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13화 (114/202)

113. 승재라는 요리사

단둘이 방으로 들어온 뒤 승재의 표정을 살폈다.

“승재 씨 파나르는 좀 어떤 것 같아요?”

“공항에서 바로 관저로 온 거라 구경은 못 해 봤지만 느낌이 아주 좋네요.”

“그렇죠?”

“이상하게 날씨도 좋은 것처럼 느껴지고.”

승재의 말과는 다르게 창밖은 흐려 구름이 가득 찬 상태였다. 아마 마음이 편안해져 흐린 날씨마저 좋아 보였을 거다.

“관저는 어떤 것 같아요? 파키스탄보다 좋아요?”

나는 노골적이면서도 조심스럽게 본격적인 주제를 꺼냈다.

“솔직히 관저 시설은 파키스탄이 훨씬 좋네요.”

“정말요?”

“주방도 훨씬 크고, 관저 자체도 더 세련되고 좋아요.”

“왜요. 우리 관저도 괜찮은데요.”

“하하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이랑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죠. 게다가 파나르는 한참 동안 비워져 있었잖아요.”

“그렇긴 하죠.”

파키스탄 대사관의 시설이라도 좋아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파나르 대사관 분위기가 훨씬 좋네요.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가요?”

“네 특히 덕수 씨랑 김용수 대사님과의 관계는 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그랬을 것이다.

승재는 영걸 대사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으니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나와 김용수 대사의 관계가 신기하고 부러웠을 터.

아무리 시설이 좋은 파키스탄 대사관이라고 해도 그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근데 외교 행사 때 큰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나요? 예를 들어 음식에 간이 안 맞다든가 접시에 지문이 묻어 있다든가 과일의 당도가 부족하다든가 그런 일이 생기면요.”

승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질문을 해 왔다. 승재의 말대로 저런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시간에 음식에 좀 더 진심을 쏟는 편이 낫다.

이건 내 경험이었다.

“아직까진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그릇에 지문이 좀 찍힌 것 정도를 알아채는 손님들이 있을까요? 중요한 정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휴우… 사실 그렇긴 하죠.”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음식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음식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잘 없더라구요.”

승재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파나르 대사관의 성과가 역대급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파키스탄에 와서 좀 놀랐어요. 관저의 주방 시설도 너무 훌륭하고, 기물들도 전부 비싸고, 좋은 것들이라서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라 제 요리를 할 생각에 신이 났었죠.”

“와아 저는 완전 정반대였는데…. 처음에 주방 상태를 기억하면 워후.”

파나르 대사관 관저 주방은 본래 크고 좋았지만 한참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던 상태였다.

그에 비하면 파키스탄 대사관은 고급 호텔 수준이었다.

“그리고 셰프가 혼자라길래 제가 메뉴 개발을 하고, 만찬 메뉴를 짜고, 음식에 맞는 술을 맘껏 고르고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재외 공관 요리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셰프가 한 명이라는 점.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요리를 할 수 있지만 테오처럼 팀으로 움직이는 레스토랑 출신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혼자 모든 걸 신경 쓰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근데 이상하게 일이 자꾸 꼬이더라구요. 처음에는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에 쉬운 게 어딨겠어요.”

“덕수 씨처럼 이렇게 젊은 분들도 잘 해내고 있는데, 이 나이 먹고 자기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꼴이 참….”

승재는 자신이 요리사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하지만 대회에서 확인한 승재의 실력으로 봤을 땐 충분히 역량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영걸과 승재의 합이 아직 맞지 않아서일 뿐. 영걸 역시 동기들을 제치고 가장 빨리 공관장이 된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는 걸 보면 능력 문제가 아니었다.

“영걸 대사님도 공관장이 처음이고, 승재 씨도 대사관 요리사가 처음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건 두 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흐음….”

맞는 말이지만 대신 나는 인생이 2회차니까.

“저희 대사님을 한번 믿어 보시죠. 오늘은 계기로 영걸 대사님도 느끼시는 게 많을 겁니다.”

“그러면 참 좋겠네요. 저도 이것저것 많은 요리를 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이 나이에 해외로 나온 거거든요.”

