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4화 (125/202)
  • 124. 주방 식구

    주방을 빠져나오자 대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특히 잠시 스친 일본 대사의 표정은 오묘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경계하는 표정이랄까.

    그런 시선들 사이에서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대사관 요리사 장덕수입니다.”

    “아! 그 유명한 대한민국 셰프가 당신이었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어리네요. 이름이 많이 들리길래 우리랑 비슷한 나이쯤 되나 싶었는데.”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들과 일본 대사는 이미 내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봤다는 반응이었다.

    “대한민국 대사관이 요즘 파나르에서 제일 바쁘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네요. 프랑스 대사관에서까지 한국 대사관 셰프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테오 셰프에게 배울 점이 많아 오게 되었습니다.”

    “하하 겸손하시네요. 테오 셰프는 장덕수 셰프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

    나와 테오는 서로를 마주 보며 멋쩍게 웃었다.

    훈훈한 분위기에 성미 급한 일본 대사가 끼어들었다.

    “그것보다 이 민물장어는 어디서 어떻게 구한 겁니까? 제가 요리사에게 휴가까지 줘 가면서 이걸 구해 보라고 했는데도 구하지 못하던 걸 한국 요리사가 구했다는 소리를 듣고 반가우면서 놀랐습니다. 사실 조금 화가 났기도 했구요.”

    일본 대사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었다.

    “저도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카차이 호수 근처에서 살고 계시는 주민분들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면 구할 수 있습니다.”

    “카차이 호수요? 거기에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일본 대사뿐만 아니라 쥴리앙 대사 역시 그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카차이 호수는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손수 장어를 잡아 줄 만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나는 파나르에서 오래 산 교민도 아니었고, 한 나라의 대사들처럼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의 눈엔 거기까지 손이 닿은 내가 신기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올해 카차이 지역 축제 때 알게 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구해 주셨습니다.”

    “그래요?”

    “아! 이번 축제 때 한국 대사관이 감사패도 받으셨죠?”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 중 한 명이 카차이 축제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신 나서서 설명해 주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대단하네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네요 우리 일본 대사관은.”

    “별일이 아니니깐 모르실 수도 있죠.”

    “근데 이 민물장어를 구한 것도 대단한데 이 칼 솜씨는 대체 어떻게 배운 겁니까? 내가 자주 가는 일본의 웬만한 식당들보다 훌륭한데, 당신은 한식 요리사 아닙니까?”

    일본 대사는 마지막 남은 장어 살 한 점을 입에 넣으면 호탕하게 웃었다.

    일본 대사관이 정보력이 부족하단 것을 알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억울한 게 사그라들었다고 말하는 대사였다.

    “제 스승님께서 일본 요리에 조예가 조금 깊으십니다. 이번에 연락을 드려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랬군요. 이 만찬을 위해 잠시 배웠다는 실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네요. 천재가 아닌 이상. 우리 일본 대사관 요리사가 잠시 배운 걸로 한국 요리를 이 정도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일본 대사관 요리사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김상현 주방장의 당부대로 주방장님의 정체를 따로 밝히진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만찬의 분위기는 이미 화기애애해져 있었다.

    “테오 셰프와 장덕수 셰프 덕에 오늘 훌륭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우리 대사들도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 우리 대사들은 겉으론 항상 웃고 있지만 그 뒤론 각자 무기 하나씩을 숨기고 지냅니다.”

    일본 대사는 마치 그것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쥴리앙 대사와 다른 대사들 역시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파견된 대사들은 각국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기 싸움을 해요. 하지만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매번 기 싸움을 하다 보면 금세 지쳐 버립니다.”

    “그렇겠네요.”

    “우리 대사들은 전부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다 비슷해요. 파견된 나라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하니까.”

    대사들뿐 아니라 요리사들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출신도, 호텔의 총주방장도, 호텔 출신 직원도.

    각자 나이도 경력도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이곳 파나르에선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직업만 아니면 밤새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눠도 될 만큼 공감대가 많을 겁니다. 다들 나이도 비슷하고, 영어도 유창하니 얼마나 재밌겠어요. 중년의 남자들이 수다 떠는 거 좋아하는 건 만국 공통일 텐데.”

    일본 대사의 말에 쥴리앙 대사와 다른 대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큰 소리의 웃음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졌다.

    “우리 대사들도 여기 있는 동안엔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도와주며 상생할 수 있다면 파나르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되고, 본인들의 나라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런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하하하 마지막 말이 핵심이네요.”

    대사들 역시 사람이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반인들보단 익숙하다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긴장하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밥 한 숟갈 넘길 때도 상대의 표정을 살펴야 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역일 것이다.

    그들 역시 서로 협조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터.

    “물론 현실적으론 불가능하겠지만 오늘 테오와 장덕수 셰프의 모습은 우리 대사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각 나라에서 배울 건 배우고, 인정할 건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

    “맞습니다. 아주 공감합니다. 그리고 또 부럽기도 하구요.”

    “맞아요. 저는 부럽다는 감정이 조금 더 앞서네요. 저렇게 자신들의 실력을 서로 인정하고, 맘 편히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나와 테오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성공적인 만찬이 되었단 사실에 서로를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일본 대사의 말처럼 서로의 실력을 온전히 인정하며 질투를 할 필요도 경계를 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갖고, 배울 수 있는 건 또 배워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오늘 테오와 주방장님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고 배울 수 있었다.

