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7화 (108/202)
  • 107. 전쟁 음식

    “그 대결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정말요?”

    “네 재밌을 것 같네요.”

    대결을 수락한다는 말에 김용수 대사의 표정은 한순간 밝아졌다. 역시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내가 대결에 임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 장 셰프가 대결에 임해 주길 바랐어요.”

    “왜요? 유치한 대결은 안 해도 된다면서요.”

    “어제 쥴리앙 대사의 말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어요. 아니 사실 많이 상했죠. 내 직원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요.”

    본인의 이름조차 모르던 프랑스 대사에겐 웃으면 넘어간 김용수 대사였다. 하지만 자신의 직원인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곤 참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맨날 말로는 프랑스와 파나르는 영원한 우방이고, 친구이다라고 하면서 내전이 터지자마자 제일 먼저 철수한 게 프랑스 대사관이었어요.”

    “하하하 정말요?”

    “프랑스 놈들은 말을 재수 없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 번도 보지 못한 김용수 대사의 모습이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유독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장 셰프가 나서서 우리 대사관 체면을 좀 살려 주면 좋겠어요.”

    김용수 대사는 마치 내가 대결을 수락하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다.

    “대결을 수락하긴 하는데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장 셰프는 무조건 이길 거예요. 나도 날고 긴다는 요리사들의 음식을 많이 먹어 봤어요. 근데 장 셰프만큼 대사관 요리사에 최적화된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대사관 요리사에 최적화된 사람이요?”

    나에 대한 김용수 대사의 믿음은 확고했다.

    “이번 대결이 누가 더 훌륭한 대사관 요리사인지를 가려 보는 게 주제예요. 요리 스킬은 프랑스 대사관 요리사가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대사관 요리사로서 장 셰프가 몇 수는 앞서 있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사관 요리사는 단순히 음식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요?”

    “알다시피 관저에서 만찬이 잡히는 날엔 모든 것이 그날 손님을 위해 준비가 되죠. 음식은 물론이고, 음악, 분위기 등등.”

    “그렇긴 하죠.”

    방문하는 손님이 정해지면 그 사람의 식성이나 취미, 종교, 최근의 건강 상태 등을 모두 파악해서 손님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최대한 손님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렇게 되면 원했던 계약이나 정책 등의 본론을 수월하게 꺼낼 수 있게 된다.

    “내가 경험해 본 장 셰프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한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제가요?”

    “네 그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전부 느낄 수 있어요. 매주 만들어 주는 양파주스처럼요. 장 셰프의 음식에는 항상 그 진심이 느껴져요.”

    매번 내 요리에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몰랐던 사실이다.

    김용수 대사가 내 요리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구나.

    “그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을 직접 못 봐서 모르겠지만 장 셰프만큼 상대방을 잘 파악하고, 진심을 다해 요리를 하는 것에 능숙하진 못할 거예요.”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그 사람들도 보통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일 텐데요.”

    쥴리앙 대사의 태도는 굉장히 불손했다. 하지만 그의 요리사도 똑같을 거란 보장은 없다.

    매사에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미슐랭 레스토랑이 권위를 잃었다고 그곳의 셰프 출신이라면 내 경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제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대사님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도와 드릴게요.”

    김용수 대사의 말처럼 진심을 담아서 요리를 하려면 먼저 상대방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했다.

    “이번에 음식을 대접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마크 대사요? 나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는데 운이 좋게도 한국과 인연이 있어요.”

    “그래요? 어떤 인연이요?”

    파나르로 새로 부임하는 마크 대사의 아버지가 바로 한국 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참전 용사 출신 외교관이었다.

    “마크 대사가 직접 방한을 한 적은 없지만 마크 대사의 아버지는 한국을 몇 번 방문했었어요.”

    “한국의 대사로서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추억 때문에 종종 찾아온다고 하더라구요.”

    “추억이요? 전쟁의 추억 말인가요?”

    전쟁과 추억이라는 말이 쉽게 어울릴 순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종종 한국에 방문을 한 마크 대사의 아버지였다.

    “자신이 지켜 낸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것도 신기하고, 전쟁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인생에서 못 할 게 없다면서 용기를 얻으러 오기도 한다더군요.”

    “특이하네요. 그럼 한식에도 제법 익숙하겠네요.”

    “네 맞아요. 한식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뭐 마니아까지는 아니고, 전쟁 때 동네 주민들에게 얻어먹은 음식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다른 음식들도 먹어 보고 싶다고 말한 게 기억나요.”

    “어떤 음식이요?”

    “글쎄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마크 대사도 아버지의 어릴 적 얘기를 들으면서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고 맘을 먹었대요.”

    김용수 대사의 기억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대단한 정보를 얻은 건 아니었지만 한국과 전혀 인연이 없는 것보단 나았다.

    마크 대사는 한국을 방문해 본 적 없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 기억 속에서 한식을 끄집어내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여튼 메뉴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파나르에 처음 부임하는 마크 대사에게 우리 대사관을 알리고 선물이 될 만한 메뉴를요.”

    “네 알겠습니다.”

    미국 역시 프랑스 못지않게 파나르에서 영향력이 강력하다. 그런 미국 대사와 처음부터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김용수 대사에게도 호재였다.

    물론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될 거고.

    * * *

    일단 한국과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아주 작은 정보라도 수집하는 게 먼저였다.

