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84화 (85/202)
  • 84. 훌륭한 요리사

    “응? 스윗 무슨 포테이토 핫도그라고?”

    “쉿 진우야. 여기서 그렇게 주문을 하면 어떡해. 삼촌이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 죄송합니다 삼촌.”

    “하하하 아니야 진우야. 삼촌이 스윗 콘소메는 모르겠고, 그냥 포테이토 핫도그 만들어 줄게.”

    진우는 진짜 몽란 핫도그에 온 사람처럼 핫도그를 주문했다.

    그런데 제스는 진우의 디테일한 주문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근데 포테이토 핫도그가 감자가 박혀 있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이런 식으로.”

    사진을 보여 주자 제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저 꼬맹이가 뭔가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 같네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파나르 사람들은 감자 없이 못 살거든요. 제일 많이 먹고 좋아하는 채소예요. 값도 싸고.”

    “아! 그렇긴 하네요.”

    어딜 가나 감자튀김을 팔고, 샐러드도 삶은 감자 샐러드가 가장 많이 팔린다.

    카페고, 술집이고, 한식, 일식, 양식, 중식 가리지 않고 모든 식당에서 감자튀김을 판다.

    진우가 주문한 포테이토 핫도그는 보나마나 파나르 사람들에게 딱 맞는 메뉴.

    “이거 오늘 예상치 못한 수확이 많은데요?”

    “하하하 우리 대사관 직원들 일당이라도 줘야겠어요.”

    “그런 건 걱정 마세요.”

    “농담이에요.”

    당장 지갑이라도 꺼낼 기세라 서둘러 요리를 시작했다.

    “소시지는 파나르산 소시지도 맛이 좋으니깐 적당한 걸로 고르면 될 것 같아요.”

    “반죽은 어떻게 만들어요?”

    “밀가루랑 계란, 소금, 설탕 그리고 이스트를 넣고 발효시킨 다음 사용하면 돼요.”

    나무 젓가락을 꽂아서 튀기는 게 국룰이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꼬치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꼬챙이를 이용해 핫도그를 만들었다.

    “감자는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서 반죽에 붙여 주면 돼요. 너무 크면 속은 익지 않고 겉만 타니깐 딱 이 정도 크기가 적당해요.”

    콘도그라는 음식을 알곤 있었지만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다 했다.

    하지만 제스는 만드는 과정만 보고도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란 평가를 내렸다.

    “핫도그 역시 이렇게 반죽에 감자를 넣어서 만들거나, 안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어서 같이 튀기면 더 맛있어요.”

    “오 여기도 치즈를 활용할 수 있군요. 근데 감자는 무조건 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되죠. 비싼 것도 아니니까.”

    연구실에 구비되어 있던 재료들로 금세 핫도그가 완성되었다.

    진우가 원하던 몽란 핫도그와 똑같진 않았지만 충분히 그럴싸한 핫도그가 만들어졌다.

    파삭.

    “앗 뜨거.”

    “저는 이거 설탕 좀 뿌려 먹을게요.”

    갓 튀겨진 핫도그는 파삭 하며 직원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김용수 대사는 설탕 없이 케첩만 약간, 안지용 참사관은 설탕을 듬뿍 뿌리고, 케첩이 흘러넘칠 정도로 발라 먹었다.

    “진우는 이거 잘라서 먹지?”

    “응 나는 떡볶이에 넣어 줘요 아빠.”

    준우는 튀겨진 핫도그를 먹기 좋게 잘라 떡볶이 양념에 버무려 주었다.

    제스는 처음 먹어 보는 거라 완벽하게 세팅을 해서 맛을 보았다. 설탕에 케첩과 허니머스터드.

    하나는 그렇게 맛을 보고, 또 하나는 떡볶이와 함께 맛을 보았다.

    “어때요?”

    어떠냐는 물음에 제스는 아무 대답 없이 엄지만 치켜세울 뿐이다. 그게 또 멋있었는지 진우도 따라서 엄치를 치켜세웠다.

    “몽란 핫도그보다 더 맛있어요 삼촌.”

    “정말?”

    “이거 김밥에 떡볶이에 핫도그까지 다 합쳐지면 초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분식집 이름을 몽란 엽기 김밥 나라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그중 하나 정도만큼만 잘돼도 초대박이지.

    오늘 대사관 직원들을 초대한 덕분에 김밥과 핫도그라는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미스터 장,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떡볶이는 차근히 연구해 봐요. 이 두 개만 해도 충분한데 떡볶이가 없으면 뭔가 아쉬울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재밌었습니다. 떡볶이는 좀 더 고민해 볼게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뭘 팔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 감이 잡힌 것 같았으니.

