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81화 (82/202)
  • 81. 제스의 방문

    타지크의 왕궁.

    수백 명의 인파를 앞에 두고 덕수와 타지크 분관 직원들은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방금까진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점점 단상이 가까워질수록 두 다리가 미친 듯이 떨려 왔다.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국왕의 앞에 섰다.

    “장덕수 셰프.”

    “네 국왕님.”

    “여러분들과 이런 좋은 사업을 하게 되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언제든 쉬고 싶을 때 타지크로 와요. 장덕수 셰프에겐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록 내 조국에서 받은 훈장은 아니었지만 가슴이 벅차 올랐다.

    훗날 청와대에서 이런 훈장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기쁠지 덕수는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훈장이 달린 무거운 어깨, 그리고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파나르로 돌아올 수 있다.

    * * *

    제스의 파나르 사무실.

    성공한 CEO인 제스는 출근을 해서 반드시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뉴스를 읽는 것.

    그냥 읽는 것이 아니 정독한다.

    게다가 한두 개의 뉴스가 아니라 15개가 넘은 뉴스를 살핀다.

    파나르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타지크 뉴스까지.

    오전 내내 뉴스를 보는 데만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어? 타지크 국왕이 훈장을 내렸다고? 그것도 외국인한테?”

    제스는 타지크 국왕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국민들에겐 관대하지만 외부인에겐 완벽히 철저한 사람.

    그런 사람이 외국인에게 훈장을 내렸다니.

    호기심에 뉴스를 클릭했다.

    [타지크 대한민국 분관과 타지크 국왕이 몇 년간의 노력 끝에 큰 결실을 맺게 되었다. …중략… 철도 공사를 성사시킨 공을 인정해 양현호 참사관을 비롯해… 등에게 훈장을 선사했다.]

    “어? 이 사람.”

    제스는 뉴스에 찍힌 사진을 보고 눈이 커졌다.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얼마 전 파나르 한국 대사관의 행사에서 본 얼굴.

    친구 알렉스가 미스터 장이라고 부르던 요리사였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었네.”

    제스는 자신이 감각이 아직 죽지 않았단 사실이 뿌듯했다.

    미스터 장의 요리를 맛보고 연락처를 남기고 왔으니.

    다만 맘에 걸리는 건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면 도저히 못 참지. 내가 먼저 연락해 봐야지.”

    곧바로 비서를 통해 대한민국 분관의 연락처를 알아내라고 하려다가 맘을 접었다. 직접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제스는 사실 조금 질투가 났다.

    자신의 고국에서 자신보다 먼저 훈장을 받은 요리사라니.

    타지크가 작아 파나르로 떠나왔지만 언젠간 고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적어도 요리사로서 훈장은 자신이 최초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저 요리사를 동료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제스는 다음 날 파나르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덕수가 그곳에서 근무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무작정.

    이 요리사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기다릴 수가 없었다.

    * * *

    -여보세요.

    -여보세요 윤아야 웬일이야?

    -혹시 저번에 국경일 행사 때 잠시 대화했던 제스라고 기억나?

    -그 파나르 요식업의 큰손이라던 사람?

    -응 맞아. 그 사람이 오늘 우리 사무실에 찾아왔는데 너를 꼭 다시 만나고 싶대.

    -나를? 왜?

    -기억 안 나? 저번에 같이 사업하자고 연락 달라고 했었잖아.

    -아… 맞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명함을 받았던 것 같은데.

    지갑을 뒤져 보니 구겨진 명함 한 장이 나왔다.

    그땐 이걸 읽어 볼 겨를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버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

    바쁘단 이유로 이렇게 푸대접할 사람은 아닌데.

    본의 아니게 비싼 사람이 되어 버렸다.

    -조만간 만나 달라고 하던데 어때?

    -음… 한번 만나 볼까?

    -꼭 사업을 같이하지 않아도 배울 게 많은 사람일 거야. 제스도 요리사 출신이거든.

    -정말? 그럼 재밌겠다.

    -응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잘 내기로 유명해. 제스의 식당들이 대부분 그래서 성공했거든.

    -오 좋다! 그런 거라면 꼭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만나 볼 가치가 있지.

    -그럼 내가 연락해서 약속 잡을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요리사라는 말에 갑자기 만나고 싶어졌다.

    새로운 요리는 항상 환영이었으니까.

    게다가 파나르인들을 상대로 하는 오, 만찬 행사가 점점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메뉴를 짜려니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으니.

