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9화 (110/202)

109. 마크 대사의 아버지

가지와 호박, 파프리카 등을 토마토소스에 넣고 끓여 낸 스튜인 라따뚜이는 낯선 이름이지만 영화 덕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역시 냄새도 끝내주지만 모양도 이쁘네요. 미슐랭 셰프의 플레이팅 실력은 말할 것도 없죠.”

“그러게요. 칼질도 오차 하나 없이 일정하구요.”

형형색색의 채소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테오의 라따뚜이는 눈, 코, 입 모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향긋하게 풍기는 토마토 향과 올리브오일의 조합은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로 충분했다.

“그럼 장 셰프의 음식도 먹어 볼까요?”

“굉장히 기대되는군요.”

“나는 미스터 장에게 한 표를 던졌어요. 날 기억해 줘요 알았죠?”

테오의 현란한 채소 스튜에 다들 한껏 신이 난 표정이었다. 마크 대사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어쩌면 내 음식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준비한 에피타이저는 찐 감자입니다.”

“감자? 포테이토? 그냥 감자?”

“소스나 가니쉬 같은 건 없고 그냥 감자?”

“네 그냥 찐 감자입니다.”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나….”

포슬포슬하게 익어 벌어진 감자의 사이에선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금테가 둘러진 고급 접시에 덩그러니 감자 두 개를 올려 서빙하려 하자 테오도 놀란 눈치였다.

“소스는 없고, 소금을 준비했으니 조금씩 뿌려 드시면 됩니다.”

당황하지 않은 건 나와 김용수 대사뿐이었다.

하지만 다들 뭔가 있겠지 싶어 감자를 하나씩 들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다들 공관장이 되어서 이런 음식은 먹어 본 적 없었겠지. 너무 터무니없는 음식이 나오니 오히려 흥미로워 보였다.

쥴리앙 대사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역시 그렇지라는 표정이었고.

“허허 이게 뭐라고 또 맛있네요. 감자를 찌는 것도 요리사의 실력에 따라 차이가 나나 봅니다.”

“이상하게 나는 레드 와인 한잔이 당기네요. 제가 미친 거겠죠?”

“아니요. 저도 그러네요. 미친 건 아닌가 봅니다 대사님.”

다들 찐 감자라는 메뉴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다음에 나올 메뉴엔 반드시 반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요리부터 굉장히 재밌네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쥴리앙 대사님.”

“하하 이런 게 나올 줄을 몰랐는데 오히려 잘됐네요. 우리끼린 격식 차리지 않고, 즐겁게 지내야지요. 계시는 동안은 다들 친구라 생각하고 지냅시다. 이런 찐 감자도 먹으면서.”

“좋습니다.”

“하하하.”

비아냥거리는 농담이었지만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가벼워졌다.

다른 요리사들은 찐 감자에 라따뚜이 소스를 찍어 먹기도 하고, 채소들과 곁들여 먹기도 하는 둥 각자의 방식으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제가 준비한 다음 요리는 푸아그라입니다.”

“오 푸아그라. 역시 프랑스 하면 푸아그라지.”

“사실 이게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대사님들을 모셔 놓고 푸아그라도 없이 넘어가실 줄 알았습니까? 저희 프랑스 대사관을 너무 쉽게 보셨군요.”

프랑스 요리 중 가장 유명한 요리인 푸아그라.

미슐랭 셰프인 테오가 이걸 빼먹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공들인 요리 중 하나였다.

이제야 제대로 된 만찬이 진행되고 있다는 듯 와인 잔을 들었다.

“역시 이 부드러운 푸아그라는 한 번 먹어 봐선 그 맛을 제대로 알 수가 없지.”

“맞아요. 저도 대사가 되고 나서야 그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다들 입맛이 고급이시군요. 저는 여전히 좀 어색하던데.”

“술에 취해서 드시면 맛이 좋습니다.”

“그런가요? 그것 역시 좋은 방법이네요.”

