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7화 (128/202)
  • 127. 라마단

    음식은 비록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매력적인 식당이었다. 이름도 맘에 들었고.

    좀 더 여유롭게 식당을 둘러보고 주방장님과 인사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 윤아였다.

    “왜? 뭐 때문에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할 일이 많거든. 오늘은 다 먹을 거라고 했잖아.”

    윤아는 고려인 식당을 빠져나와 또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다 먹겠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근데 도착한 식당은 맛있는 곳이었지만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레스토랑.

    이 식당을 오기 위해 굳이 왜 서둘러 움직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려인 식당은 의미라도 있었지.

    “피자랑 샐러드랑 파스타 하나 그리고 이 샌드위치도 주세요. 콜라도 두 잔 주시구요.”

    “왜 이렇게 많이 시켜? 방금 면을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가 터질 것 같은데.”

    “괜찮아 내가 다 먹을게. 너무 많으면 그냥 남겨. 난 내일부터 한 달 동안은 맛도 못 볼 테니까.”

    “한 달? 한 달 동안 다이어트하는 거야?”

    속으론 한 달 동안 하는 다이어트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괜히 농담 한마디에 상처라도 받을까 봐.

    “뭐 다이어트라기보다 혹시 덕수 너 라마단이라고 알아?”

    “라마단? 그 무슬림들이 낮에는 밥이랑 물 안 먹고 기도하는 거?”

    “응 맞아 그거. 내일부터 라마단이 시작되거든.”

    “그래? 근데 네가 라마단은 왜?”

    내가 알고 있는 윤아는 종교가 없다. 게다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를 따를 일은 더더욱 없다. 삼겹살 앞에서 생기 넘치는 그 눈빛을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라마단 기간 때는 낮에는 물과 음식을 전혀 안 먹고 해가 진 후에 음식을 먹거든.”

    “응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

    “근데 그거 요즘 유행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아?”

    “유행? 다이어트야 뭐 항상 유행이었지.”

    “그거 말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이랑 비슷하지 않냐는 말이었어.”

    “아! 간헐적 단식? 그러고 보니 그러네.”

    하루에 16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한 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서 체중과 건강을 동시에 관리하는 간헐적 단식.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들이 행하는 단식은 일종의 간헐적 단식과 같았다.

    “이참에 나도 간헐적 단식이랑 다이어트 같이 병행해서 짧고 굵게 해 보려고. 요즘 살이 많이 찐 것 같아서.”

    “그렇구나. 무슬림들이 아니어도 라마단을 하기도 하는구나.”

    “세계의 많은 의사들이 라마단 기간에 하는 단식법이 건강에 좋다고 일반인들에게도 권유하기도 했어. 대신 너무 폭식을 하면 안 좋지만.”

    “불교에서 하는 108배를 권하는 것처럼 그런 건가 보다.”

    “응 딱 맞아. 덕수 너도 같이 해 볼래? 나도 이번이 처음이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생각을 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방 일은 육체적으로 너무 고된 일이다. 제대로 먹지 않곤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야 아무래도 나는 힘들 것 같아.”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해 보자. 이번엔 내가 해 보고 어떤지 말해 줄게.”

    “알았어. 근데 이제 좀 천천히 먹으면 안 돼? 또 뭐 먹을 게 있어?”

    왜 과도하게 식탐을 부렸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윤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먹는 속도는 여전히 느려지지 않았다.

    이걸 먹고 또 뭔가를 먹으러 갈 순 없는 양이었다. 윤아가 많이 먹긴 해도 이 정돈 아니었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거든. 그것도 사러 가야 해.”

    “뭘 사야 하는데?”

    “고기.”

    “고기? 파나르에 싸고 널린 게 고기인데 왜 서둘러.”

    작년에는 파나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라마단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내가 몰랐던 것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재밌는 얘기들을 윤아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라마단 기간이 다가올 때쯤엔 좋은 고기를 구하기가 힘들어.”

    “저녁에 밥을 먹어야 하니깐 미리 고기를 사서 쟁여 두기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것도 있고 라마단 기간 때는 사람들이 고기 기부도 많이 하거든.”

    “고기를 기부해?”

    종교의 본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서로 돕고, 함께 어우러져 지내고자 하는 목적은 비슷했다. 이슬람교 역시 그러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건강하고 스트레스 없이 키운 양을 라마단 기간에 통째로 잡아서 고아원이나 독거노인들한테 나눠 주거든.”

    “아 할랄푸드처럼 양을 잡는 거야?”

