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01화 (102/202)
  • 101. 축제의 시작

    “산초가루 대신 고수 좀 넣어 보자.”

    “고수?”

    윤아가 냉장고에서 꺼내 온 건 고수 몇 줄기였다.

    주방 보조 직원들 역시 같은 생각인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산초가루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파나르에선 이 고수에 호불호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걸?”

    “어울릴까?”

    “고민해 봐서 뭐 해. 직접 해 보면 되는 걸.”

    윤아는 익숙하게 고수잎과 줄기 몇 개를 도마에 올려서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 숟가락 듬뿍 어탕에 넣어 휘휘 저었다.

    “어때? 어울려?”

    다진 고수를 넣은 윤아와 주방 보조 직원들은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곤 끊임없이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덕수야 너도 먹어 봐.”

    “이건 생각도 못 했네.”

    한국이었다면 고수의 향 때문에 어탕의 맛을 전부 버렸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거다.

    하지만 파나르에선 모든 음식에 이런 허브의 향의 없다면 심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낯선 맛이었지만 어탕과 고수의 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 입맛에도 나쁘지 않았다.

    “먹을수록 중독성이 생기는데?”

    “그치? 파나르 사람들 입맛은 그래도 내가 좀 더 잘 아네.”

    “제법이네. 이건 인정.”

    윤아의 아이디어 덕에 좀 더 파나르와 어울리는 어탕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진 고수를 준비해야 하니 일이 하나 더 생겼지만 그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고수와 새우깡을 만들기 위한 민물새우를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뒤 별장을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카차이 호수.

    “뭐야 아침부터 사람이 꽤 많네?”

    “어제 저녁부터 근처 호텔이랑 숙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파나르 최대 축제 중 하나답게 아침 일찍부터 곳곳에 사람들이 보였다.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나온 우리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들.

    오후가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릴지 기대가 되면서 걱정이 되었다.

    “이 정도면 준비한 어탕이 턱도 없이 모자라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입맛에 맞으면 잘 팔리겠지만 생각보다 안 팔릴 수도 있지.”

    “차라리 모자랐으면 좋겠다.”

    어탕은 워낙 손이 많이 가고 만들기 번거로운 음식이라 두 번은 하기 힘들다. 하지만 옆에 준비 중인 이 새우깡은 모자라도 언제든 다시 준비할 수 있다.

    민물새우는 카차이 호수에서도 쉽게 살 수 있고, 별도의 손질 없이 그냥 튀겨 내면 되니까.

    어탕은 돈을 벌기 위한 음식이라면 새우깡은 홍보를 위한 수단이었다.

    “안 참사관님, 쿠므스는 많으니깐 나중에 드세요.”

    “저는 뜨끈한 국물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어탕이랑 쿠므스가 어떤 맛일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팸플릿이나 행정적인 업무가 아니었다면 안지용 참사관 역시 어제 어탕 준비팀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리곤 어탕과 쿠므스 한 잔을 양껏 들이켰을 것이고.

    아침부터 제일 먼저 부스에 찾아와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오늘 첫 손님은 안 참사관님으로 해 드릴 테니 이것 좀 도와주세요.”

    “좋지요.”

    커다란 카잔 두 개를 구해 부스 앞에 설치했다.

    하나는 어제 만들어 둔 어탕을 다시 한번 끓이는 용도로, 또 하나는 민물새우를 튀기는 용도로.

    파나르 전통 솥인 카잔에서 한국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요리사님.”

    “김준우 서기관님 오셨어요? 대사님도 안녕하세요.”

    “어제 늦게까지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장 셰프.”

    “아닙니다. 다들 잘 도와주셔서 크게 힘든 건 없었습니다.”

    준우는 인쇄된 팸플릿 한 박스를 부스로 가지고 왔다. 원래 준비한 디자인이 있었지만 내 부탁으로 조금 바뀐 팸플릿이었다.

    “요리사님 어때요? 이렇게 만들면 되죠?”

    “아주 좋습니다! 글씨가 커서 좋아요.”

    준우가 가져온 팸플릿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안쪽에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팸플릿으로 고깔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이라는 글을 쉽고 빠르게 보길 바랐다.

    “이걸 이렇게 돌돌 말아서 만들면 이 글씨가 딱 보이죠.”

    “오호 손에 가려지지도 않고 딱 보이네요.”

    “이제 두 분, 아니 대사님까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가요?”

    끓고 있는 어탕라면 판매를 도와줄 윤아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이 팸플릿 고깔에 새우깡을 넣고, 축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주세요. 또 한 손에 쿠므스를 들고.”

    “예!”

    쿠므스를 들고란 말에 안지용 참사관은 곧바로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김용수 대사 역시 어려운 것도 아니라며 쿠므스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알렉스의 쿠므스는 한국의 막걸리와는 달리 병 디자인도 세련됐고, 귀여웠다.

    전통술이라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김준우 서기관님. 진우랑 사모님은 오늘 안 오세요?”

    “아아, 와이프는 곧 올 거예요. 저는 팸플릿 때문에 새벽에 출발했고, 와이프는 진우랑 아까 출발했다고 연락 왔어요.”

    “그러면 김 서기관님은 가족들 오시면 이거 들고 몇 바퀴 돌아 주세요. 사진도 실컷 찍어 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나의 지시 아래 대사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쿠므스와 새우깡을 들고 축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부스에서 열심히 어탕과 새우를 튀기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안녕하세요. 이 쿠므스 얼마인가요?”