    제스라는 사람과 한번 머리를 맞대 보고 싶었다.

    궁금했다. 어떤 음식이 탄생할지.

    * * *

    제스 케밥 앞.

    “평일인데 무슨 손님이 이렇게 많냐? 원래 파나르에도 웨이팅해?

    “아니 비슈파르막같이 오래 걸리는 음식 아니면 파나르 사람들은 절대 안 기다려. 근데 제스 식당들만은 예외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거겠지?

    “파나르 사람들 입맛에 잘 맞춰서 변형한 것 같아. 현지화를 잘했다고 해야 하나?”

    음식을 기다려서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파나르 사람들.

    하지만 제스의 식당만은 달랐다.

    간단한 스트리트 푸드임에도 제스의 가게 앞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파나르 문화까지 바꿔 버리고 있는 제스가 어떤 인물일지 더욱 관심이 생겼다.

    “미스터 장.”

    “안녕하세요 제스 오랜만이에요.”

    “오 나를 기억해요?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네 사실 명함을 받았단 사실은 잊어버렸지만 제스가 누군지 잊어버린 건 아니었어요.”

    “다행이네요.”

    거대 기업의 CEO라는 제스는 편한 복장으로 가게 앞에 나타났다. 국경일 행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기억이 났다.

    수더분한 모습 덕에 편하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뉴스 잘 봤어요.”

    “뉴스요? 무슨 뉴스?”

    인사를 끝낸 제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뉴스였다. 뜬금없이 뉴스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건지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타지크 국왕에게서 훈장을 받았잖아요.”

    “아! 그 뉴스요? 어떻게 그걸 보셨어요?”

    파나르 사람이 타지크 소식까지 알고 있다니.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대답으로 알 수 있었다.

    “나 타지크 사람이에요. 거기에서 태어나서 여기로 이민 왔어요.”

    “정말요? 타지크가 고향이에요?”

    파나르엔 타지크 출신 이민자가 많았다.

    엄청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타지크 사람이라니 뭔가 반가웠다.

    명예 타지크 시민이 되어서 그런가? 동향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몇 마디 나눠 보기도 전에 제스를 향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어릴 적부터 요리를 배우다 보니 타지크에선 구하기 힘든 재료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파나르로 넘어왔어요. 제 고향 타지크가 살긴 좋지만 요리사로 살기엔 재미없거든요.”

    “공감합니다. 저였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예요.”

    이 한마디로 제스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지 못해 이민까지 결심했다니.

    물론 작고 인구가 적은 타지크보단 파나르가 장사를 하기에 더 좋은 상황이라 이민을 결정한 이유도 있겠지만 요리사로서 제스의 그런 태도는 존경할 만했다.

    “그래도 이민까지 결심하다니, 진짜 대단하시네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 요리하는 게 좋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렇군요.”

    “저보다 미스터 장이 훨씬 더 대단한데요?”

    “뭐가요?”

    “우리나라 국왕은 쉽게 훈장을 주지 않아요. 특히 외국인들에겐 더 깐깐한데 이건 이례적이에요.”

    “그런가요? 사실 저한테 준 건 아니고, 철도 사업이 성사되면서 분관 직원들이 받는 거에 제가 운 좋게 낀 거예요.”

    “그래도 이건 분명 대단한 거예요. 뉴스를 보자마자 질투가 날 정도였었다니까요.”

    제스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질투, 부러움, 존경

    찰나의 표정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타지크 왕족들 굉장히 나이스해요. 나도 국적을 바꾸긴 했지만 아직도 그분들은 존경해요. 어릴 땐 나도 왕족의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정말요? 저도 나중에 한국의 대통령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오 그래요? 역시 우린 통하는 게 있어요.”

    “그런 것 같네요.”

    그러면서 한 손을 번쩍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는 제스.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톡톡 튀는 성격에서 나오는 듯했다.

    “나도 언젠간 꼭 타지크 국왕에서 훈장을 받고 말겠어요.”

    “제스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제스는 본론을 꺼냈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지만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 있었다. 나와 비슷하게 실력 있는 요리사를 보면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저번에도 한 번 말했었지만 미스터 장과 사업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근데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 건가요?”

    “당연히 한국 음식점이죠.”

    “음… 한국 음식은 종류가 너무 많은데.”

    “한국의 스트리트 푸드. 그걸 하고 싶어요. 대신 간식이 아니라 식사. 내가 추구하는 음식은 그런 거예요.”

