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2화 (123/202)
  • 122. 리더십

    “진짜 있어? 구할 곳이 있어?”

    그 사람이라면 구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마침 얼마 전에 만나기도 했었으니 어렵지 않게 연락을 취해 볼 수 있었다.

    “될 것 같아요.”

    알렉스처럼 재력가에 미식가라면 바닷장어는 물론 민물장어까지도 충분히 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지체 없이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알렉스.

    -오 미스터 장. 잘 지냈어요?

    -덕분에요. 알렉스는 잘 지내요?

    -당연하죠. 저 요즘 J&J 분식 단골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갑니다.

    -정말요?

    -네 아주 맛있어요. 역시 미스터 장의 음식은 남달라요.

    -근데 평소에 그런 음식도 드시나요?

    -그런 음식이라뇨?

    한국에선 어린애들이나 값싸고, 가볍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한 게 분식이었다.

    중년 남자의 편견이겠지만 알렉스처럼 재력가들은 쉽게 분식을 즐기진 않을 것 같았다.

    -알렉스는 고급스러운 음식만 즐길 거 같아서요.

    -에이 저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거지 비싼 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맛만 있다면 MSG가 들어간 음식들도 즐겨 먹어요.

    -역시 음식을 제대로 즐기시는 분이시군요.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나보다 편견이 없는 알렉스였다.

    -근데 무슨 일 때문에 연락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파나르에서 장어라는 생선을 구할 수 있을까요?

    -장어요?

    -네 이번 만찬에 장어를 꼭 쓰고 싶은데 파나르에선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알렉스는 공감한다는 듯 옅은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 파나르에선 장어 구하는 게 쉽지 않죠.

    -그렇지만 알렉스는 구할 수 있죠?

    -바닷장어 정도는 제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요. 말하면 당장 잡아다 주실 분을 알고 있거든요.

    -오 그래요?

    역시나 알렉스의 영향력은 굉장했다.

    주방장님께 바닷장어는 구할 수 있다는 걸 바로 알려 주었다.

    “그럼 민물장어는 좀 안 되냐고 물어봐 봐.”

    “민물장어요?”

    “민물장어가 좀 더 고급이거든. 기왕이면 민물장어가 낫지. 일본 대사라면 그 정도 맛은 구분할 수 있을 거야.”

    바닷장어는 곧바로 구할 수 있다는 알렉스의 대답을 듣자 주방장님은 좀 더 욕심을 부렸다.

    바닷장어보다 좀 더 고급으로 통하는 민물장어.

    구할 수만 있다면 돈을 더 주더라도 민물장어를 요리하는 편이 나았다.

    -알렉스 그러면 혹시 민물장어도 구할 수 있어요?

    -민물장어요?

    -네 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음….

    민물장어라는 말에 알렉스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알렉스라도 이건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은 모양.

    -민물장어는 저도 파나르에서 한 번도 먹어 본 적은 없는데….

    -그런가요? 역시 쉽지 않군요.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바닷장어로도 충분합니다.

    -아니에요. 잘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스터 장이 그걸로 어떤 요리를 할지 궁금하네요.

    알렉스의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다.

    -저번에 카차이 축제 때 만났던 사람들 있죠.

    -그 형제분이요?

    -네. 그분들한테 부탁하면 잡아 줄 수도 있어요. 일 때문에 종종 연락을 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요?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고마워요 알렉스.

    카차이 지역 축제 때 만난 인연을 계속 이어 가고 있던 알렉스였다. 쿠므스도 꾸준히 공급해 주고 있었고, 카차이 지역에 호텔까지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용수 대사님한테 안부 전해 주세요. 저번에 했던 약속 잊지 마시라고.

    -아아 알겠습니다. 꼭 전해 드릴게요.

    한국 기업이 카차이 호수 주변의 개발 사업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관저에 한번 초대해 달라는 말도.

    알렉스는 카차이 시장과 함께 계속 지역 개발에 지속적으로 힘을 쓰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 옆에서 김상현 주방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좋은 식재료를 구한다는 게 저렇게 즐거운 일일까.

    내심 뼛속까지 요리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래? 구할 수 있대?”

    “한번 알아본대요. 공식적인 루트는 아니어도 직접 잡아 달라고 할 수 있대요.”

    “오 근데 그 알렉스라는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파나르에서 영향력이 대단한 것 같은데.”

    김상현 주방장에게 알렉스와의 인연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카차이 지역의 축제에서 있었던 일까지 전부 알려 주었다.

    김상현 주방장님은 재밌는 영화라도 보는 사람처럼 내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아 파나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구나. 괜히 대회에서 1등을 받은 게 아니었어.”

    “재밌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널 보니깐 외국에서 한 번쯤 요리를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드네.”

    “분명 도움을 될 겁니다.”