진땀을 흘리던 테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요리사들의 접시까지 준비하려다 보니 시간이 촉박해 보였다.

반면 내가 준비한 음식들은 가니쉬 따윈 한 점도 올라가지 않았다.

“제가 준비한 음식은 바로 개떡입니다.”

“개떡이요? 왈왈?”

“개고기로 만든 떡도 있나요?”

“어휴….”

이름도 이름이지만 짙은 초록색으로 부쳐진 두 장의 부침개의 모습은 푸아그라와 비교해서 볼품이 없었다. 쥴리앙 대사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잘게 썰어 먹어도 영 폼이 나진 않았다.

“미스터 장의 요리는 도통 알 수가 없군요. 솔직히 내 요리사였다면 당장 만찬을 중지하고, 이 자리에서 해고했을 겁니다. 안 그래요 엠버서더 김?”

“진정하시고 앉으시죠 쥴리앙 대사님. 저희 요리사 이런 요리를 준비할 거란 걸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는데 말리지 않았다는 겁니까? 아니면 아시아는 여전히 가난해서 이딴 음식밖에 먹을 수 없는 겁니까?”

쥴리앙 대사의 말에 만찬 자리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서둘러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말은…. 대사들이 모인 자리면 평소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요리를 준비해 줘야지 않냐는 말입니다 흠.”

더 이상 분위기가 굳어 가는 것을 보기 힘들었는지 만찬의 주인공인 마크 대사가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자자 흥분하지 마시죠. 오늘은 그저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인 자리니깐 음식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그건 그렇지만 엄연히 요리 대결인데 너무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대결 결과는 요리사가 온전히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우린 우리의 역할을 하면 되는 거고.”

마크 대사는 웃으면서 개떡을 집어 먹었다.

쥴리앙 대사도 자신이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표정을 가다듬고 억지로 개떡을 집어 들었다.

“근데 이 음식에 들어간 허브가 뭔가요?”

“그 향은 쑥이라는 겁니다. 한국에선 산이며 들이며 흔히 볼 수 있고, 파나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종의 허브입니다.”

“그래요? 혹시 이게 우리 미국에도 있나요?”

“음…. 있는데 아마 몰라서 드시질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크 대사는 쑥으로 만든 개떡을 다시 한번 입에 넣고 음미했다. 뭔가 익숙한 맛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근데 미스터 장,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네 쥴리앙 대사님.”

“오늘 준비한 음식의 주제가 도대체 뭡니까? 엄청난 기대까지는 아니어도 젊은 요리사의 톡톡 튀는 요리가 뭘지 궁금은 했었는데, 이건 뭐.”

쥴리앙 대사의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나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사실 이게 대사님들을 모시고 낼 음식들의 수준은 아니긴 하죠.”

“그런데 굳이 왜 이런 음식들을 선택하신 건가요.”

“고급 음식들은 쥴리앙 셰프가 제대로 준비해 드리고 있으니 저는 조금 다르게 준비해 봤습니다.”

“근데 이건 두 사람의 대결이잖아요. 전달받지 못했나요? 모르고 있던 건가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저의 대결 방식입니다.”

“허허허 이해하는 게 쉽진 않군요.”

“왜 이런 음식을 준비했는지는 다 드신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음식은 비록 볼품없었지만 테오의 화려한 음식이 만찬 자리를 채워 주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음식을 즐긴 후 의미를 알려 주겠다는 말 덕분에 만찬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럼 메인 음식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메인 음식으로 꼬꼬뱅을 준비했습니다.”

“와인에 절은 수탉이군요.”

“네 맞습니다. 와인에 3시간 넘게 졸인 닭고기 요리입니다.”

“마치 우리들 같군요.”

“하하하하하.”

3시간 동안 와인에 졸여진 닭들처럼 이미 거하게 취한 대사들이 종종 보였다.

이럴 땐 뜨끈한 국물 요리가 최고지.

