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2화 (103/202)
  • 102. 아쉬운 마무리

    안지용 참사관이 데려온 손님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탕은 이미 한 그릇씩 비운 후였고, 습관적으로 새우깡에 손을 뻗으면서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친구들 부르는 거 같은데.”

    “친구들?”

    “응 뭐 와서 홍보 좀 하라고 그러는 거 같아.”

    두 사람의 전화를 엿들은 윤아가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우리 지역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희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홍보하는 것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마음은 고마웠지만 준비한 음식이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어서 당황스러웠다.

    축제 기간은 길지만 우리는 오늘 단 하루만 판매한 뒤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오랜 시간 부스를 운영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음식이 팔려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일손이 부족해서 음식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조금만 불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듣는 둥 마는 둥 두 사람은 끊임없이 연락을 해 댔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카차이 호수 근처의 동네 젊은이들이 모두 모인 듯 사람이 몰렸다.

    “자 이거 하나에 천 원밖에 안 하니깐 각자 하나씩 사서 홍보하러 가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멀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분들이 우리 지역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카차이 지역 주민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새우깡 튀기는 속도를 더욱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네 새우깡 5개요?”

    “곧 튀겨지니깐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오후가 되자 축제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곳곳으로 파견(?)된 카차이 주민들의 활약 덕에 우리 부스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이 정도 손님이면 한두 시간 버티면 끝이겠는데.”

    “윤아야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이 팸플릿이라도 좀 나눠 주자. 음식을 못 팔더라도 홍보는 해야지.”

    “응 알았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손님들이 몰려 부스는 정신이 없었다.

    이 기세라면 준비한 음식은 곧 바닥나고 만다.

    그러면 원래 목적인 홍보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팸플릿을 나눠 주며 대사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어차피 기다리기 지루했던 손님들은 팸플릿과 윤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대사관 위치를 묻거나 하는 일에 대해 묻기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저 사람들만 받고 음식은 끝내야 할 것 같아.”

    “정말? 벌써?”

    “응 어탕은 어차피 더 팔고 싶어도 팔 수도 없고, 사 왔던 새우도 이제 끝이야. 새우가 문제가 아니라 튀김가루가 모자라겠다.”

    결국 밀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음식 판매를 중단했다.

    준비한 음식이나 다 팔겠다는 게 오늘의 목표였는데, 그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성과였다.

    “그래도 어탕라면이 입맛에 맞긴 했나 보다.”

    “물놀이 후에 먹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음식을 남긴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

    “역시 물놀이 후엔 라면이지.”

    새우깡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흥행 상품이었고, 어탕라면 역시 파나르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마지막 남은 두 그릇의 어탕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할 예정이었다.

    “저 어르신 두 분 식사만 끝내고 정리하자. 차라리 잘됐다. 이러면 일찍 정리하고 집에 갈 수 있겠네.”

    “그러게. 밤늦게까지 일해서 피곤한 거보단 낫지.”

    모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기대보다 더 빨리 이뤄졌다. 이젠 더 팔고 싶어도 어탕은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다.

    내일 또 팔기 위해선 적어도 오늘 오전부터 준비했어야 하니까.

    “두 분 식사 끝났다. 이제 정리하자.”

    “알았어.”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의 어탕라면 식사가 끝이 나자 직원들 모두가 달려들어 정리를 시작했다.

    근데 계산을 마친 두 손님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부스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음식을 너무 잘 먹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요. 혹시 이 음식을 만든 요리사를 볼 수 있을까요?”

    “요리사요? 물론이죠.”

    윤아의 부름에 나는 손님 앞으로 다가갔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두 사람은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이 음식을 우리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들었다구요?”

    “네 맞습니다. 이 어탕과 새우깡 전부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겁니다. 맛있게 드셨어요?”

    “맛있게 먹었다마다. 정말 놀랍네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놀라면서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이런 훌륭한 음식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걸 만든 요리사가 이렇게 젊다는 건 더욱 놀랍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들이 굉장한 게 있다고 난리 쳐서 와 봤더니 정말 굉장하네요.”

    “아들들이요?”

    왜 두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은지 알 것 같았다.

    아침부터 호숫가에 나와 술을 마시고 있던 형제들.

    안지용 참사관과 금세 친구가 되어 홍보를 도와줬던 손님들의 부모님이었다.

    “아하! 그분들의 부모님이셨구나. 덕분에 준비한 음식을 잘 팔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그게 무슨….”

    두 사람 중 중년의 여성 손님은 갑자기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저희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나는 물고기를 잡아서 팔고, 먹으면서 자랐어요.”

    “그러셨군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차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며 사는 건 꽤 괜찮았어요. 일 자체도 재밌고, 돈도 많이 벌었고.”

