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73화 (74/202)
  • 73. 불시 감사 2

    “요리사님은 아직 어려서 이런 경험 해 보신 적 없으시겠지만 만만한 게 아니에요.”

    “저요? 뭐 몇 번 해 보긴 했는데….”

    “어느 누가 막내급 직원한테 재정 관리를 맡기겠어요. 아무리 작은 레스토랑이라도 그러진 않겠죠. 만약 감사팀이 관저에 가서 식재료 창고를 확인한다면 꼬투리 잡히는 건 불 보듯 뻔합니다. 사무실이야 이렇게 며칠 밤이라도 새웠으니 그나마 넘어가겠지만….”

    작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특급 호텔이었는데….

    너무 피곤한 상태라 그런지 안지용 참사관의 말투에 약간의 가시가 박혀 있었다. 말을 뱉은 후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서둘러 주제를 돌렸다.

    “흐… 흠 근데 이 고구마 진짜 달달하고 맛있네요. 우리 요리사님이 만들면 고구마도 특별해지나 봐요.”

    “하하하 맞습니다. 아주 엄청난 비법이 숨겨져 있지요.”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란 걸 충분히 이해했다. 굳이 나까지 거들어 심기를 건들 필요는 없었다.

    처음 호텔의 감사 업무를 경험했을 땐 선배들의 말에 따라 재고 조사나 영수증 정리 등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직접 감사를 준비하게 되었을 땐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 버릴 뻔했다.

    그 많은 숫자들을 며칠 만에 정리해야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7~8년 겪고 나니 어떻게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었다. 그리고 몇 년은 수월하게 감사 업무를 넘길 수 있었다.

    “여튼 고맙습니다. 나가서 뭘 먹을 시간은 없고, 배는 고파서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잘 먹었습니다.”

    “작게나마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우린 한 팀이잖아요.”

    “그렇죠! 더 힘든 일도 해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가뿐하죠.”

    달콤하고 든든한 고구마가 입에 들어가자 직원들의 기운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차라리 감사팀이 오면 관저로 직접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다음 날 파나르 대사관.

    아침 일찍부터 본부 감사팀이 파나르 대사관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감사팀은 모두가 캐리어도 하나 없이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몇 시간 만에 다 털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서기관님 준비하신 자료 전부 가지고 와 주세요.”

    “자 여깄습니다.”

    이틀을 꼬박 밤을 새운 직원들은 감사팀에서 친절을 베풀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감사팀이 아무리 선배들이라고 해도 예의를 차리고 싶진 않았다.

    김준우 서기관은 준비한 자료를 던지듯이 감사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곤 몇 분 훑어보는 척을 하더니, 국경일 행사의 내역에서 감사팀의 시선은 멈춰 섰다. 결국 그것 때문에 온 거니까 뭐.

    “여기 보고서엔 분명 곤룡포라든가 한복 등을 구매한 내역이 없는데 행사를 진행했던 영상이나 사진에는 버젓이 입고 계십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매한 거죠?”

    “그걸 구매했든 빌려서 입었든 공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왜 자꾸 그걸 거론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준우 서기관은 처음부터 기에 눌리지 않기 위해 까칠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맘먹고 들어온 감사팀 역시 노련했다.

    “문제가 없을지언정 의심이 가는 내역은 전부 확인해 봐야죠. 이번엔 이런 한복을 공짜로 얻어 입고 뒤로는 뭔가 다른 걸 약속했을 수 있을 테니까요.”

    “뭐요? 증거도 없이 그런 식으로 추측하지 마세요.”

    “그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전부 보여 달라니까요? 그러면 쉽잖아요.”

    안지용 참사관이 이번 감사는 증거의 진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 싸움의 문제라고 해서 웬만하면 보여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소설로 감사 보고서를 작성할 것 같아 김용수 대사과 김준우 서기관은 도시락 판매 내역을 공개했다.

    “이렇게 한인회의 요청을 받아서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했고, 이 수익으로 소품과 식자재 구입에 보탰습니다.”

    “하하하 멀쩡하게 도시락 장사를 하고 있는 한식당을 놔두고, 한인회가 대사관에서 도시락을 구매했다구요?”

    “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저희 요리사의 음식이 맘에 들어서 한인회에서 특별 요청한 겁니다.”

    역시나 정확한 상황이나 내역 따위는 이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최대한 의심이 갈 만한 상황을 찾아내고, 유착이 있었을 것 같은 행사를 찾아내면 그만.

    의심만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뭐 파나르 대사관의 요리사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진짜 도시락 주문을 받았다 칩시다.”

    “치는 게 아니라 진짜 받았습니다.”

    “뭐 여튼 진짜 그렇다면 도시락용 재료는 따로 구매해서 사용했겠네요?”

    “당연하죠.”

    감사팀은 뭔가 걸려들었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만약 이 도시락을 만들 때 공금으로 사 놨던 양념들을 조금이라도 사용했다면 그건 문제가 될 만하죠? 가령 소금이라든가, 설탕이라든가 그런 거요.”

    “네? 아니 간장이나 소금 같은 양념이 좀 남아 있으면 그걸 먼저 쓰고 새것을 뜯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당연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나중엔 커다란 부정부패를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진짜.”

    공금으로 구매한 재료를 사용해 도시락을 만들어 팔았다면 공식적인 내역을 보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파나르 대사관에선 굳이 그러지 않았다.