    “나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이상 새로운 걸 배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김상현 주방장님은 며칠간 느낀 게 많아 보였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김상현 주방장이 요리를 하며 즐겁길 바랐다.

    “장어를 구해 주면 제대로 손질할 수 있게 칼질 연습이라도 해 놔야겠다.”

    “주방장님이 칼질 연습을요?”

    “당연하지. 기본기는 항상 중요해. 그리고 장어처럼 손질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다룰 땐 더 중요하지.”

    알렉스의 대답이 오기 전까지 김상현 주방장님의 들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총주방장이 되고 나서도 저렇게 기본기를 다지는 모습은 존경할 만했다.

    김상현 주방장이 새로운 주방, 새로운 사람들과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낼지 궁금했다.

    * * *

    며칠 후 프랑스 대사관 앞.

    나와 김상현 주방장은 품 안에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안고 동남아시아 연합과 일본의 대사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러 이곳에 도착했다.

    처음 봤을 땐 높고, 어두침침하기만 했던 프랑스 대사관의 담벼락도 이제는 고풍스러워 보였다.

    “덕수야 장어는 아직 살아 있지?”

    “네 아직 꿈틀거리는 거 같네요.”

    알렉스는 역시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다.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커다란 민물장어를 산 채로 공급해 주었다.

    땅이 커서 그런지 파나르의 장어는 한국의 민물장어보다 크고 굵었다.

    살점이 많아 먹을 만한 요리가 탄생할 것 같았다.

    그 장어를 봤을 때 김상현 주방장님은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해적처럼 신난 표정이었다.

    “빨리 들어가서 손질하자. 살아 있을 때 해야 맛이 좋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누가 보면 그 장어 우리가 먹는 줄 알겠어요.”

    “살점이 얼마나 많을지 빨리 손질해 보고 싶다.”

    꿈틀거리는 장어가 들어 있는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프랑스 대사관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테오. 잘 지냈어요?”

    “잘 왔어요. 장 셰프.”

    “인사하세요. 말씀드린 김상현 셰프입니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는 테오가 우릴 반겨 주었다.

    테오는 김상현 주방장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본능적으로 서열을 느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김상현입니다.”

    “테오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미슐랭 스타 셰프님한테 제가 한 수 배우는 거죠.”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건네며 겸손을 떨었지만 오늘의 총괄 셰프는 김상현 주방장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김상현 주방장의 지시대로 나와 테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사를 끝으로 더 할 말은 없었다. 요리사들은 칼과 불로 대화를 나누면 될 터. 김상현 주방장은 곧바로 앞치마를 동여맸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처음 손발 맞춰 보는 거니깐 천천히 해 봅시다. 덕수는 나랑 일할 때 안 까먹었지?”

    “당연하죠.”

    김상현 주방장은 능숙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방을 장악해 갔다.

    “덕수는 육수 끓일 무 손질해 놓고, 테오는 이 닭고기 뼈를 전부 발라 줘요. 전부.”

    “예 셰프!”

    김상현 주방장의 지시 아래 나와 테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처음 같이 요리를 해 본 사이답지 않았다. 동선 역시 꼬이지 않고 척하면 척이었다.

    덕분에 부재료들 손질은 금세 완료되었다.

    “덕수야. 장어 상태가 어떤지 한번 확인해 봐 봐.”

    “네 알겠습니다.”

    “장어요? 오늘 메인 재료가 장어예요?”

    살아 있는 민물장어를 꺼내자 테오가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온갖 진귀한 식재료를 전부 다루는 미슐랭 셰프가 장어를 처음 봤을 리는 없었다.

    다만 파나르에선 구하기 쉽지 않은 식재료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아는 분한테 부탁해서 구했어요.”

    “와아 이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던데요.”

    파나르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식재료를 보자 테오도 관심을 보였다.

    “유럽에서도 장어를 먹죠?”

    “당연히 먹기야 먹죠. 근데 아시아만큼 다양하게 먹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론 아시아식으로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맛은 좋지만 손질하는 게 어려워서 저희도 사 먹어요.”

    “맞아요. 저거 손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전 아직도 제대로 할 줄 몰라요.”

    “미끄러우니깐 쉽지가 않죠. 손질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해요.”

    테오는 꿈틀거리는 장어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근데 유럽에선 장어를 어떻게 요리해요?”

    “유럽에서는 와인으로 잡내를 잡고, 살점을 구워서 샌드위치처럼도 먹어요.”

    “샌드위치요?”

    나와 김상현 주방장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도 못 해 본 장어 요리였다.

    “잡내만 잘 잡으면 은근히 맛있어요. 살점도 부드럽고, 흰살 생선은 아무 소스랑도 잘 어울려서요.”

    “그렇긴 하겠네요.”

    “그리고 혹시 베컴 아세요?”

    “축구 선수 베컴이요? 당연히 알죠.”