내가 준비한 메인 요리를 가지고 나가 서빙을 했다.

“제가 준비한 메인 요리는 돼지머리에 보리등겨로 반죽해 만든 수제비 면을 넣어 만든 수제비입니다.”

“뭐? 뭐라고요? 돼지머리에 또 보리 뭐요?”

보리등겨는 한국어로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보리라는 말은 쉽게 번역이 되지만 보리 껍질을 말린 보리등겨라는 말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보리 껍질을 말려서 곱게 갈아서 반죽으로 사용했습니다. 약간의 밀가루를 섞어서 쫄깃함을 냈고, 이 국물은 돼지머리와 여러 가지 채소들을 넣어 끓인 국물입니다.”

“이게 정말 전통 한국 음식입니까?”

메인 음식마저 예상치 못한 것이 나오자 다들 스푼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통 음식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 음식도 한국의 역사가 담긴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요? 조선 아니면 고려?”

역시 베테랑 외교관들답게 낯선 땅의 역사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아니고, 이 음식은 전쟁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전쟁이라면 한국 전쟁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한국인 요리사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크 대사가 관심을 가졌다.

“저희 아버지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십니다.”

“그래요?”

“정말요? 한국과 인연이 있었네요.”

마크 대사의 아버지가 참전 용사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파나르의 대사들은 한국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깐.

마트 대사 역시 이번이 처음 부임지였고.

마크에 대해 알아봤더라도 모두 자신들의 나라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만 조사해 봤을 것이다.

“처음엔 마크 대사님이 한국에 방문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미 한국에 오신 적이 있더군요.”

“네 맞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같이 간 적 있습니다.”

한국에도 방문해 본 적이 있다는 말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런 것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실 정도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셨어요.”

마크 대사의 대답에 쥴리앙 대사는 뭔가 놓쳤다는 듯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 역시 베테랑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래서 기사를 좀 찾아보니 한국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서 한국에 방문하셨더군요.”

“하하하 맞습니다. 전쟁 중에 어느 마을로 숨어 들어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먹었던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눈치 빠른 대사들은 이제야 왜 내가 이런 음식들을 준비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한국 H호텔의 한식당이 뛰어나다고 해서 양해를 드리고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땐 어려서 그냥 따라갔었을 뿐이구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그때 그 맛을 찾으셨나요?”

“그때 호텔에서 먹은 음식은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충분히 맛있게 드셨구요. 그렇지만 그 맛은 아니었다더군요.”

김상현 주방장의 말처럼 마크 대사의 아버지가 원했던 맛을 그대로 구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호텔에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을 것이다.

“저는 사실 그때 먹은 음식이 너무 맛있었는데 아버지는 왜 자꾸 아니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었어요.”

“그랬군요. 아마도 전쟁 때 먹은 음식은 호텔의 고급 음식과는 비교가 안 되겠죠.”

단순히 맛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담긴 음식의 맛은 뭔가를 초월하는 맛일 테니까.

“미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아버지는 틈틈이 그 맛을 찾으려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셨어요.”

“그래서 찾으셨나요?”

“아니요. 결국 못 찾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못 찾은 그 맛을 미국에서 어떻게 찾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다.

그 음식을 직접 만든 사람을 만났더라도 재현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냥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고, 만들었을 테니까.

뭘 가려서 넣어 음식을 만들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근데 은퇴를 하시고 그 맛을 찾기 위해 직접 한국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셨어요.”

“집착이 대단하시네요.”

“아버지의 고집은 전 세계가 알아주죠 하하하.”

그 정도로 집착이 강했으니 군인으로서도 외교관으로서도 성공했겠지.

마크 대사의 아버지는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위인 중 한 명이었다.

외교관을 은퇴하고 나서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한식당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맛보고 배웠다고 한다. 반드시 그 음식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겠지.

정답을 찾지 못해도 인생 마지막에 불꽃을 태울 수 있는 뭔가를 찾아서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 맛을 찾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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