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72화 (73/202)

72. 불시 감사

파나르 대사관 사무실.

“요샌 아주 인기 스타가 된 느낌이네요.”

“아직도 연락 많이 와요?”

“네. 대사님 말대로 인트라넷을 막아 두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준우 서기관은 쏟아지는 관심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이대로면 이번 분기 최우수 공관도 분명 파나르 대사관의 차지가 될 것이고, 또다시 최고액의 성과금을 받게 될 테니 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니 맘 편히 국제 학교도 보내고, 영어 과외도 팍팍 시켜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허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요. 괜히 체할 수 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번엔 저희만큼 확실한 성과를 낸 곳은 없잖아요. 국정원 정보통으론 뭔가 들려오는 게 있으신가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세상일이 맘대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하하하 너무 의심이 많은 것도 안 좋습니다. 참사관님. 오늘 점심은 제가 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커피 한잔 살게요.”

두 사람은 간만에 작은 사치를 부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찌 됐든 파나르 대사관의 최근 분위기는 아주 맑음 상태였다.

“다들 식사하고 돌아왔죠? 10분 후에 전원 회의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요?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김용수 대사의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논의할 주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별걱정은 되지 않았다.

갑자기 한국의 기업에서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겠지. 귀찮긴 해도 그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 * *

회의실.

“며칠 전까지 밤새우며 일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에이 이미 지난 일인데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김용수 대사가 또 한 번 국경일 행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김준우 서기관 나서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굳어 있는 김용수 대사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줄을 몰랐다.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고생을 해 줘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뭔가요? 제가 지원 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원이 아니라….”

김용수 대사는 약간의 화를 삭이는 듯 한 번 뜸을 들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회의를 이어 갔다.

“감사가 있을 겁니다.”

“감사요? 정기 감사 기간은 내년 초 아닙니까?”

“정기 감사가 아닙니다.”

“그… 그러면?”

“불시 감사입니다.”

재외 공관은 매년 초 빠짐없이 감사를 진행한다. 일 년간 사용한 예산이 공관의 규모에 비교해 적당한지, 또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내역은 없는지, 아니면 과도하게 공금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관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정기 감사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예정에도 없던 불시 감사가 잡혔다?

이건 심각한 부정행위가 의심되거나 누군가 고발을 했다는 의미.

불시 감사라는 단어를 들은 직원들은 상황을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저희가 왜 그런 감사를 받아야 합니까?”

“본부의 지시입니다.”

“그러니까 왜 본부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온 건지 알고 싶습니다. 오히려 적은 예산으로 그 정도 규모의 행사를 치러 냈다는 걸 칭찬해 줘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런 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방금까지 한껏 신나 있었던 김준우 서기관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안지용 참사관 역시 놀랐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압도적인 성과를 내게 되면 칭찬이나 부러움보단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이 앞서게 되는 법이다.

이건 보나 마나 다른 공관들에서 조사를 요청한 게 뻔했다.

“오히려 그 적은 금액으로 목표치보다 두 배나 많은 손님들을 받고, 관저를 꾸미는 소품까지 구매했으니 의심을 샀나 봅니다.”

“그건… 하 저희가 한인회 행사 때 도시락을 팔아서 번 돈으로 예산에 여유가 생긴 것 아닙니까!”

김준우 서기관은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예산을 아끼고, 유용하게 쓴 사례들은 널렸지만 직접 돈을 벌어서 행사를 치른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여튼 억울하겠지만 일은 벌어졌습니다. 당장 내일모레 본부 감사팀이 대사관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내일모레요? 영수증 정리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말이네요.”

이틀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거의 1년 치의 내역을 정리하라는 건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식으로 털면 세무서라도 먼지가 나올 게 뻔했다.

“화가 난 여러분들의 맘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히려 힘없는 공관장 때문에 이런 역경을 겪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현역이었다면 어떻게든 막아 봤을 텐데….”

“그거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사님. 현역이든 퇴직자든 이런 식의 불시 감사는 아닌 거죠.”