    “베컴이 보양식으로 자주 먹었던 음식이 이 장어로 만든 장어 젤리예요.”

    “윽…. 그건 더 상상이 안 가네요.”

    “젤리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지 스튜 같은 거예요. 그리고 또 훈제해서 먹기도 하고, 생각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어요.”

    “그렇구나. 몰랐네요.”

    유럽에도 이렇게 다양한 장어 요리가 있는지 몰랐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만 10초 만에 장어 손질을 끝내는 달인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 그럼 테오. 아까 말한 건 다 끝났나요?”

    “예 셰프 여깄습니다.”

    테오가 손질한 재료를 보여 주자 김상현 주방장님은 놀란 눈치였다.

    “테오! 일본 음식 처음 해 본 거 맞아요? 너무 잘하는데?”

    “그래요? 괜찮은가요 셰프? 저는 익숙하지 않은데, 이 사시미 칼도.”

    테오의 이마에는 땀이 한 방울 맺혀 있었다.

    프랑스 요리에 비해 좀 더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칼질을 요구하는 일식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곧잘 해내고 있었다.

    성에 차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다시 돌려보내는 김상현 주방장이 한 번도 테오가 손질한 재료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평소보다 몸놀림이 느려졌을 뿐 결과물 자체는 깔끔하고 완벽했다.

    “셰프 김의 오더는 이해하기 쉬워요. 프랑스어도 아닌데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내 영어 발음이 별로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김상현 주방장님의 업무 지시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웠다. 비록 능숙하지 않은 영어라고 해도 테오가 알아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 부재료 손질은 거의 다 끝이 났고, 본격적으로 장어를 손질해 볼까요?”

    “한국에서는 이 장어를 어떻게 손질하나요? 궁금하네요.”

    우리가 유럽의 방식을 궁금해하듯 테오 역시 아시아의 요리 방법을 궁금해했다.

    김상현 주방장은 제대로 알려 주겠단 듯이 큰 도마를 깔고 주변을 정리했다.

    “장어가 도마 위에서 난리를 칠 수 있으니깐 주변을 정리하는 거죠? 그래서 저도 기절을 시키고 손질을 해요.”

    “저는 기절시키지 않고 손질할 수 있어요.”

    “어떻게요?”

    김상현 주방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칼을 집어 들었다.

    단 사시미 칼이 아닌 끝이 뾰족하고 짤막한 칼 하나를.

    퍼억.

    “뭐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손질하기가 쉬워요.”

    팔뚝만 한 장어를 산 채로 도마에 올리고 짧은 칼을 머리에 꽂아 도마에 고정했다.

    장어 손질을 하는 달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테오의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고정한 다음 곧바로 살점을 쭈욱 갈라 주면 돼요.”

    “와아….”

    빠르고 깔끔한 손놀림에 나도 테오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벌써 끝났어요?”

    “네 최대한 빨리 끝내야지 장어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점이 쫄깃하게 살아 있거든요.”

    “아하.”

    미끄러운 장어의 살을 한 번에 발라 내는 기술도 놀라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늘 저희가 할 음식이 샤부샤부인데 거기에 쓸 장어는 칼집을 넣어 줘야 해요.”

    “어떻게요?”

    김상현 주방장이 만찬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양념을 바른 장어구이와 유비끼라 부르는 샤부샤부였다.

    특히 유비끼는 일본인 요리사들도 까다로워하는 일식 중 하나였다.

    “이렇게 최대한 좁은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줘야 해요.”

    사시미 칼이 마치 진동을 하듯이 김상현 주방장님 손에서 움직였다.

    하모 유비끼라고 하는 장어 샤부샤부의 핵심은 칼집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칼집을 낸 장어를 살짝 데치면 꽃처럼 피는 걸 볼 수 있었다.

    “와아 나이프 스킬이 엄청난데요?”

    “사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오기 전에 연습 좀 했어요.”

    실제로 김상현 주방장님은 두부 몇 모를 사서 칼질을 연습하고 대사관으로 왔다.

    미슐랭 셰프에게 업무 지시를 하려면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 된다면서.

    정작 테오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김상현 주방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이 장어 유비끼는 발라 낸 뼈로 끓인 육수를 이용해야 제맛입니다. 양념구이도 이 뼈 육수를 이용해서 만든 양념이어야 살점과 조화가 잘 돼요.”

    “이건 마치 피쉬스톡을 이용하는 방식과 비슷하네요.”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처음 손발을 맞춰 본 사이였지만 아무런 탈 없이 훌륭한 음식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미슐랭을 받은 레스토랑과 세계 최고의 호텔 총주방장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보고 대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이제 준비는 전부 끝이 났다.

    겸허히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일이 남지 않았다.

    “그럼 이제 서빙해 볼까요?”

    김상현 주방장의 말에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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