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3화 (104/202)

103.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어떻게요?”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오늘 만든 요리의 레시피를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준비하고 운영을 하겠습니다.”

“네?”

“이 음식을 팔 수 있게 허락을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피곤해하는 내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나 보다.

더 이상 우리에게 직접 운영을 해 달라곤 하지 않았다.

“저도 식당을 오래 한 사람이라 레시피를 공짜로 알려 달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아니 뭐 돈 엄청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라….”

“며칠간 운영해서 번 수익을 전부 대사관 측으로 전달하겠습니다.”

나도 장사를 위해 만든 레시피였다면 좀 더 신경을 썼을 텐데, 이 어탕 레시피는 단순 그 자체였다.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했고, 익숙한 음식이 아니니 무난하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게다가 새우깡은 그냥 튀긴 게 전부였다. 레시피라고 할 게 따로 없었다.

“장소 섭외, 조리, 판매 그리고 대한민국 대사관 홍보까지 저희가 도맡아서 하겠습니다. 이 부스를 그대로 저희가 며칠 동안 운영을 할 테니 좀 알려 주세요.”

우리가 했던 일을 그대로 본인들이 하겠다는 두 사람.

자연스레 김용수 대사에게로 고개가 돌아갔다.

“허허 참. 김준우 서기관, 우리가 며칠간 묵을 숙소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자세한 홍보는 우리 대사관에서 맡아야 할 것 같네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김용수 대사도 제안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늦더라도 당일치기로 돌아가려 했는데, 며칠 더 묵을 숙소를 구해 보라는 지시를 했다.

“괜찮으시면 묵을 곳도 저희가 제공하겠습니다. 어차피 근처 호텔이나 리조트는 예약이 꽉 차서 구할 수 없을 겁니다.”

“정말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우리는 카차이 호수가 보이는 숙소까지 제공받고 며칠 더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장 셰프. 혹시 이번에 만든 어탕라면의 레시피를 공개하기 곤란하거나 그런 건 아닌가요?”

“어탕이요? 아닙니다. 손질하는 게 번거로워서 그렇지 레시피 자체는 별거 없습니다. 그래서 돈을 받고 하는 게 영 불편하네요.”

레시피를 알려 주면 며칠간의 수익을 나눠 주겠다는 두 사람.

그게 아니라도 이 정도 레시피쯤은 알려 줄 수 있었다. 김용수 대사 역시 뭔가를 계획하고 있는 듯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팔고, 홍보를 해 봅시다. 장 셰프가 조금 피곤하겠지만 최대한 육체적인 노동은 줄이고, 컨설팅을 하는 쪽으로만 해서 진행해 봅시다.”

“네 진짜로 그럴 생각입니다. 오랜만에 피곤해서 직접 나서고 싶어도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제안 하나를 해도 될까요?”

“제안이요? 말씀하세요.”

김용수 대사는 다시 한번 직원들을 북돋웠다.

그리곤 두 사람에게 가서 뭔가를 제안했다.

“저희도 부탁드릴 게 몇 가지가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가능한 거라면 뭐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이 부스를 운영하고 싶어 모든 것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첫 번째로 우리 셰프가 피곤하지 않도록 모든 노동은 직접 하셔야 합니다. 저희 셰프는 방법만 알려 주는 걸로.”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아들들을 통해서 일할 사람을 섭외 중입니다.”

오전에 본 아들들의 섭외력이라면 인력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추가로 부스를 운영하는 동안 대한민국 대사관의 홍보는 저희가 직접 하겠습니다. 대신 팸플릿에 새우깡을 담아서 파는 방식은 유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합니다. 저희도 돈을 벌기 위해 하려는 건 아니라서요.”

두 번째 제안까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되면 우린 힘도 들이지 않고, 돈과 홍보 효과를 전부 얻을 수 있게 된다.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네 말씀하세요.”

김용수 대사는 마지막 제안을 꺼냈다.

“어탕라면과 새우깡을 팔아 얻은 수익은 전부 기부하고 싶습니다.”

“네? 기부요?”

