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98화 (99/202)
  • 98. 바다 같은 호수

    강원도의 산천어 축제, 보령의 머드 축제, 진해 벚꽃 축제 등과 같은 일종의 지역 축제.

    한국만큼 다양하진 않지만 파나르에서도 지역 축제들이 종종 열리고 있었다.

    “그 큰 호수 있는 곳 말이죠?”

    “요리사님도 아세요? 카차이 호수?”

    “네 들어는 봤습니다. 행사도 엄청난 규모로 한다던데요.”

    파나르에 대한 기사를 뒤지다가 몇 번 읽어 본 적이 있다.

    인공으로 만든 엄청난 규모의 카차이 호수.

    먼저 호수라고 말하지 않고 그곳을 보게 되면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할 정도고 규모가 큰 호수였다.

    면적이 서울의 3배 정도 크기라는데.

    진짜 그런 호수가 존재하긴 하는 건가?

    그런 곳에서 하는 지역 행사라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서울 크기의 3배 정도 된다던데 사실인가요?”

    “사실이죠. 저는 가족들이랑 한번 가 봤는데 진짜 어마어마해요. 수평선도 보이고, 영락없이 바다예요.”

    “와아 신기하네요.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얼마나 큰지.”

    땅이 큰 나라인 만큼 파나르엔 한국에서 보기 힘든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보다 큰 호수라니. 그것도 인공 호수.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아직 안 가 보셨으면 답사 때 요리사님도 같이 가도 되지 않나요? 괜찮을까요 대사님?”

    “당연히 되죠. 안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할려고 했어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네 장 셰프도 우리 식구인데 당연히 같이 가서 일해야지요.”

    “아… 일이요?”

    답사는 어차피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데 가서 구경도 할 겸 손 보태는 건 찬성이었다.

    “장 셰프도 같이 가서 어떻게 진행을 할지 같이 한번 생각해 봐요. 아무래도 팸플릿만 나눠 주고 오는 건 아쉬워서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바다 같은 호수, 카차이에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 *

    카차이 호수.

    대사관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니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바닷가 근처에 온 것처럼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와우 카차이 호수에 다 와 가나 봐요? 갑자기 공기가 습해지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공기를 바꿀 정도로 큰 건가?”

    직접 가 본 준우를 제외하곤 모두가 카차이 호수의 크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헐….”

    “이… 이게 전부 호수라고요?”

    “아니 파도도 치는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수평선은 물론이고, 바람 때문이긴 해도 살랑살랑 파도도 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냄새 때문에 호수인 걸 알 수 있었다.

    “바다 냄새랑은 확연히 다르네요.”

    “그렇죠? 물 냄새가 확실히 바다랑은 달라요.”

    카차이가 호수라는 증거가 넘쳐 났지만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규모는 컸다.

    실제로 바다처럼 해변가에 리조트나 호텔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보트나 제트 스키 등 각종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다만 파도는 없기에 서핑을 즐기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굳이 먼 바닷가까지 갈 필요 없겠네요. 물도 깨끗하고, 소금물에서 물놀이하는 것보다 여기가 더 나을 수도 있겠어요.”

    “저도 이번 여름에 한번 와야겠네요.”

    답사 차 방문한 거였지만 다들 휴가를 온 사람들처럼 들떠 버렸다.

    나 역시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았다.

    “행사장은 어딘가요?”

    “안내받은 바로는 여기예요.”

    “바로 물가네요.”

    호수의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넓은 공터.

    강변가에 커다란 무대도 설치해 공연을 하고, 여러 가지 먹거리나 즐길 거리 등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우리 대사관은 이 중 한 자리를 받아서 홍보를 할 예정이었고.

    “근데 행사 할 때쯤엔 물놀이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물놀이 시즌에 맞춰 축제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밤에는 가수들이 공연도 하고, 춤도 추고 술도 먹고 그럴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지역 축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냥 팸플릿을 나눠 준다길래 조금은 정적인 행사 같은 거라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막상 준비되고 있는 행사장을 보니 조금 과장을 보태서 광란의 밤이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랄까?

    여튼 맘껏 먹고 즐기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여기서 뭐 팸플릿 나눠 주고 하면 사람들이 읽어 보기나 할까요?”

    “그렇긴 해도 저희가 딱히 할 만한 게 없어요. 뭐 공연을 할 수도 없고, 막춤을 출 수도 없으니까요.”

    “K-POP 같은 걸 틀어 주면 어떨까요? 굿즈 같은 것도 좀 팔구요.”

