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97화 (98/202)
  • 97. 돌아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저희 호텔로 다시 복귀해 주세요.”

    “당장이요?”

    “네 가능한 빠른 시일 내로요. 연봉은 파나르 대사관에서 받는 것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받는 줄 아시고요?”

    “얼마를 받든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뒤도 보지 않고 이렇게 막 지르니깐 호텔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지.

    내가 주방장일 때도 사업 확장을 그렇게 말렸는데도 막무가내로 진행해서 호텔 재정이 나빠진 거였다.

    내 연봉이 얼만지도 모르고 무조건 두 배로 준다고 해 버리는 저런 허세 때문에 죄 없는 요리사들만 피해를 봤지.

    지금은 그때만큼 악랄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결국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사장의 싹수가 보였다.

    “죄송하지만 연봉을 3배로 준다고 해도 거절하겠습니다.”

    “네? 3배를 준다 해도요? 우리 호텔은 최저 임금으로도 오겠다고 줄을 서 있는 거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실제로 H호텔 주방엔 매년 조리학과 출신들이 인턴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줄을 섰다. 호텔 임원진들은 신이 나서 싼값에 그들을 굴렸고.

    “저한테 줄 돈 아껴서 인턴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 쳐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리고 저는 파나르 대사관에서 임무를 마치면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습니다.”

    “어딘데요? 거기는 연봉이 얼만데요?”

    모든 것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장이었다.

    요리사가 직업의 하나지만 돈만 보고 움직이는 줄 아나.

    김상현 주방장님도 이런 사장의 만행을 참지 못해 몇 년 후 호텔을 그만두게 된다.

    “저는 심사 위원으로 오신 조근배 요리사님처럼 청와대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아….”

    내 꿈이 연봉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 사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돈을 벌려면 당연히 특급 호텔이나 일류 레스토랑으로 가야지.

    요리사들이 행복한 호텔을 만들기 위해선 나처럼 돈에만 움직이지 않는 요리사들도 많다는 것을 알길 바랐다.

    어이없어하는 사장을 뒤로한 채 1층 카페로 내려왔다.

    “주방장님.”

    “그래 덕수야 여기다.”

    주방장님은 카페에 앉아 미리 커피를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가까운 곳에는 한샘이 서 있었다.

    “한샘아 아까 안 혼났어?”

    “괜찮아. 나 이제 여기서 짬 좀 찼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한샘.

    훗날 이 카페의 책임자가 될 테니까 좀만 더 힘내라.

    “한샘이밖에 안 보이지?”

    “아닙니다. 둘 다 보입니다.”

    “그나저나 사장이 뭐래?”

    “그냥 호텔로 다시 돌아오라구요.”

    별것 아닌 것처럼 대답했지만 주방장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네? 당연히 파나르에서 더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파나르에서 임기가 끝이 나도 호텔로 돌아오진 않을 거라구요.”

    “아… 그랬구나.”

    “왜요? 표정이 왜 그러세요?”

    내 대답에 주방장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게 아니라…. 나도 네가 호텔로 돌아왔으면 해서.”

    “진심이세요? 저번에 잠시 놀러 왔을 때도 그런 말 안 하셨잖아요.”

    “그땐 네가 이 정도로 성장한 줄 몰랐지.”

    “에이 그게 뭐예요.”

    주방장님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내가 똘똘하고 빠릿빠릿한 직원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 호텔의 주방장님이 직접 복귀를 요청할 급의 직원은 아니었다는 의미.

    “이번에 새로 부임한 사장님 마인드가 굉장히 괜찮아 보여서. 요리사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존중해 주는 임원진은 본 적이 없어. 개고생을 해도 주방 직원들은 항상 뒷전이었는데.”

    호텔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일을 많이 하고, 고생하는 부서가 F&B팀이긴 했다. 하지만 그 고생을 당연히 여기고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게 지금까지의 임원진들이었다.

    “예전엔 막내급이라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사장님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 네가 다시 돌아와도 좋을 것 같다.”

    “아… 저는.”

    주방장님은 완전히 속고 있는 거였다.

    저렇게 말로만 주방 직원들은 원하는 척하며 규모를 줄이고, 해고하는 걸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래 네가 1년 만에 이렇게 성장시켜 준 파나르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겠지. 근데 이제 이 호텔에서도 충분히 너를 성장시켜 줄 수 있을 거야. 관계가 불편한 선배들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게다가 네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한샘이도 항상 볼 수 있을 거고.”

