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18화 (119/202)
  • 118. 본성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한다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다나의 메시지를 뒤로한 채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방장님 저 덕수입니다.

    -어 덕수야. 요즘 연락이 좀 잦다?

    -그래서 별로이신가요?

    -아니 너~ 무 좋다는 말이었지.

    시답잖은 농담으로 반갑다고 표현을 하는 김상현 주방장님이었다.

    회귀 전에도 주방장님과는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고 느꼈었지만 요즘 들어 감정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정신 연령의 상태에서 서로를 대해서 그런가.

    -여튼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별일은 없으시죠?

    -별일? 지루한 거 빼곤 없다. 근데 저번에 그 외교관 일은 잘 해결됐어?

    -외교관이요? 아 마크 대사 말씀이시구나.

    친구에게 마치 17:1로 싸웠다는 무용담을 들려주듯 마크 대사 환영식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말해 주었다.

    -제법이네 장덕수. 뭔가 요리사로서 내공이 엄청 쌓인 느낌이야.

    -그렇죠? 제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대사들을 모아 둔 자리에서 그런 음식을 내는 용기가 쉬운 게 아닌데 대단하다.

    -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죠. 김용수 대사님이 뒤에서 다 지원해 주신 덕분이죠.

    김상현 주방장은 내 행동에 놀란 눈치였다.

    자칫 잘못하면 허접한 요리라며 무시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선택을 한 내가 대단하다며 치켜세워 줬다.

    -그래서 이제 본론을 말해 봐라.

    -아 맞다. 다른 게 아니라 요즘도 호텔에서 자선 행사 같은 것 좀 하시나요?

    -자선 행사?

    H호텔은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인 만큼 사회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들을 위한 기부는 물론이고, 보육원에서 직접 식사를 대접하는 재능 기부 등등. 여러 가지 형태로 사회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긴 하는데 예전만큼은 아니야.

    -왜요?

    김상현 주방장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이어 갔다.

    -새로운 사장 있잖아. 저번에 대회 때 봤던.

    -네 그 사람이 왜요?

    -몇 달 안 지났는데 처음 봤을 때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뭔가 점점 느낌이 싸해.

    벌써부터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걸까.

    김상현 주방장님은 H호텔 사장의 첫인상을 꽤나 좋게 평가했었다. 하지만 고작 몇 달이 지난 지금 벌써 그의 인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매년 하던 자선 행사에 대해서 보고서를 올리면 결재를 해 주긴 하는데 이런 행사 꼭 계속해야 하냐고 묻더라고.

    -역시.

    -역시?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튼 그것도 그렇고, 연회장 알바들 숫자까지 알고 있더라니까.

    특급 호텔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장이 일개 아르바이트 숫자까지 전부 알고 있을 정도면 얼마나 작은 것에 연연하는지 알 수 있었다.

    회귀 전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빨리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튼 제가 아는 유학생 한 명이 있는데 자선 행사를 좀 진행하고 싶대요.

    -파나르 학생?

    -네 맞아요.

    사장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접어 두고 다나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김치를 만들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호텔 측에서 협조를 해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기특하네. 외국인이 그런 생각을 다 하고.

    -그렇죠? 제가 알아본 인재입니다.

    -그래 너 잘났다.

    -어쨌든 호텔 측에서 주방도 빌려주고, 김치 만드는 법도 직접 알려 주면 상부상조일 것 같은데.

    -음… 우리 쪽에선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생색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거 같긴 하네.

    -맞아요. 돈도 안 들고 좋을 거예요.

    -한번 알아볼게. 좋은 취지기도 하고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사장님께 보고드려 볼게.

    * * *

    H호텔 사장실.

    똑똑똑.

    “사장님 김상현 주방장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김상현 주방장이 싸함을 느끼면서도 확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사장의 태도 때문이었다.

    사장은 젊지만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에게 꼬박 존댓말을 해 줬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올리신 보고서는 잘 봤습니다.”

    “네 호텔 측에서 사용하는 비용도 거의 없고, 유학생 단체가 하는 거라 일반 학생들보다 호텔 측에 홍보 효과도 좋고요.”

    “그런 거 같더라구요. 그 정돈 진행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은 그냥 전화나 보고서로 끝을 내면 되는데 상현은 굳이 왜 자신을 사장실까지 부른 건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이거 한번 보시라고 불렀습니다.”

    사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북을 상현이 잘 볼 수 있도록 돌려 주었다.

    [파나르의 카차이 시장, 대한민국 대사관에 감사패 전달.]

    얼마 전 카차이 지역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파나르 대사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공식적인 뉴스가 아니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이었다.

    “내가 그 장덕수 요리사한테 한번 거절당하고 나니깐 이상하게 더 욕심이 나더라구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장덕수 요리사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한 것 같더라구요.”

    김상현 주방장 역시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사장의 말에는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호텔의 요리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해요. 솔직히 지금 주방 직원들은 월급 도둑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보니깐 혼자서 몇만 명이 방문한 지역 축제를 치러 낸 것 같은데 우리 주방 직원들 중에 일당만은커녕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나요?”