    “음악은 전적으로 주최 측에서 관여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손댈 수 없어요. 디제이나 가수들을 불러서 할 거라 그런가 봐요.”

    왜 팸플릿만 나눠 주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국경일 행사처럼 직접 주최하는 것이 아니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해 달라는 대로 해야죠. 우리가 주최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게요. 뭐 우리도 와서 즐긴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네요.”

    상황이 그렇긴 해도 그냥 이대로 진행하기는 좀 아쉬웠다.

    파나르 최대 행사 중 하나인 만큼 사람들도 많이 모일 거고, 제법 주목받는 행사가 될 것 같은데.

    “먹는 거는 팔아도 되죠?”

    “먹는 거요? 그건 상관없어요. 안 그래도 저희 대사관에서도 뭐 먹을 거라도 팔아 볼까 했는데 이런 천막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을 감당할 수도 없고, 마땅히 할 만한 것도 없어서요.”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샤슬릭이라든가 화덕 만두인 삼사, 플롭 등등 웬만한 음식들은 서로 나서서 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핫도그나 번데기, 솜사탕 같은 길거리 음식 장사란 장사들은 전부 나올 테니.

    파나르인도 아닌 우리가 그런걸 팔아 봤자 경쟁이 될 리도 없었다.

    “그리고 뭐 먹을 걸 팔면 요리사님이 직접 하셔야 하잖아요. 좀 쉬셔야죠.”

    “아 그건 괜찮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해야죠.”

    내전으로 인해 대한민국 대사관은 파나르에서 더욱 앞장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른 대사관들보다 더 빨리 정상화를 시켰기 때문에.

    이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고삐를 쥐려고 이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김용수 대사와 직원들이었다.

    허투루 지나갈 수 없었다.

    “근데 이 카차이 호수에서 하는 행사의 주제는 뭐예요?”

    “카차이 지역이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실제로 사는 주민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나마 관광으로 먹고사는 편이긴 한데 그걸론 영 부족한가 봐요.”

    모두가 호텔이나 리조트 사업을 할 형편은 아닐 테니.

    게다가 물가에서 하는 사업은 여름 한철 장사지 일 년 내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파는데 요리사님도 알다시피 민물고기가 바닷고기에 비해서 맛은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비리니까요.”

    “바다가 없는 나라면 또 몰라. 바닷고기가 있는데 굳이 민물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지 않겠죠.”

    맞는 말이었다.

    민물고기는 기생충 때문에 회로 먹지도 못할뿐더러 익혀 먹어도 비린내가 바닷고기보다 심해서 호불호가 갈린다.

    그래도 민물고기를 제대로 요리만 할 수 있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 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카차이 지역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판매량을 늘리고, 홍보도 할 겸 이 지역 축제를 크게 여는 거예요. 물고기는 몰라도 관광지로선 여기가 최고니까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파나르 바닷가보다는 카차이 호수가 관광지로서는 더 인기가 있었다.

    가깝고, 물도 깨끗하고, 수영을 해도 찝찝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카차이 지역에서 생계를 꾸려 가는 주민들에겐 관광지보단 물고기를 더 많이 파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면 먹을 걸 팔아야겠네요.”

    “될까요? 안 그래도 저희도 생각해 봤는데, 주방도 없고, 마땅히 팔 만한 것도 없는데.”

    “그건 요리사인 제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대량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을 알아보는 게 좋겠네요. 천막에서 이 많은 음식을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주위를 쓱 둘러보니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호텔이나 리조트들이 즐비해 있었다.

    저 정도면 항상 사용하는 메인 주방을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는 주방이 한두 개는 있을 것이다.

    저 중 하나를 찾아서 예약해 사용하면 된다.

    “윤아야 나랑 잠시 같이 좀 가자.”

    제일 만만한 윤아를 데리고 행사장에서 제일 가까운 호텔과 리조트들을 돌아다녔다.

    2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주방을 빌릴 수 있는지.

    “여기도 이미 예약 끝났대.”

    “여기도? 아직 행사가 제법 남았는데 벌써 예약이 다 끝난 거야?”

    “카차이 지역 축제는 파나르에서도 유명해. 이렇게 즉흥적으로 구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걸?”

    “진작에 말해 주지 그랬어. 이미 다 돌아봤잖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주변에 쓸 만한 주방이 있을 만한 곳은 전부 돌아다녀 보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파나르 최대 축제인 만큼 이미 주방들은 한참 전부터 예약이 다 되어 있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은 천막에서 요리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어리석었던 거지.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이번엔 그냥 팸플릿만 돌리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야겠네.”

    메뉴를 결정하기도 전에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주방만 마련되면 꽤 괜찮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웠다.

