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장관의 선물
외교부 장관실.
“과장님. 이번에 파나르 직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 좀 하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까요?”
“장관님이 직접이요?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이 대사님까지 5명이 맞죠?”
“네 김 선배님이랑 통화해서 직원 성향이 어떤지 대충 조사는 해 놨어요. 이걸 토대로 선물 좀 한번 생각해 봐 주세요.”
장관은 김용수 대사와의 통화에서 직원들에 대해 꼼꼼하게 물었다. 평소 성격은 어떠한지, 주로 담당하는 업무는 어떤 건지, 또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단순히 고가의 선물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 부하 직원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제가 직원들하고 상의해서 한번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또 젊은 직원들 아이디어를 들어 보는 거죠.”
“하하하 벌써 시작되었군요. 좋습니다 과장님.”
장관과 과장은 꽤 오랜 시간 선물을 고르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과 비슷한 또래의 본부 직원들의 입에선 꽤 쓸 만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김 선배님 선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머지 직원들 것만 신경 써 줘요.”
“네 알겠습니다.”
외교부 장관은 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장관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땅히 뒤를 이를 사람이 없었다. 파나르 대사의 임기와 조금 맞지 않아 잠시 공백이 생기겠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김용수 대사를 반드시 이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장관은 계획된 대통령과의 오찬이 언제인지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 * *
대사관 관저 주방.
“와 이걸….”
장관이 나에게 보낸 특별 선물은 바로 칼이었다.
상자 속에는 딱 한 자루의 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요리사에게 칼을 선물해 주는 센스에 놀란 게 아니었다.
이 칼은 보통 칼이 아니었기 때문.
“어떻게 구한 거지…? 이때의 이 칼은 진짜 손으로 만든 거라 아무나 못 구할 텐데. 그래도 장관 정도 되니깐 가능하겠지.”
나는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직원들은 어떤 의미가 담긴 선물을 받았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윤아야.
-응 덕수야 무슨 일이야?
-너한텐 장관님이 어떤 선물 주셨어?
-갑자기?
나는 급한 맘에 앞뒤 다 잘라먹고 윤아의 선물이 뭔지부터 물어봤다.
놀란 윤아에게 미안하단 말을 건네고, 내가 받은 선물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마치 오래된 무용담을 얘기하듯이.
-나는 칼을 선물 받았거든. 근데 이 칼이 보통 칼이 아니야.
-보통 칼이 아니면 어떤 칼인데? 뭐 엑스칼리버라도 되는 거야?
-아니. 나한텐 그것보다 더 의미 있어.
-뭔데?
-이거 청와대에만 납품하는 칼이야.
-청와대?
조선 시대 말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칼의 품질은 다른 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칼이다. 장인이 직접 불로 달구고 때려서 만든 칼이지만 그 어느 칼보다 과학적이고,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가 되어 있는 최상급의 칼이다. 기계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품질의 칼이었다.
당시에도 황실에만 납품을 했었다는데 지금까지도 청와대나 일부의 지인들에게만 칼을 판매하고 있었다.
비록 몇 년 후엔 그렇지 않게 되지만.
나중에 결국 공장화되어 대량 생산이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최상급의 칼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공장화가 되기 전 손으로 직접 만든 이 칼은 분명 돈으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내가 몇 번 시도해 봐서 알거든.
-응 이 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밖에 남지 않아서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칼이야.
-와 대박. 그럼 이 선물들 다 맞춤 선물인가 봐.
-진짜? 너는 뭐 받았는데?
내가 청와대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어서 이런 선물을 준 건지 그냥 좀 더 특별한 선물을 해 주고 싶어서 힘을 쓴 건진 모르겠지만 내 선물만큼은 내게 딱 맞춤이었다. 하지만 윤아 역시 자신의 선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만년필.
-만년필? 그게 다야?
-그리고 추천서.
-추천서? 누구 추천서?
-장관님이 직접 써 주신 추천서. 그리고 만년필도 장관으로 임명받으면 서류를 결재할 때 사용하는 만년필이래.
-와 대박이네. 네 선물도 맞춤이구나.
윤아가 정식 외교관이 되겠다고 선언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용수 대사는 그 말을 장관에게 전해 용기와 응원을 해 달라고 했을 것이고.
장관은 자신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선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던 만년필까지 윤아에게 양보했다.
-추천서는 나중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적혀 있더라.
-작다니! 무려 외교부 장관의 추천서가 어떻게 도움이 안 될 수가 있겠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어떻게든 시험 붙어야겠다. 면접이라도 봐서 이걸 써먹으려면.
윤아는 기분이 좋으면서 동시에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약간의 긴장과 부담감은 오히려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다른 분들은?
-안지용 참사관님은 로얄 살롯트랑 로마네꽁띠.
-우와 우리 선물도 좋지만 참사관님 선물은 너무 고가 아니냐? 그러면 김준우 서기관님은?
-서기관은 본부 출장 명령.
-출장? 그게 선물이야?
전화기 너머로 윤아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김준우 서기관에게 왜 그런 선물이 전달되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출장은 그냥 핑계고, 본부로 출근만 하고 가족들 선물 고를 수 있게 조치해 뒀대.
