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82화 (83/202)
  • 82. 연구

    “어때요 김밥이 입맛에 맞아요?”

    “음….”

    “별로인가요?”

    김밥을 맛본 제스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표정을 보면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다는 걸.

    “일단 계속 다 먹어 보고 말해 볼게요.”

    “네 천천히 먹어 봐요. 그리고 이건 떡볶이예요.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예요.”

    “들어 봤어요. 이건 맛있긴 한데 꽤 맵네요.”

    상섭에게 일부러 조금 달달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제스에게 여전히 매운 음식이었다.

    김밥, 떡볶이, 튀김류를 전부 맛본 제스는 입을 열었다. 썩 좋지 못한 표정으로.

    “이걸 그대로 파는 건 안 되겠어요.”

    “왜요? 어때요?”

    “한국 음식 자체는 파나르 사람하곤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방식대로 싹 바꿔야겠어요.”

    “쉽지 않겠네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어요.”

    전문가의 미각은 정확했다.

    특히 제스는 곧바로 포인트를 잡아냈다.

    나 역시 정통 한국 음식이 파나르인들에게 그리 잘 맞는 음식이 아니란 건 느끼고 있었다.

    나인티나인이나 예전 상섭의 한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만 봐도 증명되는 사실이었으니.

    상섭의 한식당엔 예전보다 파나르인이 많이 찾아 주곤 있지만 아직 한식 자체는 비주류였다.

    햄버거나 피자, 스시처럼 완전히 파나르에 자리잡은 음식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바꿔 보면 좋을까요?”

    “일단 연구해 봐야죠. 그런데 이 김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일본식 롤보다 훨씬 나은데요?”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자 제스의 눈빛이 변했다.

    제스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해결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맛은 파나르인들에게 낯설었지만 이쁜 색이나 다른 음식에 비해 건강한 한식은 충분히 사업 가치가 있는 분야였다.

    “네 당장 내일부터 미스터 장 퇴근하고 저랑 같이 연구해 봐요.”

    “좋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저희 회사 연구실이 따로 있어요. 거기로 와요. 일하기는 편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제스의 제안대로 퇴근 후 저녁에 2~3시간씩 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제스와 직원의 주도하에 연구를 했다.

    대사관 요리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하지만 매일매일 김용수 대사의 일상식을 차리고, 종종 있는 오, 만찬 행사까지 치러 가며 메뉴 연구를 하다 보니 나도 점점 지쳐 갔다.

    “이 노란 피클은 무조건 빼면 안 되겠네요. 김밥 맛이 완전 달라졌어요.”

    “하아… 이렇게 계속 만들기만 해서 원하는 답이 나오긴 해요?”

    제스의 연구 스타일을 막무가내였다.

    그냥 무조건 다양한 방법으로 많이 해 보는 것.

    예상이 되는 맛이라도 직접 입에 넣어 봐야 성에 차는 스타일이었다.

    방향이라도 잡고 연구 개발을 하는 나완 조금 다른 방식.

    계속되는 헛손질에 나도 모르게 제스에게 짜증을 내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의 음식을 연구하는데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는 거면….

    제스는 성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미안해요 미스터 장 많이 피곤했죠? 제가 좀 일을 무식하게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아닙니다. 제가 죄송해요. 최근에 계속 일이 많다 보니깐 저도 모르게 예민해졌네요.”

    “잠시 쉬었다 할까요?”

    호텔에서 메뉴 개발 업무를 수도 없이 해 봤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국인들이 아니라 파나르인들을 위해 연구를 해야 했으니,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업무였다. 어떤 식으로 방향을 찾아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 만든 김밥을 맛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휴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조금 아쉬워요. 파나르 사람들은 좀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해서 이대로 판매하면 맛없다는 소리가 나올 거예요.”

    “어렵네요.”

    “그러면 미스터 장 스타일대로 해 볼래요?”

    “제 방식대로요?”

    “네 일단 이 김밥만이라도 제대로 끝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재료를 바꿔 가며 김밥을 만들었다. 덕분에 며칠째 김밥에서 막혀 다른 메뉴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뭔가 확실한 맛 하나가 부족하다는데.

    무조건 만들기 보기 전에 범위를 좀 더 좁힐 필요가 있었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고 싶진 않았으니.

    “일단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재료에 대해서 동의하죠?”

    “네 꼭 들어가야만 그 맛이 나는 재료가 있네요.”

    “한국의 김밥들도 똑같아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는 동일하고, 메인 재료 하나씩만 바꿔요. 참치 김밥, 돈까스 김밥, 김치 김밥, 치즈 김밥 등등.”

    “치즈 김밥이요? 거기엔 어떤 치즈가 들어가나요?”

    치즈 김밥이라는 단어에 나와 제스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파나르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식재료.

    두말할 것 없이 치즈였다.

    “일단 한국식으로 치즈 김밥을 만들어 볼까요.”

    “아니에요. 일단 만들기 전에 상의 좀 해 보고요. 이게 내 스타일이에요.”

    역시나 곧바로 실행을 하려는 제스를 막아섰다.

    한국의 치즈 김밥에 사용되는 치즈 향은 그리 세지 않다. 다른 재료들의 맛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

    하지만 치즈를 즐겨 먹는 파나르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좀 더 강한 향의 치즈를 사용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치즈 김밥엔 이런 슬라이스 치즈를 사용해요. 어때요? 향이 약하지 않아요?”

    “음….”

    제스는 슬라이스 치즈를 맛보더니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치즈가 이 재료들 사이에서 맛을 낼 수 있나요?”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슬라이스 치즈는 각기 다른 재료들을 조금 조화롭게 해 주는 역할을 할 뿐,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역할은 아니었다.