“네 카차이 지역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기부라는 말에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파나르 국적도 아닌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도 아닌 곳에 와서 재능을 선보이고, 얻은 수익까지 기부한다?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건 사기꾼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저희 대한민국 대사관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과 파나르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되려 돈을 써서라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아….”

“며칠간 벌어들인 돈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들이 점점 잦아지면 카차이 지역이 좀 더 알려지겠죠.”

며칠간 살펴본 이 카차이 호수 인근은 유명세에 비해 많은 투자가 이뤄진 곳은 아니었다.

바다만큼 큰 인공 호수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매력이 있는 관광지인데, 축제가 열리는 기간 외엔 많은 관광객이 찾질 않고 있었다.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카차이 호수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행지이지만 그 주변은 별게 없더군요. 호텔이나 리조트도 규모에 비해 부족하고, 길이라든가 정비 사업도 미흡하구요.”

김용수 대사의 말에 여행객의 입장인 직원들과 토박이인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파나르 시내랑도 그렇게 멀지 않고, 상황이 나쁘지 않은데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그렇군요.”

전 세계 공무원들은 비슷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 온 김용수 대사는 카차이 지역이 왜 이렇게 되고 있는지 금방 알아챘다.

한번 건드리면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면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깐.

미루고 미루다 보니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카차이 호수를 개발한다면 민물고기 판매량은 물론이고, 지역이 활성화되는 건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저희도 이 카차이 축제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대사관 홍보를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지역 주민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해 주셔야 합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김용수 대사는 우연히 잡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그냥 팸플릿만 주고 끝날 뻔한 이 상황을 꽤 그럴싸하게 만들어 버렸다.

조금 피곤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 요리를 알려 주는 것.

그게 내가 요리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었다.

* * *

식당이라 그런지 역시 주방은 쓸 만했다.

성인 남자 대여섯 명이 들어와도 충분한 크기.

“자 물고기 왔습니다.”

커다란 대야에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쏟아졌다.

내가 준비했던 양의 족히 서너 배는 넘어 보였다.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약속대로 주방 밖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최대한 힘을 아꼈다.

“파나르에서 물고기 손질은 어떻게 하시죠?”

“우리는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전부 꺼낸 뒤 깨끗한 물에 한 번 씻어 줍니다.”

“똑같네요. 그럼 일단 이 물고기들을 전부 손질해 주세요.”

척하면 척이었다.

손질하는 방법도 똑같았고, 아들들이 모아 온 인력도 충분했으니 많은 양의 물고기들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이 사람들을 알았다면 진작에 도와 달라 했을 텐데.

카차이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은 식당을 하지 않아도 물고기 손질에 능숙했다.

엄청난 고급 인력들이었다.

“이제 이 물고기를 삶고, 뼈를 걸러서 채소를 넣어 끓여 주면 됩니다.”

된장이나 고춧가루 등은 남은 걸 사용해도 충분했다. 다음에 더 만들고 싶으면 시내로 가서 구매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리고 새우깡은 원래 튀김가루를 이용하지만 그냥 밀가루와 전분을 조금 섞여서 사용하면 됩니다.”

“근데 요리사님. 혹시 이 튀김가루에 뭔가를 더 첨가해서 만들어 봐도 될까요?”

“어떤 걸요?”

원래는 튀김가루에 후추 정도만 추가해서 튀겨 낸 게 전부였다.

새우 자체에 감칠맛도 강하고, 별다른 양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음식을 총괄하던 아내분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듯 가루 하나를 가지고 왔다.

“이건 큐민가루예요.”

“아! 플롭에도 넣어서 요리를 하죠?”

“역시 잘 아시네요. 원래는 안 넣은 게 정석이지만 이 큐민을 넣어서 만든 플롭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요.”

“이걸 튀김가루에 넣으시게요?”

“네 아주 약간의 향만 느껴지게요.”

많은 양이 들어가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모든 향신료가 그랬다.

큐민은 카레 가루를 만들 때도 들어가는 향신료이기 때문에 적당량을 사용하면 중독성 있는 맛을 낼 수도 있었다.

