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94화 (95/202)
  • 94. 날 위한 요리 2

    “저는 파나르 대사님의 아침 식사를 주제로 음식을 만들어 봤습니다.”

    “장덕수 요리사는 공관장의 일상식을 담당하고 있나요?”

    “네 저는 3끼를 다 하고 있습니다.”

    “매일 3끼나요? 아침밥까지 신경 쓰려면 출근 시간이 굉장히 빨라야 할 텐데.”

    “그렇긴 한데 제가 아침잠도 없고, 만든 음식으로 같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나 불만은 없습니다.”

    무덤덤하게 한 내 대답에 심사 위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제일 어린 요리사가 아침잠도 없다 하고, 무슨 말투는 말년의 삶을 사는 사람 같네요.”

    “아 그랬나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일상식이 어렵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차피 출근을 안 했어도 내 아침밥을 만들려고 기상했을 테니까.

    게다가 김용수 대사는 첫날을 제외하곤 반찬 투정을 전혀 부리지 않았다. 그것도 약간의 테스트를 위한 거였지만.

    그냥 주면 주는 대로 배만 채우면 된다는 마인드.

    그러면서 매일 아침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거지만 다른 나라의 요리사들은 그 당연한 것도 누리지 못하고 지내는 듯했다.

    “그래서 저는 감자전과 양배추죽, 그리고 양파주스를 만들어 봤습니다.”

    “다른 건 대충 이해가 가는데 양파주스라는 건 특이한데 왜 이런 걸 만들었습니까?”

    “저희 대사님의 건강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더 깊은 사연까지는 말해 드릴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이 양파주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하하 몸에 좋은 약은 입에도 쓰다던데 이 양파주스는 맛도 좋네요. 후식으로도 아주 훌륭합니다.”

    심사 위원들의 질문이 계속되었지만 내 대답은 거의 똑같았다.

    “그럼 이 감자전은요?”

    “이건 저희 대사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입니다.”

    “그럼 양배추죽도 대사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인가요?”

    “네… 아침에 속이 편하다고 하셔서….”

    “허허허 파나르 대사님은 아주 행복하시겠습니다.”

    “네?”

    “이렇게 자신의 식성을 잘 알아주면서 챙겨 주는 요리사가 있으니까요.”

    나와 김용수 대사는 식성도 거의 비슷했다.

    아침엔 속이 편한 음식을 찾고, 싱겁고 담백한 음식, 그리고 이 나이 땐 암 같은 큰 병을 신경 안 쓰고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용수 대사가 좋아하는 음식이 동시에 내가 원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우린 친구처럼 관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저희 대사님은 반찬 투정도 특별히 없으시고, 드시고 난 후에 빈말이라도 항상 고맙다고 해 주셔서 즐겁게 식사를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빈말이 아닐 겁니다.”

    “네?”

    내 대답에 조근배 요리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제가 모시는 대통령님 역시 한 번도 반찬 투정을 하신 적도 없고, 식사 후에 빠짐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해 주시곤 합니다. 처음엔 그냥 아무거나 잘 드시고, 예의가 바르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물어보니 그게 아니었더군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본인은 충분히 반찬 투정을 했답니다.”

    “그래요?”

    “네 직접 말로 표현하는 건 유치해 보일까 봐 맘에 들지 않는 음식은 일부 남기기도 하고, 은연중에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을 하기도 했답니다.”

    “귀여우시네요. 그냥 직접 말하셔도 되는데.”

    “오래 걸리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요리사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해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아….”

    “청와대 요리사가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자기가 초대하는 손님들에게도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조근배 요리사의 말에 잠시 김용수 대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식사 후 대부분 빈 접시만 남아 있긴 했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금방 대통령님의 식습관을 파악하고, 맞춰서 식단을 바꿔 줬다고 합니다. 장덕수 요리사 역시 저랑 같은 케이스 아닐까요?”

    “저도요?”

    “장덕수 요리사도 식사 전, 식사 중, 식사 후 전부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죠?”

    “그건 요리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이라.”

    “당연한 거지만 그게 습관이 되는 건 힘든 일입니다. 이 중 제일 어리지만 장덕수 셰프는 그런 습관이 이미 몸에 배어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파나르 대사님이 매일 아침 해 주는 인사 역시 빈말이 아닐 테구요.”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식성을 모르니 내어놓는 반찬의 가짓수도 많았다. 덕분에 남는 음식들도 많았고.

    그렇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점점 가짓수도 줄어들고, 음식을 남기는 양도 점점 줄어들었다.

    항상 하던 대로 손님의 표정을 살피듯 김용수 대사의 식사하는 모습을 살폈던 건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 주고 있었구나.

    대통령과 조근배 요리사처럼 나와 김용수 대사 역시 케미가 좋은 사이였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회 취지에 맞게 각 공관의 개성이 잘 드러난 요리들이었습니다. 그럼 심사 위원들의 회의 후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약 1시간 후 다시 이곳으로 모여 주세요.”

    결과 발표가 있기 전 한 시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긴장이 풀려 잠시 앞치마와 모자를 벗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덕수야!”

    “어 한샘아. 언제 왔어?”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지. 수고했어 너무 멋있더라.”

    “정말? 네가 응원해 준 덕분에 잘 끝낼 수 있었어.”