    아직 배울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김상현 주방장님을 보고 한 번 더 느꼈다.

    “저도 오늘 모이신 쥴리앙 대사님은 물론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님들과 최대한 상생하며 파나르 생활을 이어 갔으면 합니다. 오늘 이런 깜짝 선물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입니다. 저희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일본 대사는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따로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동남아시아 연합의 대사들은 나와 테오를 향해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오늘 만찬에서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테오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주방에 돌아왔다.

    “어땠어?”

    김상현 주방장님은 주방으로 들어오는 나와 테오의 표정을 보고 성공적인 만찬이었단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직접 귀로 듣는 것만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드물었다.

    “최고였습니다 셰프.”

    “정말?”

    김상현 주방장은 양팔에 돋아난 닭살을 비벼 댔다. 그리고 대박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대박이라는 말이 뭐예요?”

    “엄청 대단했다는 말이에요.”

    “대박. 단어의 느낌이 좋은데요? 나도 이 말 써도 되죠?”

    “물론이죠.”

    테오와 주방장님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요 셰프 킴. 오랜만에 즐거웠어요. 마치 내가 처음 일했던 주방 같은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이런 기회를 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테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른 의미로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크기만큼은 똑같았다.

    “내가 이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서 요리사가 되기로 했어요.”

    테오는 자신이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어요. 크리스마스 예약을 전부 끝내고 다들 뛸 듯이 기뻐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허리는 끓어질 듯 아팠고, 발은 퉁퉁 부어서 서 있기도 힘들었어요. 크리스마스만 빼면 그냥 평소보다 바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그 많은 손님들을 우리가 전부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한지.”

    테오의 말에 나와 주방장님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매일 힘든 일을 함께 해내는 사이라 그런지 주방 직원들끼리 사이는 유독 특별하다. 직원이라는 말보다 주방 식구라는 말이 더 익숙할 정도로 가족처럼 사이가 끈끈했다.

    나 역시 휴가차 한국에 갔을 때도 호텔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주방 식구들의 관계는 끈끈했다.

    테오는 그때 처음으로 느껴 본 그 감정 때문에 평생 주방을 떠날 수 없었다.

    “사실 셰프가 되고 나서는 줄곧 외로웠어요. 그때 그 감정은 더 이상 느낄 수 없고, 매출 압박, 신메뉴, 미슐랭 스타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 부담감 등등. 예전처럼 즐겁게 일하는 게 쉽지 않았죠.”

    테오의 말에 나와 김상현 주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수 넌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냐. 셰프 출신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구만.”

    “그냥 그렇겠지라고 공감해 주는 거잖아요.”

    나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사장실에 불려 갔는데 모를 수가 없지. 주방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화려하면서도 외로운 자리인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하 셰프 장도 분명 이런 감정을 느낄 날이 올 거예요. 그 정도 실력이면 특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셰프 정도는 당연히 하게 될 거니까.”

    “네 명심할게요.”

    “오늘 셰프 킴과 셰프 장 덕분에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즐거웠어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는 것도 너무 좋았구요.”

    테오는 마치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뒤돌아보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테오는 아직 젊으니깐 잠시 수셰프 정도로 일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요리가 더욱 재밌을 수도 있는데.”

    “하하 그러기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때가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제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테오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목표가 있는 사람이었다.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 궁금하다라.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불안해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게 달랐다. 테오는 역시 비범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럼 우린 돌아가 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네 다음에 한 번 더 꼭 같이 요리해요. 셰프 킴.”

    “감사합니다 테오 그리고 쥴리앙 대사님.”

    우린 쥴리앙 대사와 테오의 환대를 받으며 프랑스 대사관의 높은 현관을 빠져나왔다.

    “주방장님 덕분에 오늘 만찬 잘 끝낼 수 있었어요.”

    “너도 고생 많았다. 근데 이거 잘 끝냈다고 덕수 너한테 득 될 게 있냐?”

    “글쎄요. 저한테는 없고, 김용수 대사님한테는 좋은 게 있을 수도 있대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기왕이면 한국 대사관에 좋은 게 있으면 더 좋지.”

    자정이 가까워진 늦은 밤이었지만 김상현 주방장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나 역시 고단한 몸과는 달리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덕수야.”

    “네 주방장님.”

    “나도 이참에 대사관 요리사 한번 해 볼까?”

    “주방장님이요? 평생 일하신 호텔 나오시게요?”

    “그러게. 내 인생의 절반을 그 호텔에서 보냈는데 나올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지만 주방장님을 말릴 생각은 아니었다.

    앞으로 H호텔 사장의 갑질은 더욱 심해질 거고 요리 자체에 회의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주방장님의 실력이라면 어디서든 굶어 죽진 않을 테니깐 나올 마음만 먹는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었다.

    “그럼 혹시 내가 대사관 요리사 지원하면 덕수 네가 나 좀 추천해 줄 수 있어?”

    “제가요?”

    “다른 나라 대사관에 나 좀 추천해 줄 수 있냐고.”

    “음… 제가 추천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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