    고개를 돌려 바쁘게 돌아다니는 한샘을 바라봤다. 다른 건 몰라도 한샘을 거절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도 이제 조근배 요리사님과 인연이 생겼고, 너도 그분 눈에 들었으니 굳이 파나르에 있을 이유가 없지. 호텔로 돌아와라. 덕수 넌 누구보다 호텔을 좋아했잖아.”

    주방장님의 간절한 부탁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호텔이 싫은 건 아니다. 아무리 불평을 해도 호텔로 출근해 요리를 하는 게 즐거웠고, 유독 바빴던 날엔 뿌듯해하며 퇴근을 했다.

    요리 자체가 즐거웠고, 호텔에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천금 같은 기회를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사는 데 또 써야 할까?

    물론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결국 이전의 삶과 똑같은 호텔에서 30년을 버티는 삶일 뿐이다.

    파나르는 요리로 유명하지도 않은 나라지만 1년에 배운 것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경험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방장님.”

    “어 그래 덕수야.”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파나르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래? 꼭 그래야겠니? 내가 책임지고 몇 년 후엔 청와대 요리사에 추천해 줄게.”

    “아닙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호텔 사장의 본모습에 대해 폭로를 하려다가 꾹 참았다. 어차피 아무리 말해 봤자 내 말을 믿지도 않을 테니.

    대신 다른 말로 주방장님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주방장님은 여기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나는 아직 한창이지. 18년 정도?”

    “그러네요. 한창이네요.”

    길면 40년.

    보통 30년 정도.

    주방장들이 한 호텔에서 근무하는 기간이다.

    꼭 한 호텔이 아니어도 하여튼 호텔이라는 업계에서 근무를 하는 기간들이다.

    한 분야에서는 엄청난 전문가들이겠지만 그 분야를 떠나선 경쟁력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나 역시 파나르에 가서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김상현 주방장이 그렇게 요리사의 길을 끝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주방장님. 저는 주방장님만큼 경력이 길지도 않고, 실력이 좋지는 않지만 파나르에 있었던 1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그래 그건 딱 보면 알 수 있지.”

    “근데 주방장님 같은 분들이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걸 습득하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인마.”

    “그 사장 말 너무 믿지 마시고, 호텔 밖으로도 고개를 돌려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역시나 한샘을 두고 가는 건 아쉬웠지만 조금 미루는 것뿐이다. 이번 생에선 분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럴 능력도 체력도 충분했다.

    좋은 기회인 건 분명하지만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똑같이 쓰는 바보가 되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쉬는 날에도 호텔까지 찾아온 놈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호텔 말고도 재밌는 게 많더라구요. 저도 주방장님 같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파나르 생활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이미 실력은 충분하니깐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는데 강요할 순 없지. 혹여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네 자리 하나쯤은 만들어 줄 테니.”

    “네 주방장님도 더 재밌는 삶을 원하신다면 파나르 한번 놀러 오셔서 연락 주세요. 방 하나쯤은 내어 드릴게요.”

    “그래 알겠다. 너 있는 동안 놀러 한번 갈게.”

    남의 삶까지 개입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지금 당장은 나쁜 일을 피할 수 있을지언정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법이고.

    주방장님은 나보다 훨씬 현명하신 분이니 잘 알아서 할 거라 걱정 없었다.

    “한샘아.”

    “응 덕수야 미안해. 오늘 좀 바쁘네.”

    “내일까지는 있을 테니깐 오늘 마치고 데이트할까?”

    “좋지! 최대한 빨리 퇴근하고 갈게.”

    “그래 너무 무리는 하지 말구.”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지만 한샘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파나르에서 더 근사한 모습으로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

    배가 터지도록 맛있는 것을 먹고, 실컷 걸으며 웃으며 한국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 * *

    파나르 대사관.

    “축~ 하~ 합~ 니~ 다. 축하합니다. 요리사님 1등을 축하합니다.”

    “예에에에에에!”

    “이게 다 뭐예요?”

    파나르로 돌아가자마자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직원들끼리 축하의 의미로 간단하게 회식이나 하자고 해서 사무실로 갔더니 이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별거 없어요. 그냥 케이크 하나 산 게 다니깐 어서 촛불 끄세요.”