    “근데 덕수 네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뭐가?”

    “덕수 네 요리 실력 말이야. 어떻게 저런 베테랑 요리사들이랑 비등하게 경쟁할 수가 있어? 풍기는 포스는 거의 주방장님하고 비슷해 보이던데.”

    사실 나도 이분들과 거의 비슷한 경력을 가졌지.

    한샘에게마저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조금 아쉬웠지만 익숙하게 넘어갔다.

    “파나르에서 대사관 요리사 하면서 많이 배웠거든. 진짜 쉬운 게 아니더라.”

    “그래 보인다. 1년 만에 이 정도로 실력이 늘었으니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오늘도 일해?

    “응 당연하지. 더 있고 싶은데 나 이제 일하러 가야 해서 가 볼게. 너무 아쉽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런지 뛰어가는 한샘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샘을 보내고 나는 파키스탄 요리사 승재를 찾아갔다.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눠 보기 위해.

    “이승재 요리사님.”

    “네? 아 파나르 요리사님이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리사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괜찮으시면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안 그래도 저도 요리사님과 대화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침 나를 기다렸다는 이승재 요리사.

    역시나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파키스탄 생활은 좀 어떠세요? 꽤 힘든 곳이라고 들었는데.”

    “파키스탄 생활 자체는 괜찮은데….”

    “괜찮은데 왜요?”

    승재는 잠시 쭈뼛거렸다.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대사님 내외분과의 관계가 힘이 듭니다.”

    “대사님 부부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김용수 대사는 사정상 혼자지만 대부분은 부부가 함께 관저를 지킨다.

    그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요리사들이 꽤 많았다. 승재 역시 그중 하나였고.

    “왜요? 성격이 세신가요?”

    “그런 건 아닌데 두 분 다 입맛이 까다롭고, 모든 것에 너무 예민하십니다.”

    “원래 성격이 그러신가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처음으로 공관장을 맡으셔서 모든 것이 부담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일상식은 물론이고, 오만찬 행사 때 그릇에 지문 하나 묻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성격의 대사 부부였다. 썰어 놓은 김치의 길이와 배춧잎의 장 수까지 맞추라는 수준.

    또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주방의 위생 상태를 요구하기도 하고, 햅쌀이지만 묵은쌀 냄새가 난다며 억지를 부려서 밥을 다섯 번이나 새로 지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요리사가 대사관의 다른 직원들이나 외부인과 접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다.

    “다른 공관 요리사들은 오, 만찬 때 직접 나가서 음식 설명도 하고 그런다던데….”

    “네 저는 술도 한 잔씩 얻어먹습니다.”

    “그건 참 부럽네요.”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니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경계하는 거겠지.

    “그래서 그룹 채팅방도 하는 줄 알면 큰일이 날 겁니다.”

    “근데 대회는 어떻게 나오셨어요? 여기 나오면 다른 요리사들이나 외부인들 많이 만날 텐데.”

    “그것도 엄청 고민하다가 대사관 성과에 유리하다고 판단돼서 결국 허락하셨어요. 대신 절대 외부인과 대사관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말고, 요리에 개인 아이디어도 넣지 말고 최대한 평범하게 만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러셨구나.”

    왜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승재의 표정이 무뚝뚝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세뇌가 되었으면 이렇게 대회에 나와서도 그런 행동을 했을까.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정도로 몸에 밴 습관이 된 건가. 안쓰러웠다.

    “좀만 힘내세요. 제가 한번 힘써 보겠습니다.”

    “요리사님이 어떻게요. 그냥 제가 했던 말은 전부 잊어 주세요. 조금이라도 속이 시원해진 걸로 만족합니다. 아까 먼저 말 걸어 주셨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 한 거 같아서요…. 죄송했습니다.”

    그러곤 터덜터덜 밖으로 향하는 승재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로 이 대회를 그냥 즐기며 끝낼 순 없었다.

    반드시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 *

    “그러면 이제 시상식이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가한 요리사분들은 단상 앞으로 모여 주세요.”

    단상에는 심사 위원들뿐 아니라 개최를 알렸던 장관까지 올라와 있었다.

    2라운드까지 진출한 7명의 요리사들은 모두 홀가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파키스탄 요리사 승재 역시 어제부터 이어진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제 1회 올해의 재외 공관 요리사 선발 대회는 전 세계 공관의 상황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요리사들의 생활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개최한 대회입니다.”

    장관이 대회를 주최한 목적에 대한 설명하자 모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라운드 때부터 그건 확실했으니까.

    “첫 대회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1라운드를 통과한 7명의 요리사분들 전부 훌륭한 실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여권이 세계에서 가장 파워가 센 여권 중 하나인 이유엔 요리사분들의 공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여태 요리사들의 대우엔 신경도 쓰지 않은 건가.

    멀리서 요리사 대표 우영이 움찔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그만두었지만 조금은 분하고 억울한 맘일 것이다.

    장관은 잠시 시간을 준 뒤 다시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최종 결과 발표에 앞서 이번 대회를 위해 훌륭한 시설의 호텔 주방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신 H호텔 측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H호텔 사장님의 축하의 말씀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장관이 최종 우승자의 시상을 하기 전에 주방을 제공해 준 호텔 측의 대표 한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어라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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