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4화 (105/202)
  • 104. 예상치 못한 손님

    “그 저녁 저희가 대접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 알렉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축제 기간 동안 아낌없이 쿠므스를 지원해 준 알렉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여러분.”

    시장님?

    알렉스의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는 카차이 지역의 시장이었다.

    나는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놀랐지만 다들 시장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수 대사.”

    “하하 잘 지내셨습니까? 시장으로 부임한 거 축하드립니다.”

    카차이 시장은 제일 먼저 김용수 대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둘이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아 보였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사이.

    계획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반가움을 전했다.

    “미스터 장. 내가 보내 준 쿠므스는 다 소진했다면서요?”

    “네 넉넉하게 보내 주신 덕에 잘 썼습니다.”

    “내가 말했죠? 미스터 장의 부스에 제일 많은 손님이 몰릴 거라고.”

    “역시 보는 눈이 남다르시네요.”

    “이 많은 양을 다 쓸 줄은 몰랐네요.”

    “제가 한 게 있나요? 공짜로 주니깐 그냥 가져간 거죠.”

    “그렇긴 해도 안 먹을 사람은 안 먹어요. 한국에도 꼭 소주만 마시는 사람, 맥주만 고집하는 사람, 막걸리만 마시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그래도 공짜로 주는 술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그런가? 하하하.”

    지원해 준 많은 술을 전부 다 돈을 받고 팔았어도 알렉스는 이렇게 기뻐하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그에게 돈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까.

    다만 자기의 감각이 여전히 매섭다는 걸 확인했다는 게 더 기뻤을 거다.

    “근데 시장님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카차이 지역 축제인데 제가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면박 주는 중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하하. 방해될까 봐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자리를 옮겨서 할까요?”

    김용수 대사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딱 봐도 카차이 시장이 좋은 소식을 전해 주러 왔다는 걸 눈치챈 김용수 대사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저희가 저녁 식사를 대접할 테니 전부 같이 자리를 옮기시죠.”

    “네 알겠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물론이고, 부스를 운영했던 주민들 모두 시장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주민들은 시장에게 직접 저녁 식사를 대접받는단 사실만으로도 들뜬 모습이었다.

    * * *

    카차이 인근 호텔의 레스토랑.

    “김용수 대사님의 능력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제 능력이라뇨.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올해 축제는 정말 카차이다웠던 축제가 되었습니다.”

    카차이다웠다라.

    지역 축제를 칭찬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저도 그 어탕라면이라는 거 한 그릇 먹어 보고 싶었는데 제가 끼어들 자리가 없더라구요. 정말 손님이 많더군요.”

    “그건 전부 저희 요리사 덕분입니다.”

    “장덕수 요리사 말이지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정확한 이름 석 자가.

    “저희 요리사를 알고 계신지요?”

    “미안한 말이지만 김용수 대사님보다 더 유명한 게 장덕수 요리사 같더군요. 알렉스가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허허허 맞습니다. 저는 보통 대사일 뿐이지만 저희 요리사는 보통 요리사는 아니지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김용수 대사는 잠시도 머뭇하지 않고 자기 직원들을 치켜세워 준다.

    그렇게 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김용수 대사의 리더십이 더욱 훌륭하다는 것을.

    이제 질투 때문에 자신의 부하 직원들과 자잘한 기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알렉스의 생일 파티에 매년 참가했었는데 올해만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었습니다. 하필 그때 장덕수 요리사가 올 줄을 몰랐네요. 저는 먹을 복이 없나 봅니다.”

    “그러네요. 다음에 저희 관저에 한 번 초대하겠습니다. 그때 맘껏 맛보시죠.”

    “정말입니까?”

    대한민국 대사와 파나르의 수많은 도시 중 하나인 카차이 시장이 정책 등을 나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식적인 인사로도 이 정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차이 시장의 표정은 달랐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연락처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빠르게 날짜를 잡아 보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윤아 씨 명함 하나만 드려요.”

    형식적인 인사엔 형식적으로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적극적인 시장의 태도에 김용수 대사도 잠시 주춤했다.

    “다름이 아니라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급하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카차이 시장의 저녁 식사 초대는 갑작스러웠지만 나름 계획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첫날 축제장을 살펴본 카차이 시장은 알렉스의 추천으로 우리 대사관 부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쿠므스를 지원해 준 알렉스에게도 고마웠지만 그것을 더 제대로 활용할 사람들이 있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대는 덕에 도대체 그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했다고 한다.

    “저는 축제 기간 동안에는 웬만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왜죠?”

    “괜히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가 있어서요.”

    아무리 몰래 둘러본다 해도 시장이 움직이면 비서나 보좌관 몇 명이 붙을 것이고, 시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축제의 흥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개회식 때도 참석하지 않고, 축제의 마지막 날 온 힘을 쏟는다고 했다. 유종의 미를 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카차이 지역에서 나는 물고기와 새우로 만든 한국 음식이란 말에 꽤 기대를 했었는데 이 정도로 훌륭한 성과를 낼 줄은 몰랐습니다. 민물고기로 만든 파나르 음식도 충분히 맛있지만 이렇게 인기가 있지는 않았거든요.”

    “그랬군요. 저희 요리사가 정한 메뉴이고, 만든 음식입니다.”

    “놀랐습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사업가인 알렉스가 저보단 몇 수 위인 것 같군요.”

