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78화 (79/202)
  • 78. 해산물을 맛있게 먹는 법

    타지크에서는 하루만 보낸 뒤 파나르로 돌아왔다. 이 일을 하기로 맘을 먹으니 편하게 구경을 하러 다닐 수가 없었다. 빨리 뭐라도 해야 성에 찰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타지크 국왕의 성향을 100%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전략 하나를 계획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지크 국왕의 자식 사랑.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

    내가 회귀 후에도 한국까지 가서 한샘과의 인연을 만들고 온 이유는 딸을 다시 만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 * *

    파나르 대사관 관저.

    “좀 더 푹 쉬고 오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요? 타지크가 별로던가요?”

    “아닙니다. 작지만 날씨도 좋고, 충분히 매력 있는 나라였습니다. 근데 꼭 쉬러 간 것만은 아니라서요….”

    “어휴 장 셰프도 일중독이네요 일중독. 좀 쉬라고 오라고 했더니 또 일 생각만 하고 왔죠?”

    “하하… 뭐 그냥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중독까지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상태에선 온전히 휴식을 취하기가 힘들다. 그 습관 덕에 주방장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땐 항상 긴장감 속에 살아서 그런지 아무리 쉬어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빠지니깐 저절로 관리를 하며 일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웬만해선 지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번 일은 해 보기로 했어요? 요즘 사람들 말로 그 ‘각’이 나오던가요?”

    “하하하 맞습니다. 그 ‘각’이 나올 것 같아서 해 보려구요.”

    “오 정말요? 다행이네요. 후배 놈이 어젯밤에도 전화 와서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이게 성사되면 우리 파나르 교민들한테도 좋은 거니깐 잘 부탁할게요.”

    많이 어색해 보였지만 젊은 외교관, 행정원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김용수 대사였다. 직접 이런 표현을 쓰는 것보다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말의 의미를 되묻고 싶지 않아 배우고 있다 했다.

    양현호 참사관은 타지크를 가이드해 주는 내내 태연하다가 내가 비행기에 오를 때쯤 다시 간절함을 내비쳤다. 김용수 대사에게 또 한 번 전화를 걸었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결국 공식적으로 타지크 출장을 수락하게 되었다.

    * * *

    타지크 왕궁.

    “얘들아 저녁 먹자.”

    세 번째 여왕의 부름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뒤이어 타지크 국왕 역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어서들 먹거라.”

    “에이 나 오늘 밥 안 먹을래.”

    “나도.”

    “그러면 나도.”

    식탁에 올라온 저녁 메뉴를 확인한 아이들은 일제히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국왕과 요리사는 끼니마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생선과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예 해산물로만 상을 차리는 요리사였다.

    다른 음식이 있으면 그것만 먹을 테니까.

    아예 해산물만 올라와 있으면 배가 고파서라도 먹게 된다. 이 방법이 그나마 찾아낸 대안이었다.

    “생선이나 해산물 자꾸 안 먹으면 아빠처럼 키 안 큰다고 했지?”

    “얼린 거 말고 맛있는 생선을 구워 주면 당연히 먹지.”

    “이제 너희들도 명색이 왕족인데 타지크 상황이 어떤지 알고 그런 투정 부려야 하는 거 아니겠니?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잖니.”

    “치… 그래도 이건 너무 맛이 없단 말이에요.”

    “다음 주엔 파나르에 가서 신선한 것들 좀 사 올 테니 이번 주만 참자. 알았지?”

    타지크 왕은 몇 분 동안의 실랑이 끝에 아이들에게 다시 스푼과 포크를 쥐여 줬다.

    본인 역시 이 피곤한 일을 매번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릴 적 냉동 해산물도 먹지 못해서 키가 제대로 크지 못한 것 같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커서 자신한테 원망이라도 할까 봐….

    할 수 있는 건 뭐든 최선을 다해 본 뒤 원망을 받아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끼리만 있을 땐 괜찮지만 다른 곳에 초대되어서 가게 되면 절대 음식 투정 부리면 안 돼. 알았지? 너희들은 타지크의 왕족이란 걸 잊지 마. 어디서든 격식을 지킬 줄 알아야 해.”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힘겹게 생선에 손을 뻗고 있었다.

    타지크 왕은 다음 주에 있을 한국 분관에 이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갈 생각에 걱정부터 앞섰다. 괜히 전부 데리고 가겠다고 했나? 창피라도 당하면 어쩔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미리 예절 교육 좀 시켜 둘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라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 같아 조금 후회가 되었다.

    * * *

    파나르 시장.

    “안녕하세요. 제일 싱싱한 오징어랑 꽁치 좀 주세요.”

    일단 바다가 없는 타지크에선 보기 어려운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구입했다. 타지크에서도 오징어와 꽁치는 냉동으로 구할 수 있지만 생물을 구매해서 따로 만들 것이 있었다.

    “장 셰프, 뭘 만들고 있나요? 이거 혹시 오징어젓갈인가요?”

    “네 이번 만찬 때 타지크 왕족들에게 젓갈의 묘미를 좀 보여 주고 싶어서요.”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짭조름한 젓갈 한 점. 한식의 다양한 요리법과 양념의 조화도 있지만 그런 정갈함 또한 한식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역시 잘 아시는군요.”

    살아 있는 오징어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잘게 다른 다음 소금에 절여 준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등 양념장을 넣어서 며칠을 잘 묵혀서 준비해 두었다.

    소박해 보여도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이 젓갈로 타지크 왕족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겉으로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입에 넣으면 굉장히 깊고 풍성한 젓갈의 맛.

    겉으론 소박하게 살지만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타지크 왕족을 음식에 담아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사 온 싱싱한 꽁치는 머리째로 말려 주었다.

    “오 과메기군요. 과메기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만드네요.”