-그게 바로 최고의 선물이네.
바쁜 와중에도 육아와 가족들을 돌보느라 우리보다 더 많은 힘을 쏟은 김준우 서기관.
그런 그에게 본부 출장이라는 핑계로 잠깐 동안의 자유를 선물해 준 장관이었다.
정말 하나하나 의미가 가득 담긴 선물들이었다.
-그러면 김용수 대사님은 뭐 받았어?
-대사님?
-대사님은 아무것도 안 받으신 것 같던데?
-정말? 후배라서 뭘 주기가 좀 그런 건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 낸 김용수 대사는 우리보다 훨씬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보다 좀 더 특별한 저녁상을 차려 주면 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외국 사신들을 상대하느라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한 우리 주상 전하를 위해 거한 수라상을 차려 줄 생각이었다.
* * *
파나르 대사관 사무실.
-여보세요 김준우입니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저야 뭐 최근엔 좀 바빴죠. 공문 보셨죠? 그거 하느라 좀 바빴죠.
김용수 대사의 말처럼 각 공관에 공문이 돌고 나서 사무실 전화기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안지용 참사관이나 김준우 서기관의 개인 휴대폰에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대부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행사를 어떻게 계획하고, 진행했는지 궁금해서 온 연락들이었다.
특히 전체 예산 관리를 했던 김준우 서기관에겐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연락이 오고 있었다.
준우는 이런 관심이 싫지 않은 듯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기분 좋게 연락들을 상대해 주고 있었다.
“김 서기관.”
“네 참사관님.”
“요새 여기저기서 연락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우리 예산 같은 건 얼마나 썼는지 너무 정확하게 알려 주진 마요. 괜히 탈 날 수 있으니까요.”
“에이 걱정 마세요 참사관님. 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고, 저도 그렇게 자세하게 알려 주진 않죠.”
“그냥 여우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괜히 걱정이 되네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따라 할 테면 따라 해 보라고 하세요. 그게 맘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렇긴 해요. 뭐 여튼 정보는 힘이다. 알죠?”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저희 이번에 성과금은 얼마나 나올까요?”
안지용 참사관은 신이 난 김준우 서기관의 멘탈을 한 번 가라앉혀 주었다.
예산 같은 정보가 유출이 되면 작더라도 꼭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본 안지용 참사관은 긴장하고 있었다. 모든 공관들이 자기들을 주목하는 이 상황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식 외교관이 아니었던 덕수에게도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장덕수 요리사님. 저는 재외 공관 요리사 조우영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제 연락처를 어떻게 아셨어요?
메신저를 통해 연락이 온 조우영이라는 요리사는 자신을 ‘임시’ 재외 공관 요리사 대표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저희 공관 서기관님을 통해서 부탁을 좀 했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어쨌든 반갑습니다.
김준우 서기관이 신이 나서 알려 줬을 것이다.
자기네 요리사 실력이 훌륭하다며 자랑을 했을 것이고, 많은 것을 배우라며 연락처도 공개했겠지.
덕수의 연락처가 국가 기밀 사항도 아니고, 이참에 다른 공관의 요리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오히려 좋았다.
-이번에 저희도 공문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닙니다. 선배님들이 훨씬 더 훌륭하실 텐데요.
-선배님요?
-하하 저는 일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나이도 아직 어리니깐 선배님이죠.
-그렇게 불러 주시니 고맙네요. 우리 재외 공관 요리사들에게 선후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네?
-여튼 저희 요리사들끼리 그룹 채팅을 할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초대해 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재외 공관 요리사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레시피라든가 업무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그런 모임이었다.
고군분투하고 있던 덕수에게도 이런 모임은 나쁠 것이 없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덕수 셰프님.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덕수는 이제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슬슬 알려지고 있었다.
* * *
김용수 대사의 집무실.
-여보세요 김용수 파나르 대사입니다.
-여보세요 장관입니다.
-네 장관님 잘 지내셨습니까? 직접 전화도 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반갑게 맞이해 주는 김용수 대사의 목소리에 장관은 차마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선배가 파나르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여기서 그냥 넘어간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런 의견이 나온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 내로 파나르 대사관에 불시 감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네? 불시 감사라뇨. 도대체 그게 무슨….”
“죄송합니다. 표창장이나 감사패가 아니라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요….”
“아닙니다. 장관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후배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테구요. 제가 너무 의욕이 앞섰나 봅니다.”
김용수 대사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장관은 어쩔 수 없이 파나르 대사관의 불시 감사를 허락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진행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이번 일로 괜히 의지가 꺾이지 않길 바랐다.
“김용수 선배님. 이번 일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일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장관님. 선배라뇨 편하게 말씀하십쇼.”
“이번 한 번만 무사히 넘겨 주십쇼. 그럼 이제 다른 공관장들도 찍소리 못할 겁니다. 저 역시 그렇게 조치할 거구요.”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김용수 대사 역시 장관과의 통화 말미에는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른 공관장들 역시 자신의 직속 후배였지만 파나르 대사관 직원들은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김용수 대사는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멘탈을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