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5화 (106/202)
  • 105. 오픈

    “먼저 이런 축제에 일원이 될 수 있게 해 준 카차이시와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 대사관은 파나르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타국의 지역 축제를 위해 메뉴를 개발하고, 그 수익을 전부 기부까지 했으니, 호의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파나르 최대 축제 중 하나인 카차이 축제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음식 얘기는 빠지지 않았고, 자연스레 대한민국 대사관이 거론되었다.

    처음 계획했던 목적은 진작에 이뤘고, 내전이 터지기 전 인지도가 거의 바닥이었던 대한민국 대사관은 다른 나라 대사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스터 장.”

    “네 알렉스.”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네 그래야죠. 가서 또 할 일이 많아서요.”

    폐회식까지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려던 중 알렉스가 인사를 건넸다.

    “제스의 레스토랑이 곧 오픈한다면서요?”

    “네 맞아요. 돌아가면 거기도 또 가 봐야죠.”

    “미스터 장은 파나르인들보다 오히려 더 바쁜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축제가 끝이 나고 알렉스와는 더욱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저번에 만날 때만 하더라도 너무 큰 재력가라 그런지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파나르에서 내 입지가 조금이지만 높아져서 그런 걸지도.

    아주 조금씩 유명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나도 오픈할 때 꼭 들를게요. 이럴 때 아니면 미스터 장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올해 생일 파티에 저를 또 초대해 주시면 되죠. 그러면 원하는 음식을 실컷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젠 그때처럼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하하 내 눈에 들기 위해 애썼어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제 알렉스의 생일 파티에 가지 않아도 김용수 대사의 인맥은 충분히 넓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꼭 인맥이 아니더라도 알렉스의 생일은 요리사로서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올해는 꼭 손님으로 찾아와요. 맘 편히 먹고 즐기고, 음식에 대한 토론도 실컷 나누고 가요. 잊지 않고 초대장 보낼게요.”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알렉스는 악수를 위해 손을 건넸다. 내가 흔쾌히 그의 손을 잡자 알렉스를 나를 끌어당겨 안아 주었다.

    “고마워요 미스터 장. 미스터 장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하하 쑥스럽게 왜 이러세요. 제가 알렉스의 도움을 받은 적이 더 많은데.”

    “아니에요. 미스터 장은 내가 본 요리사 중 최고예요.”

    수백 명의 요리사들을 경험했을 알렉스의 입에서 내가 최고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의 눈빛과 꽉 쥔 손만 봐도 빈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렇게 겸손하고, 인간적인 부자는 본 적이 없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달라도 뭔가 다른 건가. 얼마 전 봤던 H호텔의 사장과는 사뭇 비교가 되는 알렉스의 품격이었다.

    “조심히 가고 곧 봐요.”

    “잘 가요 알렉스.”

    조만간 또 만날 테지만 친한 친구를 두고 떠나는 듯한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또 다른 친구를 찾아가야지.

    * * *

    오픈 전 마무리 청소 중인 J&J 분식.

    “미스터 장! 축하해요.”

    “잘 있었어요? 제스?”

    “역시 1등을 할 줄 알았어요. 대단해요 정말.”

    제스는 날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왔다.

    잘 있었냐는 나의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칭찬하기 바빴다.

    “제스는 잘 지냈냐구요.”

    “저요? 정신없이 바빴죠. 내일이 오픈이니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가게는 어떤 거 같아요?”

    공사가 끝나고 오픈을 앞둔 J&J 분식의 전경을 보자 나와 윤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윤아야 이게 분식집이란 게 믿어지냐?”

    “내가 말했던 건 종이컵에 떡볶이를 넣어서 파는 그런 걸 말했던 건데…. 이건 뭐 엄청나네.”

    “그러게 말이다.”

    간편한 길거리 음식점을 주로 오픈하던 제스가 이번엔 이를 간 것 같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규모와 다른 퀄리티의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스의 가게들은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요.”

    “크기가 좀 더 크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가게의 철학은 똑같아요.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식당. 좀 더 편하게 우리 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만들어 봤어요.”

    대형 패스트푸드점처럼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은 물론이고, 아무리 손님이 몰려도 자리가 남을 것 같은 큰 매장의 크기와 개성 있는 인테리어.

    하지만 책정된 메뉴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며칠 동안 엄청 준비 많이 하셨구나.”

    “메뉴만 결정되면 이런 건 어렵지 않죠. 회사를 운영한 지가 몇 년째인데.”

    포장 박스에서부터 포스터나 패키지 등.

    파나르의 프랜차이즈 킹다웠다. 나와 고민했던 메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그럴싸한 매장이 탄생했다.

    “이제야 J&J의 무게가 실감이 되네요.”

    “즐겨요. 내가 미스터 장의 유명세를 아낌없이 이용할 테니까.”

    “내가 유명세가 어딨다고….”

    “이제부터 만들면 되지요. 그건 내 전문이에요.”

    제스의 말대로 제스는 프랜차이즈의 왕이면서 동시에 마케팅의 귀재였다. 그것도 사람을 이용한 마케팅에 능숙했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서 회사를 홍보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내가 미스터 장 파나르에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게 만들어 줄게요.”

    “하하하 아무리 제스의 능력이 대단하다 해도 그건 불가능할 거예요.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제스의 그런 허세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야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해외에선 다르게 다가왔다.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유명한 사람으로 살아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레시피 한번 점검해 줘요.”

    “그러죠.”