    부스를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음식보다는 알렉스의 쿠므스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었다.

    알렉스의 쿠므스는 파나르에서 이미 꽤 인지도가 높았으니까.

    “쿠므스는 공짜입니다.”

    “공짜요?”

    “네 이 쿠므스는 축제에 오신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나눠 드리고 있습니다.”

    공짜라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로 그때였다.

    원래 쓰려던 돈을 쓰지 않게 되었으니 이땐 다른 물건을 제안해도 평소보다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게다가 원래 쓰려던 돈보다 적거나 비슷한 가격의 물건을 제시하면 바로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윤아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빨리 새우깡을 제안하라는 의미로.

    “대신 이거 한번 같이 드셔 보시겠어요?”

    “이게 뭔가요?”

    “저희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입니다. 이건 새우깡이라는 음식인데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민물새우를 이용해 만든 한국 음식입니다.”

    “그래요? 한국 음식이요?”

    “쿠므스와 이 음식이 굉장히 잘 어울릴 겁니다.”

    손님들은 놀란 눈치였다.

    카차이 호수에 잡은 새우로 한국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도 반가웠고, 쿠므스와 외국 음식이 잘 어울린다는 말도 놀라운 것 같았다.

    “얼마인가요?”

    “천 원입니다.”

    한국 돈으로 천 원 정도의 금액을 제시하자 손님들은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엄청 싸네. 하나 주세요.”

    “네 드셔 보시고, 괜찮으면 또 사러 오세요.”

    비록 그 양은 많지 않지만 공짜로 받은 쿠므스 한 병과 값싼 음식.

    그것만으로도 손님들은 기분 좋게 부스를 떠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분은 업되어 있었으니 까다롭지 않았다.

    “요리사님. 제가 손님 데리고 왔습니다.”

    “허억.”

    그냥 축제장 몇 바퀴를 돌아 달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안지용 참사관은 제대로 호객 행위를 하고 돌아왔다.

    “참사관님 이 사람들은 다 어떻게 알고 데리고 오셨어요?”

    “둘이 형제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저랑 친구 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요?”

    “네 이 친구들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고 있길래 반가워서 말을 걸어 봤거든요. 저도 즐겨 마시는 보드카였거든요. 한잔 얻어먹기도 하고….”

    파나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처음 본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잘한다.

    게다가 술도 한잔 들어갔고, 축제에 와 있으니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안지용 참사관한테도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을 터.

    “그리고 이 새우깡 좀 나눠 주니깐 엄청 좋아하던데요?”

    “그래요? 입맛에 맞대요?”

    “당연하죠. 그래서 이 친구들 새우깡 사러 온 거예요.”

    안지용 참사관이 데리고 온 손님들의 얼굴은 이미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근데 이건 뭔가요?”

    새우깡을 사러 왔던 사람들은 옆에서 끓고 있던 어탕에도 관심을 보였다.

    익숙하게 생긴 카잔에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 끓고 있으니 눈을 떼지 못했다. 게다가 새우깡으로 이미 점수를 따 놨으니.

    “어탕이라고 하는 음식인데,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들었다고요?”

    “네 카차이 축제의 본래 목적이 그거니까요. 민물고기 소비 촉진.”

    “이거 두 그릇도 주세요.”

    지용이 데리고 온 손님들은 어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진 마냥 신난 표정이었는데.

    오늘 어탕을 주문한 첫 손님이었다.

    그리곤 곧바로 자리를 잡고 어탕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와아…. 정말 우리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음식이라구요?”

    우리…?

    파나르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어탕을 맛본 손님들의 입에선 ‘우리 카차이 호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네 이 지역 시장에서 직접 구매한 물고기로 만든 거고, 그 새우도 카차이 호수에서 잡은 걸로 만든 거예요.”

    “와아…. 어디서 오셨다고 했죠?”

    “저희요? 저희는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 뒤 다시 어탕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는 여기 카차이 지역 주민입니다. 저희 부모님들 역시 여기서 나고 자라시고,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아 정말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 카차이 축제가 시작되면 기분이 좋아 아침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즐깁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낮부터 취해 있었군요.”

    “네 이때가 아니면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이 잘 없거든요.”

    “왜요?”

    대답하지 않아도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갔다.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뻔하지.

    “민물고기를 먹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파나르는 바다가 멀리 있어서 예전엔 신선한 바닷고기를 먹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운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바로 옆 나라인 타지크에도 신선한 해산물이 전달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운송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싸고, 신선하게 바닷고기를 먹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민물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죠.”

    “그렇겠군요.”

    “그렇지만 1년에 한 번 이 축제 기간에는 억지로라도 민물고기가 많이 팔리니깐 기분이 좋습니다.”

    이 며칠만으로 큰 변화가 생길 정도는 아니란 걸 그들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축제는 즐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때라도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근데 이렇게 파나르 사람들도 외면하는 이 문제를 한국에서 신경을 쓰고 있을지는 몰랐네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구요….”

    이들에게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겠지만 나 역시 대사관 홍보라는 이득이 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이제라도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 관한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팸플릿을 건넸다.

    손님들은 가만히 팸플릿을 읽어 보더니 어탕과 새우깡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오늘 준비한 음식이 이게 다인가요?”

    “맞습니다. 저희는 오늘 하루만 하고 돌아갈 거라서 이것만 팔고, 대사관 홍보를 한 뒤 갈 생각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몇 마디 나누더니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도와요? 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