    “생일도 아니고 무슨 케이크예요.”

    “케이크도 하나 없이 어떻게 축하를 해요?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알려 줘 보세요.”

    “없네요….”

    “그렇죠? 그러니깐 빨리 촛불 부세요.”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있었다.

    역시나 안지용 참사관의 손에는 샴페인 한 병이 들려져 있었다.

    “안 참사관은 업무 중에 술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럴 줄 알고 무알콜로 사 왔습니다.”

    “못 믿겠으니깐 김준우 서기관이 꼭 확인해 봐요.”

    “하하하 책임지고 확인하겠습니다.”

    “아이 대사님!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농담 몇 마디 만에 크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1등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김 서기관은 우리 요리사님 실력을 못 믿었나 보네요. 저는 처음부터 1등 할 거라 굳게 믿고 있었어요. 이 샴페인도 그래서 미리 사 둔 거구요. 윤아 씨도 그랬죠?”

    “네 저도 당연히 1등 할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대사관 요리사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어리니, 좀 힘들 수도 있겠다는 그런 말이었죠.”

    “그게 그거 아닙니까 하하하.”

    내가 파나르에 오기도 전에 본부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직원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파나르 대사관이 계속 알려지는 것은 다른 직원들에게도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이러다가 최우수 공관 자리를 한 번도 안 놓치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 있으면 진짜 좋을 텐데. 전설로 남는 거죠.”

    “안 될 거 있습니까? 우리만큼 손발이 잘 맞는 곳이 또 어딨다고. 그렇죠 요리사님? 다른 곳에 근무하는 요리사들은 이렇게 직원들이랑 안 친하죠?”

    준우의 물음에 번뜩 파키스탄 요리사 승재가 떠올랐다.

    대회가 끝난 후엔 한결 편안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거 하나로 상황이 완전히 변하진 않겠지.

    “힘든 분들도 계시고, 저희만큼 좋은 곳도 많더라구요.”

    “그래요? 우리만큼? 방심하면 안 되겠네요.”

    “이제 식사합시다. 요리사님 배고프시겠네.”

    전부 사 온 음식이긴 했지만 케이크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려진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누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음식과 파나르 음식이 적절하게 섞인 구성.

    이제는 나도 파나르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을 정도로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저 근데 대사님.”

    “네.”

    “혹시 파키스탄 대사님과도 친분이 있으신가요?”

    “파키스탄이요? 거기 대사 이름이 어떻게 되죠?”

    김용수 대사의 물음은 윤아가 서둘러 인트라넷을 뒤져 파키스탄 대사를 알아냈다.

    “아 이름이랑 얼굴을 보니 알 것 같네요. 근데 같은 공관장이라도 나랑은 워낙 차이가 많이 나서 직접 만난 건 본부에서 몇 번? 근데 왜요?”

    “이 정도 나이면 공관장으로 처음 근무하는 거겠죠?”

    “19~20살 때 합격한 초엘리트가 아닌 이상은 공관장으로선 첫 부임지일 겁니다.”

    승재의 예상이 맞았다.

    원래 성격이 까다롭고 예민하다기보단 공관장이 처음이라 모든 것에 날이 서 있는 거겠지.

    하나라도 삐끗했다간 승진길이 막혀 버릴까 봐.

    처음으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누구나 겪는 일이었다. 나도 그랬고.

    다만 파키스탄 대사가 좀 더 심하고, 그걸 해소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이번 대회 때 파키스탄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원래는 밝은 사람 같은데 마치 로봇처럼 행동할 정도로요.”

    “아이고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군요. 제가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승재를 제외하고 다른 요리사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버티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승재의 실력은 그렇게 썩히기엔 아까운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행사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나요?”

    “네 대사님.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팸플릿만 챙겨 가면 됩니다.”

    “그렇긴 한데 뭔가 아쉽단 말이죠.”

    “왜요? 무슨 행사인가요?”

    “아 파나르 최대 지역 행사 중 하나인데 우리 대사관이 작은 자리 하나를 받게 됐거든요. 근데 그냥 대사관 홍보하는 거라 팸플릿 정도만 나눠 주고 올 거예요.”

    “그래요? 어디서 하는 건데요?”

    “카차이 지역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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