    막내 진우의 활약이 눈부셨다.

    대사관 직원들은 제스의 연구실에서 배부르게 먹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갔다.

    “미스터 장, 수고 많았어요.”

    “제스도 고생 많았어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모두가 돌아가자 제스는 약속했던 보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사람들 앞에서 돈 얘기를 할 순 없었으니까.

    “자 이 정도면 충분하실까요?”

    제스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두툼한 봉투.

    하지만 나 혼자 이 봉투를 받는 게 뭔가 편하진 않았다.

    그냥 이 개성 넘치는 요리사의 아이디어를 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아직 연구가 끝이 난 것도 아니라 선뜻 받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제스는 다시 봉투를 넣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인 걸 달라고 해 봐야겠다.

    “제스.”

    “네 미스터 장.”

    “아직 식당을 오픈한 것도 아니니 돈은 됐고, 다른 걸 부탁드려도 될까요?”

    결국 나는 제스가 내민 손을 거절했다.

    “다른 거요? 뭔데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 들어 드릴게요.”

    “우리 대사관 직원들이 제스의 식당에서 좀 싸게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스의 관심은 요리사인 나에게만 가진 게 맞다.

    하지만 성공적인 국경일 행사가 없었다면 이런 인연도 생기지 않았을 것.

    기왕이면 다 같이 힘들게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걸 보상으로 받고 싶었다.

    “대사관 직원이 몇 명이나 되는데요?”

    “음… 오늘 온 사람들이랑 현지 직원까지 포함하면 7명 정도?”

    “에? 그게 다예요?”

    김용수 대사를 포함한 한국인 직원 5명과 관저와 사무실 잡무를 도와주는 현지인 직원 2명.

    수십 명이 근무하는 제스의 사무실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였다.

    놀랄 만도 했다. 아님 어이가 없었거나.

    “몰랐는데 우리 대사관 직원들 전부 평소에도 제스의 식당을 즐기고 있었더라구요.”

    “영광이네요. 한국 대사관 직원들이 제 식당들을 전부 알고 있다니.”

    모를 리가 없지.

    파나르 시내에만 해도 수십 개의 레스토랑이 있었으니.

    업종만 다를 뿐 제스의 레스토랑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7명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전부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정말요?”

    “당연하죠. 그 정도는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그렇게 흔쾌히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제스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내 부탁을 수락했다. 그제야 맘이 편해진 듯 들고 있던 봉투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 제스.

    그리곤 내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미스터 장은 훌륭한 요리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스는 옛날 일이 생각나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뭔가 긴 이야기를 할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거 아세요? 제가 어릴 때 만해도 타지크가 지금처럼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네 종종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 정도로요?”

    처음 듣는 놀라운 말이었지만 금세 수긍이 갔다.

    내가 느낀 타지크 역시 비슷했으니까.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행복했지만 도시 자체가 부유하단 느낌은 적었다.

    “그렇지만 지금 타지크 국왕의 아버지였던 사람이 지금의 타지크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분이 나라 분위기를 전부 바꿨거든요.”

    “어떻게요?”

    “타지크를 나라가 아니라 가족처럼 통치했어요. 좀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예요.”

    “…….”

    “배고픈 이웃에게는 음식을 나눠 주고, 또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도 할 수 있게 계속해서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이웃을 도우라는 캠페인이 이어졌거든요.”

    “아….”

    워낙 나라가 작으니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이웃들과 교류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를 돕고 살았었으니까.

    우리보다 훨씬 더 작고, 인구가 적은 타지크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보고 제가 요리사가 되기로 맘먹었어요.”

    “어째서요?”

    “타지크가 어려울 때 많은 특히 요리사들이 자신의 음식을 많이 나눠 줬거든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맘도 있겠지만 나중에 제가 요리사가 되고 나니 자기 음식을 먹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알았죠. 나도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실컷 보고 싶어서 요리사가 되었어요.”

    “……!”

    “훌륭한 요리사는 절대 이기적일 수 없어요.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고, 기뻐해 주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 요리사가 된 거라 이기적일 수 없어요.”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람은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가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기 때문.

    제스의 말대로 요리사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생각이 먼저 상대방을 향해 있었다.

    제스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의 가게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제스의 식당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가성비였다.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제스의 식당.

    자신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제스였다. 그도 이미 훌륭한 요리사였다.

    “오늘 미스터 장의 대답을 듣고 내 생각이 맞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죠.”

    “아… 저는 그냥 직원들이 많이 도와줬는데 저만 이 큰돈을 받을 수 없어서.”

    “결국 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 거잖아요. 그렇기에 미스터 장은 분명 훌륭한 요리사이고, 앞으로도 더 대단한 요리사가 될 거예요.”

