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5화 (126/202)
  • 125. 감사의 선물

    “제가 추천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일개 요리사일 뿐인데요.”

    “그런가? 그래도 요리사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하다며.”

    “그렇긴 해도 그 사람들이 채용에 도움을 주진 않을 테니까요.”

    김상현 주방장은 사뭇 진지했다.

    나와는 달리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 주방장님이 해외로 나온다면 좀 더 리스크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추천은 하겠지만 좀 더 오랜 시간 고민을 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진짜 원하시면 저희 대사님한테 부탁해 볼게요. 저희 대사님의 추천이면 꽤 입김이 셀 테니까요.”

    “그래? 근데 얼굴도 한번 안 본 분한테 그런 부탁을 하려니깐 좀 그렇다.”

    “그래도 김용수 대사님이 이 만찬을 꼭 잘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어찌 보면 주방장님이 대사님에게 도움을 준 거나 다름없어요.”

    “그렇긴 해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한들 얼굴도 한번 안 보고 그런 부탁을 하는 게 영 맘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주방장님의 짐을 빨리 덜어 줘야겠다.

    “그럼 관저에 한번 오실래요?”

    “관저에? 파나르 대사관 관저?”

    “네. 꼭 구경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내가 가도 될까?”

    주저하는 김상현 주방장에게 김용수 대사의 말을 전했다.

    “안 그래도 대사님이 주방장님 한번 뵙고 싶으시다고 관저에 초대하셨어요.”

    “나를? 왜?”

    “제 스승님이시니까요.”

    “그게 왜?”

    “왜라니요. 제가 지금 파나르에서 얼마나 유명한 요리사인지 모르시나요? 그런 요리사의 스승은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으신 거죠.”

    김상현 주방장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전부 농담이고, 대사관엔 가족이나 지인들이 오면 사무실이나 관저에 초대해 구경시켜 주는 게 있어요.”

    “그래?”

    “그러니깐 맘 편하게 오세요. 오셔서 같이 먹을 음식도 만드시구요.”

    “초대받았는데 내가 먹을 음식도 내가 만들어야 해?”

    그냥 맘 편히 내가 만든 음식을 먹게 두고 싶지 않았다. 주방장님과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웠으니까.

    내가 관리하고 있는 주방에서 같이 요리를 하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기도 했고.

    “한 이틀 쉬시고 낼모레쯤이면 괜찮겠죠?”

    “당장 내일도 좋지.”

    “좀 쉬시죠. 저도 쉬고 싶어서요.”

    “그래 그러자.”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우리는 한방에 누워 새벽 늦게까지 요리에 대한 토론을 나누다가 잠들었다.

    * * *

    파나르 한국 대사관.

    아침부터 한국 비자를 받으려는 많은 파나르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복귀했을 땐 직원들도 손님들도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눈에 띄게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택배 왔습니다.”

    시끌벅적하던 대사관에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그 부피가 크진 않았지만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선물이었다.

    대사관을 찾은 사람들의 시선도 고급스러운 포장의 선물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님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올 게 없는데. 어디서 왔나요?”

    “음… 필리핀 대사관에서 왔네요. 최근에 만나신 적 있으세요?”

    “필리핀이요? 아뇨 아직 한 번도 뵌 적은 없어요.”

    처음 도착한 선물은 필리핀 대사관에서 보낸 것 하나뿐이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후가 되자 줄지어 택배가 도착했다.

    그중에는 커다란 꽃바구니가 끼어 있던 것도 있었다.

    “뭐지? 갑자기 웬 선물들이 배달되는 거죠?”

    “그러게요. 혹시 폭탄 같은 거 아니에요? 공짜 치즈는 쥐덫 안에만 있다고 하잖아요.”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싱가포르 등.

    김용수 대사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나라의 대사관에서 보낸 선물들이 줄을 지었다.

    “대사님. 혹시 모르니깐 일단 선물을 열지 말아 보세요. 확인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잘못 보낸 게 아닌지.”

    안지용 참사관이 이유 없는 선물에 경계심을 표했지만 김용수 대사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선물의 의미를 알겠다는 얼굴.

    “나라들을 보니 우리한테 온 선물이 맞는 것 같네요.”

    “네? 선물 보낸 나라의 대사님을 뵌 적 있으세요?”

    “아니요. 저는 만난 적 없지만 장 셰프가 만났죠.”

    “요리사님이요? 요리사님이 대사님들을 왜요?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요?”

    김용수 대사의 입에서 장덕수 요리사의 이름이 나오자 직원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덕수가 프랑스 대사관에서 만찬을 치렀단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장 셰프가 프랑스 대사관 요리사의 만찬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때 왔던 대사들 같군요. 전부 동남아시아 연합의 국가들인 거 보니.”

    “장덕수 요리사 때문에 놀랄 일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끝도 없네요. 대단합니다. 프랑스 대사관 요리사랑은 또 언제 친해졌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듣자 하니 파나르에 있는 대사관 요리사들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하던데.”

    “허… 참.”

    안지용 참사관과 김준우 서기관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여튼 이 선물들 폭탄 아니니깐 전부 열어서 확인해 보고 나눌 수 있는 거면 직원들끼리 나눠 가지고, 편지 같은 것만 저에게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장 셰프 몫은 잊지 마시구요.”

    “당연하죠. 요리사님한테 온 거나 다름없는데.”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관에서 보낸 선물들은 직접 만든 디저트, 그림, 장식품, 와인 등등 고급스러우면서도 정성이 담겨 있는 선물들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선물에도 빠짐없이 대사들이 자필로 쓴 감사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공식적으론 김용수 대사를 향한 편지였지만 내용을 읽어 보면 그 고마움이 덕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 셰프 몫의 선물은 내가 전해 줄게요.”

