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17화 (118/202)
  • 117. 타지크의 셰프

    타지크 철도 공사 현장.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간다!”

    저녁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직원들이 컨테이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해가 길어져 아직은 대낮이나 다름없었는데 먼저 저녁을 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일을 마무리하면 공사는 언제 끝냅니까?”

    “하하 걱정 마세요 요리사님. 오늘 할당된 양은 진작에 다 끝냈으니까요.”

    “진짜요?”

    “당연하죠. 저희 여기에 일 못해서 끌려온 사람들 아닙니다. 본사에서 일 제일 잘하는 엘리트 직원들만 모아서 온 거예요. 맡은 일은 절대로 대충 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일주일 남짓 지났지만 형태건설 직원들의 안색에 혈기가 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좀비 같았던 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엘리트들이라면서 향수병 하나도 예상 못 하셨습니까?”

    “또 그 소리 하신다. 못 한 게 아니라 그것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니까요. 통장에 두 배씩 박히는 월급을 보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죠.”

    파견 기간 동안엔 평소보다 두 배가 훌쩍 넘는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었다. 그거면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게 그들의 착각이었다.

    “법인장님 오신다.”

    “수고하셨습니다 법인장님.”

    “오늘도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형태건설의 법인장은 직접 현장에 투입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원들 중 가장 센 향수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제 요리사가 채용되었다고 하는군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생각보다 빨리 구하게 되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맘 같아선 좀 늦게 오라 하고 싶습니다.”

    “왜요? 내일이라도 당장 오라고 해야죠.”

    법인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장덕수 셰프님의 음식을 더 이상 못 먹게 되잖아요.”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입니까. 새로운 요리사가 더 실력이 좋을 수도 있는데.”

    “장담하건대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법인장의 말투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제가 많이 먹는다고 아무거나 막 먹는 사람은 아닙니다. 음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까다롭거든요.”

    “사실 그건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근데 장덕수 요리사님의 음식은 제가 먹어 봤던 요리들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특히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이런 음식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법인장의 말에 직원들 전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법인장님. 장덕수 요리사님의 음식을 먹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만 말씀하시고, 빨리 식사나 하시죠!”

    “미안해요 잡설이 많았죠? 그럼 빨리 먹을까요? 오늘 메뉴는 뭔가요?”

    나는 웃으며 저녁 식사를 마저 준비했다.

    타닥타닥.

    컨테이너 뒤편에서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키가 작은 삭사울이란 관목을 태워 만든 숯 위에 고등어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엊그제부터 소금에 절여 놓은 간고등어입니다. 삭사울이란 숯에 뭐 구워 먹어 보셨어요?”

    “삭사울? 처음 들어 보는데요.”

    “한국의 참숯보다 향이 더 강한데 아주 괜찮습니다.”

    석쇠가 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불 위에 올려 두었다가 살 속 깊숙이까지 간이 밴 고등어의 껍질 쪽부터 올려서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고등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살점이 오므라들며 머금고 있던 기름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두툼한 살점이 익으면서 새어 나온 기름 덕분에 고등어에 맛깔스럽게 윤기가 돌았다.

    꾸울꺽.

    고등어가 익어 가는 것을 보자 여기저기서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연기 때문에 눈이 조금 매웠지만 새어 나오는 군침을 참을 수 없었다.

    “자 지금입니다. 이제 드셔 보세요.”

    과하게 익지도, 그렇다고 덜 익지도 않아 육즙을 가득 머금은 고등어구이를 곧바로 상 위에 올렸다.

    향긋한 삭사울의 향이 고등어와 컨테이너 안을 가득 채웠다.

    “잘 먹겠습니다!”

    “빨리빨리 밥 퍼!”

    이곳에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정해진 룰이 하나 있었다.

    본인들이 먹을 밥과 국은 본인들이 직접 퍼서 먹는 것.

    일손이 부족한 날 위해 직원들이 손을 거들어 준 것이다. 사실 빨리 먹고 싶어서 몸이 먼저 나선 거긴 하겠지만.

    그래서 더 맛있는 밥을 만들기 위해 전기밥솥은 사용하지 않고 압력밥솥으로만 매일 새 밥을 짓고 있었다.

    “오늘의 국은 슴슴하게 끓인 배추된장국이네요.”

    “나는 이 김부각이 그렇게 맛있더라.”

    “김부각 아껴 드세요. 말리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루에 한 끼니깐 하루 온종일 음식 준비만 할 수 있었다.

    관저에서처럼 콩나물도 직접 기르고, 찹쌀풀을 발라 김을 직접 말리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음식들을 만드니 평소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고 있었다.

    “형태건설 직원들은 진짜 운 좋으신 겁니다. 이 정도 음식은 파나르 대사관에서도 안 나와요.”

    “정말요?”

    “당연하죠. 저도 이렇게 온전히 음식에만 집중해 본 적이 진짜 오랜만이에요.”

    순식간에 직원들의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철도 공사라는 힘든 일을 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직원들은 내가 오고 난 후로 무조건 밥 두 공기 이상씩은 비우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완전 선택받은 사람들이네.”

    “맞습니다. 그러니깐 공사 제대로 잘 끝내 주셔야 합니다.”

    “아 그건 걱정 마세요. 대신 장덕수 셰프님도 새로운 요리사가 와도 종종 놀러 와서 또 밥해 주고 가 줘요.”

    “저도 제 본업이 있습니다. 그럴 시간 없어요.”

    “요리사님 그렇게 안 봤는데 공과 사가 확실하시네요.”

    “당연히 그래야죠. 저는 형태건설이 아니라 파나르 대사관 직원인데요.”