    음식에 대한 칭찬보다 더 행복한 이 말.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기대했던 제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어 간 날이었다.

    * * *

    며칠 후.

    캐톡캐톡.

    외부 일정이 많은 김용수 대사 덕에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드라마라도 볼 겸 핸드폰을 집어 들자 메시지가 왔다.

    -요리사님 안녕하세요. 나인티나인 에이스입니다. 잘 지내고 계세요?

    -오 에이스 잘 지내요? 요즘 많이 바쁘죠? 좋은 소식 많이 들리던데!

    -요리사님 덕분에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연말인데 스케줄이 많아서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멤버들이랑 파티 중입니다.

    몇 달 만에 더 큰 슈퍼스타가 되어 버린 나인티나인.

    잊지 않고 먼저 연락해 주니 고마웠다.

    에이스가 보내 준 사진 한 장에는 밝게 웃는 멤버들이 있었다.

    -다들 좋아 보이네요. 근데 뭐 맛있는 거 드세요?

    -저희요? 떡볶이 먹습니다. 저희 이번에 떡볶이 광고 찍었거든요.”

    -오! 정말요? 축하드려요. 첫 광고죠?”

    -네 맞아요. 광고는 처음이라서 얼떨떨합니다. 제대로 찍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앞으로 저희 떡볶이 평생 공짜로 먹을 수 있대요.”

    -오 정말요? 완전 성공했네…. 떡볶이 광고를 찍었다는 건 젊은 여자들한테 먹혔다는 의미인데.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나요? 그럼 더 좋네요.

    역시 준비된 그룹이라 그런지 한국에서도 금세 자리를 잡았다. 친한 친구들이 잘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졌다.

    “근데 떡볶이랑 같이 먹는 음식들은 뭐예요?”

    마침 제스 때문에 며칠 동안 떡볶이에 매달려 있다 보니깐 에이스가 보내 준 사진에서도 떡볶이가 눈에 띄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어떤 떡볶이가 유행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거요? 훈제오리랑 삼사라는 파나르식 만두예요. 삼사가 뭔지 아세요?”

    -삼사요? 당연히 알죠. 화덕 만두 같은 거잖아요. 근데 한국에도 삼사가 있어요?

    -아니요. 먹고 싶어서 저희 멤버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아시다시피 한식만으론 배가 안 불러서요. 떡볶이 맛을 보니깐 이것들이랑 같이 먹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삼사는 페스츄리 반죽에 고기와 양파, 치즈 등을 넣고 구워 낸 일종의 화덕 만두였다.

    튀긴 만두만큼 겉은 바삭하지만 기름기가 없이 담백한 파나르식 만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월척을 낚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삼사는 그렇다 쳐도 훈제오리는 어떻게 생각한 거예요?

    -광고 찍을 때 소시지나 오뎅, 잡채, 만두 이런 거 다 넣고 먹어 봤는데 역시 음식에는 고기가 있어야겠더라구요.

    -하하하 아직 입맛은 그대로네요. 그 떡볶이 회사에다가 고기 토핑 좀 만들어 달라고 하죠.

    -그나마 먹어 본 토핑 중에서는 소시지가 제일 잘 어울리더라구요. 근데 매콤한 떡볶이에서 스모크향이 나는 소시지를 씹으니 갑자기 딱 훈제오리 토핑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파나르 사람들 훈제오리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그냥 오리고기 말고 훈제오리요?

    -네 다른 고기들은 생고기를 더 좋아하지만 유독 오리고기만 훈제를 좋아해요. 저도 그렇구요.

    에이스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시장의 정육 코너를 보면 수제 소시지와 함께 훈제오리가 진열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만찬 땐 쓸 일이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유독 많이 보이긴 했었다.

    -어때요? 훈제오리랑 직접 만든 삼사랑 먹은 떡볶이 맛이요?

    에이스는 내 질문에 대답 없이 사진 한 장을 더 보내왔다.

    -대답은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바닥까지 싹싹 비워져 있는 떡볶이 그릇과 여러 개의 접시들.

    삼사나 훈제오리가 잔뜩 담겨 있던 아까 사진과 비교되는 사진이었다.

    -고마워요 에이스!

    -뭐가요?

    -요즘 골치 썩고 있는 일이 좀 있었거든요. 근데 나인티나인 멤버들 덕분에 해결이 될 것 같아요.

    -저희가요?

    -한국에서 광고 많이 찍고 와요. 파나르에 돌아오면 또 광고 찍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에이스는 내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계획대로만 되면 이 말은 현실이 될 테니까.

    나는 제스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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