“맞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책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대사님.”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이번 고비만 잘 넘겨 봅시다. 나는 오히려 이게 기회라고 생각해요.”

“기회라뇨?”

대놓고 먼지를 털러 오는 거긴 하지만 큰 구멍 없이 이번 감사를 잘 넘긴다면 파나르 대사관은 무적의 요새가 되는 것이다.

국경일 행사에 사용된 예산은 다른 공관들과 내역이 조금 다르겠지만 재정적으론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곤 다시는 건들지 못할 요새라는 이미지를 낙인찍어야 했다.

* * *

다음 날 아침.

“대사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가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조금 고단하네요.”

“그 불시 감사 때문이신가요?”

“네 괜히 나 때문에 직원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깐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죠. 이 감사도 결국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

어제부터 김용수 대사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업무를 본 것 같았다. 먹어서라도 힘을 내기 위해 아침밥을 삼키곤 있지만 표정이 모래를 씹는 사람 같았다.

“고마워요. 오늘도 잘 먹었어요.”

“네 대사님. 하루만 힘내세요.”

“하하 이번만 잘 넘기면 잠시라도 평온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우리 지나랑도 더 자주 놀아 줄 텐데.”

“지나랑은 제가 잘 놀아 주고 있습니다. 자꾸 텃밭을 밟고 다녀서 문제지.”

“하하하 이 녀석이 없었으면 식재료 값을 좀 더 아낄 수 있었던 거죠?”

“당연하죠. 저희 마당에 심어 놓은 깻잎이랑 무, 고추, 대파들 제대로 수확만 했어도 식재료 값을 많이 아꼈죠.”

“그 정돈 감수해야죠. 잘 교육 좀 시켜 줘요.”

“네 알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파나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채소들의 묘목을 구해 마당에 심었다. 토질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지 다행히도 금세 자라나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마당을 뛰어다니는 게 업무인 지나에게 무참히 밟혀 버려 반은 쓰지도 못하게 되었다.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는데….

이렇게 예산을 아끼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데 불시 감사라니.

나 역시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식재료를 구매했던 영수증은 전부 사무실에 있으니깐 관저를 직접 둘러보고 그러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장 셰프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와서 실컷 뒤져 봐도 자신 있습니다. 쌀 한 톨도 허투루 쓴 적 없으니까요.”

“하하하 감사팀을 오히려 관저로 데리고 와야겠군요.”

아무리 공기관의 감사 시스템이 철저하다고 한들 사기업의 감사 시스템을 따라올 순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이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이 돈은 엄밀히 말해 남의 돈이다.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사기업의 감사 시스템은 운영진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구질구질한 부분까지 체크하고, 아끼라며 압박을 주곤 한다.

예전 호텔에서 운영진들에게 괜히 밉보인 주방장이 남아 있는 설탕의 양이 조금 모자라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는 것까지 목격했으니 말 다 했지.

그런 일들이 수년간 몸에 배어 있으니 처음 왔을 때부터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습관처럼 해 오고 있었다.

나는 당장 오늘 들어온다 해도 자신 있었다.

“여튼 장 셰프. 나는 오늘도 새벽이나 되어야 들어올 것 같으니 저녁은 준비하지 말고 일찍 퇴근해요.”

“밤새우시게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김준우 서기관이랑 안지용 참사관 그리고 윤아 씨까지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그러면 저도 같이 좀 거들까요?”

“아니에요. 장 셰프는 국경일 행사 때 우리보다 훨씬 고생했잖아요. 맘 편히 쉬어요. 이건 사무실 사람들이 할 일이에요.”

“그… 그렇긴 하지만.”

김용수 대사는 나보곤 걱정 말라며,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관저를 나섰다.

저런 컨디션으로 오늘 하루를 잘 버틸 수 있을는지.

모두가 뛰어들어 일을 거든다는데 나 혼자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어차피 저녁 식사 준비가 없으면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으니까.