    김상현 주방장도 덕수의 공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절대로 혼자서 해낸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방 일을 전혀 모르는 사장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을 뿐이었다.

    “저희 직원들은 이미 일당백의 역할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겠지만 호텔이 아무런 문제 없이 운영되는 게 다 직원들 덕분입니다.”

    “전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우리 호텔이 잘 돌아가는 이유가 다 김상현 주방장님 덕분이라 생각하는데요.”

    “네?”

    “우리 김상현 총주방장님의 능력은 의심할 것 없이 한국 최고라 생각합니다. 그런 주방장님이 버티고 계신다면 그 밑에 어떤 직원이 있어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덕수가 주방장일 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땐 재정이 악화되어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사장의 욕심 때문이었다.

    “저는 고만고만한 국산 차 10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슈퍼카 2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상현 주방장은 사장의 말을 전부 다 이해했지만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직원들을 차 따위로 비교하다니.

    처음 경험하는 사장의 본모습이었다.

    “장덕수 요리사를 스카우트해 오기만 한다면 김상현 주방장님의 정년은 확실하게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사장은 역시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어 올렸고, 김상현 주방장은 부들거리며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 * *

    H호텔의 한식당.

    “한국어로 설명해도 전부 다 알아들으시죠?”

    “네 당연하죠.”

    김상현 주방장과 호텔 직원들은 유학생 단체들의 능숙한 한국어 실력에 굉장히 놀랐다.

    특히 유학생 단체의 회장이라는 다나라는 학생의 한국어 실력은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이렇게 배추를 한 겹 한 겹 들어 올려 만들어 놓은 속을 넣어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활한 소통과 능숙한 손놀림 덕에 100포기에 달하는 김치는 생각보다 금방 완성이 되었다.

    적극적인 협조와 유학생들이라는 조합은 호텔 측에 호의적인 기사를 만들어 냈다.

    호텔 측은 손 안 대고 코를 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 좋은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고생했어요 주방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

    제법 많은 기자들이 몰린 행사에 사장이 또 한 번 얼굴을 비쳤다.

    김상현 주방장을 비롯해 한식당의 몇몇 요리사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의 돈도 안 들이고 좋은 홍보했네요.”

    “네 맞습니다. 이런 행사는 종종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을 안 쓰긴 했지만 특별히 벌어들인 것도 없지 않나요?”

    “네?”

    칭찬으로 시작된 사장의 말은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김상현 주방장을 향했다.

    “돈을 안 쓴 건 좋지만 이게 당장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네요.”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행사를 하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호텔 이미지를 계속해서 좋게 유지하기 위함이니 크게 손해 본 건 아닌거 같습니다.”

    “전 보이지 않는 건 안 믿는다고 말씀드린 적 있죠? 돈 역시 당장 보이지 않는 돈은 의미가 없어요. 저 유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김치를 얻어먹는 사람들이 우리 호텔에 언제 올 줄 알고….”

    정말 어리석고, 짧은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김상현 주방장은 사장의 발언이 진심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한 호텔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길게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키지 않으시면 내년부턴 이런 행사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주면 좋구요.”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보여 주곤 자리를 떠나는 사장이었다.

    김상현 주방장은 직원들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사장에게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여보세요? 주방장님!

    -그래 덕수야.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행사 잘 끝났다고 들어서요.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우리는 뭐 할 게 없더라. 유학생들이 워낙 잘해서 그냥 옆에서 거들기만 했어.

    -맞죠? 잘하죠? 다행이네요. 괜찮으면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에게 윈윈이었다면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 잡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성공적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상현 주방장의 말투는 그리 밝지 못했다.

    “이 행사는 아마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왜요? 서로 좋았다면서요.”

    “사장이 하지 말래. 이런 행사.”

    “그래요?”

    “요즘 사장 행동하는 게 영 이상하다. 분명히 웃고는 있는데 말투에는 가시가 가득해.”

    사장의 본성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답답했다.

    그리고 이전보다 일찍 본성을 드러냈고.

    “뭐 윗대가리들이 다 비슷하죠.”

    “그렇긴 한데 이때까지 겪었던 사람들이랑 다른 타입이야. 나를 치켜세우면서 직원들 무시하는 것도 영 찜찜해.”

    나도 김상현 주방장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나를 치켜세워 주며 직원들을 깎아내리니 기분이 좋아야 할지 나빠야 할지 오묘했다.

    “이참에 잠시 쉬시는 건 어때요?”

    “그럴까? 휴가라도 내야 하나….”

    “저도 얼마 전에 길게 휴가를 다녀왔는데 머리가 확 비워지는 느낌이더라구요.”

    “진짜 그럴까….”

    “십 년 넘게 제대로 쉬신 적도 없으시잖아요. 이참에 한번 푹 쉬어 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깊은 고민에 빠진 주방장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현은 주방장이 되기 전까지 일주일 이상 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을 열었다.

    “주방장님 파나르에 한번 오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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