    “맞아 그렇게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힘든 사람들을 돕는 거지. 그래서 이 시기엔 빨리 안 가면 좋은 고기가 잘 없어.”

    새롭게 알게 된 파나르 문화가 썩 맘에 들었다. 세상에 힘든 사람은 많지만 내가 요리사라 그런지 유독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 맘이 항상 불편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나눠 주고 있다니.

    괜히 동참하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

    “나도 그런 양 한 마리 사 주고 싶다. 밥 못 먹는 애들한테 좀 나눠 주라고.”

    “그래? 근데 굳이 양 한 마리를 전부 사지 않아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있어.”

    “오! 어떻게?”

    “일단 이것 좀 다 먹고 알려 줄게.”

    윤아는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제 배 터지겠다. 이 정도면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거 같애.”

    “내일 아침 되자마자 배고프다에 한 표.”

    “아니거든! 아니 사실 나도 그럴 거 같아. 그래도 뭐 한번 해 보는 거지. 꼭 살은 안 빠지더라도 디톡스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 정도 목표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지.”

    단호함이라곤 1도 느껴지지 않는 윤아의 다짐을 뒤로하고 시장에 있는 정육 코너로 향했다. 윤아의 말대로 이미 많이 사람들이 앞다투어 고기를 사고 있었다.

    “벌써 쓸 만한 고기들은 다 팔린 것 같네.”

    “괜찮아 우린 식당이 아니라서 적당히 먹을 만한 고기만 사면 돼.”

    “근데 그 기부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남은 고기를 사 주는 건가?”

    엄청난 양의 고기가 팔려 나가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 먹을 만한 고기를 기부하지 못할까 봐.

    기왕이면 괜찮은 고기를 사서 주고 싶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일은 없어야 했으니까.

    “일단 엄마 심부름부터 하고 보여 줄게.”

    “응 알았어.”

    윤아는 부모님이 시킨 심부름으로 소고기 5kg을 구매했다. 가격은 대략 6만 원 정도.

    역시나 한국의 소고기값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품질도 좋은 편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윤아는 10만 원 정도에 달하는 파나르 지폐 한 장을 건네고 소고기를 받았다. 그리곤 곧바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 윤아야 너 거스름돈 안 받았어.”

    “알아.”

    “알아? 그럼 빨리 가서 받아 와야지.”

    “일부러 안 받은 거야.”

    “엥? 400원도 아니고 방금 못 받은 거스름돈은 40,000원인 거 알지?”

    “당연히 알지.”

    당연히 알면서 왜 그걸 안 받겠다고 하는 건지.

    로또라도 당첨된 건가?

    오늘 만나자마자 지금까지 하는 행동들이 전부 평소와 달랐다.

    “애가 무슨 이렇게 낭비벽이 심해? 100원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지.”

    “어쩜 말투가 우리 아빠랑 똑같냐? 잔소리 좀 그만해. 그거 기부한 거야.”

    “기부라니?”

    윤아가 말한 고기 기부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양이나 소를 한 마리씩 사서 기부할 순 없잖아.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이 있어야 고기를 사서 나눠 주러 다니겠지?”

    “그렇긴 하지.”

    “그래서 이렇게 라마단 기간 동안엔 고기를 사고 남은 잔돈을 안 받는 문화가 있어.”

    “잔돈을 안 받아? 신기하다.”

    “그럼 정육점 사장님들은 그 잔돈을 모아서 기부를 하거나 그만큼의 고기를 보육원 같은 데 나눠 주는 거지.”

    “오호.”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멋있는 문화였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많은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었다. 많게는 윤아처럼 몇만 원 단위의 거스름돈을 기부하기도 했고, 적게는 몇십 원까지.

    그런 분위기 덕에 남녀노소 누구나 기부에 쉽게 동참할 수 있었다.

    “근데 윤아야.”

    “응?”

    “만약에 정육점 사장님들이 잔돈만 받고 기부를 안 하게 되면 어떻게 돼? 날름할 수도 있잖아.”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 사람을 믿는다기보다 그 종교를 믿는 거야. 그래서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굳이 신경 쓰진 않아. 그리고 실제로 정육점 사장님들도 종교랑 관련된 일이라 슬쩍하긴 어렵대. 다음 생에 벌 받을까 봐서.”

    “그렇구나.”

    “무슬림들은 카르마를 믿거든. 그래서 종교와 관련된 일은 최대한 양심을 지키는 편이야.”

    서로를 믿고 돈을 건넨다라.