    내일 정식 오픈을 앞둔 J&J 분식은 음식마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훈제오리 떡볶이는 먹을수록 진짜 최고예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조합인데.”

    “그렇죠? 맛있죠? 역시 미스터 장의 아이디어는 대단해요.”

    “제가 아니라 나인티나인이 알려 준 거예요.”

    훈제오리가 토핑으로 올라간 떡볶이며, 크림치즈가 들어간 김밥이며, 감자가 박힌 핫도그 등등.

    확실하게 파나르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와 연구를 할 때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저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네요. 제스의 회사 직원들 실력도 굉장하네요.”

    “고생 좀 했죠. 대신 넉넉하게 보너스 챙겨 줄 테니 걱정 마요.”

    “걱정 안 해요. 그런 걸로 장난 칠 사람 아니잖아요.”

    돈 가지고 장난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같이 일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고생한 만큼 직원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제스이기에 이렇게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 꼭 오픈 행사에 참석해 줘야 해요. 알았죠?”

    “오픈 행사요? 뭐 그런 것도 해요?”

    “네 음악도 요란하게 틀고, 선물도 나눠 주고, 나서서 제 자랑 좀 하려구요.”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식당 오픈을 요란하게 진행하곤 했었다. 춤을 추는 모델들을 부르거나 몸값이 저렴한 연예인들을 불러서 최대한 이목을 끈 뒤 영업을 시작했었다.

    이제는 그냥 조용히 오픈을 하는 추세였지만 파나르에선 여전히 오픈 행사는 최대한 시끄럽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미스터 장이 와서 한마디 해 줘야 해요. 축하의 말 같은 거요.”

    “저요? 제가 왜요? 그리고 저 파나르어도 못하는데요….”

    “한국어로 해 줘요. 한국의 셰프가 같이 참여했다는 걸 알려서 우리 매장의 신뢰도를 높이고 싶거든요.”

    “아…. 알겠어요. 한국어로라면 그 정도쯤이야.”

    파나르어도 아니고 한국어로 하는 축하의 말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이런 형식적인 자리는 익숙했으니까.

    어차피 주인공 역할은 제스가 도맡아서 할 것이다.

    “각오하고 오세요. 내일 엄청난 인파가 몰릴 거예요.”

    “희망적인 건 좋지만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에요 제스?”

    여태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 갔다지만 모든 식당은 뚜껑을 열어 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해도 과도하게 넘치는 자신감이었다.

    “적어도 내일은 엄청난 인파가 몰릴 거예요. 확실해요.”

    “왜요?”

    “내일의 주인공을 굉장한 사람들로 초대했거든요.”

    “주인공이요? 제스가 주인공 아니에요?”

    “그러고 싶었지만 이 사람들이 와 주면 당연히 양보해야죠. 이것도 다 미스터 장 덕분이에요.”

    “제 덕분이라구요?”

    제스는 끝끝내 그 주인공의 정체를 알려 주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당장 내일 오전이면 알 수 있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J&J 분식의 오픈 행사.

    “저희 J&J 분식이 오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대한민국 대사관 장덕수 요리사를 무대 위로 모셔 보겠습니다.”

    높진 않았지만 꽤 큰 무대까지 설치된 주차장에서 한국어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한국의 대사관 요리사가 함께 참여한 한국 음식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서 벌써부터 신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으로 축하 무대가 있겠습니다.”

    축하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고 요란한 음악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이 음악 어딘가 낯익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사방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나인티나인입니다.”

    “어?”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 나인티나인은 덩달아 파나르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대단한 그룹이 되어 있었다.

    “뭐에요 제스! 오픈 행사에 나인티나인을 섭외한 거예요?”

    아무리 J&J 분식의 규모가 크다지만 이런 곳에 나인티나인이 올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 역시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가수의 등장에 난리가 났다.

    “내가 초대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요?”

    “본인들이 먼저 오겠다고 한 거예요.”

    “나인티나인이 먼저요?”

    “네!”

    제스 역시 이 상황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미스터 장 덕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게 왜 제 덕분이냐구요.”

    “미스터 장이 J&J 분식 오픈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홍보를 해 주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어요. 미스터 장에게 뭔가 보답하고 싶은데 이런 거라도 기회가 있을 때 해야 된다구요.”

    “나인티나인이요?”

    나와 윤아는 음식을 싸 들고 가서 겨우겨우 섭외를 했었는데 본인들이 먼저 홍보를 하겠다고 나섰다니.

    조금 억울했지만 무대 위에서 행복해하는 나인티나인의 얼굴들을 보니 반갑고 고마웠다.

    “한국에서도 떡볶이 광고를 찍었대요.”

    “맞아요 들었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대요. 한국과 파나르에서 동시에 떡볶이 모델을 하는 그룹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일 거라며 하겠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별걸 다 욕심부리네.”

    나인티나인의 무대 덕에 J&J 분식의 오픈 행사는 졸지에 콘서트장이 되어 버렸다.

    무대를 철거하고 손님들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제스가 그들을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에이스! 잘 지냈어요?”

    “요리사님.”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나인티나인의 멤버 한 명 한 명씩과 격한 포옹을 했다.

    멀리 보낸 동생들이 큰 성공을 이루고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 * *

    J&J 분식의 한 구석.

    “저 사람이 대한민국 대사관 요리사?”

    “맞아요. 최근 파나르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이죠.”

    “따로 얼굴을 한번 봐야겠네요. 연락처를 알아봐 줄 수 있어요?”

    한참 동안 덕수를 지켜보던 두 사람은 뭔가 결심한 듯 몇 마디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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