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90화 (91/202)
  • 90. 대회 준비

    채용할 때도 없던 나이나 학벌 제한 같은 걸로 차별을 두진 않았을 테고.

    인사 고과 점수? 아니면 대사관의 규모?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 우영만 참가를 못 하게 할 만한 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받으셨나요?”

    “제 계약 기간이요.”

    “계약 기간이라면 남아 있는 기간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최소 3개월 이상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요리사들에게만 자격이 있다고 하는군요….”

    “아….”

    우영은 올해 중순에 계약이 만료된다고 했다.

    1라운드 접수가 끝이 나는 3월쯤엔 남은 계약 기간이 기껏해야 2개월 정도.

    이제 재외 공관 요리사가 아닌 사람에게 호텔이나 항공권을 제공할 순 없다는 게 본부의 입장이었다.

    “할 말이 없네요.”

    “저도 어이없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을 할 수 없었어요.”

    “이래서 요리사들도 반드시 정규직이 되어야겠군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무기 계약직이라도요.”

    우영의 사정을 들은 요리사들은 전보다 더 큰 유대감이 생겼다.

    나 역시 처음에는 후배들을 돕겠다는 맘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전 세계에 재외 공관 요리사가 몇 명이나 된다고 이러는 걸까.

    “그래도 한국에서 열리는 2라운드는 꼭 구경 갈게요. 그때는 이 재외 공관 요리사 신분은 아니겠지만 선후배님들 응원하러 가겠습니다.”

    “네 꼭 오세요. 일반인 신분이 된 요리사님을 막을 순 없겠죠.”

    “그럴 겁니다.”

    지금은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이 우영 한 명이지만 앞으론 모르는 일이다.

    더 많은 후배들이 불안한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온전히 요리에 집중하고,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대회에 참가하는 목적이었다.

    윗사람들에게 또 한 번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두 번의 실수는 할 수 없다. 반드시 3등 안에 들어서 이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맘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요리사님 요리사님!”

    “서기관님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지요.”

    김준우 서기관은 관저까지 허겁지겁 달려와 공문을 건넸다. 이런건 전화로 알려 줘도 되는데….

    “이게 뭐길래 여기까지 오셨어요.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 보내 주시면 되지.”

    “합격했다는 공문이요. 그냥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랄까? 며칠 동안 같이 고생했잖아요. 그래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더라구요.”

    김준우 서기관을 보자마자 합격 소식을 전하러 왔다는 것을 예상했다.

    김용수 대사의 예상대로 1라운드는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공문 한번 읽어 보세요. 우리가 아니 요리사님이 계획했던 전략이 잘 먹혀들었어요.”

    [파나르 대사관 요리사는 출중한 요리 실력뿐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직접 채소를 길러 외교 행사를 진행하고, 손님들에게 직접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등 국익에 이바지한 게 적지 않다. 또 본 대회의 목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수행하였기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요리 실력, 공관장과의 관계, 상황 대처 능력 등.

    평가 항목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부분 10점이었다. 그리고 밑에 달린 총평은 칭찬 일색이었다.

    “아마도 요리사님이 전체 1등인 것 같아요.”

    “김용수 대사님 말씀이 맞았네요.”

    “대사님이요?”

    “네 대사님이 이렇게 준비해 보라고 하셨거든요. 1라운드에서 원하는 건 단순히 요리 실력만이 아닐 거라구요.”

    “오… 역시 우리 대사님 짬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죠?”

    “맞아요. 오늘 저녁은 더 신경 써서 만들어 드려야겠네요.”

    김준우 서기관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파나르 대사관의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영상 곳곳에 깨알같이 자기 이름을 집어넣기도 했다.

    “근데 서기관님. 2라운드에 몇 명이나 붙은 건지 아세요?”

    “당연히 알죠. 딱 7명이랍니다.”

    “7명이요? 생각보다 되게 적네요.”

    “아무래도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 재료비 등등을 전부 지원해 주는 게 쉽지는 않겠죠.”

    공기업이라 그런지 이런 내부 직원들을 위한 이벤트성 행사에 세금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행사는 홍보가 주목적인데 너무 화려하게 진행하기엔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7명이라…. 그 정도는 해 볼 만하겠는데요?”

    “경쟁 상대는 겨우 6명뿐인데 그 정도는 이길 수 있죠. 저도 시험 칠 때 70대 1을 뚫었는데 요리사님은 저보다 더 잘하실 수 있죠.”

    “우와 70대 1이요?”

    모르고 있었는데 준우 역시 외무 고시를 통과한 사람이었다. 가까이 있을 땐 그 대단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엄청난 엘리트였구나.

    새삼 대사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란 게 실감이 났다.

    나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 시작한 게 주방장이 되고 나서부터였는데….

    그땐 스케줄이나 레시피를 만드는 게 주 업무였으니깐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경쟁 상대가 6명뿐이라지만 굉장한 실력자들이 모여 있을 게 뻔했다.

    절대 방심하지 않고, 남은 2달 동안 꼼꼼하게 준비를 해야겠다.

    * * *

    “장 셰프 1라운드 통과했다면서요?”

    “네 다행히도 통과했습니다. 대사님의 조언이 아니었으면 모를 뻔했습니다. 겨우 7명밖에 안 뽑았다고 하더라구요.”

    “7명이요? 생각보다 적었네요.”

    “그러니까요. 위험할 뻔했습니다.”

    “3명이었어도 장 셰프는 합격했을 겁니다.”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김용수 대사는 이제 나를 거의 최고의 요리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전적으로 요리사를 믿어 주는 윗사람이 있으니 더 실력 발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타올랐다.