    종교라는 건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그 힘은 정말 강력했다.

    이참에 나도 쉽게 기부를 할 수 있는 문화에 동참하기로 하고 고기 한 덩어리를 구매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엔 건강하고 당신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감사합니다.”

    덤으로 얻은 정육점 주인의 기분 좋은 덕담까지.

    가능만 하다면 한국에서도 유행시키고 싶은 문화였다. 물론 한국에선 양심을 파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럼 이제 다 산 거야?”

    “응응 나는 다 했어.”

    “근데 시장이 뭔가 휑하다.”

    “그치? 라마단 기간에는 고기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잘 팔려. 낮에 식사는 안 하지만 다들 서로 돕는 분위기거든. 추수 감사절처럼. 채소고 과일이고 전부 서로 나눠 주고 그래.”

    “뭔가 좋다. 이런 분위기.”

    호텔에서 근무할 때가 문득 떠올랐다.

    비록 파나르 사람들과 달리 보여 주기식 자선 행사였지만 그런 행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수백 번 들었던 감사한다는 인사.

    그리고 스테이크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다며 자랑하던 보육원의 아이들.

    그 웃음 소리와 목소리가 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다나의 김치를 받으며 신기해하며 고마워했을 사람들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 대사관에서도 라마단 기간에 뭔가 하면 안 될까?”

    “우리도?”

    “응. 저번에 대사님도 자선 행사 같은 거 한번 하고 싶다고 하셨거든. 흘러가는 말이긴 했지만.”

    “나쁠 건 없지. 이전에도 자선 행사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니까.”

    “그래 다나는 개인이 나서서 그런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 같은 대사관이 가만있을 순 없지.”

    “당연히 하면 좋지. 근데 할 거면 라마단 기간에 하는 게 좋아. 아무래도 다들 그런 분위기일 거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부담을 덜 받을 테니까.”

    개인적인 일이지만 파나르에 와서 많은 것을 얻었다. 돈은 물론이고,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경험이나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

    덕분에 나는 1년 조금 넘은 시간 동안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성장을 했다.

    아직 얻을 게 더 많은 나라였지만 이렇게 날 성장시켜 준 파나르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대사님한테 한번 여쭤봐야겠다.”

    “응응 그래 보자.”

    나와 윤아는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 배도 무거워졌고, 양손엔 혼자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고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땀방울이 흘렀지만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 * *

    파나르 대사관 관저.

    최근에는 우리 관저에 대한 일보단 외부 일정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타지크에 다녀온 뒤 프랑스 대사관까지.

    파나르 대사관에 소홀해진 것은 아닐까 싶어 아침부터 괜히 주방 구석구석을 닦으며 청소를 했다.

    “장 셰프.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분주해요.”

    “안녕하십니까 대사님. 그냥 눈에 먼지가 좀 보여서요.”

    “하하 요즘 본인 주방에 좀 소홀했던 것 같죠?”

    내 행동을 보고 귀신같이 알아채는 김용수 대사였다. 전혀 악의가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그저 내 맘을 대변해 주는 것뿐.

    그만큼 서로의 맘을 잘 이해한다는 의미겠지.

    “좀 더 신경 써야겠습니다. 그러니 오, 만찬 행사 좀 많이 잡아 주세요.”

    “허허 다른 나라 요리사들은 만찬 좀 줄여 달라고 성화라던데 우린 오히려 내가 부담이 되네요.”

    “아, 부담이 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원한다면 많이 계획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대사님.”

    “네 말씀해 보세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가장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아침이었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때.

    얼마 전 윤아와 나눴던 얘기를 김용수 대사에게 전해 주었다.

    “음… 그건 나도 몰랐네요. 참 좋은 문화군요.”

    “맞습니다. 라마단이 단식이라는 것에만 집중되어 알려졌는데 그것 말고도 좋은 문화가 많더라구요.”

    “그렇네요.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들에게 고기를 나눠 주는 건 좋은 문화 같네요.”

    “그래서 말인데 저희 대사관에서도 이런 행사를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다나 씨가 했던 것처럼요.”

    뭔가 자극을 주기 위해 말미에다가 괜히 다나의 이름까지 넣었다. 얼마 전에 주방장님과의 대화에서 다나의 칭찬이 오갔었으니깐 느낀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그런 행사를 한 번쯤 해 보고 싶었구요. 그렇지만 방식을 조금 바꿨으면 하는데요.”

    “방식이요?”

    “네 파나르 사람들이 하던 것처럼 똑같이 하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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