸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좋은 꿀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는데 디저트에 사용되고 있었구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1세의 아내인 엘리자베타 여왕이 꿀을 엄청 싫어했대. 근데 새로 온 요리사가 그걸 모르고 꿀로 케이크를 만들었대.”

    “아이고….”

    괜히 감정이 이입되어서 나도 모르게 탄식을 했다.

    “욕 엄청 먹었겠네.”

    “아니. 여왕이 엄청 맛있게 먹어서 그 후론 자주 만들었대.”

    “그래? 꿀 싫어한다더니 아닌가 보네.”

    “그게 포인트야. 꿀을 싫어하는 사람이 먹어도 꿀 맛이 안 나는 꿀 케이크.”

    “에이 말도 안 돼. 나도 음식에서 꿀 향 나는 거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진짜야 한번 먹어 봐.”

    때마침 주문한 메도빅 케이크와 홍차 두 잔이 나왔다.

    “케이크 색깔도 꿀 색깔이네.”

    “맞아 먼저 이 메도빅 그대로의 맛을 한번 느껴 봐 봐.”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윤아의 말을 따라 케이크 한 조각을 가득 입에 넣었다.

    “오! 진짜 꿀 맛이 하나도 안 나.”

    “내 말이 맞지?”

    “진짜 꿀 들어간 거 맞아?”

    층층이 쌓여 있는 빵에 달콤한 꿀이 듬뿍 스며들어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 냈다. 중간중간 발려 있는 크림은 달콤한 꿀에 밀려 조화로운 맛을 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식감도 독특하고, 너무 많이 달지도 않고 진짜 좋다. 어른들이 먹기에 딱인 것 같아.”

    “그래서 꿀을 싫어하던 여왕도 만족하고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크를 먹고 이 홍차도 한 모금 해 봐. 진짜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커피 대신 홍차가 더 잘 어울린단 말이지?”

    윤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 하나를 믿고 메도빅 케이크 위로 홍차 한 모금을 털어 넣었다.

    “와아….”

    “어때?”

    “쌉쌀한 홍차의 향이 달콤한 꿀이랑 만나서 조화롭다. 그리고 약간 뻑뻑한 느낌이 있는 케이크가 촉촉해져서 더 좋아.”

    “그치? 이 메도빅 케이크는 커피보다 홍차가 좀 더 잘 어울리는 디저트야.”

    메도빅 케이크는 달콤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꿀의 향은 거의 나지 않았다.

    “꿀 향이 안 나니깐 신기하고 좋다.”

    “그렇긴 한데 이건 오리지날 메도빅 케이크고, 파나르 사람들한테 더 인기 있는 메도빅 케이크는 이거야.”

    “뭐가 달라?”

    “이건 아카시아꿀로 만든 거라 꿀 향이 아주 진해.”

    러시아에서 물 건너온 메도빅 케이크가 파나르의 꿀을 만나서 현지화가 되었다. 그 도중에 꿀 향이 거의 나지 않는 원조 메도빅보다 아카시아꿀의 향이 가득한 파나르식 메도빅 케이크가 더욱 인기를 끌고 있었다.

    “파나르 사람들은 꿀 향을 좋아하거든. 굳이 음식으로 만들어 먹지 않는 이유도 원물 그대로의 맛과 향을 느끼고 싶어서야. 그냥 퍼 먹는 거거든.”

    “그래? 그건 또 몰랐네. 그럼 꿀 향이 굳이 안 나게 만들 필요는 없겠구나.”

    파나르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떡갈비라면 내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었다.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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