    예전 호텔 주방장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근데 2라운드 주제는 뭐라고 합니까?”

    “아직 잘 모릅니다. 아무것도 공개된 게 없습니다.”

    1라운드에 대한 결과와 총평 등만 전달되었지 그 후 내용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었다.

    처음 개최된 대회라 진행이 미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일부러 숨겨 놓고 있는 건가.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하고 오면 됩니다. 꼭 1등을 하지 못해도 되니깐 재밌게 하고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3등 안에는 들어야….”

    “1등은 안 해도 된다 한 거지 3등 안에는 꼭 들어야죠. 그래야 인터뷰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렇죠.”

    부담을 주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잊지 않았구나. 이 대회에 참가하는 목적을.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은 유지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연습할 거 있으면 하고, 나가서 볼일 있으면 갔다 와요.”

    “아닙니다. 일하면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제도 모르니까요.”

    정확한 주제나 테마라도 알면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최대한 손끝 감각을 유지하고, 모든 요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회 준비는 충분했다.

    * * *

    -여보세요?

    -응 윤아야 어쩐 일이야?

    -대회 통과했다며? 축하해.

    -소식 들었구나. 고마워 직원들이 다들 도와준 덕분이지.

    관저를 정리하고 퇴근을 할 때쯤 윤아에게 전화가 왔다.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였지만 진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근데 혹시 내일 시간 돼?

    -내일? 주말이니깐 하루 종일 널널하지. 왜? 오랜만에 맛집 탐방 갈까?

    -아니 그건 끝나고 가도 되는데 제스가 만나자고 해서.

    -제스가? 또 무슨 일이지?

    -아마 분식집 오픈 때문에 그러는 거 같아.

    -오 드디어 오픈하는 거야?

    -아직은 모르겠는데 일단 만나자고 하더라.

    -좋지. 어차피 할 것도 없었는데.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나인티나인이 알려 준 아이디어를 끝으로 제스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종종 테스트한 음식 사진들을 보내며 척척 준비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훈제오리 토핑이 올라간 떡볶이와 화덕 만두 삼사의 조합은 훌륭하다면서 몇 번이나 칭찬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나인티나인 연락처를 알려 줄 걸 그랬다.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윤아야 나 왔어.”

    “응 덕수야 가자.”

    “어디로?”

    “제스가 알려 준 주소가 있거든. 거기로 오래.”

    제스가 알려 준 주소에 도착하자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저번에 특강을 하러 왔던 곳 같은데.

    “혹시 여기 파나르 국립대학 근처야?”

    “오 어떻게 알았어? 여기 파나르 대학 외대 캠퍼스 근처야.”

    “아 외대 캠퍼스가 따로 있었구나. 저번에 특강하러 여기 왔었거든.”

    “그랬구나.”

    이곳에서 다나를 만나 케케묵은 일까지 끄집어 내어 먼지를 털어 냈었다. 다나는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겠지?

    잠시 추억에 잠긴 찰나 제스가 도착했다.

    “미스터 장. 진짜 미스터 장 덕분에 너무 만족스러운 메뉴가 나왔어요.”

    “하하하 다 같이 노력한 덕분이죠. 파나르 국민 아이돌의 경험도 한몫했구요.”

    “그렇지만 역시 미스터 장의 역할이 제일 컸어요.”

    제스는 보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아이디어 칭찬을 했다. 김밥과 핫도그 그리고 떡볶이를 파는 메뉴 구성이 굉장히 맘에 든 모양.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이걸 보여 주려고요.”

    “뭔데요?”

    제스는 건물들 사이에 땅 하나를 가리켰다. 그곳은 이미 새로운 건물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절반 정도는 완료된 상황.

    “여기에 3층짜리 건물을 올릴 겁니다.”

    “오 새로운 사무실인가요?”

    “아니요. 우리의 분식집을요.”

    “와아 이렇게 크게요?”

    가볍게 먹는 분식집을 하기엔 과하게 큰 규모였다. 아무리 파나르 땅이 크다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제스가 끼어들었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만들려구요.”

    “아! 김밥이나 핫도그를 차에서 먹을 수 있게요?”

    “바로 그거에요. 파나르는 차가 필수인 나라예요. 땅이 워낙 넓어서 일을 하려면 오래된 차라도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파나르에선 연식이 30~40년이 지난 차들도 자주 보였다. 산유국인 만큼 슈퍼 카가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서 파나르에선 세차장이나 카센터 같은 자동차 관련된 사업이 굉장히 잘돼요. 우리 제스 분식의 음식을 차에서 바로 주문하고 먹을 수 있게 만들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하하 제스 분식. 이름 좋네요.”

    모든 음식점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만든 제스였다. 분식 역시 파나르 사람들에게 익숙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제스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이곳의 공식적인 이름은 제스 분식이 아니에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제스 분식 좋은데요? 잘 어울려요.”

    제스 카페, 제스 스시, 제스 비어 등등.

    프랜차이즈인 만큼 통일성을 줘서 제스 분식으로 짓는 건 찬성이었다.

    “잘 어울리기는 한데 이 분식집은 제스 혼자서 만든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이에요?”

    “다른 브랜드는 거의 저 혼자 개발하고 만들었다 해도 무방하거든요. 직원들이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근데 이 분식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제스가 투자하고, 제스의 회사에서 내는 브랜드잖아요.”

    제스는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 분식점엔 미스터 장의 이름도 같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미스터 장 생각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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