요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승재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요리를 할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눈빛이었다.

“그럼 승재 씨는 파키스탄에 가기 전에는 어디서 일하셨어요?”

“저는 쭉 정담에서 일했어요. 혹시 아세요?”

“정담이요? 당연히 알죠.”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최고의 한식당 중 하나였다. 우리 호텔이 거기의 음식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던 이유가 있었구나.

“거기서 한 15년 정도 일했어요.”

“와아 대단하시네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주방장까지 하셨을 텐데. 그만두실 때 고민 많이 하셨겠어요.”

“고민 엄청 했죠. 근데 너무 한 곳에만 오래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요. 외국 음식들이 뭐가 있는지도 좀 보고 싶고, 식재료 같은 것도 좀 더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너무나도 공감되는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난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맞아요. 진짜 너무 공감됩니다. 세상이 이렇게 넓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덕수 씨는 저처럼 한 군데만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 않아요?”

“저야 뭐 선배들이 맨날 하는 소리 듣고 좀 일찍 움직인 케이스죠.”

승재도 잘했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파키스탄 오기 전까지 비행기도 한번 안 타 봤었거든요.”

“하하하 정말요? 좀 심했네. 저는 제주도 정돈 가 봤어요.”

“하하 그래서 그런지 파키스탄 생활이 힘들어도 요즘 요리가 너무 재밌어요. 시장에 가서 처음 본 식재료를 찾아서 먹어 보고, 연구하고 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처음 요리를 했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정담 같은 레스토랑에서 15년을 있었으면 일에 있어서 특별한 건 없었을 거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가끔 나오는 신메뉴 정도 말곤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이었을 거다.

그러다 보면 요리사로서의 회의감이 드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그걸 버텨 내면 한 곳의 주방장이 되는 거고, 버티지 못하면 자신의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형님은 앞으로 뭘 할 생각이신가요?”

“저는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에요.”

“앞으로 쭉이요?”

“네 가능한 오랫동안 그리고 최대한 다양한 나라로요. 비자나 언어 걱정 없이 이렇게 많이 나라에서 일할 기회를 잡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것도 한식을.”

“그렇긴 하죠.”

재외 공관 요리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쉽지는 않지만 비자나 다른 걱정 없이 다양한 나라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는 승재 같은 요리사에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그럼 승재 씨.”

“네”

“혹시 저랑 같이 휴가 보내실래요?”

“저랑 같이요?”

“네. 혹시 파키스탄이나 한국에 갈 계획 잡으셨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승재 씨가 아주 좋아할 만한 곳과 사람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가요.”

“정말요?”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이 반가웠지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승재였다.

아마 영걸의 눈치를 보는 거겠지.

나는 곧바로 방을 나가서 영걸과 김용수 대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요? 잘됐네요. 저는 일주일 동안 사라질 생각이니 승재 씨도 내 걱정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럼 혹시나 파키스탄에 일찍 돌아가시게 되면 말씀해 주세요.”

승재가 긴 휴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에 남아 있었던 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서였다.

항상 계획에도 없던 일들을 갑작스레 지시하는 영걸의 스타일 때문에.

“승재 씨. 영걸 대사님은 일주일 동안 제가 책임지고 맡아 두겠습니다. 편하게 쉬다 오세요.”

“감사합니다. 김용수 대사님.”

승재는 고개를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자기를 걱정 말라는 영걸의 말도 처음 들었는 데다가 도와주겠다며 든든하게 나선 사람까지도 있으니 처음으로 안심이 되는 승재였다.

“덕수 씨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갈 건가요?”

“저희는 아주 멀리 가 볼 생각입니다. 파나르의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조심히 다녀와요 장 셰프.”

“네 대사님도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제가 지나 좀 찾아서 데리고 가도 되죠?”

“그럴래요? 좋은 데 구경 좀 시켜 주세요.”

“지나 엄마 좀 만나게 해 주려구요.”

김준우 서기관에게 잠시 맡겨 둔 지나를 데리고 본격적인 휴가를 시작했다.