    “좀 더 강한 치즈여야겠죠?”

    “아무래도 이걸로 파나르 사람들은 치즈가 들어갔는지도 모를 거예요.”

    “그럼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어 볼까요?”

    “블루치즈? 이건 반대로 재료들의 맛이 죽지 않을까요?

    “이건 파나르 사람들에게도 너무 셀까요?”

    향이 강해 한국에선 호불호가 갈리는 고르곤졸라 치즈.

    보통 파나르인들이라면 큰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치즈였다.

    하지만 꼬릿한 고르곤졸라 치즈를 김밥에 넣어 먹는 상상을 하니 저절로 우웩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윽….”

    “상상만으로도 이상할 것 같아요.”

    참기름으로 간을 한 고소한 밥에 꼬릿한 치즈의 자리는 없었다.

    분명 김밥과 치즈는 매력적인 조합인데 파나르인들에게 적합한 치즈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다른 치즈들도 맛을 보죠.”

    “그래야겠어요.”

    김밥으로 만들지 않고, 여러 개의 치즈를 시식했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김밥과 그 맛을 그려 보는 것.

    조금이라도 케미가 맞다 싶으면 김밥을 만들어 보면 된다. 이게 내가 쓸데없는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이었다.

    “미스터 장은 어떻게 상상만으로 맛을 낼 수 있는 거죠?”

    내 방식이 신기했는지 제스가 물었다.

    하지만 이건 노하우라고 할 게 없었다.

    최대한 많이 해 보는 것.

    수많은 경험에서 나온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이 해 보면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음…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 요리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이래 봬도 요리를 시작한 지 제법 오래되었어요.”

    “나도 좀 더 분발해야겠네요.”

    지금 제스의 방식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처럼 메뉴 개발을 하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엄청난 데이터가 쌓일 테니까.

    “일단 치즈를 넣는 게 정답인 것 같은데 어떤 걸 넣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향은 적고 맛이 좀 센 치즈면 딱일 텐데.”

    “그러면 크림치즈가 맛은 세고 향은 적긴 한데….”

    “크림치즈?”

    제스의 혼잣말에 나 역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긴 한데 크림치즈는 새콤달콤하잖아요. 김밥은 달콤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라서 이건 안 될 것 같은데.”

    “왜요? 일본식 초밥은 밥도 새콤달콤하잖아요.”

    “그런가? 그럼 한번 넣어 볼까요?”

    김밥에 크림치즈라.

    그 맛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짜고, 향이 있는 치즈만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향이 적고, 맛이 강한 치즈를 찾다 보니 크림치즈가 떠올랐다.

    “일단 조금만 넣어 봅시다.”

    “알겠어요.”

    내 빅데이터로도 김밥에 달콤한 크림치즈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론상으론 크림처럼 부드러운 치즈가 재료의 조화를 도울 수도 있다.

    적당한 치즈 맛은 덤이었고.

    “제스가 먼저 먹어 봐요.”

    “왜요 미스터 장은 먹기 싫어요?”

    “내 아이디어긴 하지만 밥에 크림치즈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아요.”

    한국인인 나에겐 그랬다. 아무리 해도 크림치즈와 쌀알이 조화롭게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나르인 제스에겐 달랐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김밥을 입에 넣자 제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오! 이거다 이거.”

    “정말요? 맛있어요?”

    “좀 더 넣어서 다시 만들어 봐요.”

    조금만 들어간 크림치즈가 아쉬웠는지 제스는 김밥 한 줄을 더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터질 듯이 크림치즈를 밀어 넣었다.

    “어때요?”

    “와… 대박. 이거예요.”

    “정말요? 진짜 맛있다고요?”

    제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크림치즈가 김밥이랑 어울린다고?

    의심스러웠지만 서둘러 크림치즈 김밥을 입에 가져갔다.

    “윽… 이상하잖아요.”

    “이상하다고요? 맛있는데.”

    “그래요? 난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달달한 크림치즈가 김밥의 맛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건 무조건 파나르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거예요.”

    “확실해요?”

    “그럼 제가 직원들 좀 더 불러올게요 잠시만요.”

    확신에 찬 제스.

    긴가민가해서 직접 만들어 봤지만 난 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나라면 이걸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 직원들 전부 데리고 왔으니 먹어 봐요.”

    “그래요. 결국은 파나르 사람들 입맛에 맞아야 하니까.”

    그렇게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간 김밥 시식회가 열렸다.

    한 개, 두 개 입 속으로 들어간 후 직원들의 표정을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제스의 말이 옳구나.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라도 발견한 사람들처럼 크림치즈 김밥에 열광했다.

    “거봐요 내가 파나르 사람들 입맛에 맞다고 했죠? 크림치즈가 정답이었네요!”

    “음…. 진짜인가.”

    “왜요? 표정이 왜 그래요?”

    생각했던 것보단 나쁘지 않았지만 정답이라고 할 정돈 아니었다.

    게다가 크림치즈 김밥을 맛본 직원들은 전부 제스의 부하 직원들.

    사장이 직접 만든 음식에 솔직한 평을 낼 수 있을까?

    완벽하게 만족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제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더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저는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요? 이건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인데….”

    “제스의 직원들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의견을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 보죠. 의견이야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파나르 사람들이 만족하면 그만이라지만 한국 음식은 한국 사람들의 인정도 받아야지.

    대사관 식구들에게도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면 이 메뉴를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했다.

    대사관 식구들은 이 김밥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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