나 혼자만 여유를 즐기고 싶진 않았다. 즐길 거면 맘 편히 다 같이 즐겨야지.

“보자. 뭐가 있을까.”

나는 주방을 둘러보며 쓸 만한 재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밤새 고생할 직원들에게 새참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할 일이 많으니 간편하게 먹으면서도 든든한 그런 새참.

“아 맞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아주 알맞은 재료가 떠올랐다.

국경일 행사 때 중국 대사관에서도 대사를 비롯해 몇 명이 방문해 주었다. 그리고 선물을 하나 전해 주었는데, 대사의 고향에서 올해 수확한 햇고구마라며 1박스를 가지고 왔다.

20킬로가 넘는 고구마는 나와 김용수 대사 둘이서 먹기엔 벅찬 양이었다. 다 먹기도 전에 상해서 버릴 게 뻔했다.

이걸 쪄서 사무실로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내가 즐겨 먹는 특제 소스와 함께.

찐 고구마는 그냥 먹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목 넘김이 좀 더 좋아지고, 단맛과 고구마 향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꿀이나 올리고당에 간장을 한 숟갈 정도 섞어 주면 달콤하면서 간장의 감칠맛이 섞여 찐 고구마의 맛을 극대화시켜 준다.

나만의 특제 소스 하나와 약간의 김치, 그리고 동치미 국물까지 담아서 사무실로 향했다.

* * *

“안녕들하십니까?”

“어? 요리사님?”

“장 셰프가 여긴 무슨 일이에요?”

모두가 함께 김용수 대사의 방에 모여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퇴근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서류가 널브러진 테이블을 보니 아직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나중에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죠.”

“오늘 일찍 퇴근하라니깐 여기까지는 왜 왔어요 장 셰프.”

김용수 대사는 괜히 밤을 새운다고 말한 건 아닌지 되레 미안해했다.

그 말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줄 아는 김용수 대사였다.

“서류 업무는 제 전공이 아니라 도와 드리진 못하고, 대신 요깃거리 할 만한 것 좀 만들어 왔습니다.”

“정말요? 먹을 거요?”

“네 별건 아니고, 그냥 선물 받은 고구마 좀 쪄 왔습니다.”

“와아! 별거 아니라니요. 지금은 이것도 감지덕지죠.”

“나 찐 고구마 엄청 좋아하는데. 이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먹죠.”

다들 배가 고팠는지 별거 아닌 새참에도 격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다들 한 손으론 고구마를 집으면서 또 한 손에선 서류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일분일초라도 아껴 보겠다는 의지.

어느 순간 하나의 팀이라는 느낌이 부쩍 는 것 같았다.

“목 막힐 수 있으니깐 천천히 드시고, 동치미 국물도 조금 가지고 왔으니깐 같이 드세요.”

“와 센스 최고네요. 동치미 국물이라니.”

“아 나는 사이다 한잔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사이다요? 제가 좀 사다 드릴까요?”

고구마를 입 안 가득 넣은 김준우 서기관은 동치미 대신 사이다를 찾았다. 근처 슈퍼에서 사다 주려고 엉덩이를 들자 김준우 서기관이 만류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일 감사팀이 와서 아무것도 꼬투리 못 잡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파나르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가는 거잖아요. 출장비 낭비했다고 개털릴 거고, 그러면 사이다 마신 것처럼 완전 속 시원할 것 같은데. 지금은 고구마만 계속 입에 넣고 있는 기분이라서요.”

“하하하 그렇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이렇게까지 준비하는데 설마 잡힐 게 생기겠어요?”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지만 다들 긴장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대놓고 꼬투리를 잡으러 오겠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 각오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관저까지는 손 안 대겠죠?”

아무래도 계속 맘에 걸리는지 안지용 참사관이 나와 김용수 대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관저를 입에 담았다.

손 댄다 해도 관저는 걱정할 거 없었다.

“관저는 손대도 상관없을 겁니다.”

나는 안지용 참사관에게 걱정 말라는 의미로 지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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