    “과메기 좋아하세요?”

    “당연하죠. 타지크 왕한테만 주지 말고 저한테도 좀 남겨 주실 수 있죠?”

    “음… 고려해 보겠습니다.”

    “허허 너무하시는군요.”

    그들에게 젓갈 말고도 겨울철 과메기의 묘미를 보여 주고 싶었다. 신선한 생선을 구하지 못할 때 이렇게 보관해서 먹어도 충분히 영양가를 보존할 수 있고, 오히려 맛과 향도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타지크에서는 생선을 말리기보다 염장을 해서 파는 게 많았는데, 너무 짜서 많이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근데 젓갈이나 과메기 괜찮을까요? 어른들은 몰라도 애들이 먹기엔 좀 힘들 텐데. 이번 만찬에 아이들도 많이 참석한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건 어른들한테만 제공이 될 거고 아이들 음식 따로 준비할 생각입니다.”

    “역시 다 생각이 있군요.”

    비린내가 난다며 해산물은 입에도 안 대던 우리 딸이 군말하지 않고 해산물을 먹는 상황은 딱 하나였다.

    생선이나 해산물을 튀겼을 때.

    튀김은 속에 뭐가 들어가든지 크게 개의치 않고, 곧잘 입에 넣는 게 아이들이었다.

    젓갈과 과메기로 만들어진 이 신선한 오징어와 꽁치의 절반은 뜨거운 기름 속에서 튀겨질 것이다. 바람과 햇빛에 번갈아 가며 말린 이 과메기를 아이들에겐 튀겨서 고소하고 기름기가 많은 생선의 묘미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아이들 음식까지 따로 신경 쓰려니깐 번거롭겠어요.”

    “아닙니다. 이번 만찬은 오히려 아이들 음식이 메인이고, 어른들을 위한 음식을 따로 챙기는 겁니다.”

    나의 타깃은 확실했다.

    11명의 국왕의 아이들.

    이번 만찬은 최종적으로 양현호 참사관이 구두로 성사시킨 사업이 취소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자신의 자식부터 챙기는 사람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할 준비는 모두 끝이 났으니 나머지는 타지크에 가서 재료를 구입하면 된다. 아이스박스를 한가득 싣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 * *

    타지크 공항.

    “어서오세요 요리사님! 정말 잘 선택하셨어요. 있는 동안은 최대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다른 직원들처럼 똑같이 대해 주세요.”

    “그럴 순 없죠. 저희 분관에는 원래 없는 분이 오신 건데, 특별 대우 해 드려야죠.”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숙소 하나쯤은 예약해 줄 줄 알았는데, 타지크 관저로 데려가는 양현호 참사관이었다. 파나르만큼 궁궐 같은 크기는 아니었지만 이곳 역시 혼자 지내기엔 과분한 집이었다.

    어차피 주방에도 익숙해져야 했고, 호텔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으니 차라리 관저가 편했다.

    “서로 인사하세요. 저희 와이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사모님이 계셨군요. 저희 대사님은 혼자셔서 사모님이 계실 거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요.”

    “반가워요 장덕수 셰프님. 김용수 대사님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공관장들은 부인들과 함께 부임지를 돌아다녀요.”

    이것 역시 조금 보수적인 문화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공관장의 옆에 있는 배우자의 존재 역시 외교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부부 동반으로 초대를 받으면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또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 노력한다.

    배우자가 공식적인 직원은 아니지만 이런 노고를 인정해 줘 배우자 수당이 나오기도 한다.

    “관저에서 행사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손님을 초대하면 저희 와이프가 전부 준비를 해요. 이번에도 요리사님을 도와 드릴 테니 궁금한 건 다 저희 와이프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다행이네요. 이곳은 익숙하지 않아서 걱정했었는데.”

    “저만 믿으세요 요리사님. 저 타지크 말도 제법 할 줄 압니다.”

    “와아 대단하세요.”

    양현호 참사관 아내는 확실하게 서포트하겠다는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양현호 참사관처럼 운전도 직접하고, 시장도 보러 다니니 일당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필요한 재료부터 구매하러 가실까요?”

    “네 양념류 같은 건 다 구비하고 계신 거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확인해 보시고 가시죠.”

    공식적인 만찬은 아니었지만 종종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고 하니 있을 만한 건 다 있었다.

    내 계획대로 몇 가지 재료만 구매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타지크에도 마른김은 팔죠?”

    “김이요? 그 정도는 있죠. 근데 한국 김처럼 간을 하거나 기름이 발라져 있는 조미김은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김을 말린 것뿐입니다. 말리는 기술도 그리 좋지 않아서 좀 군내가 나기도 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아요.”

    그래도 말린 제품이라 생김은 타지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김 특유의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어 석쇠로 살짝 구워 준 뒤 젓갈과 과메기에 함께 곁들여 낼 생각이었다.

    또 구워 낸 김에 참기름과 맛소금을 살짝 뿌려 아이들에게도 흰 쌀밥과 내어 주고.

    아무리 식문화가 달라도 조미김에 밥을 싸 먹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내 경험상 이건 백전백승 아이템이었다.

    오히려 상태가 좋지 않은 김을 먹다가 한국식으로 구워 낸 김을 맛보면 더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었다.

    “김과 쪽파, 그리고 고수, 쌈장, 초고추장까지. 과메기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세팅해 주시고, 쌀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하얀 쌀밥으로 지을 겁니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보내온 햅쌀이 있습니다. 사비로 구매한 거지만 편하게 쓰세요.”

    “오! 햅쌀이라면 너무 좋죠.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렇게 왕가가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밥을 지어 둔 뒤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한국에서 대통령도 직접 마주해 봤지만 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엄청났다.

    뭔가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런 성격이 아니라곤 들었지만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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