    이렇게 단호하게 선을 그어도 그 누구의 표정도 찌푸려지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 앞에선 잠시 동안이지만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보낸 몇 주의 시간이 오히려 충전이 된 느낌이었다.

    이제야 지평선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숟가락 소리는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다.

    * * *

    [오늘은 전 세계 이모저모 뉴스입니다. 중앙아시아 파나르의 옆에 붙은 작은 내륙 나라 타지크 제도. 이 작은 나라에서 한국의 기업이 아주 커다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형태건설의 해외 진출 소식은 뉴스에도 간간이 소개되고 있었다.

    타지크 사람들에겐 일자리 창출의 기회이자, 한국의 기업들에게 해외 진출의 기회인 철도 사업이 언론의 관심을 받는 건 당연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한국인 직원들을 살린 건 다름 아닌 타지크 분관의 요리사였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험난한 공사 현장을 자원해서 간 타지크 분관의 요리사는 직접 콩나물을 기르는 등 정성을 다해 직원들을 위해 요리를 했습니다.]

    비록 파나르가 아니라 타지크 분관의 직원이라고 보도되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내가 뿌듯함을 가지면 되는 거니까.

    [타지크 분관 요리사의 노력 덕분에 형태건설의 직원들이 잃었던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보지도 못한 뉴스 장면을 촬영해 보내 준 윤아였다. 형태건설의 직원 중 한 명이 타지크 생활을 촬영한 브이로그에도 내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것 봐 봐 2주 동안 만든 음식들이 전부 올라왔어.”

    “언제 이걸 다 찍었대? 음식 만드느라 아무것도 몰랐네.”

    “약간 몰래 찍은 느낌이긴 하네.”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몰래 촬영을 한 영상에는 행복해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전부 찍혀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다들 이런 표정으로 식사를 했었구나.

    “뉴스 덕분인지 제법 조회 수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래? 이참에 나도 너튜브나 해 볼까?”

    “진작에 해 보지 그랬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사관 요리사 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에이 그럴 걸 그랬네.”

    그 말이 진심은 아니었지만 조금 아쉬운 맘이 들긴 했다.

    파나르에서의 추억을 영상으로 남겨 뒀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너무 청와대에 가겠다는 생각만 하고 지낸 걸까.

    치열하게만 살았던 회귀 전 인생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살아 봐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 * *

    주말 늦은 오후.

    캐톡.

    오랜만에 나른한 주말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한샘이 말고는 특별히 메시지를 할 사람은 없는데.

    지금 한샘은 근무 중인 시간이고.

    궁금함에 서둘러 폰을 켰다.

    -안녕하세요 요리사님. 저 다나예요.

    -다나? 잘 지내요?

    -저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이 보이자 나른한 기운이 사라지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파나르 국립대학의 장학생 비리를 찾아내게 해 주고, 정당한 실력으로 한국에서 공부를 하게 된 다나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공부는 할 만해요?

    -아니요 너무 어려워요. 한국어로 석사를 공부하는 건 진짜 힘든 것 같아요.

    -그렇겠죠. 다나 정도의 실력자도 쉽지 않은가 보네요.

    한국인들도 쉽지 않은 석사 공부를 외국어로 공부하려고 하니 쉬울 리가 있나.

    하루 종일 책을 붙잡고 있어도 죽을 맛일 것이다.

    -공부는 어려워도 한국 생활은 할 만해요?

    -네 이번에 유학생 대표를 맡게 되었어요.

    -오 역시 잘 적응하고 있었네요.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다나였다.

    공부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유학생 대표까지 도맡아서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연락드렸어요.

    -부탁이요? 뭔데요? 편하게 말해 보세요.

    다나는 어렵게 온 한국이기 때문에 좀 더 의미 있는 유학생 대표가 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김치를 만들어서 기부를 하는 활동을 할까 해요.

    -오 진짜 좋은 일 하시네요. 유학생들이 직접 김치를 만들 거라구요?

    -네 계획은 그렇긴 한데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어요.

    누군가 돕는 일을 하는 것도 대견한데 직접 김치까지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니.

    역시 다나는 범상치 않은 학생임이 분명했다.

    -저도 예전에 김치를 만들어 보긴 했는데 제대로 된 건 아니라서요. 요리사님한테 직접 만드는 방법을 좀 들었으면 해요.

    -에이 파나르에 있었으면 직접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아쉽네요.

    -그러니깐요. 저번에 좀 배워 둘 걸 그랬나 봐요.

    인터넷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나에게까지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뭔가 쉽게 이해가 잘 된다나 뭐라나.

    아부성 멘트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을 하려는 거니 기분 좋게 나서 줄 수 있었다.

    -근데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주방은 있어요?

    -주방이요? 그냥 제가 지내고 있는 기숙사 주방이 있어요.

    -음… 혹시 다나 씨 학교에 조리학과는 없어요?

    -조리학과요? 없어요.

    -기숙사 주방은 좁아서 힘들 텐데, 김치를 얼마나 만들 생각이에요?

    -아마도 100포기 정도?

    -와우 그렇게나 많이요?

    -그 정도는 해야지 될 것 같아요. 너무 적으면 안 한 것보다 못할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하죠.

    100포기의 김치를 만들려면 꽤 넓은 주방이나 공간이 필요했다. 조리학과라도 있었다면 학교 안에 큰 주방이 있었을 텐데.

    다나가 다니는 학교에는 아쉽게도 조리학과가 없었다.

    “음…. 그럼 잠시만 기다려 줄래요? 연락해 볼 데가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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