    “네 대사님. 그리고 내일 저녁에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끼리 한잔하기로 했는데 같이하시겠어요?”

    안지용 참사관의 제안을 김용수 대사는 점잖게 거절했다.

    “미안해요. 내일은 장 셰프랑 저녁을 하기로 했어요.”

    “그럼 요리사님도 같이 오시면 되죠.”

    “또 한 분이 더 올 거라서요. 다음에 같이해요.”

    “또 누구요?”

    김용수 대사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을 나섰다. 양손에는 선물과 편지 뭉치를 가득 안고.

    * * *

    다음 날 파나르 대사관 관저.

    김용수 대사님과 김상현 주방장님이 참석하는 저녁 만찬이 있는 날이었다. 또 시장이나 구경하고 있을 주방장님을 일찌감치 관저로 불렀다.

    “이야 이거 무슨 영화에서나 보던 대저택이네.”

    “맞죠? 근데 저번에 파키스탄 대사관 요리사한테 들어 보니깐 우리 규모가 작은 거래요.”

    “이것도 어마어마하구만. 나도 이렇게 내 전용 주차장 한 칸만 있으면 좋겠다.”

    김상현 주방장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좁디좁은 땅의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대저택이었으니까. 특히 전용 주차장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저녁 준비하셔야죠.”

    “진짜 내가 만들어야 해?”

    “아니요. 준비는 제가 할 테니 옆에서 그냥 말동무나 해 주세요.”

    “그건 당연히 해 주지.”

    김상현 주방장은 1년간 내 손길이 닿은 주방을 보자 감탄했다. 규모나 시설도 훌륭했지만 동선이 아주 효율적으로 짜여 있었다.

    “이런 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요리를 혼자 맘껏 하는구만?”

    “네 재밌겠죠?”

    “그러네. 진짜 재밌겠다.”

    김상현 주방장을 옆에 앉히고 저녁에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만찬이라고는 하나 그냥 우리끼리 저녁 한 끼 하는 거란 생각에 부담 없이 준비했다.

    “뭔 고명까지 올리냐 그냥 대충 먹어.”

    “그래도 주방장님도 엄연히 손님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고맙긴 한데 괜히 부담스럽다.”

    “즐기세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손을 보태려는 주방장님을 겨우 말리고 마저 음식 준비를 끝냈다.

    주방장님이 이른 시간에 도착한 바람에 퇴근을 하는 김용수 대사를 함께 맞이했다.

    “어? 벌써 와 계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놈이 일찍 와 달라고 해서 제가 서둘러 온 것뿐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상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용수 대사입니다. 장 셰프의 스승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하하 스승은 무슨 스승입니까. 그냥 직상 상사였죠.”

    김용수 대사와 김상현 주방장은 나이 차이가 제법 있었지만 그저 중년의 남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었다.

    술과 맛있는 음식만 있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나 역시 그런 분위기가 익숙했고, 좋았다.

    “편하게 식사하시면서 얘기 나누시죠.”

    “네 알겠습니다.”

    “혹시 주방장님 와인 드십니까?”

    “마시긴 하는데 즐겨 마시진 않습니다.”

    “역시 술은 소주지요?”

    “동의합니다.”

    김용수 대사가 선물로 준비해 온 고급 와인은 도로 박스 안으로 들어가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소주 몇 명을 열었다.

    마침 준비한 음식도 얼큰한 찌개였으니 딱 알맞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주방장님이 이번 프랑스 대사관 만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셨다구요?”

    “활약은 무슨. 그냥 재미로 했을 뿐입니다.”

    “재미로 한 실력이 그 정도면 도대체 요리 실력이 얼마나 대단하신 겁니까.”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운은 아주 잠시 느껴졌을 뿐, 금세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소주 몇 잔이 오고 가니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듣자 하니 주방장님도 대사관 요리사에 관심이 있으시다구요?”

    “하하 맞습니다. 파나르에서 며칠 지내보니깐 참 좋더라구요. 재밌는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여기가 참 괜찮은 나라죠?”

    김상현 주방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 프랑스 대사관에서 만찬을 치르고 인정을 받으니 그 느낌이 참 새롭더라구요. 게다가 그 만찬이 한국 대사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깐 더 기분이 좋더라구요.”

    “맞습니다. 주방장님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호텔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참 색다르더군요. 국가 대표 운동 선수들의 감정이 이런 걸까 싶네요.”

    “국위 선양하는 느낌이란 게 나쁘지 않죠?”

    “네 평소엔 맨날 정부 욕이나 하고, 이 나라는 글러 먹었다고 욕만 해 댔는데, 내 요리가 한국에 도움이 됐다고 하니깐 그게 또 아이러니하게도 뿌듯하더라구요.”

    김상현 주방장의 말에 김용수 대사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사실 저희 대사들이 원래 나라 욕 제일 많이 합니다.”

    “그렇습니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요.”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일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느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김용수 대사에게 김상현 주방장을 위해 추천서를 써 줄 수 있냐고 미리 부탁했었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김용수 대사 역시 주방장님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본 뒤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추천할 수는 없는 법.

    좀 더 생각할 기회를 주자는 의미였다.

    “생각을 해 보니 어떨 것 같습니까? 호텔에서 총주방장으로 일하시는 것보다 대사관 요리사로 일하는 게 더 재밌으실 것 같던가요?”

    “물론 외국에서 요리를 해 보는 건 재밌는 경험이 될 겁니다. 그렇지만 저에겐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어서요.”

    역시나 그게 문제였다.

    혼자만 요리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국을 떠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대사관 요리사는 아직 공식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지 않았다.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서 그날 이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김상현 주방장은 내 얼굴을 한번 힐끗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해외에선 꼭 요리를 해 보고 싶습니다. 근데 대사관은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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