김용수 대사와 영걸은 카차이 호수 쪽으로 떠났고, 나와 승재는 워크샵 때 만난 요리 연구가를 다시 만나러 가기로 했다.

“맘 같아선 트럭을 빌려서 가는 도중에 캠핑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파나르엔 야생 동물이 많대서요.”

“야생 동물이요?”

“곰도 나오고, 늑대는 빈번하게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파키스탄도 그래요?”

“글쎄요. 저는 관저 말곤 나가 본 적이 없어서요.”

커다란 SUV에 이것저것 챙겨서 올라탔다.

며칠 동안 운전을 하며 파나르를 돌아볼까도 했는데 쉬엄쉬엄 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 드라이브를 택했다.

“파나르도 땅 크기가 엄청나네요.”

“파키스탄도 제법 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쭉 뻗은 도로의 양쪽으로 지평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허허벌판이지만 감탄을 부르는 광활함과 신비로운 고요함.

이걸 보기 위해 차를 빌렸다.

“승재 씨 근데 제가 나이가 훨씬 어린데 씨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덕수 씨는 이상하게 어린 느낌이 안 드는데요.”

“그런가요? 속은 다 늙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 제가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형님이요?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요?”

“삼촌 정도 되는 나이 차이인데.”

“에이 그냥 형님 해요.”

승재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느덧 새로운 내 나이에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도 형님 소리를 곧잘 하는 것 보면.

“승재 형님은 결혼 안 하셨어요?”

“응 아직 안 했어. 앞으로 할 생각도 없구.”

“그랬구나. 그럼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서 밥을 해 먹었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그래요? 가장이셨어요?”

적어도 6시간은 넘게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대화하며 알아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보고 그다음에는 김치찌개, 탕수육 등을 만들면서 재미를 붙였어.”

“탕수육이요? 갑자기 너무 어려워졌는데요?”

“내가 원래 성격이 좀 모험을 좋아하거든. 이렇게 쉬운 음식들만으론 칭찬을 받기 힘들 것 같아서 바로 어려운 음식에 도전해 봤지.”

“그랬더니 반응들이 어땠어요?”

“모양은 그럴싸했는데 맛은 영 별로. 근데 모양이 그럴싸하단 이유로 어른들이 엄청 놀라더라구.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

승재 역시 여느 요리사들과 비슷했다.

자신의 음식을 먹고 좋아해 주는 기억이 강렬해서 요리사가 된 케이스.

원래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단 말이 씁쓸하게 들려왔다.

“근데 승재 형님. 파키스탄 대사님 실제로 보니깐 엄청 무섭거나 성질 더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요.”

“맞아. 내가 느끼기에도 본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뭔가 항상 조급해 보여. 남들이랑 비교하는 걸 좋아하고.”

“그렇구나.”

“티브이의 요리 프로그램이나 뭐 영화 같은 걸 보면서 이런 걸 구현해 봐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봐라 하면서 이것저것 숙제를 주는데 솔직히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많거든.”

“요리를 안 해 본 사람들은 잘 모르죠. 그냥 툭 하면 툭 하고 나오는 줄 알죠.”

“맞아 그 말이 딱 맞아. 툭 하면 나오는 줄 알아. 언제는 2시간 전에 연락해서 손님 4명 만찬을 준비하라는 거야. 그것도 코스로.”

“와아 2시간 전에요? 배달을 시켜도 2시간 안에 안 오겠다.”

“하하하 그러니깐.”

승재의 말투와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 가고 있었다. 대회 때도 관저에서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해 드렸어요?

“했지…. 그냥 있는 반찬들로만.”

“어휴 안 된다 하지 그랬어요. 그냥 호텔이나 레스토랑 가라고.”

“안 된다는 말을 아직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대사관 요리사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속마음을 털어 낼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을 테지.

끊임없이 쏟아 내는 승재의 말을 계속해서 잠자코 들어 주기만 했다.

“근데 덕수야. 어제는 못 물어봤는데 너는 앞으로 뭘 할 생각이야?”

“저요?

“저는 파나르에서 남은 기간을 보내고, 청와대 요리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이제는 나의 꿈을 누구에게 얘기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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