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67화 (68/202)
  • 67. 고기 손질

    커다란 소갈비를 둘러메고 나와 우리를 놀라게 한 것도 모자라 정육점 주인은 이번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나와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근데 덕수야 저걸로 잘라도 되긴 돼?”

    “잘리는 게 아니라 부서지거나 그냥 파괴되는 거겠지.”

    윤아가 충분히 말로 설명했다지만 LA갈비는 파나르 사람으로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손질법이었다. 사진으로 봤다 한들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을 거다.

    파나르 사람들은 전부 크고, 많은 걸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소갈비도 큼직하게 잘라서 구워 먹는다. 그래서 그냥 도끼로 뼈를 자르고, 살은 칼로 잘라 주면 될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말려야겠지?”

    “응 괜히 고기만 망치겠다. 일단 말려 줘.”

    원치도 않은 방법으로 손질한 고기를 사게 될까 봐 윤아는 서둘러 내려치는 도끼를 막았다.

    “사장님. 이건 저희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 줘야 하는 거야?”

    정육점 사장님은 정말 몰라서 묻는 표정이었다.

    사장님의 가게는 인근 정육점들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취급하는 고기의 양도 적었고, 매출도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 셈이었다. 대사관에선 제법 대량으로 구매하니깐 이번에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우리와 거래를 틀 생각이었다.

    “음… 절단기도 있고, 육절기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는데 왜 이렇게 장사를 하지?”

    “뭐가?”

    파나르 시장에 갈 때마다 내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아주 상태가 좋은 고기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제대로 손질을 해 놓지 않고 판매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 비싼 소 안심도 기본적인 트리밍도 없이 그냥 덩어리째로 올려 두고 팔잖아. 소갈비도 그래,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팔면 좀 더 비싸게 받아도 사람들이 많이 사 갈 텐데.”

    “그래? 파나르 사람들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사니깐 그런 거 아닐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파나르엔 1인 가구라든가 조금만 사고 싶은 사람은 아예 없어?”

    설령 적게 구매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해도 좀만 더 깔끔하게 손질을 해서 판다면 비싸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도끼로 뼈를 자르니 뼛조각이 살에 박혀 있기도 하고, 모양이 이쁘지 않아 요리를 하기 전에 내가 손질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었다.

    “그냥 저 절단기를 이용해서 갈비도 좀 잘라 놓고, 안심도 이쁘게 손질해서 올려놓고, 이 살치살은 등심이랑 따로 구분해서 팔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정말?”

    파나르에선 한국처럼 소고기를 세세하게 구분해서 먹지 않았다. 그냥 안심, 갈비, 등심, 다릿살 정도.

    한국에선 고가에 팔리기도 하는 사골과 내장들은 먹질 않으니 그냥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잠시만.”

    나와 윤아가 고기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정육점 주인은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니면 고기를 팔지 못할까 봐 불안했든가.

    “사장님이 무슨 얘기하냐고 하길래, 네가 한국 대사관 요리사고 여기 있는 고기들 조금 손질해서 팔면 훨씬 잘 팔릴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어.”

    “그걸 말하면 어떡해. 기분 나빠 하지 않아? 사장님들은 자기 가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아니 오히려 궁금해하는데?”

    우려와 달리 사장의 표정은 오히려 간절해 보였다.

    최근 매출이 더욱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했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든 해 보겠다며 도움이 안 돼도 되니 일단 얘기해 달라며 달려들었다.

    “파나르에선 무조건 싸고, 많이 파는 게 장땡이라 주변 큰 정육점들을 이길 수 없대. 그나마 같이 일하던 직원도 최근에 자르고 혼자하고 있어서 물량으론 더 이기기가 어렵다는데….”

    “그렇겠지. 이런 작은 정육점이 물량으로 승부 보기는 쉽지 않지.”

    그러면 작은 가게만의 매력을 만들면 되는 거다.

    내가 오늘 구석에 박혀 있는 이 가게를 찾아왔던 것처럼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고기를 손질해 주고, 싼 가격 그대로 소량의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찾아올 것 같았다.