    인터넷을 뒤져 마크 대사의 아버지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유엔군 참전 용사 출신 외교관. 한국은 언제나 좋은 기억뿐. 나의 아들에게 내가 지킨 나라라고 자랑하고 싶다.]

    오래된 기사였지만 마크 대사의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한 호텔 앞에서 아내와 아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마크 대사가 한국에 방문해 본 적 없다는 김용수 대사의 말은 틀렸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마크 대사는 학생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근데 이 가족들이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배경, 어딘가 낯익다.

    서울의 H호텔 같은데.

    색이 바랜 사진 덕에 긴가민가했지만 기사를 몇 개 더 찾아보니 H호텔이 맞았다.

    마크 대사의 아버지는 H호텔의 한식당이 훌륭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전쟁 중 먹었던 음식을 다시 한번 먹고 싶어져서.

    그 맛이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지 자신의 아들에게도 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참전 용사 출신 외교관이 전쟁 중 먹었던 귀한 고깃국. H호텔에서 완벽 재현]

    기사를 보자 이거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때 이 호텔에서 먹었던 음식을 다시 한번 더 재현해 낸다면.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낯선 땅에서 다시 한번 대접을 받는다면 우릴 좀 더 특별하게 기억할 것이다.

    * * *

    -여보세요?

    -여보세요? 덕수야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전화냐?

    -얼마나 됐냐뇨. 제법 됐거든요.

    마크 대사가 H호텔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주방장님께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김상현 주방장님은 H호텔에서만 20년째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뭐 좀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

    -뭔데? 말만 해라 이 심사 위원님이 다 알려 줄게.

    -다름이 아니고, 예전에 참전 용사 출신 외교관이라면서 미국인 가족 기억나세요? H호텔에서 뭐 대접을 해 줬다는데.

    -참전 용사 출신 외교관?

    전쟁 중에 동네 주민들에게 얻어먹은 고깃국이라는 것 말고는 음식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이렇게 기사가 나올 정도라면 당시에 H호텔에서 꽤 신경을 썼을 거 같은데.

    -그 전쟁 중에 먹었던 음식이 다시 먹고 싶어서 온 그 사람 말하는 거구나?

    -네 맞아요. 고깃국이었다는데 그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요. 주방장님도 그때 계셨죠?

    -나? 당연히 있었지. 내가 어딜 가겠냐.

    역시나.

    한 번도 이곳을 떠나 본 적도, 길게 쉬어 본 적도 없는 주방장님이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빠지지 않았다.

    -기사 보니깐 엄청 만족하고 간 것 같은데 무슨 음식 만드신 거예요?

    -만족했다고? 아닌데.

    -네? 아니라고요?

    -응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맛이 아니라면서 계속 새로 만들었었어.

    -그래요?

    기사에 나온 내용과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호텔 측에서 적당히 미화시켜 기사를 내보낸 거겠지. 대단하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적당히 홍보할 수 있는 이벤트 정도로만 사용한 것 같았다.

    -근데 그 사람이 먹었던 음식이 뭐래요? 고깃국이면 갈비탕 같은 건가?

    -아니 뽀얀 국물에 뭐 넓적한 갈색 면이 들어 있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갈색 면? 넓적한 면이면 수제비 아니에요?

    -안 그래도 우리가 그때 만든 음식이 사골 국물에 수제비 면을 넣어서 끓인 음식을 내놨었거든.

    마크 대사의 아버지가 기억하고 있는 그 음식의 맛은 이러했다.

    담백한 고깃국물에 갈색 반죽이 들어있는 음식.

    중간중간 감자나 호박이 보이긴 했지만 채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뽀얀 고깃국물이라고 해서 사골로 국물을 우리고, 갈색 면은 메밀인가 해서 메밀 반죽으로 수제비를 만들어서 줘 봤는데 그 식감이 아니라더라.

    -왜요? 더 쫄깃했어야 했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수제비가 쫄깃한 식감이 아니라더라. 씹을 때마다 뚝뚝 끊겼다던데.

    -쫄깃하지 않은 수제비라구요?

    -응 그리고 국물도 너무 진해서 아니라고 하던데.

    -사골 국물은 진해야 제맛이지….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서 마무리했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말만 들어 보면 맛있는 음식이 아닌데요?

    -그럴 수도 있지.

    전쟁통에는 정신이 없고, 너무 오래 지난 일이라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국물이 진하지 않고, 뚝뚝 끊기는 식감의 갈색 면이 들어간 음식이 뭘까?

    일단 호텔에서 최고급 재료를 이용해 만든 사골 수제비는 정답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어렵네요.

    -근데 그때는 나도 뭐 일하느라 별 신경 안 썼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깐 너무 고급스럽게 음식을 만든 게 아닌가 싶더라.

    -고급스럽게요?

    -응 생각해 봐 봐. 전쟁 중에 식당에서 사 먹은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한테 얻어먹은 음식이랬잖아. 근데 그때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전쟁이라 식재료는 더 없었을 텐데.

    -사골은 고사하고, 닭발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고, 그땐 밀가루도 엄청 귀할 때였잖아요.

    -그렇지. 미군들이 주는 구호 물품에 조금 섞여 있는 게 전부였지.

    김상현 주방장은 마크 대사 아버지가 기억하는 음식이 아주 서민들의 음식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하지 못해 대체품들도 만든 흉내만 낸 음식.

    그저 배를 채우기만을 위한 음식.

    그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을 거라 생각했다.

    -대충 감이 잡히네요. 한번 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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