    오전에 두 아들이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바닷고기를 쉽게 접하고 나서부터 민물고기를 외면하기 시작했어요. 같이 운영하던 식당도 점점 힘들어졌죠.”

    남편분께서는 직접 물고기를 잡고, 아내분은 잡은 물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생선으로 만든 비쉬파르막이나 소금에 절여서 말린 생선 등을 만들어 팔았지만 수익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 삼을 건 이 축제의 규모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건데, 사실 규모만 그대로지 본질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거든요.”

    그건 축제장을 한 바퀴만 돌아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민물고기의 소비량을 늘리고, 카차이 지역 활성화를 위한 축제이지만 전혀 관련 없는 부스들이 즐비해 있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우리 대사관 홍보도 관련이 없었지만.

    핫도그라든가 피자 같은 그저 잘 팔리는 음식들을 파는 곳이 난무했고, 카차이 지역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다.

    “근데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이런 걸 준비할 줄은 몰랐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들과 조금 다른 점은 우린 영리 목적의 기업이 아니라는 점.

    대사관이 자선 단체는 아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뭔가를 하는 단체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본질을 지킬 수가 있던 것이다.

    거기에 내 아이디어가 조금 보태졌을 뿐이고.

    “이 어탕이라는 음식은 손이 많이 가죠?”

    “네 맞습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한 입만 먹어 봐도 그 정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역시 민물고기를 이용한 식당을 오래 운영해서 그런지 노고를 단번에 알아주었다.

    음식은 달라도 손질이 번거로운 건 똑같을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음식을 축제 기간 동안 좀 더 팔아 주면 안 되겠습니까?”

    “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미 아들들에게 오늘까지만 부스를 운영할 거란 말을 들었지만 부탁을 하고 싶었다는 두 사람이었다.

    “며칠만 더 이 어탕라면과 새우깡을 팔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들 덕분에 이 축제가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서요.”

    “음….”

    “사실 이런 일들은 저희가 했어야 하지만 많이 모자랐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우리 카차이 지역에 온 손님들에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더 맛보여 주고 싶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렉스가 별장의 주방을 허락해 준 시간은 하루뿐이었고, 대여한 부스 역시 오늘 하루뿐이었다.

    그리고 어탕을 끓일 물고기도 없고, 손질할 시간도 모자랐다.

    돕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두 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론 힘들 것 같습니다. 괜찮다면 내년 축제 때는 좀 더 길게 계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축제를 준비하며 카차이 지역 주민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아… 죄송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용수 대사도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협조하고 싶었지만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대사관 홍보를 좀 더 길게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겠네요.”

    “제작한 팸플릿도 다 소진하지 못해서 저희도 좀 더 하면 좋겠지만 음식까지 만드는 건 힘들겠네요.”

    고깔로 사용한 팸플릿 양도 상당했지만 남은 양은 여전히 많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남은 팸플릿만 손님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최대한 홍보를 하는 게 필요했으니.

    “일단 주방은 저희 식당의 주방을 사용하세요.”

    “주방만 문제가 아니라, 어탕을 끓일 물고기와 새우도 없습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물고기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식당이 힘들어졌어도 축제 기간엔 충분한 양의 물고기를 준비해 뒀다고 한다. 기꺼이 그것을 내준다는 두 사람.

    “그리고 부스도 오늘까지만 약속한 거라서요….”

    계속되는 부탁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희 카차이 지역 주민에겐 원하면 부스 한 개씩은 무료로 내어 줍니다. 저희는 식당 이름으로 신청을 해 놓은 게 있으니 그것도 걱정 마세요.”

    이쯤 되니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김용수 대사까지 나서기 시작했다.

    “장 셰프. 어탕까지 힘들면 새우깡만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도 남은 팸플릿을 전부 소진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정 안되면 그렇게라도 하면 되는데 일정이 괜찮으신가요?”

    “그건 걱정 마요. 오늘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제대로 홍보가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며칠 더 할 수 있으면 우리도 연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용수 대사 역시 오늘 하루만으로 아쉬웠다고 한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그냥 팸플릿을 전해 주거나 고깔에 담긴 음식을 내어 주기 바빴으니.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홍보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 새우깡만으로 며칠 더 해 볼까요?”

    “기왕이면 어탕까지 해 주셨으면 하는데….”

    나름의 타협책을 제안했지만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부터 어탕을 준비한다 해도 밤을 꼬박 새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제부터 이어진 업무에 이미 몸은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제 몸이 버티질 못할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우깡 정도까지입니다. 더는 할 힘이 없습니다.”

    나도 무조건적으로 희생할 이유는 없었다.

    원래 팸플릿만 나눠 주고 끝날 행사를 이렇게까지 성과를 낸 것만으로도 내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이런 식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면 요리사님.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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