    제스가 가지고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간편식이라든지 포장 전문 식당들이었다. 케밥, 카페, 스시까지.

    스시도 포장 전문 스시집으로 차별성을 둬서 대박을 터뜨렸다.

    기본적으로 좀 더 젊은 느낌의 식당들을 운영하길 원했다. 그래야지 색다른 아이디어를 좀 더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뭘 원하는지는 알겠어요. 그렇지만 제스도 알다시피 나는 대사관 요리사라서 같이 일을 할 수는 없어요. 그냥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죠.”

    “역시 그렇군요. 조금 기대를 하긴 했지만 안 될 거란 걸 알고는 있었어요. 그러면 미스터 장이 요리 쪽으로 컨설팅을 해 주는 건 어떨까요?”

    “컨설팅이요?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그렇지만 제스도 함께 연구할 거 아닌가요?”

    “저요? 당연히 그래야죠. 누군가 칼을 잡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저에게 한식에 대해 많이 알려 줘요. 보상은 절대 부족함 없이 해 드릴게요.”

    “하하하 제스의 명성도 대단하던데요. 저도 제스에게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이번 만남은 제스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주방장을 할 때도 외국의 요리사들과 협업해 볼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대사관에 일을 하게 되니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해 오히려 좋았다. 게다가 보상까지 든든하게 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파나르에서 먹힐 만한 한국 스트리트 푸드를 몇 개 추려 주면 나와 같이 파나르인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 봐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해 보시죠.”

    제스가 파나르에서 성공한 이유는 간단했다.

    섬세하고 확실한 현지화.

    터키식 케밥을 가지고와 파나르인들이 좋아할 만한 소스와 채소로 바꿔 파나르식 케밥이 자리를 잡게 했고, 스시 또한 크기가 큰 걸 좋아하는 파나르인에 맞춰 샤리(밥)가 커다란 스시로 성공을 이뤘다.

    한식 또한 이런 식의 변화를 통해 진행하고 싶어 했다.

    “연구를 하려면 일단 원조부터 먹어야 봐야겠죠?”

    “네 당연하죠. 장 셰프랑 윤아 씨가 한국의 스트리트 푸드를 추천해 줘요.”

    “알겠어요. 우리가 아는 식당이 있으니 거기로 가 볼까요?”

    “좋습니다.”

    우리는 상섭의 한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엔 제스가 원하는 음식은 전부 있었으니까.

    게다가 없는 메뉴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 * *

    상섭의 한식당.

    “주문은 미스터 장이 알아서 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막상 주문을 하려니깐 뭘 주문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무작정 다 시킬 수도 없고.

    윤아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음식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윤아야 스트리트 푸드라고 할 만한 한식이 뭐가 있을까?”

    “음….”

    “뭐 김밥이나 치킨, 떡볶이, 그리고 컵밥처럼 먹을 수 있게 김치볶음밥이나 비빔밥도 괜찮겠지?”

    윤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는 스트리트 푸드는 딱 분식집인데.”

    “분식집?”

    “응 학교 마치고 학원 가기 전에 먹던 떡볶이랑 김밥, 순대, 튀김 이런 거. 떡볶이는 종이컵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김밥은 들고 가면서 먹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네. 제스가 말하는 간편식이 분식에 가까울 수 있겠네.”

    밥 대신 밀가루로 된 면이나 수제비 등의 음식을 말하는 분식이 요즘에는 간편하게 먹는 음식을 통합해서 말하는 의미가 되어 버렸다.

    제스가 원하는 형태의 식당의 분식점 같은 개념과 유사했다.

    “오케이 그러면 일단 분식 위주로 주문해 보자.”

    “응응 사장님께 부탁해서 야채튀김 같은 것도 좀 만들어 달라고 하자.”

    튀김류는 치킨 말곤 메뉴에 없기 때문에 특별 주문을 했다.

    상섭은 웬만해선 내 부탁을 전부 들어줬다.

    내 덕에 매출이 올랐다면서.

    우린 김밥, 떡볶이, 튀김 같은 분식류를 주문했다.

    “제스 한국에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분식이라고 해요.”

    “분식이요?

    “네 그중에서도 이 세 가지 메뉴가 가장 인기가 있는데 한번 먹어 봐요.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지.”

    “이건 김밥이죠? 일본의 롤과 비슷한 음식.”

    “네 맞아요.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에요. 한번 먹어 보세요.”

    자신의 식당에도 비슷한 메뉴가 있다며 제스는 자신만만하게 김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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