    한인회에서 정당한 도시락값을 지불했고, 그걸로 도시락을 팔아 수익을 냈다. 공식적인 예산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아껴 두었다 이번 국경일 행사에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 도시락을 만들 때 공금으로 구매했던 양념이나 재료는 단 1g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아 있던 양념을 조금이라도 사용했다면 공적인 물건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된다.

    사실 이 정도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일부러 시비를 걸러 온 감사팀에겐 충분히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그럼 관저로 넘어가서 좀 더 확인을 해 봐야겠군요. 요리사와 얘기도 좀 나눠 보고.”

    “하….”

    사실 이 도시락 사건을 제외하곤 특별히 걸릴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감사팀 역시 그 사실을 금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갈 순 없는 법이었다.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크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성과를 보여 줘야 했다.

    “그럼 늦게 전에 관저로 넘어가시죠. 거기에 요리사님 계시죠?”

    “…….”

    김준우 서기관은 똥 씹은 표정으로 관저로 향했다. 덕수에게 미리 연락이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감사팀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동행하는 안지용 참사관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런 감사 업무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젊은 요리사가 관리한 식재료 창고는 허점투성이일 게 뻔했다.

    장덕수 요리사가 아이디어나 실력은 나이에 비해 출중할지 모르나 이런 업무는 연륜이나 경험이 많아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것이었다.

    관저를 보여 주면 애써 밤새운 보람이 사라지는 꼴이었다.

    “서기관님 어떡해요. 요리사님한테 연락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싶은데 저 사람이 하도 뚫어져라 보고 있어서 폰을 못 꺼내겠어요.”

    “휴우 망했네 망했어. 관저 상태는 바빠서 우리가 확인도 못 해 봤는데.”

    두 사람은 관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절망 섞인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겉으론 당당한 척했지만 결국 문제가 생길 거란 걸 예감하고 있었다.

    * * *

    관저의 현관 앞.

    감사팀과 대사관 직원들이 탄 차가 대문을 통과하자 커다란 현관이 저절로 열렸다. 김용수 대사의 차량 역시 뒤따라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요리사 장덕수입니다.”

    미리 연락을 하진 못했지만 감사팀을 맞이하는 덕수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짜증이 가득한 김준우 서기관의 표정과는 대조되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람들을 관저 안으로 안내했다.

    “파나르 요리사가 젊다고 하더니 많이 어리군요.”

    “하하하 동안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가 많기는 뭐가 많아. 신이 나서 왔던데 뭐.

    김준우 서기관과 안지용 참사관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미간을 찡그리는 정도로 넘어갔다.

    “젊은 요리사님, 잠시 주방 좀 안내해 주시겠어요?”

    “네 물론입니다. 어디부터 보시겠어요?”

    감사팀은 그 뒤로도 요리사가 젊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 만만한 상대라는 걸 비꼬는 의미였다.

    덕수 역시 그 뜻을 충분히 눈치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긴 냉동 제품을 보관하는 곳이고, 여기는 공금으로 구매한 양념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냉장고는 대사님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입니다. 일상식은 전부 이 냉장고의 재료로만 사용합니다.”

    “냉동실에 해산물이 많이 얼려져 있던데, 이렇게 많이 남은 이유가 뭔가요? 쓸데없이 많이 구매했나 보군요.”

    “파나르 시장에선 냉동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요일이 따로 있습니다. 저렴한 날 예산 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을 구매하고 다음 행사 땐 예산을 적게 사용합니다.”

    “흠….”

    거침없는 덕수의 대답에 감사팀은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곧바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무실에서 구매한 영수증 가지고 왔죠?”

    “네 여깄습니다.”

    감사팀은 관저에서 식재료를 구매한 영수증을 토대로 식재료 창고를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헛수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장 2통을 구매했는데, 어디에 사용했고, 남았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9월 18일 만찬 행사 때 갈비찜을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남은 간장은 여기서 있고, 다 쓴 간장통은 여기서 모아 뒀습니다.”

    “다… 다 쓴 통도 모아 뒀나요?”

    덕수는 양념이나 재료에 각각 구매한 날짜와 가격, 어디에 사용하기 위해 구매했는지 전부 메모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용하고 남은 빈 통도 깨끗이 세척해서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1년간은 모두 보관했다가 정기 감사가 끝나면 버릴 예정이었습니다.”

    “아….”

    “채소류는 최근에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보다 마당에서 키운 놈들이 잘 자라서 그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그러면 술 창고를 보여 주세요.”

    감사팀은 공격 타깃을 술로 옮겼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술 역시 한 병도 남김없이 빈 병까지 보관되어 있었고, 언제 어떻게 누가 먹었는지까지 메모되어 있었다.

    “대사님 일상식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대사님이 주신 돈으로 재료를 구매하고, 따로 보관해서 관리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용수 대사의 일상식 재료를 살펴보았지만 철저하게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김용수 대사는 주기적으로 현금을 채워 주었고, 덕수는 그 돈으로 식사 준비를 위한 재료나 양념들을 구매해 사용하고 있었다. 영수증은 물론 모두 남아 있었다.

    한인회 도시락을 만들 때 사용했던 양념들은 전부 그 공간에 보관되어 있었다.

    “다 확인하셨나요?”

    “…….”

    옆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안지용 참사관과 김준우 서기관의 입은 벌어져 다물어지질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감사팀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런 보고서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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