    “우리도 이런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거 하나 들고 있는 지인이 있으면 딱 좋을 텐데. 이럴 때 부탁 한번 할 수도 있고.”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 둘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파나르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태생이 로열패밀리도 아니었으니.

    이런 호텔이나 리조트를 들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근데 호텔이나 리조트는 아니라도 비슷한 급의 별장을 들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지 않아?”

    “별장? 우리가?”

    터벅터벅 걸어가던 우리는 윤아의 물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쭉 뻗어 커다란 집 하나를 가리켰다.

    “알렉스라면 카차이 호수 근처에 별장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 알렉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겠다.”

    파나르 최고의 부자인 알렉스.

    곳곳에 리조트와 별장을 가지고 있는 알렉스가 파나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카차이 호수에 별장 하나쯤 없을 리가 없었다.

    “연락해 볼까?”

    “해 보자! 이런 걸로 연락하기 좀 미안하지만 부탁이나 해 보자.”

    “그러자!”

    윤아는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내 알렉스의 번호를 눌렀다.

    쿠므스를 만들던 별장에서 만난 이후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지만 분명 내 소식을 듣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왜냐면.

    “오 미스터 장, 미스 임. 잘 지냈어요? 제스랑 같이 사업을 하게 되었다면서요?”

    “알렉스도 잘 지냈어요? 사업까지는 아니고 그냥 같이 음식 얘기 좀 나눈 정도죠.”

    제스와 알렉스는 절친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제스의 이름이 먼저 튀어나왔다.

    제스가 함께 회의를 하는 동안 아무런 말도 안 했을 리가 없다.

    직접 연락을 한 적은 없었지만 알렉스는 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곧 J&J 분식이 오픈할 예정이니깐 알렉스도 꼭 놀러 와요.”

    “당연하죠. 미스터 장의 음식을 또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가야죠.”

    “고마워요. 요즘 쿠므스 사업은 어때요? 잘돼요?”

    “대만족이에요. 이제 파나르 전국에 납품하게 되었어요.”

    “정말이요? 잘됐네요.”

    몇 개의 큰 도시에만 납품을 하던 알렉스의 쿠므스가 이제는 전국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 정돈 예정된 수순이었다. 알렉스가 가진 재력과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인프라가 합쳐지면 팔 수 없는 건 없었다.

    알렉스가 스스로 쿠므스에 당당하지 못해서 미뤄졌던 것뿐.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를 했어요? 내가 보고 싶어서는 아닐 테고, 무슨 부탁할 게 있어요?”

    “하하하 보고 싶어서도 맞고, 부탁할 게 있어서도 맞아요.”

    “편하게 말해 봐요. 미스터 장의 부탁이라면 웬만하면 들어줄게요. 내가 못 하는 거면 정부에 부탁해서라도 들어줄게요. 우리 파나르의 쿠므스를 완성해 준 사람이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시작부터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 알렉스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 카차이 호수 근처에 주방을 빌릴 수 있는 별장이 있을까요?”

    “카차이 지역 축제 정말 어마어마하죠. 나도 예전에 자주 놀러 갔었어요. 요즘은 그냥 장사꾼들이 모이는 것뿐이라 잘 안 가지만….”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목적대로 잘 진행되다가 몇 년이 지나면 그냥 돈 되는 것들만 들어와서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한국이나 파나르나 다 비슷하군요. 나도 돈을 버는 사업가지만 돈이란 게 참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소소한 재미까지도 없애는 놈이라 원망스럽기도 해요.”

    돈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세상이라 어쩔 수가 없지.

    소소한 낭만도 재미도, 어설픔도 부족함도.

    자본이 투자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특히 지역 축제 같은 건 금세 본연의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모이는 시장 바닥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미스터 장, 아니 한국 대사관은 뭐 때문에 주방을 빌리려고 하는 건가요? 돈을 벌려고요?”

    “저희도 재룟값 정도는 물론 벌어야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대사관 홍보입니다.”

    “그게 다인가요?”

    “그리고 이 축제의 본래 목적에 조금이라도 맞도록 준비해 볼까 합니다.”

    “어떻게요?”

    나는 알렉스에게 계획했던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했다.

    쓸 만한 주방만 빌릴 수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좋네요. 근데 카차이 지역엔 이제 별장이 3개밖에 남지 않았어요. 다 정리를 해서.”

    “3… 개밖에요?”

    “그중 두 개는 이미 빌려줬고, 1개가 남아 있는데 거길 빌려 드리겠습니다. 주방 상태는 3개 중에 제일 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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