“이 정도만요. 어떠세요?”

“넣은 거 맞아요? 아무 맛도 냄새도 안 나는데.”

“더 넣으면 호불호가 갈릴 테니까 딱 이 정도만 넣어도 괜찮을 거예요.”

큐민을 첨가해 튀겨 낸 새우깡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입에 넣은 순간 그 차이점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오! 이거 뭐지?”

“어때요? 어울리나요?”

“이거 뭐랄까…. 새우의 맛이 진해서 몸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느낌인데요? 쾌감이 느껴질 정도예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감칠맛이 덩어리인 새우에 튀김이라는 요리 방식.

거기에 약간의 큐민가루가 첨가되자 엄청난 중독성을 보이는 음식이 탄생했다.

“제가 만든 것보다 업그레이드되었네요. 한 수 배웠습니다!”

“에이 뭘요. 그냥 가루 하나 더 넣은 것뿐인데요.”

겨우 가루 하나지만 그 맛의 차이는 극명했다.

아니, 맛으로 느낄 순 없을 정도였지만 훨씬 더 매력적인 음식이 된 건 확실했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주방으로 들어가 두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뭐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을 테니까.

* * *

카차이 호수.

이틀째를 맞이하는 카차이 지역의 축제는 어제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방문했다.

날씨는 더 따뜻해졌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덕분에 어탕라면과 새우깡은 오픈부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하루만 운영하고 끝낼 생각으로 받았던 쿠므스도 알렉스에 추가로 요청해 넉넉히 받아 두었다.

알렉스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반갑다는 듯 신이 나서 쿠므스를 보내 주었다.

“어제는 외국 사람들이 팔아서 그런가 좀 경계하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다르네요.”

“그러게요. 파나르 사람들이 파는 음식이라 믿고 먹는가 봐요.”

어제는 형제의 홍보가 있기 전엔 조금 낯을 가리는 느낌이었다. 냄새도 좋고, 분명 맛있을 거 같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음식을 파는 사람들도 외국인들이었고.

하지만 오늘은 파나르인들이 부스에 서서 직접 홍보를 하고, 판매를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 팸플릿이 모자라겠는데요.”

“그러게요. 내일은 고깔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거 아니라도 충분히 소진될 것 같네요.”

이번엔 준비한 팸플릿이 부족했다.

고깔로도 쓰고, 나눠 주기까지 하니 금세 소진되고 있었다.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호기심이 생긴 손님들은 자연스레 팸플릿을 읽어 보고, 대사관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 * *

“휴우. 오늘까지만 하면 끝이네요.”

“하루 만에 끝날 줄 알았는데 3일이나 있었네요.”

“김준우 서기관님. 사모님이 늦게 온다고 뭐라고 안 하세요?”

“저희 아내요? 진우가 여기 좋다고 해서 3일째 머물고 있는 중이에요.”

“정말요? 좋네요.”

다들 몸은 피곤했지만 밀려드는 손님들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아들들이 불러낸 인력들 덕에 부스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자, 오늘 영업은 여기서 끝입니다!”

“휴우,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새우깡을 팔고 난 후 장사는 끝이 났다.

호수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요리사님 덕분에 잘 끝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옆에서 입으로만 말했지만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계획과는 달리 직접 나서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 번만 알려 줘도 척척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진짜 가만히 서서 컨설팅 정도만 해 주는 걸로 끝을 낼 수 있었다.

덕분에 피곤했던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쿠므스도 엄청나게 소진되었고, 우리 부스가 이번 축제 기간 동안 확실히 최고였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피자나 핫도그보다 장사 잘되는 부스는 오랜만에 본 거 같아요.”

몰린 손님 수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 부스가 최고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덕분에 대한민국 대사관도 좀 더 많이 알릴 수 있었다.

“저희가 저녁 대접할 테니 다들 식사하시고 가시죠.”

“그럴까요?”

빠르게 정리를 마치고, 함께 고생한 주민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철수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그 저녁 식사 우리가 대접하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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