    “근데 윤아야. 파나르 사람들은 고기 같은 거 선물하지 않아? 명절이나 뭐 기념일 때.”

    “명절 때 갈비 같은 거 주고받는 거?”

    “응.”

    “거의 안 해. 파나르에선 한국처럼 고기가 그렇게 귀한 음식이라 생각하지 않거든.”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긴 하다. 소고기는 조금 비싸긴 해도 매일 먹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선물로 주고받을 만큼 귀하다고 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명절 때 소고기가 최고의 선물로 인정을 받을까?

    아마 좋은 부위만 골라 이쁘게 담은 포장이 한몫했을 것이다. 이쁘게 담으면 별거 아닌 것도 있어 보이기도 하거든.

    “그럼 선물 세트까지는 천천히 시도해 보고 일단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이라도 해서 팔아 보자. 내가 저 절단기 좀 써도 되는지 물어봐 줄래?”

    조심스레 묻자 사장은 아예 앞치마까지 내어 주며 정육점 안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아침부터 끌려와 정육점에서 소갈비를 손질하게 되다니. 참 알 수 없는 하루였다.

    “일단 갈비는 뼈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손질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팔면 훨씬 잘 팔릴 거예요. 파나르에선 갈비를 주로 어떻게 먹죠?”

    “음… 바비큐나 스튜?”

    한국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립을 통으로 바비큐 해 먹거나 찜처럼 국을 끓여 먹는다.

    그러니 요리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게 된다.

    “일단 뼈와 뼈 사이를 잘라 준 다음 5cm 길이로 뼈와 고기를 잘라 주면 돼요. 이건 한국으로 치면 갈비찜용.”

    주먹 반만 한 갈비가 손질되자 정육점 주인은 그게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이걸로 국을 끓여 먹어도 되고, 숯불에 구워 먹어도 훨씬 빨리 익을 거예요.”

    “오호.”

    그리고 이어서 LA갈비 손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뼈와 뼈 사이를 자르지 않고, 뼈와 함께 1cm 정도 두께로 잘라 내자 동글동글한 뼈가 박힌 길쭉한 갈비가 나왔다.

    “이거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예요.”

    “좋은데? 어떻게 먹을 때 쓰는 거야?”

    생전 처음 보는 갈비의 모양 나오자 정육점 주인은 신기한 표정이었다. 큼직한 뼈가 박혀 있는 갈비만 봤지 아기자기하고 동글한 뼈가 박혀 있는 LA갈비는 그저 신기해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걸 양념해서 구워 먹거나 쪄 먹는데, 파나르 사람들은 샤슬릭 구울 때 옆에 구워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정말 그러면 좋겠다. 안 그래도 갈비는 샤슬릭을 다 먹고도 익지 않아서 한참 전부터 준비를 해 두는데, 이거면 같이 구워도 되겠다.”

    생각보다 사장님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소고기의 구조에 대해선 빠삭했지만 손질법에 대해선 디테일하게 알고 있지 않았다.

    내 몫의 LA갈비까지 손질을 끝낸 뒤 몇 가지를 더 알려 주었다.

    “이 안심은 한국에서 최고급 부위로 통해요.”

    “우리 파나르에서도 좋은 부위야.”

    “근데 이렇게 팔아요?”

    고급 부위라면서 이렇게 대충 올려놓고 판다고?

    고가의 부위인 만큼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겉에 보이는 근막을 전부 제거해 주고, 지방도 최대한 잘라 주세요. 그리고 이 머리 쪽 부분은 안심에 붙어 있지만 식감은 훨씬 질기니깐 떼어 내서 따로 팔구요.”

    “음….”

    소고기 안심에 붙어 있던 불순불들을 제거해 주니 색이며, 모양이며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이렇게 볼품없이 쌓아 놓고 팔지 말고, 제일 비싼 부위니깐 이쁘게 포장해서 진열해 보세요. 이렇게 좋은 기계들 갖다 놓고 왜 쓰질 않는 거예요.”

    육절기는 물론이고, 진공 포장기까지 구비해 놓고 전혀 활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다르게 활용을 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지.