    옆에서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음식을 먹는 알렉스였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는 내일 축제 폐막식 때 여러분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감사패요?”

    시장이 우리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축제 기간 동안 애써 준 사람들에게 감사패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임기가 시작된 올해부터 축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한 작은 이벤트였다.

    “진심으로 카차이 지역을 위해 노력해 준 사람들에게 주는 감사패입니다. 저 역시 이 지역 출신으로 카차이 축제가 점점 색깔을 잃어 가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걸 저희가 받아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출신이 어떻든 그 신분이 어떻든간에 카차이 지역을 위해 일해 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감사패입니다.”

    이 감사패를 받은 사람이라면 작은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지역 주민이라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외부인이라면 카차이 지역에 있는 명소들의 입장료 등을 면제해 주는 혜택을 줬다.

    “혜택은 점차 늘려 갈 거고, 이 감사패를 받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에서도 좀 더 축제의 본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비해 피자나 핫도그 같은 장사꾼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파나르 음식을 팔겠다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부스를 내어 줬으니까요.”

    부스를 운영한 부부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주민들이 원한다면 부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만든 시스템 역시 새로운 시장의 아이디어였다.

    “첫해라서 정책이 많이 알려지지도 않고, 저희 역시 확신이 없었는데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을 보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떤 확신이요?”

    “카차이 축제가 파나르 최고의 축제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을요. 그리고 더 나아가 반드시 카차이 호수가 파나르의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시장의 계획은 확실했다.

    축제는 물론이고, 호수를 중심으로 카차이 지역을 관광 명소로 개발하겠다는 것.

    자신의 임기 동안 모든 것을 완료하지는 못해도 첫 삽이라도 푸고 싶어 했다.

    “그런 의미로 대사님이 저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저희가요?”

    “네 관저로 초대해 달라는 제 말의 의미는 따로 있었습니다.”

    김용수 대사도 시장의 포부를 듣고 그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당연히 도울 건 도와야지.

    그러기 위해 이렇게 대사관 홍보를 한 것이니.

    뭔가 추상적인 성과가 아니라 사업으로 이어질 만한 뚜렷한 성과가 발생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저는 원래부터 한국의 건축 기술에 대해 대단하다고 느끼는 중이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호텔이라든가 두바이의 고속 도로 등. 정말 말도 안 되는 성과를 이뤄 낸 기업들이 많죠.”

    “그렇습니다. 그건 저희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기술적인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저희가 더욱 인정하는 부분은 디자인 측면입니다.”

    “디자인이요?”

    “서울 시내의 청계천이라든가 송도 신도시 등을 보면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트랜디하게 꾸며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한국만큼 디자인에 신경 쓰는 나라는 잘 없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핵심 기술은 부족하면서 겉멋만 들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기술적인 부분까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다.

    빌딩은 물론이고, 자동차, 핸드폰 심지어 책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쁜 것이 잘 팔리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카차이 지역 개발 사업을 한국 기업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을 대사님께서 성사시켜 주십시오.”

    “음… 그렇군요.”

    “이미 예산 신청은 해 놓았고, 별문제가 없으면 통과가 될 겁니다. 카차이 지역 개발 사업은 예전부터 미루고 미루던 거라 더 늦어지면 주민들의 삶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예상보다 큰 규모의 제안에 김용수 대사는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일단 해 보기로 맘을 먹은 것 같았다.

    자신의 임기 동안 이렇게 큰 사업을 성사시키는 것만큼 확실한 성과도 없을 테니까.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 일단 부딪쳐 보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저희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차적으로 진행이 된 후 관저에서 뵙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한번 잘 만들어 보시죠.”

    두 사람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했다.

    “그 사업이 시작되면 제가 호텔 하나 지을 수 있게 자리 내어 주실 수 있나요?”

    두 사람의 사이에 알렉스가 끼어들었다.

    “물론이지요.”

    사업만 제대로 된다면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어탕과 새우깡으로 시작된 일이 예상치 못하게 커져 버렸다. 지금의 잔잔하고, 달빛을 담은 카차이 호수도 충분히 좋았지만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고, 좀 더 풍족하게 지내는 주민들의 웃음도 보고 싶어졌다.

    * * *

    다음 날 카차이 축제 폐회식.

    “다음은 이번 축제를 성황리에 끝낼 수 있게 도와준 분들에게 드리는 감사패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조촐했던 개회식과는 달리 축제의 폐회식 규모는 제법 웅장했다. 취재를 위해 몰린 기자들도 많았고, 감사패뿐 아니라 준비된 게 많았다.

    “파나르 전통술인 쿠므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알렉스 사장의 넉넉한 지원 덕에 카차이 축제가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카차이시에서 감사패를 전합니다.”

    축제 기간 동안 쿠므스를 무한으로 지원한 알렉스 역시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올해 축제의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분들입니다. 원래는 하루만 있다가 돌아가는 일정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축제의 마지막 날까지 붙잡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의 설명에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부스를 운영했던 주민들이 단상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대사관은 카차이 지역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한국 음식인 어탕과 새우깡으로 파나르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특히 그로 인해 발생한 많은 수익을 전부 카차이 지역 발전 기금으로 기부까지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기부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셔터 소리 역시 끊임없이 들려왔고, 김용수 대사를 필두로 우리는 단상으로 올라가 그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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