    육절기는 그냥 큼직하게 자르는 데 쓰고, 진공 포장기는 냄새가 심한 내장 부위를 포장하는 데 쓰고 있었다.

    정작 이쁘고, 깨끗하게 포장해야 할 안심이나 등심은 냉장고에 던져 두듯이 두고 팔아 놓고….

    “이렇게 개별 포장해서 냉장고에 진열해 놓으면 훨씬 위생적으로 보이고, 한 팩씩 팔 수 있으니깐 객단가도 높아질 거예요.”

    “오호 그건 좋네요.”

    객단가가 높아진다는 말이 맘에 들었나 보다.

    남아 있는 안심을 전부 진공 포장해 냉장고에 진열했다.

    “그리고 이 등심도 마블링이 잘 보이도록 잘라 주시고, 진열해 두면 훨씬 잘 팔릴 거예요.”

    “고마워요.”

    “그리고 이 사골은 판매 안 할 거죠?”

    “이건 뭐 파나르 사람들은 거의 먹지 않으니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에요.”

    다릿살을 전부 발라 내고 남은 사골은 파나르 사람들에겐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소나 말의 사료를 끓일 때 쓰라고 팔기도 하지만 거의 헐값에 팔고 있었다.

    “이것도 이렇게 작게 잘라서 지금 가격보다 2배, 아니 3배 정도로만 해서 놔둬 보세요.”

    “이거를요?”

    “네 아마 팔릴 겁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보이도록 손질하는 법을 알려 준 뒤 사골을 진열했다.

    꽤 많은 교민들이 파나르로 돌아왔으니, 그들의 눈에 띄기만 한다면 충분히 팔릴 것이다.

    소 다리뼈를 통째로 두고 팔았으니 그게 사골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게 생긴 뼈를 싼값에 팔고 있으면 보이는 대로 쓸어 갈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중국인이라도 사 갈 테니 걱정 없었다.

    한 시간 남짓한 수업 아닌 수업이 끝이 나자 가게가 한층 정리된 느낌이었다.

    “가게가 훨씬 깔끔해졌네요.”

    “감사합니다! 고기 손질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영문도 모르고 시장에 따라왔다가 졸지에 강의까지 해 버렸다.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지만 이 작은 정육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랐다.

    “덕수야 미안해. 상황이 갑자기 이렇게 됐네.”

    “뭐 너라고 이럴 줄 알았겠냐. 내가 다 이해해야지.”

    “그래도 갈비는 공짜로 얻었잖아.”

    “그것도 어차피 내가 요리할 거잖아.”

    “그… 그렇지.”

    고맙다며 손질한 LA갈비를 공짜로 얻기는 했지만 그것도 내가 요리를 해 줘야 먹을 수 있었다.

    며칠 뒤에 가서 내가 이 갈비값만큼 도움을 줬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이유 없이 받는 공짜는 체할 수 있는 법이니까.

    “어머니한테 며칠 내로 저 식육점 가서 사골이나 구매하라고 전해 줘. 질 좋은 사골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니까.”

    “아 맞다. 알았어 고마워!”

    고기는 비록 내가 더 힘을 썼지만 윤아는 개불이며, 해삼 등 파나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해산물들의 파나르명과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내 주었다.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물은 아니었지만 크게 봐선 내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거니 반가운 선물임은 확실했다.

    이제 차근히 국경일 행사를 준비하면 되겠다.

    * * *

    파나르 국제공항.

    “김준우 서기관님 잘 다녀오세요.”

    “네 임윤아 행정원님. 저 없는 동안 잘 준비 좀 해 주세요.”

    “휴우 벌써부터 막막하네요.”

    “저도 놀러 가는 거 아닌 거 아시죠?”

    “그렇다고 하기엔 뒤꿈치가 너무 가벼우신데요?”

    본부에 이것저것 요청할 수도 있지만 괜히 일을 크게 벌여서 문제를 만드는 것보다 파나르 공관 측에서 직접 갔다 오는 편이 나았다.

    김준우 서기관은 파나르 대사관 관저를 궁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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